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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펠리아를 위한 연가(戀歌)
작가 : 리체르카레
작품등록일 : 201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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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오후의 다과회.-3
작성일 : 17-12-17     조회 : 302     추천 : 0     분량 : 3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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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옷은 금방 정해진 상태였다. 다른 대여용 의상을 더 이상 입을 필요도 없었다. 세 명의 남자들은 자신이 입었던 옷에 충분히 만족했고 그 옷을 골라준 오펠리아의 안목을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단지 백작님이 입으신 바지의 단이 조금 긴 편이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수선을 했을 뿐, 품도 거의 맞춘 것처럼 잘 맞았다.

 

 우리의 옷을 고른 다음 차례는 바로 오펠리아가 빌릴 옷을 고르는 것이었다. 자신의 옷을 고를 때는 속전속결로 끝났던 세 남자는 예리한 눈으로 오펠리아가 대어보는 드레스의 각 부분을 훑어보았다.

 

 “오펠리아 그건 앞이 너무 많이 파였잖니. 예쁘긴 하지만 입고 행동하기에 불편할 수도 있어.”

 

 “옷 색은 마음에 드는데 너무 옷감의 광택이 조금 튑니다. 이건 아니라고 봅니다.”

 

 “오펠리아, 그 디자인은 최근 유행과는 조금 먼 것 같은데? 다른 걸 골라봐.”

 

 오펠리아의 옷을 봐주는 세 사람은 나이도 다르고 선호도도 다른 형편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의견이 일치되는 옷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덕에 오펠리아는 수많은 드레스를 얼굴에 대어봐야만 했다.

 

 결국 우리가 공통적으로 고른 옷은 오펠리아의 눈 색과 비슷한 짙은 에메랄드 색의 드레스였다. 소매와 치맛단, 그리고 목덜미 부분에 장식된 섬세한 하얀 레이스가 어두운 분위기를 보완하여 그녀의 얼굴을 화사하게 만들어 주었다.

 

 가슴이 많이 파이지도 않았고 적당히 품위가 있으면서도 요즘 유행에 빠지지 않는 옷이라 세 남자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옷을 든 하녀와 함께 탈의실로 가는 오펠리아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을 보니 그녀의 마음에도 드는 모양이다.

 

 

 “저기 백작님.”

 

 내가 코닝에게 슬쩍 눈치를 주면서 말문을 열었다. 그러자 코닝이 눈치 빠르게 내 말을 받았다.

 

 “아까 대화를 나누신 숙녀분 말입니다. 혹시 잘 아시는 분이신지요?”

 

 백작님께 질문을 하는 코닝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아마 나도 그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아니, 오늘 여기서 처음 뵙는 숙녀분이라네.”

 

 백작님의 말씀에 우리는 조금 안도하는 얼굴이 되었다. 이전의 생처럼 백작님이 새튼 부인과 다시 재혼하게 된다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사라져서다. 시간을 애써 거스른 우리의 노력이 다 쓸데없는 것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언제나 나의 마음에 작은 가시처럼 박히곤 했다.

 

 “저는 백작님께서 이전 어딘가의 사교계에서 만나신 분이시라고 짐작했습니다. 생각보다 편하게 말씀하셔서 말입니다.”

 

 “그야, 딸을 키우는 부모라는 같은 입장이 있으니 처음 보는 타인이라 해도 쉽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가.”

 

 “그런 것입니까?”

 

 “그렇지. 게다가 나는 오펠리아의 드레스를 골라주는 안목이 그리 없는 편이어서 말이네. 그 부인과 대화가 잘 통하면 도움을 조금 받으려고 했다네.”

 

 백작님이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나와 코닝을 한 번씩 응시하셨다. 백작님의 눈에는 즐거운 빛이 가득한 상태였다.

 

 “여기에 있는 두 신사께서 생각보다 여성의 드레스를 고르는 안목이 괜찮아서 뭐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었지만 말이네.”

 

 사람은 동일한 조건이나 상황에 있는 상대에게 상당히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 법이다. 그것이 처음 만난 상대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새는 같은 깃털을 가진 종끼리 모인다는 속담이 나오는 것이겠지.

 

 나는 이전 생에서 칼리아 새튼이 어떻게 단기간에 백작님께 접근하여 결혼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같이 혼자 몸으로 딸을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지를 파악하여 접근하였을 것이다. 어쩌면 오펠리아가 시집을 간 이후의 상황을 꺼내어서 백작님의 마음을 흔들어놨을 지도 모르겠다. 딸들을 시집보내고 난 뒤에 두 사람이서 행복한 미래를 살자는 식으로.

 

 어느 쪽이든 절대 용납이 될 수 없었다. 백작님의 행복은 오펠리아의 행복과 직결되는 것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서 한 번 더 진행하고 있음에도 같은 결과를 얻는다면 나는 결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게 될 거 같다.

 

 “아버지, 저 어떤가요?”

