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인 일요일.
이 날도 나는 휴식을 취하지 못 하고 연구소로 출근해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정신없이 나가는 수업진도에 진이 다 빠진 난 연구소 라운지에서 잠시 후 지하에서 있을 본부장님과의 ‘개인단련시간’을 대비하기 위해 정신적인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음료수를 마시면서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던 나는 연구소 문을 열고 사람들이 들어오는 바라봤다.
남자 셋. 여자 하나해서 총 네 명으로 꾸려진 그 무리는 그렇게 특이할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그 일행은 서로 무언가를 말하고 흩어졌는데, 그 중 나와 또래로 보이는 소년은 나를 발견하더니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내 옆에 털썩 주저앉으며 질문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혹시 그 신입?”
단정한 머리와 대비되는 장난기 가득한 짓궂은 얼굴을 한 소년의 눈은 기대에 반짝이고 있었다.
“예. 이번에 새로 들어온….”
기대에 부응해주려고 성심성의껏 대답해주고 있는 내 말을 끊고 소년은 속사포로 질문하기 시작했다.
“반갑다 후배야! 아. 나랑은 동갑이야. 말 놔 말 놔. 난 강성하. 그냥 성하라고 불러. 유천고 다니는데, 넌 어디학교 다녀? 와 같은 곳이네? 어쩐지 본 거 같은 얼굴이었어. 그럼 혹시 소윤이라고….”
“성하. 적당히 해.”
질문이 너무 빨라 슬슬 대답하기 힘들어질 무렵 아까 소년과 함께 있었던 여성이 다가와 강성하의 머리를 툭 치며 훈계했다.
“누님! 얘가 그 신입이라는데요? 심지어 나랑 동갑에 같은 학교!”
“알아. 나도 들었어. 반가워. 유보람이라 해. 같은 학교면 성하 좀 잘 부탁할게.”
유보람이라 자신을 소개한 여성이 천방지축 남동생을 부탁한다는 뉘앙스로 나에게 악수를 건네자 강성하는 그게 불만인지 뚱한 표정을 짓더니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말했다.
“누님. 근데 이것도 인연인데 우리 팀에 넣으면 안돼요?”
“너로 벅차니까 안 된다.”
강성하의 말에 옆에서 한 남자가 한 마디를 툭 던지고 스쳐지나갔다.
마찬가지로 아까 강성하와 같이 있던 남자인데, 양손으로 무언가가 담긴 박스를 들고 있었다.
“아니. 이제 저 충분히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다니까요?”
지나가는 남자에게 강성하가 그렇게 말하자 옆에 있던 유보람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할 일은 다 끝내고 그렇게 말하는 거 맞지?”
그 말에 강성하는 크게 깨달았다는 듯 무릎을 치고 일어섰다.
“아차! 난 할 일이 있어서. 나중에 보자!”
“정말로 잘 부탁해. 나쁜 아이는 아니니까.”
좋은 친구를 사귀었으면 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바로 이런 것일까.
그 자애 넘치는 눈빛에 나는 차마 거절할 명분을 찾지 못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가볼게. 어떤 팀에 배치될지는 모르지만 힘내.”
손 인사를 하고 떠나가는 유보람을 보며 나 또한 저런 분위기 좋은 팀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대위마 정화협회 한국본부는 여러 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지인 누나가 속해있는 사업지원팀이나, 정훈 연구팀장님이 속해있는 연구팀 등으로 말이다.
그 중 위마와 직접적으로 맞닥뜨리는 사람들이 속한 곳을 현장대응팀이라 하는데, 현장대응팀은 제1팀부터 제7팀까지 나뉘어져 있다.
한 팀에 약 4~5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팀들은 상호의존적이지 않고 각자 독립적인 색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저렇게 분위기 좋은 팀이 있다면 반대로 군기가 팍 잡혀있는 팍팍한 팀도, 아예 개인주의를 표방하는 팀도 있다는 뜻이다.
나도 앞으로 몇 주 후. 일명 인턴기간이 끝나면 현장대응팀 중 한 곳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슬슬 갈까.’
성격 나쁜 사람 밑에만 안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본부장님이 기다릴 트레이닝룸으로 향했다.
“앞으로 네 전투 단련을 맡게 될, 그리고 네가 속할 팀의 팀장인 서유진이라고 한다. 서로 잘 지냈으면 좋겠네.”
본부장님은 그렇게 말하며 트레이닝룸 안에서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여성을 내게 소개했다.
‘하아.’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긴 밤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여성을 바라본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어제 내가 절대 엮이지 말자고 다짐했던 여자. 바로 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뭐? 전투 단련? 내가 속할 팀의 팀장?
벌써부터 나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다른 팀으로 옮겨달라고 사정을 하고 싶네.
만족스럽지 않은 건 나뿐만이 아닌지 서유진 또한 뚱한 표정으로 본부장님을 돌아보며 말했다.
“민아도 곧 팀에 들어오니 전력이 될 만한 인원을 보충해달라고 내가 분명히 말하지 않았나?”
“그래. 여기 있잖아?”
나를 가리키는 본부장님을 향해 서유진이 비아냥거렸다.
“하. 이렇게 감정도 못 숨기는 애송이를 보고 바로 쓸 수 있는 전력이라고? 감이 죽은 거 아냐? 대단하네. 차라리 길 가는 꼬마 하나를 주워서 새로 키우는 게 낫지.”
무슨 사연인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아무리 불만이 쌓여있다 해도 사람을 이렇게 대놓고 무시하다니.
첫 대면부터 알아본 거지만, 역시 저 여자랑 친해질 수는 없을 거 같다.
