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체 공격이 들어와도 너는 하체에 더 신경 써야 한다고 했을 텐데?”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구르고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장소가 제2트레이닝 룸에서 제6트레이닝 룸으로 바뀌었다는 것과, 날 굴리는 사람이 본부장님에서 서유진으로 바뀌었다는 점. 그리고….
“힘내 언니! 파이팅!”
구경꾼이 하나 늘어났다는 점이다.
“다음은 네 차례니까 조용히 하고 있어.”
“윽.”
서유진의 일침에 싫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는 그 구경꾼은 바로 저번에 내가 양 손목을 짓뭉개버린 여자아이이자 서유진의 동생. 서민아다.
지금 서민아와 나는 현장대응 제6팀. 줄여서 대응 6팀의 팀장인 서유진의 지시 하에 6팀 전용 트레이닝 룸에서 실력 점검을 받고 있다.
그 첫 타자는 나.
하지만 말이 좋아 실력 점검이지, 나는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구르기만 할 뿐이다.
아니, 정확히는 평상시보다 더 구르고 있다.
“언니. 너무 심한 거 아냐?”
어느 정도냐면 아까 내가 어색하게 인사하자 ‘저 그쪽 싫거든요? 말 걸지 친한 척 말 걸지 말아주실래요?’ 하면서 당돌하게 받아친 서민아 조차 질려하고 있다.
‘으윽. 아까의 내상이.’
귀여운 여자아이한테 매몰차게 거절당한 상처를 스스로 다시 헤집어낸 멍청한 나를 훈계하는 건지 서유진이 할버드로 내 등짝을 후려 팼다.
바닥에 완전 엎어진 나를 보며 서유진은 어제 내가 했던 말을 서민아에게 그대로 돌려줬다.
“악의는 없어. 그냥 실력 점검일 뿐이야. 그리고 너한테는 이런 방식으로 안 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래? 언니 파이팅!”
저 꼬마가.
나는 순식간에 태세를 변화하는 서민아의 모습이 어이가 없었다.
“어딜 봐? 집중 안 해?”
“아윽!”
“레이크를 이어 받았으면서 이 정도 밖에 안 돼? 세윤이에 비해 한참은 부족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비교하면서까지 깎아내리다니.
서유진은 악의가 없다고 하지만, 나는 알 수 있다.
실력 점검을 빌미로 한 서유진의 폭력에는 개인적인 감정이 가득 들어있다는 것을.
“기간한정이었는데…. 오늘 사려고 했는데….”
아까부터 할버드를 휘두르며 아주 작게 투덜거리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쪼잔하게.”
“뭐?”
“아뇨. 힘들다고요.”
귀도 밝네. 조심해야지.
철컥.
그렇게 구타가 계속 행해지는 제6트레이닝 룸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소윤언니!”
“안녕.”
한소윤을 향해 서민아가 후다닥 달려 나가 품에 안겼다.
“다 모였네.”
난도질을 멈추고 한숨 돌리는 서유진의 말처럼, 대응 6팀 멤버가 한 곳에 다 모였다.
서유진 서민아 자매. 한소윤. 그리고 나.
6팀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이곳에 내가 소속된 이유는 별 거 아니다.
한소윤이, 그리고 서민아가 내 정체를 알고 있으니까.
본부장님이 알려줬을 테니 이제는 서유진도 알고 있겠네.
어쨌든, 나에 대한 비밀은 알고 있는 자가 적을수록 좋다는 본부장님의 지침 덕에 내가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다.
‘끝났나?’
서유진이 더 이상 공격하지 않자 나는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그러든 말든 서유진은 나에게서 떨어져 서민아와 한소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더니 셋이서 모여서 와글거리기 시작했다.
사실 주로 서민아 혼자 떠들고 나머지 둘은 듣는 역할인 듯 보이지만. 어쨌든
‘소외감이 느껴지네.’
나는 바닥에 주저앉으며 갑옷을 해제한 뒤 멍하니 그 셋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기도 하니 유대감이 돈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심지어 셋 중 둘은 자매사이기도 하고.
그에 반해 나는 굴러 들어온 돌.
심지어 성별도 다르기에 공통된 화젯거리도 부족하다.
청일점에는 두 분류가 있다고 한다.
왕자와 일꾼.
말할 것도 없이 나는 일꾼으로 낙점된 거나 마찬가지다.
딱히 친화력이 좋은 편도 아니고, 그렇게 잘나지도 않았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첫인상이 최악이었다.
한 명도 아니고 셋 모두와.
물론 내가 뼈를 깎는 노력 기울여서 재치 있고 감각적이고 믿음직한 남자로 변해 왕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을 바라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내가 나로 있을 수 있고, 부담 없이 하하호호 웃을 수 있는 직장동료를 원했는데.
현실은 잔혹하다.
앞으로가 서글퍼지겠군.
‘메신저 봐야지~. 안 왔네.’
나는 괜히 주머니의 폰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오늘 따라 친구 녀석들의 메시지가 없었다.
‘pc방에서 모인다고 했던가.’
학교에서 pc방 가자고 권유했던 인용이가 생각났다.
그냥 날려먹고 놀러갈걸 그랬나.