 

 오펠리아가 하녀의 도움을 받아 드레스를 갈아입고 나왔다. 초록색 드레스는 정말이지 그녀에게 잘 어울렸다. 깊어가는 가을의 한가운데였음에도 불구하고, 순간 여름의 여신이 강림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응접실에 있던 세 남자의 얼굴에 전부 환한 미소가 감도는 시간이었다.

 

 “오펠리아, 정말 잘 어울리는구나.”

 

 “감사합니다, 아버지.”

 

 오펠리아가 얼굴을 슬쩍 붉히며 환하게 웃었다. 백작님은 자신의 어린 딸의 성장(盛裝)이 무척이나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표정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해밀턴의 양장점에서 정장을 맞췄을 때 내 어머니께서 보이시던 표정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테오, 나 어때?”

 

 아버지와 이야기를 마친 오펠리아가 이번에는 내 쪽을 보며 수줍게 웃었다. 순간 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처음 살아있는 그녀를 만났을 때처럼 그녀는 스스로 빛이 나는 것 같아서다.

 

 “예뻐. 정말 예뻐.”

 

 “고마워. 테오.”

 

 그녀가 다시금 웃었다. 그녀는 풍성한 금발을 올리지 않고 내린 채였다. 그 덕에 초록색 드레스 위로 황금의 강이 흘러가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원래 가지고 있었던 그녀의 미모가 아름다운 드레스 때문에 더 사는 것 같다.

 

 나는 기억상의 오펠리아가 어두운 옷만 골라 입었던 것을 기억했다. 마치 의도적으로 그녀의 미모를 죽이기 위해 그런 옷을 입은 것처럼, 오펠리아는 나이에 맞지 않게 노숙하고 유행에 뒤쳐진 옷만 골라서 입었던 것 같다. 이것도 혹시 칼리아 새튼이 은근히 뒤에서 공작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자 내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

 

 

 백작님은 양장점에서 옷을 빌린 김에 몇 벌을 거기서 맞추기로 하셨다. 확실히 유행의 최첨단을 달리는 수도의 양장점이라 그런지, 옷의 패턴이 뛰어나고 아름다우면서도 입고 움직이기에 편했기 때문이다.

 

 백작님은 당신이 입으신 옷과 오펠리아가 입은 드레스가 무척 마음에 드셨던 모양인지 생각보다 많은 옷을 주문하셨다. 그 자리에 동행한 덕분에 나와 코닝도 몇 벌의 옷을 같이 맞추게 되었다. 대여복의 대여비와 제작비는 전부 백작님이 지불하신 상태였다.

 

 수선과 기타 작업이 끝나자 대여용 옷은 바로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로 배달하기로 이야기가 끝났다. 지배인이 즐거운 얼굴로 양장점 바깥까지 마중해주었다. 이후의 시간은 린턴에 있는 백화점을 한번 둘러보는 것으로 보냈다. 살 것이 특별히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수도로 온 만큼 구경은 하는 게 좋다는 오펠리아의 의견을 따른 것이었다.

 

 오늘의 저녁은 원래 린턴 외곽에 있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먹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일 다과회가 있는 이상 체력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어제 식사를 했던 레스토랑에서 다시 저녁을 먹었다. 혹시나 또 들이닥치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던 찰스 버밍턴은 다행히도 나타나지 않았다.

 

 

 *

 

 

 다음날은 아침부터 다과회에 참석하는 준비로 전부 분주했다. 백작님은 호텔 측에 도움을 줄만한 하인과 하녀들을 미리 요청한 상태였다. 남자들이 비교적 여유롭게 준비를 마친 반면, 오펠리아의 치장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기다림은 충분히 보상을 받은 상태다. 그녀는 오늘 정말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나는 황태자 전하의 궁으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오늘의 예정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오늘은 황태자 전하와 함께 차를 마시고 그분의 감사를 받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 어쩌면 간단한 답례의 선물을 받을 수도 있다. 내가 서기관이 된 이후 일반적인 일정이 그러하니 말이다.

 

 다과회라 해도 그렇게 알현의 시간이 길지는 않을 것이다. 길어봤자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하루의 일정이 많아 시간을 언제나 바쁘게 쓰셔야 하는 전하께서 가장 많이 소요할 수 있는 시간이다. 나는 다과회가 끝난 뒤의 일정을 가늠했다. 이왕 황궁 근처로 나왔으니 근처를 관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예상대로 우리가 황태자궁에 들어가 그분을 알현하고 인사말을 건네는 순간 그분이 뜻밖의 말씀을 하셨기 때문이다.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은 실례라는 것을 잘 아네.”

 

 “네.”

 

 “하지만 혹시 가능하다면 말이네. 나의 비서관으로 일 해줄 수 있겠나? 테오, 오펠리아 둘 다 말이네.”

 

 너무나 뜻밖의 말씀에 우리의 행동이 전부 굳어지고 말았다. 이것은 또 무슨 징조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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