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은혈록
작가 : 실라인
작품등록일 : 201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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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대위마 정화협회(3)
작성일 : 17-12-14     조회 : 32     추천 : 0     분량 : 4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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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옆까지 껄렁하게 걸어온 그 사람은, 아까 나를 기절시킨 녹색머리의 남자였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경계하며 바라보자 그 남자는 피식 웃으며 내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앉으라는 듯 손짓했다.

 “그렇게 긴장 하지 않아도 돼. 널 후려 패거나 하진 않을 거니까.”

 사람을 죽일 기세로 패려했던 사람이 잘도 말하네.

 나는 당연히 그 말을 입밖으로 내뱉지 않고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예. 그보다 테스트요?”

 “미안해요. 사실 학생을 대상으로 몇 가지 테스트를 시행했어요.”

 이지인이 나에게 사과함과 동시에 녹색 머리의 남자가 내 질문에 대답했다.

 “시퀸스 1. 구속되어있지 않은 채 방치 상황. 너는 처음 방 안을 살피기만 할뿐 그 이상의 행동을 취하지 않았어. 오히려 여유까지 느껴졌지.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있다는 증거다. 갓 은혈귀가 된 녀석들은 대부분 정신이 불안정해지거든.”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럼 지금까지 날 감시하고 있었다고?

 녹색머리의 남자는 심란해진 나와 다르게 신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시퀀스 3-5. 무방비의 이성과 단 둘이 있게 된 상황. 너는 기절하고 시간이 꽤나 지났음에도 이성에 대한 흡혈 욕구를 내비치지 않았지. 은혈귀가 그 욕구를 이겨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마지막 시퀀스 7.”

 그 남자는 이지인에게 다가가더니 가방 속에서 그슨대가 갇힌 병을 꺼내 공중으로 던졌다 받았다를 반복했다.

 “이 녀석이 기겁할 정도의 파사의 힘을 내포하고 있다는 건 네가 은혈귀가 아니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은혈귀는 어디까지나 은이 가진 파사의 힘을 왜곡해서 사용할 뿐, 파사의 힘 자체를 다룰 순 없어. 사람의 몸속에서 불꽃을 피워낼 수 없듯이. 그러니 장담할 수 있다. 넌 인간이야.”

 믿음직스럽게 자신하는 녹색머리의 남자의 말에 나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런 나를 보며 이초성은 미소를 거두고 그슨대가 담긴 병을 책상위에 올려놓은 뒤 고개를 숙였다.

 “그렇다 해도. 미안하다. 네가 습격당한 것도, 네가 그렇게 된 것도 전적으로 우리의 책임이다. 너를 습격한 은혈귀를 진작 색출해냈었다면 이런 일 따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껄렁하고 가벼워 보이던 남자의 무거운 사과.

 나는 그 갑작스런 사과에 흠칫한 나는 조용히 말했다.

 “혹시 제 몸에 큰 이상이 있는 건가요?”

 “아뇨. 학생이 가진 순수한 파사의 힘은 인간에게 무해해요. 저희들이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학생은 평생 몸 건강히 살 수 있을 거예요.”

 “뭐. 그럼 됐어요.”

 이지인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오늘 하루 바쁘긴 했지만, 남들이 겪지 못 할 특이한 경험 한 번 했다 생각하죠.”

 난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죽지 않았다. 내 몸속의 힘 때문에 앞으로 피해를 받을 일은 없다.

 세상의 비밀을 일부분 알게 되었고, 혹시나 모를 사고에 대비할 수 있는 갑옷도 얻었다.

 몸속 액체가 어떤 해악을 끼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내가 괴물일지도 모른다는 심리적 압박감은 이지인과 이초성의 말로 일단락 시킬 수 있었다.

 예상치 못 한 일이 벌어지면 잘못 될 수도 있다는 말이 걸리긴 하지만.

 어쨌든 매일 억지로라도 이득이득 거리는 인용이의 말을 빌리자면, 그래. 이득에 가깝다.

 간신히 긍정적으로 생각하는데 성공했는데, 이초성이 내게 찬물을 끼얹었다.

 “아직 괜찮다 말하기엔 일러.”

 “맞아요. 아직 이르죠. 사실, 지금부터가 본론이고요.”

 이지인은 이초성의 말을 받으며 가방 속에서 또 다른 서류를 꺼냈다.

 아직도 남은 게 있다고?

 “나는 네가 인간이라고 백퍼센트 장담할 수 있지만, 아직 네가 새로운 변종이라 염두하고 있는 녀석들이 있다. 덕분에 기약 없이 너에게 감시자를 붙여둬야 해.”

 감시자란 말에 나는 인상을 썼다.

 “감시라 해도 밀착감시는 아니에요. 감시가 붙어있다고 생각되지도 않을 정도로 멀찍이서 지켜보기만 할 거니까요. 어디까지나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 아시겠죠?”

 이지인이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서인지 입을 빠르게 놀렸다.

 하지만 나는 거부감을 숨길 수 없었다.

 감시가 붙어있다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 라고는 하지만 감시한다는 것 자체가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의미니까.

 며칠. 몇 달. 몇 년. 심하면 평생을 말이다.

 더군다나 나를 감시한다는 건 나뿐만이 아니라 나와 교류하는 주변 사람들까지 덩달아 감시받게 된다는 뜻. 나 때문에 애꿎은 피해를 입게 될 수도 있다.

 “그게 싫다면 다른 길도 있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 나에게 다시 껄렁한 분위기로 돌아온 이초성이 웃으며 말했다. 마치 밀짚모자를 쓴 그 누구처럼.

 “너, 내 동료가 되어라.”

 

 

 

 

 “정말 우리 아들이 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아드님께선 저희 연구소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인재상인걸요.”