피식.
‘마음에도 없는 생각을.’
지금이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앞으로 입신양명하게 될 좋은 기회를 제 발로 날려먹을 수는 없었다.
그런 내게 서유진이 다가오며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뭐야? 왜 해제했어?”
“끝난 거 아니에요?”
“내가 끝이라고 해야 끝인 거야.”
‘그냥 날려먹을 걸 그랬나.’
고달픈 인생이여.
나는 내 몸을 도릴 기세로 다가오는 할버드를 바라보며 갑옷을 해방했다.
실력 점검이 끝나고 난 후.
나는 요즘 자주 들리는 연구소 휴게실 구석에 앉아 수분 보충을 위해 이온음료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차별 봐라 진짜.’
누구는 비오는 날 먼지 나듯 수십 분을 굴렀는데, 누구는 어디를 향해 어느 정도의 세기로 얼마만큼 단검을 던져라가 끝이라니.
심지어 한소윤의 실력은 잘 알고 있다면서 보지도 않았다.
그래. 잘 알고 있는 사이니까.
심지어 한 명은 동생이잖아. 당연한 일이다.
나는 갑작스레 치미는 억울함에 남은 음료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어이 후배!”
울화를 담아 음료수 캔을 발로 밟고 쓰레기통에 집어넣는 내게 누군가 인사하며 다가왔다.
“안녕.”
밝게 웃는 얼굴로 다가오는 동급생. 강성하에게 가볍게 인사하자 강성하가 짐짓 엄격한 얼굴로 말했다.
“어허. 어디 하늘같은 선배님에게 반말을 하고 있느냐.”
장난기를 숨기지 못 하는 강성하에게 나는 과장된 몸짓으로 말을 맞춰주었다.
“존귀하신 선배님. 이 누추한 곳에는 어인 일로 오셨사옵니까.”
“와. 선배 소리 들으니까 낯부끄럽다.”
하지만 싫지는 않은 듯 강성하는 킥킥 웃으며 내 옆에 앉았다.
“6팀에 들어갔다며?”
“응.”
“부럽다. 소윤이랑 같은 팀이잖아?”
엄청나네 정말.
말투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분석해본 결과, 이 녀석에게서도 한소윤을 좋아한다는 기색이 느껴졌다.
다시금 한소윤의 인기를 실감한 나는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겨 강성하에게 물었다.
“둘이 안 친해?”
같은 협회원이고,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만큼 접점이 없을래야 없을 텐데, 강성하는 한소윤을 마치 저 하늘의 별을 대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팀도 반도 다르니까. 그리고 접점이 생겨서 다가도 먼저 벽을 치더라고. 그게 매력이긴 하지만.”
뭐가 그리 좋은지 실실 헤픈 웃음을 웃는 강성하.
얘도 인용이과로군. 푹 빠져버렸어.
그건 그렇고 한소윤 특유의 단답형 대답은 같은 협회원에게도 통용되나보다.
나한테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겠지. 어휴.
“차라리 내가 너처럼 6팀이었다면…. 아니다. 역시 6팀은 아니야.”
강성하는 말하다 말고 심각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왜? 뭐 문제라도 있어?”
“문제야 하나밖에 없는데, 그게 다른 장점을 다 잡아먹거든.”
“뭔데 그게?”
내가 호기심을 참지 못 하고 강성하에게 집요하게 물어보자, 강성하는 주변을 한 번 쭉 살펴보더니 손으로 입 한 쪽을 가리고 조용히 말했다.
“서유진 선배.”
두 단어.
강성하가 내뱉은 건 단 두 단어였지만 나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내가 알았다는 듯이 끄덕거리자 강성하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6팀은 다 좋지. 민아도 귀엽고 소윤이도 있고. 그런데 서유진 선배님이 진짜 아니야. 어휴. 성격이 외모의 반만 따라갔어도 좋았을 텐데.”
“…….”
“아마 그 나이가 되도록 애인 한 번 없었던 것도 그 성격이 가장 큰 원인일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아참. 아는 선배도 서유진 선배님한테 대쉬하려다가 멀리서 그 실체를 알아보곤 기겁하면서 물러났다잖아. 아하하하.”
“…….”
“…왜 아까부터 말이 없어?”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내 말에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 거리던 강성하는 무엇을 깨달았는지 몸을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돌렸다.
“하. 하하. 안녕하세요.”
그곳에는 혐오 가득한, 마치 벌레를 보는 눈으로 강성하를 내려다보는 서유진이 있었다.
“웃어?”
촌철살인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일까.
서유진의 말 한 마디에 강성하가 선 채로 죽었다.
“너는 여유 넘치네? 내가 분명 지적해준 부분 복기하고 있으라 했지?”
“네. 물론 그러고 있었습니다.”
서유진의 까칠한 질문에 내가 얼굴에 철판을 깔고 대답하자, 서유진은 나를 잠시간 지그시 노려보더니 됐다는 듯 휴게실 문을 가리켰다.
“…나가 있어. 여긴 시끄러워질 테니까.”
“옙.”
나는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휴게소를 나섰다.
등 뒤에서 스산한 목소리와 강성하의 영혼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 애써 무시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