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은혈록
작가 : 실라인
작품등록일 : 2017.12.14
  첫회보기
 
8. 대위마 정화협회(4) + 레이크(1)
작성일 : 17-12-14     조회 : 31     추천 : 0     분량 : 4583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제정신입니까? 그런 위험인물을 정화하지 못할망정, 협회에 가입 시키다니요?!”

 검은 정장을 입고 올백머리를 한 남자가 눈썹을 팔자로 만들며 이초성에게 소리쳤다.

 “파사의 힘을 깃든 은혈귀 따위 있을 리 없지. 또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곁에 두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네만.”

 단안경을 낀 남성이 그 말에 반박하자 올백머리의 남자가 단안경의 남성을 노려보며 말했다.

 “은의 힘을 다루는 위마도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파사의 힘을 가진 위마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어요.”

 “정도가 있는 법이지 않는가. 파사의 힘을 가진 은혈귀라니. 생물체가 초강산 따위를 품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일세.”

 “하지만 그것만으로 아군이라 단정 지을 수도 없죠. ‘그 조직’의 스파이일 수도 있고요.”

 단발 보브컷의 여성이 끼어들자 올백머리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떤 위험요소가 될지도 모르는데 방치하다니, 수긍할 수 없는 일입니다.”

 “가득이나 귀한 순례자들을 감시에 투입하는 것부터가 인력의 낭비라고 봐요.”

 두 사람이 연이어 날카롭게 말하자 단안경의 남자가 유들유들하게 말했다.

 “자자. 이번 사건이 귀한 순례자를 충원할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맞아요. 다른 테스트를 전부 통과했잖아요? 인성도 합격점이고, 전투능력 또한 센스만 잘 다듬는다면 분명 훗날 칠흑의 순례자와 맞먹는 전력이 될 거예요.”

 이지인이 몇 시간 전 만났던 한 학생을 떠올리며 단안경을 낀 남자의 의견에 동의했다.

 “다른 말로 칠흑의 순례자급의 위험분자란 소리도….”

 “아. 시끄러. 결론이 안 나네.”

 초록색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트린 이초성이 목청이 높아지는 올백머리의 남자의 말을 잘랐다.

 “애초에 적일지도 모른다는 작은 가능성 때문에 인간을 죽이자?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 그 녀석은 틀림없는 백색이야. 그것도 능력 있는 백색. 내가 본부장 직책에 어울리지 않는 건 인정하지만, 사람 보는 눈만큼은 전 본부장보다 낫다고.”

 “하지만!”

 올백머리의 남지는 납득할 수 없다며 말을 이었지만, 그와 반대로 보브컷의 여자는 이초성의 무책임하고 논리 없는 말에 살짝 마음이 기울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남자. 이초성은 파격적이란 단어를 초월 할 정도로 직감이 좋다.

 그 직감 덕분에 4년 전. 자신도 휘말렸었던 은혈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이초성은 아드리안 티보르에게 회심의 일격을 가할 수 있었다.

 아무리 이초성이 지금 세계에 6명밖에 남지 않은 칠흑의 순례자라 해도, 직감적인 상환판단이 없었다면 그 날 아드리안을 패퇴시키는 건 불가능했을 터다.

 그런 이초성이 은혈귀가 아니라 인간이라고 확언하고 있다.

 “…조금은 더 지켜봐도 괜찮겠죠.”

 마음을 정한 보브컷 여성의 말이 끝나자 올백머리의 남자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하는 올백머리의 남자에게 보브컷의 여자는 차분히 말했다.

 “전력을 충원 할 수 있다는 말이 매력적으로 들렸거든요. 직무 로테이션에 여유가 없지만 칠흑의 순례자를 영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면 말이 달라지죠. 물론 조금이라도 은혈귀란 조짐이 보이는 순간 철회하도록 할 겁니다.”

 그 말이 끝나자 단안경을 쓴 남자가 한시름 놨다는 듯 말했다.

 “이걸로 드디어 4:2 과반이로군. 기권표가 돌아서도 결과가 변하지 않는 만큼 이번 의제는 다음 달 정기회의까지 보류하는 걸로 하지..”

 올백머리의 남자는 불만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이미 결정된 사안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려는 듯 침묵을 고수했다.

 그 모습을 본 이초성은 장내를 정리했다.

 “좋아. 이걸로 긴급대책회의를 마치도록 하자고. 늦은 시간까지 고생 많았어. 해산!”

 그 말에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자 이지인이 이초성에게 다가와서 회의실을 나가는 올백머리 남자의 뒷모습을 슬쩍 보더니 물었다.