 나는 누나라고 부르라 반강제적인 명령을 내린 이지인 누나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바래다주기만 하는 줄 알았던 이지인 누나는 나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와 사무적이지만 예의바른 몸가짐으로 엄마에게 여러 가지 서류를 건네주며 오늘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물론 은혈귀에 대한 건 아니다. 그건 바로….

 “바로 취업이 가능하다고요?”

 “네. 이번 정부가 추진하는 취업지원 프로그램에서 아드님이 우수한 성적을 거두셨기 때문이죠. 저희가 원하는 인재상이기도 하고요. 방과 후 연구소에서 업무 교육을 받는다면 졸업 이후 바로 저희 연구소에서 사원으로 근무할 수 있게 됩니다. 더군다나….”

 그렇다.

 이지인누나는 은혈귀와 그에 대한 일을 내 취직에 관한 일로 포장시키고 있다.

 “방학 때는 직접 인턴쉽 형식으로 근무 할 수도 있답니다. 물론 월급은 초봉의 9할선이겠지만요. 그리고….”

 엄마는 사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류를 꼼꼼히 살펴보고 살펴봤다.

 심지어 서류가 이중으로 되어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입김이 묻은 손으로 비벼보기까지 했다.

 하지만 당연히 변하는 건 없다.

 사기는 맞지만, 어떤 의미로는 사기가 아니니까.

 이지인누나와 한국본부의 본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초성본부장님은 나에게 상이생태학연구소. 다른 말로 대위마 정화협회에 가입을 권했다.

 물론 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허리에 부상을 입고도 나를 막아섰던 한소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피 튀기고 상처 입는 일상을 보낼 게 분명하니까.

 그런 비일상적인 일 없이 평온한 나날을 보내는 게 나의 작은 소망이다.

 그래. 내 일상은 그 누구도 부수지 못 한다!

 …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금액이었다.

 이지인 누나는 연봉도 아닌 월급에 천만 단위 액수를 제시했다. 지금의 나로서는, 혹은 미래의 나조차도 감히 쉽게 상상할 수조차 없는 돈.

 이초성본부장님은 흔들리는 나에게 쐐기를 박기위해 넌지시 말했고 말이다

 ‘현재 은혈귀는 박멸 직전이다.’

 약 4년 전.

 지금와선 은혈전쟁이라 명해진, 은혈귀들과 인간들 간에 대대적인 전쟁이 있었다한다.

 수많은 은혈귀와 인간이 허무하리만큼 쉽게 죽어나갔다지.

 어쨌든 음지 밑에서 수개월 동안 이어진 그 전쟁은 인간들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 당시 최초의 은혈귀라는 아드리안 티보르는 도망쳤지만 그의 수족들 대부분이 그야말로 먼지가 되었고, 이제 남아있는 은혈귀들는 거의 잔챙이뿐이라고 이초성 본부장님은 말했다.

 ‘간부급 이상은 우리들 선에서 처리할 테니, 너희들은 잔반만 닦으면 된다.’고 말이다.

 인력난이니 뭐니 추가로 투덜거리면서.

 덕분에 나는 아직도 두뇌를 풀가동해서 고민하고 있다.

 “물론 학생의 미래이니만큼 어디까지나 학생의 희망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문제겠지요.”

 이지인누나가 고민하는 나와 엄마를 바라보다 한 발 빼며 말했다.

 “밤늦게까지 죄송했어요. 이만 가보도록 할게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다음 주 주말까지. 부디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주세요.”

 어디까지나 친절하게 미소지은 이지인누나는 배웅해주려는 엄마와 함께 현관문을 나섰다.

 “오빠. 진짜? 대박이다. 바로 공무원 되는 거야?”

 “아직 결정 안 했어. 그리고 공공기관에 취직한다고 다 공무원 되는 건 아니다. 바보야.”

 놀랍게도 상이생태학연구소란 간판은 장식이 아니었다.

 표면적으로는 한국에서 발견된 새로운 미생물들이 가지는 특이성과 위험성 등을 연구하는 곳이라고 한다.

 몇몇 사람은 실제 연구를 진행하기도 하고 말이다.

 “바보는 왜 붙여? 근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오빠가 할 수 있을까?”

 하린이는 스마트폰에 상이생태학연구소 홈페이지의 연구실적 페이지를 펼쳐 나에게 보여주었다.

 “아 몰라. 아직 결정도 안 했다니까.”

 나는 거실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그러다 엎지를라.”

 배웅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온 엄마가 내 옆에 있던 컵들을 옆으로 치웠다.

 “아들은 어쩌고 싶어?”

 “글쎄. 모르겠네.”

 내 어정쩡한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하린이가 내 다리를 찰싹찰싹 때리며 말했다.

 “초봉이 월 300이라며. 해야지 뭘 망설여!”

 “아파. 그만 때려.”

 도망칠 생각도 안 하고 손만 휘휘 내젓는 나.

 현실성 있게 조작해서 만들어진 백 단위 금액에 내 다리를 때리면서 강요하다니. 실제 수령하는 돈이 얼마인지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네.

 “어휴. 시끄러워. 일단 그만하고 자자. 밤이 늦었어.”

 12시 10분 전.

 늦은 시각 집 안에 울려 퍼지는 엄마릐 말소리에 나와 하린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잘 준비를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적당히 씻고 나온 나를 향해 엄마가 말했다.

 “아들.”

 “응?”

 “아들이 어떤 선택을 해도 좋으니까. 후회 없는 선택을 했으면 좋겠어. 알았지?”

 “…알았어.”

 나는 작게 웃으며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눕혔다.

 다사다난했던 하루가 끝나기 5분 전.

 드디어 꿀 같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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