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은혈록
작가 : 실라인
작품등록일 : 201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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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서유진(1)
작성일 : 17-12-15     조회 : 24     추천 : 0     분량 : 6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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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위마 정화협회 윤리강령 및 행동규범 제 1장.

 나는 특별강의라는 명목 하에 학교에서 야자를 하는 대신 연구소 2층에 있는 소강의실 비스무리한 방에 앉아 그런 제목으로 시작하는 인쇄물을 바라보고 있다.

 휘릭 휘리릭.

 종이를 넘기고 넘겨도 그 안에는 마치 도덕시간에나 나올만한 예의바른 말들이 적혀있었다.

 개인적인 사유로 은장도를 해방하지 말 것, 민간인의 구출을 우선시 할 것, 민간인에게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할 것, 동료와 반목하지 말 것 등등.

 현실과 동떨어져 마치 서브컬처 속 히어로에게나 어울릴 법한 문구들은 나의 학습 욕구를 억제하고 있다.

 “재미없죠?”

 그런 것들을 세 시간동안 장황하게 풀어 설명하던 이지인 누나가 웃으며 말하자 난 강하게 부정했다.

 “아뇨! 아뇨….”

 곧 바로 실패했지만.

 “왜 지루해 하는지 맞춰볼까요? 학생은 여기 적힌 것들을 어떻게 생각해요?“

 맞춰본다면서 질문을 하는 이지인 누나에게 나는 힘없이 답했다.

 “그냥. 당연한 것들 아니에요?”

 “맞아요. 사회적 통념상 당연시해야 하는 것들이죠. 그래서 지루한 거예요. 학생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것과 비슷한 내용들을 또 배우는 게 지루한 거죠. 사실 좋은 반응이에요. 만약 반대로 오히려 처음 듣는다는 듯이 귀 기울여 듣거나 아예 듣고 싶지 않아했다면 오히려 문제가 있는 거죠.”

 “아…. 예?”

 그건 개인차 아닌가?

 아는 것도 다시 보는 사람이 있고, 강의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애초에 내가 지루해하는 건 딱히 마음에 와닿지 않는 말들을 다른 의미로, 그것도 거의 세뇌수준으로 여러 번 반복하고 있어서다.

 “당연히 농담이에요. 자. 정신 차렸죠? 다시 집중!”

 ‘으어어.’

 다시 한 번 같은 뜻을 다르게 풀이하는 이지인 누나의 말에 나의 마음은 좀비와 같은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죽겠다.”

 교육이 끝난 나는 연구소 로비에 있는 소파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 한손에는 에너지드링크가 쥐어져 있지만 따서 먹을 기운도 없었다.

 생각보다 빡세다.

 육체는 편하지만, 정신적으로 고통스럽다.

 시간으로 치자면 고작해야 세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체감상 그 열 배는 더 지난 거 같았다.

 ‘차라리 야자를 하는 게 낫지.’

 평소 같았으면 학교 야자도 끝나지 않았을 시간이다.

 분명 평상시보다 적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했는데, 내 몸에 쌓여있는 피로는 고작 야자를 할 때와는 비교 자체가 불허했다.

 “괜찮아요?”

 “아. 네. 괜찮아요.”

 들려오는 질문에 내가 빈말로 답하자 질문의 원천인 이지인 누나는 씩 웃으며 내 옆에 앉았다.

 “어떤 게 제일 힘들었어요?”

 “하하.”

 영혼이 담기지 않은 나의 웃음소리는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미안해요 초반부는 전부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지금 배우는 곳만큼은 어쩔 수가 없네요. 그래도 걱정하지 마요. 다음에 배울 것들은 원래 1년 걸릴 분량인데, 2~3주 분량으로 압축했으니까 빠르게 넘어갈 수 있을 거예요. 지루할 틈도 없을 걸요?”

 파이팅!

 힘찬 포즈를 취하는 이지인 누나를 보며 나는 괜히 부끄러워졌다.

 참으려고 애를 써도 나도 모르게 계속 지루해하는 기색이 흘러나왔다. 교육자의 입장에서는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지인 누나는 활기차게 나에게 기운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열심히 해볼 게요.”

 내게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의 기대를 배반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나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1년 걸릴 분량이 2~3주 분량으로 변했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깨닫지 못 하고서.

