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은혈록
작가 : 실라인
작품등록일 : 201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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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레이크(4)
작성일 : 17-12-15     조회 : 36     추천 : 0     분량 : 5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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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혈귀의 피라고?

 달리 말하면 괴물의 피란 뜻이잖아?

 나는 조금 기분이 나빠졌다. 그런 것이 내 몸 안에서 흐르고 있었고, 그걸 좋다며 사용하고 있었다니.

 “그런 표정 짓지 말라고. 은혈은 네 몸 안에만 있는 게 아니니까.”

 “저한테만 있는 게 아니라고요?”

 “너에 비하면 소량이고, 성분이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은장도를 해방하기 위해선 은혈이 필요하거든. 덕분에 우리들은 모두 은혈을 가지고 있어. 나나 소윤이는 말할 것도 없고, 저기 저 아저씨도 가지고 있지. 지인이 같은 완전 사무직이 아닌 이상 전부 가지고 있다 봐도 무방해.”

 정훈 연구팀장님을 가리켰던 본부장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어쨌든 보통이라면 은혈과 은장도가 서로 섞이는 일은 없어. 은장도의 해방이란 은장도에게 은혈이라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거야. 예를 들자면 은장도는 자동차. 사람은 주유소. 은혈은 기름인 거지. 자동차에 기름을 넣을 수는 있지만, 자동차를 기름 주유구 안으로 넣어서 섞을 순 없잖아?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날 줄이야. 하긴. 상식 밖의 일이 일어났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했던 거부터가 잘못 된 일이었지. 당사자끼리 해결하는 게 좋을 거라 생각해서 회복 중인 소윤이한테 오늘 받으라고 한 건데. 그냥 미리 받아 놓을걸.”

 본부장님은 투덜투덜 거리며 머리를 박박 긁었다.

 “그러니 몇 가지 간단한 테스트를 하도록 하겠네. 학생의 몸에는 큰 이상이 없지만, 소윤이를 위해서라도 레이크를 빼낼 수 있는지 시험해 봐야지 않겠나.”

 정훈 연구팀장님이 내 오른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 몸에 흡수된 은장도를 레이크라고 해요?”

 “그렇다네. A급 은장도부터는 별개의 칭호가 붙지. 이곳에도 있다네.”

 연구팀장님은 널려있는 은장도 중 가장 위에 정렬되어 있는 것들을 가리켰다.

 A급. 이름만 들어도 희소할 거 같은 등급이다. 그걸 증명하듯 실제로 이곳에도 10개 밖에 없다. 물론 다른 사람의 손에 들려져 있는 것도 있겠지만.

 그건 그렇고 한소윤이 어제 발악을 하면서 돌려달라고 한 이유가 이거였나?

 하지만 본부장님이나 연구팀장님의 태도는 빚쟁이들처럼 단순히 자기들의 재산을 다시 되찾으려는 모습이 아니다.

 소중히 여기던 인형을 잃어버린 동생에게 그 인형을 되찾아주려고 노력하는 느낌이랄까.

 “그래. 일단 테스트를 시작해보자. 어디 변신해봐.”

 나는 생각을 접고 본부장님의 말에 따라 은빛 갑옷으로 변신했다. 하지만 본부장님은 뭔가 마음에 안 드는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흠….”

 “문제 있어요?”

 “밋밋하네.”

 “예?”

 밋밋하다니. 나는 절대 그 말에 동의 할 수 없었다.

 내 갑옷의 외형은 그런대로 멋진 편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엄청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밋밋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니다.

 혹시 투구 때문에 그런가? 내가 아직 보지 못 한 투구의 모습이 철판 쌩으로 뒤집어 놓은 모습이라던가?

 “아. 외형적인 거 말고. 변신할 때 막 변신! 이나 체인지! 같은 기합과 함께 빛 무리가 몸을 감싸면서 변신해야 되는 거 아냐?”

 “…….”

 “지금 학생의 은혈은 매우 안정된 상태로 전신에 골고루 퍼져있다네. 좋은 현상이야. 특이점이 있다면 아직도 대량의 은혈이 심장에 뭉쳐있다는 것과 레이크와 융합된 은혈은 오른손에 집중되어 있다는 거로군. 학생 한 번 레이크를 해방해보겠나?”

 정훈 연구팀장님이 헛소리를 하고 있는 본부장님을 무시하고 자신의 단안경을 문지르며 말했다.

 나는 알겠다 말하며 오른손에서 레이크를 해방시켰다.