 “유태성씨가 또 다시 단독행동을 하진 않을까요?”

 “저 녀석이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야. 비록 단독행동이었지만 어찌 보면 합리적인 판단이었고 말이지. 알잖아?”

 “그렇지만….”

 이지인은 유태성이 마지막에 보인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걱정 하지 말라고. 그것보다 소윤이는 어때?”

 “회복 중이에요. 유성 안에서.”

 은혈을 의도적으로 각성시켜 회복력을 증폭시키는 기구. 일명 유성. 한소윤이 그곳에 들어가 있는 걸 상기해낸 이지인이 말했다.

 “아직도?”

 “어쩔 수 없죠. 유성은 한 달 내에 동일 인물에게 재사용시 효과가 반감 되니까요.”

 “민아는? 걔도 유성에 있어?”

 “아뇨. 아까 나와서 깁스 하고 돌아갔어요. 팔뼈가 전부 으스러졌지만 민아는 유성에 처음 들어간 덕분인지 회복률이 높았거든요. 통상 치료라면 2~3주. 유성에 한 번 더 들어가면 5~6일 정도 지나 완치 될 거라 해요.”

 이초성은 알았다는 듯 턱을 괸 상태로 이지인에게 지시를 내렸다.

 “굳이 유성에 들어갈 필요는 없겠네. 2~3주 동안 푹 쉬라고 해. 그리고 그 사이에 그 녀석 기본 교육 마치고, 민아랑 같이 팀에 넣으면 되겠어.”

 “너무 이른 감이 없잖아 있지만. 네. 알겠어요. 그럼 교육 플랜을 민아 완치시기에 맞춰 짜놓도록 할게요.”

 “그래. 잘 부탁해. 아. 유진이는? 아직도 연락 없어?”

 “네. 아무래도 성격이 그러니까요.”

 체념했다는 표정의 이지인.

 이초성은 머리를 박박 긁더니 앓는 소리를 내었다.

 “끙. 어쩔 수 없지. 당분간은 내가 맡는 수밖에. 연락 닿으면 바로 알려줘.”

 “알겠어요. 그럼 쉬세요.”

 

 

 

 

 

 

 

 

 

 나는 오랜만에 동생과 나들이에 나왔다.

 시간도, 금전도 부족해 겨우 야트막한 언덕을 낀 국립공원으로 놀러왔을 뿐인데도 어린 동생은 기뻐하며 이리저리 열심히 뛰어다녔다.

 절로 흐뭇한 표정이 지어졌다. 일에 치이던 중 찾아온 꿀 같은 휴일을 투자한 보람이 있었다.

 “오빠!”

 피곤해서 벤치에 앉아있기만 하는 나에게 동생이 울면서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저거. 저거.”

 하도 흔들려서 어디를 가리키는지 모를 손가락 끝에서 동생의 눈으로 시선을 옮긴 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자자. 소윤아. 울지 말고 천천히 이야기 해봐.”

 그렇게 말하자 소윤이는 내 눈물을 훔치고 나를 보고 똑바로 말했다.

 “저기. 이상한 게 있어.”

 소윤이는 내 손을 잡아 끌었다. 나는 그렇게 소윤이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 소윤이를 울먹이게 한 그 원인을 바라보았다.

 “아버지? 어머니?”

 그곳에는 우리 부모님의 시체가 놓여있었다.

 새빨간 피에 범벅이 되어있고, 목과 팔다리가 기괴하게 꺾여있는 모습이었지만 나는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푹!

 부모님의 시체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누군가 거대한 대검으로 내 등을 찔렀다.

 “이게. 무슨….”

 뒤를 돌아보니 한소윤이 안 어울릴 정도로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왕위를 계승하는 중입니다. 오라버니.”

 

 

 

 이게 무슨 개꿈이야.

 “아침부터 기분 성대하게 잡쳤네.”

 침대에 앉은 나는 지금도 선명히 떠오르는 꿈을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한소윤이 내 동생이라고?

 그리고 부모님? 우리 부모님은 그렇게 안 생겼는데.

 마지막은 더욱 장관이다. 한소윤이 아X스가 되다니.

 나는 머리를 눈곱을 떼며 방에 걸려있는 시계를 바라봤다.

 아침 6시 반.

 평소 기상 시간까지 조금 더 여유가 있기에 나는 다시 억지로 눈을 감았다.

 

 

 

 

 “피곤해 죽을 거 같다.”

 “왜. 밤이라도 샜냐? 뭐 봤어?”