 

 

 

 

 

 깡! 깡! 깡!!!

 연구소 지하.

 두꺼운 합금으로 둘러싸여 있는 넓고 휑한 공간에 청명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황금 같은 토요일.

 난 쌓인 피로를 풀지도 못 한 채 연구소 지하에 숨겨져 있는 제 2트레이닝 룸이란 곳에서 본부장님에게 두들겨 맞고 있다.

 본부장님은 천을 쇠파이프처럼 둘둘 말아 굳힌 은장도로 날 북치듯이 때리며 말했다.

 “전에도 생각한 거지만 진짜 무식하게 튼튼하네.”

 ‘지금 무식하다란 수식어를 붙여야 될 건 내가 아닌 거 같은데.’

 ‘비오는 날 먼지 나게 패준다.’라는 말이 있는데, 본부장님의 행패는 그 말이 부족하지 않을 정도다.

 “아! 잠깐! 뼈 맞았어요!”

 “그런 게 어디 있어. 임마.”

 왜인지 사악하게 웃는 본부장님의 모습에 나 또한 열이 뻗쳐 나름대로 반격을 해봤지만 턱도 없었다.

 리치 차이인가 해서 레이크도 뽑아 봤지만 본부장님은 여유 있게 피하며 반격했다.

 “방어력은 탑급이고 회피 센스도 괜찮은 편에 속하는 거 같지만 공격력이 영 꽝이네. 패턴도 일정하고 페인트도 어설프고. 너 싸워본 적 없지?”

 “한두 번 정도. 으억!”

 “없는 거지 그게.”

 말 시켰으면서 때리다니!

 비겁함에 나는 치가 떨렸다.

 하지만 본부장님은 내 표정-투구 때문에 보이지 않겠지만-에 개의치 않고 나를 드럼처럼 두들겼다.

 “으아 진짜!”

 “그래. 진짜로 하고 있으니 걱정 마라.”

 그렇게 얼마나 더 맞았을까. 고통에 끙끙거리는 나에게 본부장님이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제 용량 얼마 정도 남았냐?”

 여기서 용량이란 몸 속안에 있는 은혈의 양을 말한다. 눈을 감은 나는 몸 안을 관조한 다음 어림잡아 말했다.

 “한 1/3 정도? 남은 거 같은데요.”

 “무식할 정도로 많네. 그렇게 복구했는데도 아직 남아있다고?”

 질렸다는 얼굴로 허를 내두르며 본부장님은 자신의 무기를 은장도 안으로 갈무리했다. 쇠파이프처럼 말려있던 천이 풀림과 동시에 은장도 안으로 흡수 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본부장님은 은장도를 품 안에 넣으며 물었다.

 “그래서 어때?”

 막연한 물음이지만 나는 테스트가 시작되기 전에 명시했던 사향 중 하나를 떠올리며 말했다.

 “급소든 급소가 아니든 전부 일정하게 소모 되는 느낌인데요?”

 부위에 따라 은혈의 소모가 다른지에 대한 답은 No다. 머리든 가슴이든 허벅지든 동일한 충격을 받아 소멸하면 소멸한 만큼 정확하게 복구된다. 회복이 더디거나 은혈이 더 소모 되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다른 하나는?”

 “일정량 이상의 데미지를 초과하면 그게 얼마나 크든지 똑같이 아파요. 은혈은 갑옷 하나 새로 덮을 정도로 많이 소모 되고요.”

 갑옷이 방어력이 100이라 쳤을 때. 200의 데미지를 받아 깨지든 300의 데미지를 받아 깨지든 초과한 데미지는 내 몸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 하고 갑옷과 함께 사라진다.

 “진짜냐. 장난 아니네. 데미지 무효화? 정확히는 흡수 & 소멸이라 봐야 되나? 어쨌든 넌 웬만해선 죽을 일은 없겠다. 좋은데? 생각 이상으로 쓸모가 많아 보여.”

 마치 신기능이 추가된 기기를 보고 있는 얼리어답터들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부담스럽게 바라보는 본부장님의 시선을 나는 애써 외면했다.

 일정량 이상의 데미지를 무조건 무효화 한다는 건, 바꿔 말해 일정량 이하의 데미지는 반드시 받게 된다는 뜻이다.