“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한 번 붙어봐.”
“예?”
“좋네. 유성으로도 못 고칠 정도로 너덜너덜 해지면 더 이상 이런 농담은 못 하겠지.”
아무런 준비도 안 되어있는데 싸워보란 본부장님의 말에 당황한 나와는 다르게 서유진은 바로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사람의 심미안을 자극시키는 문양이 음각되어있는 은장도를 집어든 서유진은 그것을 바로 자신의 가슴에 꽂았다.
그 후 서유진은 자신이 해방한 은장도를 한손으로 잡더니 아무런 예고도 없이 내게 돌진했다.
속도만 보자면 망토를 두른 본부장님보다야 느리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빠른 속도로 은장도를 내게 휘둘렀다.
‘요즘 닥돌이 트렌드인가.’
한소윤도 분명 이랬지.
나는 반쯤 포기하면서 온 몸에 갑옷을 덧씌웠다.
예의 청명한 소리와 함께 내 갑옷에 튕겨나간 서유진의 은장도가 내 시야에 잡혔다..
‘할버드? 안 어울리네. 아니, 어울리는 건가?’
키가 작으니까 그걸 커버하기 위해 자기 신장의 두 배는 됨직한 할버드를 쓰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걸 무방비한 사람한테 휘두르다니. 역시 제정신이 아니다.
조금 뒤로 물러난 서유진이 잠깐 나를 노려보더니 말했다.
“너. 뭐야?”
“전력이지.”
그 말에 본부장님이 웃으며 답하자 서유진이 인상을 찌푸리더니 할버드를 수거했다.
“…좋아. 무슨 속셈인진 모르지만 어울려주겠어.”
한손으로 거대한 할버드를 휙휙 돌린 서유진.
금방이라도 달려올 기세였기에 나 또한 내 나름대로 만반의 자세를 취했다.
내 어설픈 격투자세를 본 서유진은 작은 몸집을 낮게 숙이고 할버드를 길게 늘어트리더니 그대로 내게 찔러 들어왔다.
하지만 난 평범하게 피하거나 막지 않고 그대로 온 몸으로 받아내었다.
‘아파!’
서유진은 나보다 머리 하나 반은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은장도의 막강한 힘을 이용해 내 몸통을 쑤시려 하고 있다.
갑옷이 계속 소멸되고, 동시에 액체가 쉴 틈 없이 밀고 들어오며 갑옷을 복구했다.
이대로 힘 싸움 하는 것도 좋지만 나는 어떻게 한 방 먹여주고 싶었기에 할버드를 잡으려했다.
하지만 내 의도를 읽은 건지 서유진은 할버드를 뒤로 빼고 크게 한 바퀴 휘둘러 내 머리를 향해 내려찍었다.
허무하리만큼 쉽게 작전이 무위로 돌아갔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추구하는 방향을 바꿨다.
장병기인 이상 근접전에서는 힘이 빠질 테니, 접근하기로 한 것이다.
한 발. 다시 한 발.
나는 난무하는 공격들을 최대한 버티며 서유진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몸의 중심을 낮추고, 최대한 밀려나지 않게 차근차근 말이다.
자존심 때문인지 서유진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서유진은 코웃음을 치며 무언가를 중얼거리더니 내 발목을 향해 할버드를 휘둘렀다.
균형을 무너트리겠다는 생각인가?
지금까지의 공격력을 고려하면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거라 판단한 나는 피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콰앙!
‘뭐야 이게.’
나는 바닥에 엎어진 채 방금 일어난 일을 되짚어봤다.
분명 순간적으로 내게 다가오던 할버드가 번쩍이더니, 그 전과는 비교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강하게 내 발목을 후려쳤다.
어떻게 된 거야?
“임팩트 스매쉬. 저 녀석의 은장도가 가진 능력이다. 통상의 힘을 최소 수 배 이상 증폭시킬 수 있어. 조심 하라고.”
내 근처로 본부장님이 천천히 걸어오더니 툭 던지듯이 말했다.
“빨리도 알려주시네요.”
나는 뒤로 굴러 일어선 다음 몸을 대충 툭툭 털었다.
먼지를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걸 어필하기 위해서다.
‘후우. 어쩌지?’
본부장님의 대련을 빙자한 일방적인 폭력 시간을 통해 배운 게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쓰러지지 않는 방법’이다.
어떤 자세를 잡아야 하는지, 어떻게 맞아야 되는지, 맞을 때 어디에 힘을 주어야 하는지 나는 요 수일간을 통해 열성적으로 배워왔다.
그런 내 노력이 무의미할 정도로 저 여자는 그저 압도적인 힘만으로 나를 넘어트렸다.
“거슬리니까 비켜.”
“어련하실까.”
본부장님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다시 구석으로 물러서자 서유진이 내게 다가오며 다시 한 번 물었다.
“너 도대체 뭐야?”
“…신입!”
나는 그렇게 답하며 빠르게 뛰쳐나갔다.
목표는 당연히 서유진.
이렇게 당하기만 해선 폼이 나지 않으니까. 진짜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 방 먹여줄 생각이다.
“흐아아압!”
내가 크게 외치며 힘껏 정권을 내지르자 서유진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할버드를 번쩍 들고 장작 패듯이 내려쳤다.
아까와 같은 능력을 사용하는 것인지 할버드의 날이 번쩍인다.
주먹이 닿기도 전에 칼날이 내 머리로 떨어질 거라는 건 누가 봐도 자명했지만 서유진은 알지 못 한다.
내게는 이 거리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하나 남아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