 소리 없이 솟아나는 아름다운 칼날을 보며 연구팀장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멋진 칼날은 그대로군. 이제 다시 레이크를 해제하고 이걸 오른손으로 쥐어보게.”

 살짝 망설이면서도 나는 오른손으로 은장도를 쥐었다.

 다행스럽게도 은장도는 내 손에 흡수 되지 않았다.

 “이제 반대 손으로 쥐어보겠나?”

 “으악.”

 나는 기겁해서 괴상한 소리를 내버렸다. 은장도가 다른 손으로 옮겨지자마자 내 왼손에 꾸물꾸물 들어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흠흠. 은장도가 섞여있는 부위에는 다른 은장도와 접촉해도 은혈이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에선 은혈이 은장도를 융해해버리는군. 은혈귀 중에도 남의 힘을 흡수해버리는 녀석이 있었지. 그 은혈귀와 메커니즘이 비슷한 거 같군.”

 “이거 어떻게 해요?!”

 내 손을 잡고 느긋하게 말하는 연구팀장님에게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걱정 말게. E급 은장도는 널리고 널렸어. 자네가 정석적으로 가입했어도 지급했을 은장도니 부담을 가지지 말게.”

 “아니. 그런 의미가. 앗 뜨거!”

 한소윤이 가지고 있던 은장도가 흡수 될 때보단 덜 아팠지만 순간적으로 화끈거림에 깜짝 놀라 손을 뒤로 뺐다.

 정훈 연구팀장님은 놓친 내 손을 보고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좋은 부분이었는데…. 흠흠. 현재 자네 손에 흡수된 은장도는 거의 원형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네. 은혈과 연결은 되어있지만 레이크처럼 완전 융해되어 있지는 않아. 한 번 해방해보겠나?”

 뭔가 점점 모르모트가 되고 있는 것 같아서 꺼림칙하지만 나는 기대 가득한 연구팀장님의 눈빛에 얼얼한 느낌이 남아있는 왼손을 쭉 뻗었다.

 레이크를 해방하는 느낌으로 왼손애 은혈을 더 주입하자 아까 본부장님이 휘둘렀던 그 커틀러스의 칼날이 솟아났다.

 레이크와 차이점이 있다면 손목에서 손가락 방향으로 쭉 뻗은 레이크와는 달리 커틀러스의 칼날은 손날에서부터 시작되어 사마귀처럼 옆으로 휘면서 솟아났다는 점이다.

 어느 쪽이든 제대로 쓰긴 힘들어 보이지만.

 “과연. 은혈과 직접적으로 맞닿은 부분은 해방되지 않고 천천히 변형되고 있군. 이 부분이 오른손에 있는 손목보호구처럼 바뀌게 되는 모양이야. 자. 이제 다시 해제 해보게. 좋아. 아직 은장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군. 아주 천천히 융해되는 중이지만 말일세. 혹시 꺼낼 순 없겠는가? 지금이라면 가능하리라 보네만.”

 연구팀장님은 커틀러스가 들어간 왼손의 손바닥을 두들겼다.

 “한 번 해볼게요.”

 나는 왼손에 신경을 집중했다.

 평상시과 같은 오른손과 달리 묵직한 무언가가 박혀있는 느낌이 드는 왼손. 그 이물질을 빼내기 위해 나는 이리저리 몸 안의 은혈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음. 될 거 같은데?

 진지한 표정으로 손가락만 꼼지락꼼지락 거리는 모습은 스스로 생각해도 괴상했지만 효과는 상당했다.

 무려 은장도가 손바닥 밖으로 나온 것이다.

 “오오.”

 나와 연구팀장님이 동시에 감탄사를 흘렸다.

 “뭐야. 다시 뺄 수 있어?”

 본부장님이 다가와서 내 손 위로 빠져나온 은장도를 집어 들었다.

 “레이크도 똑같이 빼낼 수 있겠는가?”

 연구팀장님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건 딱딱해서 괜찮았는데. 여기 있는 건 공기처럼 아예 안 잡혀요.”

 “그런가? 흠….”

 “이거 봐봐.”

 고민하는 연구팀장님에게 은장도를 잡고 이리저리 살펴보던 본부장님이 다가와 은장도의 손잡이 부분을 보여주며 말했다.

 “여기가 좀 변했는데?”

 은장도의 끝 부분이 처음 봤던 매끈했던 모습과는 달리 마치 누군가가 갉아먹은 것처럼 변했다.

 본부장님은 그 은장도를 자신의 가슴팍에 꽂았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아무런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

 “무슨 차이가 있는 건지 보려했더니 해방도 안 되네.”

