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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펠리아를 위한 연가(戀歌)
작가 : 리체르카레
작품등록일 : 201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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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오후의 다과회.-4
작성일 : 17-12-17     조회 : 278     추천 : 0     분량 : 3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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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초청을 받은 황태자궁의 응접실은 황태자궁에서 가장 화려한 응접실 중에 하나였다. 일반적인 귀족이나 백성들을 만나는 장소로 사용하는 응접실이 아닌 타국의 왕족들이나 들어온 응접실에 우리 일행을 들이셨다는 것은 아드리안 전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고마움을 느끼셨는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우리 일행 중에서 응접실의 화려함이나 우아함에 감탄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들 앞에 놓은 차와 과자는 시중에서 절대 맛볼 수 없는, 황실에서만 마시는 최고급의 것들이었으나, 이것들도 현재 사람들의 외면을 받고 있었다. 황태자 전하의 제의가 너무나 황당하고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

 

 전하께서 왜 저런 제의를 하셨는지 반은 짐작이 가고 반은 전혀 모르겠다. 짐작이 가는 부분은 역시 나와 상관이 있는 부분이다. 분명 이전 생에서 아드리안 전하께서 사무관으로 뽑혔던 나를 특히 가까이 두셨던 이유와 같은 것이겠지. 그것은 바로 내가 젊고 사고가 유연하며 기억력이 좋고 판단력과 행동력이 빠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좀 있었다. 나는 아직 열일곱이었고 체계화된 서기관 교육을 아직 받지 못한 상태였다. 물론 몸만 열일곱이기 때문에 서기관으로 일할 때에 필요한 모든 지침과 교육과정, 그리고 지식과 정보는 다 갖추고 있다. 내 외적인 부분에서 자격을 갖추고 있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내 나이나 자격에 관한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으니 바로 전하께서 오펠리아에게도 동일한 제안을 하셨다는 것이다. 왜 나 혼자만이 아니라 오펠리아까지 전하의 비서관이 되어야 하는 거지?

 

 나는 이전 생에서 황궁 내에 일하던 사무관과 서기관의 성비를 조용히 머릿속에 떠올렸다. 황궁에서 서기관이나 비서관으로 일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남성이었지만 드물게 여성도 존재했다. 바로 황후마마와 황녀 저하의 곁을 보좌하는 비서관과 서기관들이다. 혹시 이런 분들의 서기관이나 비서관이 필요했던 것일까?

 

 “황태자 전하.”

 

 이런 의문을 가진 게 나만이 아닌 듯 백작님이 먼저 운을 떼셨다. 우리 일행의 가장 연장자이신 분이니 대표로 전하께 질문을 드리기에도 가장 적당하다. 나는 일단 입을 닫고 황태자 전하와 백작님을 차례로 응시했다. 두 분이 나누시는 대화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말씀하시오. 해밀턴 백작.”

 

 “일단 감사를 받을 필요도 없는 작은 도움에 이렇게 황태자궁으로 초대해주신 것과, 분에 넘치는 제안을 제의해 주신 것에 황공할 따름입니다.”

 

 백작님의 인사는 그제와 마찬가지로 고색창연하고 예스런 편이었다. 그 인사에 전하께서 슬쩍 미소를 지으시며 손을 저으셨다.

 

 “작은 도움이라뇨. 절대 작은 도움이라 할 수 없소이다. 그때 그대들이 곁을 지나가면서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나의 몸에 바로 위험이 닥쳤을 것이니 말이오. 이후에도 각종 편의를 봐 주지 않았소?”

 

 아드리안 전하의 보랏빛 눈동자가 백작님에서 나를 넘어서 오펠리아에게 닿았다. 호의가 가득 담긴 그 시선에 불안해지는 것은 왜일까. 황태자 전하가 다시 내게 시선을 돌리며 말씀하셨다.

 

 “나는 내가 한 제안이 분에 넘치는 제안이라고 생각하지 않소이다. 대화를 조금이라도 나눠보면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지식을 가졌는지 전부 파악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았으니 말이오. 테오와 오펠리아는 내 비서관이 될 만한 자격이 충분하오. 그러니 긍정적인 대답을 해줬으면 좋겠소이다.”

 

 “여기 있는 제 친구의 아들 테오도르 아이멜에게 비서관이 되어달라고 요청하신 것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나이에 비해 영특하고 사리분별이 빠른데다가, 젊은 나이에 비해 상당히 신중한 편이니 말입니다.”

 

 백작님이 그렇게 말씀하시고선 자신의 딸 오펠리아를 응시하셨다. 딸에 대한 사랑과 약간의 혼란이 그 시선 안에 같이 담겨있다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제 딸은 아직 어리고 미숙합니다. 게다가 이곳 린턴에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지라…….”