 아프다는 내 말을 쏙 무시할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쾅!

 “어라? 한눈 팔다니 여유가 아주 철철 넘친다. 그치?”

 ‘아오!’

 본부장님은 내 틈을 보자마자 쇠파이프를 망치 모양으로 만들어 나를 골프공 치듯 아래서부터 후려갈겼다.

 부서지자마자 찰나의 틈도 주지 않고 새로운 갑옷이 내 몸을 뒤덮는 모습을 보며 본부장님이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칼로 베어도, 둔기로 머리를 때려도 단순한 충격만 받고 끝이라니. 이거 완전 사기 아니냐?”

 ‘누가 할 소리를.’

 식견 없는 내가 보기에도 본부장님이 가진 은장도의 힘은 무지막지했다.

 여러 가지로 물건으로 변형할 수 있으면서도 그 외형에 맞는 부가효과가 생기는 본부장님의 은장도는 그야말로 못 하는 게 없어보였다.

 덕분에 이런저런 방법으로 맞고 있는 내 신세는 더욱 처량해지고 있고 말이다.

 “좋아. 오늘 테스트는 이걸로 끝내자. 자. 일어서.”

 본부장님이 무장을 해제하고 넘어져있는 나에게 손을 뻗자 나는 속으로 기뻐하며 갑옷을 해제하고 본부장님의 손을 잡아 일어섰다.

 트레이닝 룸은 나의 의미 없는 도주로 인해 몇 가지 기구가 이리저리 어지럽혀져있지만 본부장님은 치울 생각은 없는지 그냥 문밖으로 나섰다.

 내가 뒤따라가자 본부장님이 트레이닝 룸의 문을 닫고 잠금장치를 확인하며 내게 말했다.

 “어느 정도 교육 방침이 잡혔는데. 먼저 말해두자면 네가 가장 선결해야 할 과제는 바로 ‘방어포기’다. 무의식중에 가드를 올리는데, 그 습관을 버려야 돼. 물론 무식하게 다 몸으로 받아내라는 소리가 아냐. 피할 수 있건 최대한 회피하되, 맞게 되는 건 그냥 맞으라는 뜻이야. 다음 트레이닝 때부터 최대한 의식해서 공격을 막으려 하지 마. 다른 사람을 지킬 때라면 모를까. 네 몸을 지킬 필요는 없잖아?”

 딱히 어려울 거 같지 않은 과제이기에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쉬워 보이지? 자!”

 “으헉!”

 내 낭심을 걷어차려는 본부장님의 발길질에 나는 나도 모르게 주춤하며 어정쩡한 방어 자세를 취했다.

 한 번도 못 써본 채로 잃어버릴 뻔 했다는 생각에 식은땀 한 방울이 등 뒤에서 주르륵 흘러내렸다.

 확실히 어렵다.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 본능을 이겨내는 일이 쉬울 리가 없는데.

 “반응 한 번 죽여주네. 내 예상보다 며칠은 더 걸리겠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했다.”

 어깨를 툭툭 치고 낄낄대며 자리를 뜨는 본부장님의 말을 달리 해석하면 나는 앞으로 며칠은 더 본부장님한테 계속 맞아야 된다는 뜻이 된다.

 나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고통이 없다면 또 모르는데 100 이하의 데미지는 그대로 받게 되니 엄청 아프다. 물론 그게 데미지의 한계선이라 그 이상 아프거나 하진 않겠지만, 아픈 건 아픈 거다.

 그나마 아프다는 느낌으로만 끝나서 다행이지, 실제 육체에 피해가 있었다면 이미 진작 때려 쳤을 거다.

 하긴. 그걸 아니까 이렇게 굴리려는 거겠지.

 테스트 할 때 엄살이라도 떨어볼 걸. 굳이 솔직하게 말해가지고는.

 …집에나 가자.

 과거에 나에게 투덜거려봤자 바뀌는 건 없다.

 애초에 이만한 돈을 버는 일인데 조금이지만 쉬울 거라고 생각한 내 잘못이다.

 돈 생각을 하며 합리화를 하자 나는 갑자기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350만.

 활동지원비 명목으로 내가 받게 된 금액이다.