 “이건…. 흥미롭군. 은장도의 힘이 조금 변형되었지만 소멸 된 건 아닐세. 아직 내제되어 있지. 해방할 수 없는 건 콘센트가 바뀐 전자제품처럼 규격이 안 맞기 때문이로군. 잘만 연구하면 큰 힘이 될 수 있겠어. 당분간은 이거 하나만 연구하기에도 벅차겠어.”

 보석을 보는 것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은장도를 바라보는 연구팀장님에게 본부장님이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그럭저럭 수확도 있는 모양이니까. 결과 나오면 바로 알려줘.”

 “알겠네! 내 당장 시작하지.”

 신기한 장난감을 손에 쥔 아이처럼 연구팀장님은 콧김을 뿜을 정도로 흥분하며 내가 아직 가보지 못 한 방으로 달려 나갔다.

 “소윤이한테는 조금 더 기다려달라고 해야겠어.”

 나는 본부장님의 혼잣말에 지금밖에 기회가 없을 것이라 생각해 갑옷을 해제하면서 전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걔한테 레이크를 꼭 돌려줘야 하는 이유라도 있어요?”

 A급이라면 저기 가득이나 많이 걸려 있는데.

 한소윤이 은장도를 빼앗겼을 때의 격한 반응도 그렇고, 왜 이렇게 돌려주려고 하는 거지?

 “…음.”

 “말씀하시기 어려우면 안 하셔도 되요.”

 만약 복잡한 사정이 있다면 괜히 얽매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살며시 한 발 뺐다.

 하지만 본부장님은 그 말을 듣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아니.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닌데… 그래. 너도 알아두는 편이 좋겠지. 그거. 걔네 오빠의 유품이야.”

 ‘이런….’

 무겁다.

 남의 가정사, 그것도 무거운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이야.

 호기심이 화를 불러버렸다.

 나는 레이크가 들어있는 오른손을 바라봤다.

 끙.

 이렇게 부담스러운 물건이 내 손에 박혀버리다니.

 본부장님이 그런 나를 보더니 피식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들겼다.

 “그렇게 신경 쓰지 마. 어떻게 보면 좋은 일이니까.”

 가족의 유품이 타인에게 넘어갔는데 좋은 일일 수가 있나?

 의구심을 품은 나를 바라보며 본부장님이 자신의 은장도를 꺼내며 말했다.

 “이런 상위급 은장도에는 적합률이라는 게 있어. 예를 들자면 똑같은 자동차여도 가솔린을 쓰는 차도 있고 LPG를 쓰는 차도 있잖아? 은장도도 마찬가지. 보유한 은혈의 속성에 따라 은장도의 해방 효율이 달라져. 아예 해방을 못 하는 경우도 있고.”

 “그럼 한소윤은 레이크랑….”

 “최악까진 아니지만 좋다고 말할 순 없지. 그것만이면 말을 안 하는데, 적합률은 무기의 타입과 얼마나 어울리는지도 판단하는 거거든? 소윤이는 말야. 까놓고 말하자면 대검에 재능이 없어. 그동안 신체능력으로 커버했을 뿐이지. 꽝이야 꽝.”

 신랄하게 비평하는 본부장님은 왜인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네 몸에서 레이크를 못 꺼낸다면, 소윤이도 체념하고 자기한테 어울리는 은장도를 쓰게 될 거야. 그 말인 즉 협회의 전력이 수직상승한다는 거지. 전력이 상승하면 자연스럽게 토벌 성공률, 생존율도 높아질 거고. 소윤이 멘탈에는 지장이 있겠지만, 그건 천천히 케어 해 나가면 돼. 본부장 입장에서 보면 좋은 일이니까 부담 가지지 말라고. 알았냐?”

 본부장님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를 이끌었다.

 본부장 입장에서 보면. 인가.

 그 말이 조금 걸렸지만 그 이상 파고들만한 사이도 아니기에 나는 알았다고만 답했다.

 띵 소리가 나며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나는 자연스럽게 그 안에 탔다. 하지만 정작 엘리베이터를 잡은 본부장님은 탈 생각이 없는 듯 엘리베이터 밖에서 나를 향해 손을 휘적거리며 말했다.

 “올라가면 오늘은 집으로 가도 돼. 아. 혹시 소윤이가 기다리고 있으면 노력중이라고만 말해. 상세한 건 내가 전할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본부장님과 헤어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다행인지 아닌지 본부장님의 걱정과는 다르게 한소윤은 자리에 없었기에 곧바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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