 

 “나는 그대의 딸 오펠리아가 그리 어리지 않다고 생각하오. 여기 있는 테오와 같은 나이지 않소? 게다가 피투성이가 된 남자를 보고도 놀라지 않은 담력과 도와야겠다는 판단력을 가진 귀족가의 아가씨이지.”

 

 아드리안 전하의 입가에 즐거운 미소가 가득 담긴다. 나는 황태자 전하께서 방금 사용하신 언어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혹시 전하께 여자 비서관이 필요한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일까 싶어서였다.

 

 일단 먼저 그 당시에 있었던 일들을 다시금 머릿속에 떠올려 본다. 백작 영애인 오펠리아가 비서관으로 일해야 할 만큼 중요한 사건이 있었던가. 하지만 내 기억 속에서 가장 큰 사건은 역시 공화주의에 물든 대학생들이 소요를 일으키는 정도뿐이다. 대학에 가지 않을 오펠리아와는 전혀 접점이 없는 사건이라 하겠다.

 

 “용감한 귀족가의 아가씨가 몸소 나서야 할 만한 무슨 사건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백작님이 표정을 달리하시면서 전하께 다시금 질문을 던지셨다. 사람이 궁금한 부분은 다들 비슷한 모양이다.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을 그분이 대번에 던지셨기에 나는 호기심을 얼굴에 가득 담고 아드리안 전하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최근에 린턴의 사교계에서 조금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다오.”

 

 “이상한 소문이라 하시면…….”

 

 “평소에 아주 건강하고 감기 한번 앓지 않던 귀족이 갑자기 돌연사를 하는 일이 최근 돌아서 말이오.”

 

 “네.”

 

 “뭔가 타이밍이 너무 좋게 사망하는 일이 흔해서 조금 살펴보려고 하는데, 내가 모든 부분에서 다 수사를 할 수 없어서 말이지. 예를 들자면 레이디의 옷장이라던가, 다과회 같은 곳 말이오.”

 

 황태자 전하의 입술에서 나온 ‘돌연사’란 단어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제 우연히 양장점에서 만났던 칼리아 새튼과 그녀의 딸 에리카가 머릿속에 대번에 떠오른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돌연사라 하셨습니까? 전하,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습니다. 해밀턴 쪽의 신문에 실린 것이 없어서 제가 소식이 조금 늦을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돌연사가 한번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오. 인간은 미래를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존재이니 사신의 낫이 언제 다가와 목숨을 수확할지 알 수 없는 것 아니겠소?”

 

 “그건 그렇습니다.”

 

 “하지만 한 집안에서 세 명이 넘게 사망했다면 어떨 것 같소? 그것도 최근 육 개월 동안에 말이오.”

 

 이야기를 듣는 우리의 표정이 대번 굳어졌다. 한 집안에서 육 개월 동안 세 명? 무슨 전염병이라도 돌았던 것일까? 그러지 않고서는 양질의 음식을 먹고 쾌적한 환경에서 사는 귀족가에서 그런 식으로 한꺼번에 사람이 죽는 일은 거의 드물다. 아마도 원인은 누군가에 의한 독살인 것인가?

 

 “어디 집안에서 그런 흉측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저는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해밀턴 백작님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어지셨다. 황태자 전하께서 무언가를 잠시 생각하시더니 그 질문에 답변을 주셨다.

 

 “그러고 보니 해밀턴 백작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은 아닌 것 같소. 그대의 집안과 관련이 조금 있으니 말이오.”

 

 “저의 집안이라 하시면…….”

 

 “그대의 가문이 버밍턴 가문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혹시 아니요?”

 

 “버밍턴이라 하셨습니까?”

 

 백작님의 얼굴이 싸늘하게 변했다. 아마도 버밍턴의 성을 가진 한 남자가 바로 머릿속에 떠올라서일 것이다.

 

 “그렇소이다. 사망자는 전부 버밍턴의 사람은 아니었소이다. 하지만 가장 이득을 본 사람은 버밍턴의 새 주인이지.”

 

 순간 이야기를 듣던 우리의 눈매가 동시에 날카롭게 변했다. 버밍턴의 새 주인이라 하면 단 한사람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로 유일한 정식 후계자이자 며칠 전에 우리를 황당하게 했던 바로 그 인물이다.

 

 “바로 찰스 버밍턴 백작 말일세. 그가 이번 연이은 사망사건으로 최대의 수혜를 받은 사람이지.”

 

 아드리안 전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고 말을 마치셨다. 그분의 시선은 여전히 오펠리아의 녹색 눈에 박혀 있었다. 너무나 불안하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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