 아직 나는 인턴도 아닌 ‘임시’ 협회원이기에 정당한 ‘보수’를 받지 못 한다. 하지만 자체조사, 긴급호출상황 등에 사용하라는 활동지원비는 받을 수 있었고 그 돈은 그대로 내 통장으로 넘어왔다.

 원래대로라면 경비이기에 사적인 용도로 쓸 수 없고 내 전용 개별카드로 사용해야 되지만 이지인 누나가 우리 집 경제 사정을 고려해서 이번 한 번만 융통성 있게 처리 했다고 한다.

 덕분에 지금 내 계좌에는 350만이 고이 모셔져 있다.

 취업지원금이 들어왔다며 엄마한테 150만원을 송금해야한다는 걸 빼더라도 200만이 남는다.

 …근데 이 돈을 어디다 쓰지?

 나는 연구소를 나서다가 걸음을 멈췄다.

 지금의 난 가계약 상태의 연수생. 위장용으로서의 월급이 통장에 들어오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한 달 뒤의 일이다.

 그렇기에 갑자기 들어온 이 목돈을 얻게 된 경위가 마땅히 생각나지 않았다. 한 달도 안 됐는데 보너스 받았다고 할 수도 없고.

 생각해보면 나는 지금까지 아끼기만 해왔지 개인적인 욕망을 위해 소비를 해본 적이 없었다.

 ‘날 위해서만 쓸까?’

 하지만 그 생각도 금방 접었다.

 급전이 필요할 일이 있을 수도 있고, 딱히 내가 지금 무언가를 사고 싶지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욕구해소를 위해 돈을 물 쓰듯이 펑펑 쓰다가 버릇 들면 안 되고.

 아. 상품권 같은 건 괜찮을지도? 어느 이벤트에 당첨되었다고 하면서 말이지.

 ‘좋은 생각인데? 채택.’

 아이디어에 만족하며 멈춰있던 걸음을 다시 옮기려는 순간 나는 연구소로 걸어 들어오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치렁치렁한 밤색 머리카락을 가진 그 여성은 방금 전까지 쓰고 있던 걸로 보이는 선글라스를 내리고 차가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진녹색의 헐렁한 야상에 짧은 핫팬츠. 가슴이 패인 티셔츠를 입은 그 여자는 옷에 걸맞게 여러 의미로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혹시 신입?”

 분명 나보다 키가 작음에도 이상한 위압감을 풍기고 있는 그 여자는 나를 향해 무신경하게 말을 걸었다.

 지금 나는 뜻밖의 계기로 내 안에 있는 특이한 재능을 눈치 챘고, 그걸 발견한 본부장님의 추천으로 협회에 가입하게 되었다는 설정이다.

 사실대로 밝히면 나나 간부진이나 여러모로 곤란해질 수도 있다나 뭐라나.

 덕분에 진실을 알고 있는 건 본부장님과 이지인 누나를 필두로 한 간부진. 그리고 한소윤이랑 아직 이름도 모르는 그 여자아이뿐이다.

 신입이라고 물어보는 걸로 보아 이 사람은 모르는 쪽. 간부는 아니라는 소리다.

 그래도 직장 선배로 보이기에 나는 예의바른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네.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들어온….”

 “됐어. 얼마 버티고 관둘지는 몰라도 그 동안 발목만 잡지 말아줘.”

 여자는 그렇게 툭 내뱉고 나를 가뿐히 지나쳐 연구소로 들어갔다.

 뭐야?

 지금 뭐야 도대체?

 사람을 내려다보는 그 말에 나는 즉각 눈을 찌푸리며 그 여자의 뒷모습을 쫓았다.

 자기 할 말만 하고 지나가는 저 여자는 좋게 말하면 기가 센 거라 할 수 있을 거고, 나쁘게 말하면.

 ‘싸가지의 상태가?’

 아마 나보다 연상일 테고, 아마 직장 선배일 테지만 뭐야 저 말본새는.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몰라도 보통 처음 보는 사람한테 보통 저렇게까지 말 하나?

 ‘절대. 절대 엮이지 말자. 다음에 만나도 적당히 인사하고 무시해야지.’

 그렇게 소극적인 다짐을 한 나는 아까 떠오른 상품권으로 전달하기 작전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플랜을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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