 등교 후 자리에 앉은 난 쓰잘데기 없는 농담을 건네는 인용이를 무시하고 바로 책상에 엎어졌다.

 어제 일 때문인지 뒤숭숭한 꿈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왜 이래?”

 “몰라. 뭔 일 있나봐. 냅둬 그냥.”

 옆에서 한솔이의 목소리가 추가로 들렸지만 나는 고개를 들 기운도 없다.

 친구들이 떠나가자 나는 온몸에 힘을 쭉 뺐다.

 어제 자기 전만해도 멀쩡했는데 갑자기 이러는 이유를 모르겠다.

 ‘어쨌든 그냥 쭉 자고 싶다.’

 사실 등교를 한 것도 기적에 가까웠다. 학교를 빠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게 더 싫어 억지로 등교한 것이다.

 잠을 안 잔 것처럼 피곤하다는 것만 빼면 몸에 아무런 이상도 없어 핑계 거리도 없고 말이다.

 나는 그런 생각들을 하며 서서히 정신줄을 놓고 꿈의 세계로 걸음을 옮겼다. 조회시작까지 남은 20분을 새우잠으로 보내기 위해서.

 웅성웅성

 조금 어수선한데.

 웅성웅성웅성

 …소란스럽네.

 와글와글와글와글!!

 “아. 뭔. 으아 씨 깜짝아.”

 시끄러운 소리에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어 올린 나는 한소윤이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을 봐버렸다.

 한소윤이 짓고 있는 그 한기 서려있는 표정은 날 기겁하게 만들기 충분했고 말이다.

 귀신인 줄 알았네.

 “뭐…. 뭐야?”

 한소윤의 표정에 압도된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 좀 봐.”

 뭔 소리야?

 “보고 있는데.”

 잠이라는 고지를 눈앞에 두고 어렵게 회군한 내 두뇌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건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상한 명령어를 작동시켰다.

 주변에서 탄식하는 소리가 나왔지만 다행히 한소윤은 내 개드립을 트집 잡지 않고 본론만 말했다.

 “…따라 와.”

 귀찮아서 싫은데.

 “끙….”

 나는 내 생각과 반대로 목을 긁적이며 몸을 일으켰다.

 한소윤이 무섭기도 했고, 괜히 버티는 거보단 무슨 용건인진 몰라도 빠르게 해결하는 게 오는 게 나을 거 같다는 판단에서다.

 한소윤은 내가 다 일어서는 걸 확인하지도 않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아마 따라오라는 뜻이겠지.

 다시 주저앉을까 하는 욕망이 무럭무럭 피어났지만 간신히 억제하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한소윤을 쫓아가려던 나는 문득 조용해진 주위에 주위를 둘러봤다.

 ‘후.’

 반 아이들이 부담스럽게 내게 무언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걸 확인한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용건을 빠르게 마치고 돌아와도, 다시 잠드는 건 요원해보였다.

 

 

 
 

맨위로맨아래로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49 48. 적의 품 안에서(2) 1/18 329 0
48 47. 적의 품 안에서(1) 1/15 303 0
47 46. 선택(4) 1/12 334 0
46 45. 선택(3) 1/10 307 0
45 44. 선택(2) 1/7 324 0
44 43. 선택(1) 1/5 298 0
43 42. 협회원입니다(2) 1/3 314 0
42 41. 협회원입니다.(1) 1/1 312 0
41 40. 컴퍼니(4) 12/30 311 0
40 39. 컴퍼니(3) 12/28 321 0
39 38. 컴퍼니(2) 12/24 344 0
38 37. 컴퍼니(1) 12/24 328 0
37 36. 수학여행에서 일어난 일(2) 12/22 319 0
36 35. 수학여행에서 일어난 일(1) 12/21 307 0
35 34. 회식(2) 12/21 330 0
34 33. 회식(1) 12/20 311 0
33 32. 왜 왔어? 12/19 324 0
32 31. 백화점(2) 12/18 308 0
31 30. 백화점(1) 12/18 323 0
30 29. 마무리(3) 12/17 320 0
29 28. 마무리(2) 12/17 298 0
28 27. 마무리(1) 12/17 312 0
27 26. 성지순례(12) 12/17 310 0
26 25. 성지순례(11) 12/16 317 0
25 24. 성지순례(10) 12/16 314 0
24 23. 성지순례(9) 12/16 310 0
23 22. 성지순례(8) 12/16 310 0
22 21. 성지순례(7) 12/16 307 0
21 20. 성지순례(6) 12/16 307 0
20 19. 성지순례(5) 12/16 317 0
 
 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