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처녀 히스테리인 게 분명해.”
얼마 후.
서유진이 휴게실에서 나오는 걸 확인한 난 슬그머니 휴게실 안으로 돌아갔다.
다시 재회한 강성하는 핏기가 빠진 얼굴로 의자에 앉아 조용히 중얼거리고 있었다.
“괜찮냐?”
“…넌 처신 잘 해라.”
불쌍한 어린 양을 보는 듯 강성하는 나에게 마음이 담긴 조언을 건넸다.
“우리 팀 선배들이 얼마나 좋은 선배들인지 새삼 알게 됐어….”
그렇게 활기찼던 애를 이렇게 만들다니.
당연하지만 이건 인과응보긴 하다.
그게 설령 사실이라 하더라도 뒷담화를 당한다면 기분이 언짢아 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와 별개로, 강성하의 말에 신빙성이 더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너도 버티다 못 버티겠으면 그냥 우리 팀으로 와.”
“고려 해볼게.”
강성하의 농담에 나는 그럴 일 없을 거란 의미로 적당히 대꾸했다.
강성하가 속해있는 대응 제3팀이 6명으로 만원인 것도 있지만, 내 비밀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는 이상 그리 쉽게 팀을 바꿀 수는 없을 거란 판단 때문이다.
앞으로 영원히 고통 받을 입장이라는 거지.
착잡해지는 나와는 다르게 강성하는 방금까지 곡물 털리듯 털렸던 멘탈을 어떻게 수습했는지 태연하게 말했다.
“그래.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고. 이 선배님이 차근차근 알려주마. 번호는 알아?”
당연히 모르지.
강성하는 그러겠지? 하고 흥얼거리며 내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건네주었다.
내가 번호 찍고 다시 돌려주자 스마트폰을 잠시 만지작거리던 강성하는 의자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슬슬 가야겠다. 대기 시간 전부 훈계 받는데 다 써버렸네.”
“고생해라.”
“너도. 곧 첫 성지순례라며?”
“그래. 조만간.”
성지순례.
당연하지만 종교의 발생지 등 종교적인 장소를 찾아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성지란 위마가 나타날 때 생기는 세상의 경계를 말한다.
위마는 누군가의 관측으로 존재가 확정지어 질 때 세계와 동화를 위해 유예시간을 가지고 경계의 틈에서 잠시 대기하게 된다.
그 때 생기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 위마를 정화. 그러니까 소멸시켜 버리면 현실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그야말로 신이 내린 기회의 땅. 그렇기에 협회는 그곳을 성지라고 불렀다.
우리들. 대위마 정화협회에서 직접적으로 위마와 대적하는 사람들을 통칭해서 ‘순례자’라고 불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성지를 뚫고 나오는 위마는 은혈귀처럼 순례자를 쓰러트릴 수 있을 만큼 강하거나, 정화 우선순위에서 밀려있다가 인력 부족으로 정화하지 못 했을 때 뿐. 대다수의 위마는 성지에서 순례자들에 의해 정화된다.
어쨌든 말이야 성지순례지 위마와 직접적으로 대면하고 도움 없이 정화해야 하는, 그야말로 내 첫 실전이나 다름없다.
조만간 기회가 되면 주선해주겠다는데 그 시일이 며칠도 걸리지 않을 거라 하니 내 마음속에 작은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다.
“첫 순례라 해도 별거 없으니까 그렇기 긴장하지 마. 알잖아? 은혈귀가 아니면 요고에 꼼작도 못 한다고.”
강성하는 자신의 윗주머니에서 은장도를 꺼내 흔들었다.
익살스러운 강성하의 표정에 나는 가볍게 웃으며 무거워진 마음을 추슬렸다.
하긴. 현대사회에 이르러 은혈귀를 제외한 위마는 제압하기 쉬운 야생동물이라고 하니까 말이다.
은이 가진 파사의 힘을 견디기도 벅찬데, 특수한 능력이 내포되어 있는 은장도를 휘두르는 사람을 위마는 도대체 무슨 기분으로 바라볼까.
생화학 가스를 뿌리는 탱크를 눈 앞에 둔 느낌이려나?
본디 과거서부터 공포의 대상이었고 인간들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거대한 적들이 어쩌다 이런 취급을 받게 되었을까.
은장도는 은혈귀의 힘을 이용해 개발한 물건이다.
즉 거대한 위협인 은혈귀의 등장이 결과적으론 인간 사회를 더욱 안정시키는 계기가 되어 버린 건데. 참 아이러니하다.
물론 그런 취급을 받는 위마라 해도 평범하고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야 아직도 치명적이겠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야생동물들도 마찬가지겠지.
“어쨌든 가본다. 다음에 봐.”
“그래. 다치지 말고.”
“그럴 일 없어.”
강성하는 자신감이 가득 찬 말을 하며 휴게소를 떠났다.
슬슬 나도 가볼까.
서유진이 정해준 휴식 시간 종료까지는 앞으로 5분 더 남아있지만, 일찍 가서 준비하는 편이 좋게 비춰질 테니 말이다.
젠장.
“역시 세윤이에 비해 한참 모자라. 탱커가 포지션을 이탈하면 어쩌자는 건데?”
그러니까 그게 누군데.
나는 짜증에 찬 눈으로 서유진을 노려봤다.
‘할만한가봐? 일찍 돌아온 걸 보면. 좀 더 강하게 단련시켜 달라 이거지?’
서유진이 5분 먼저 트레이닝 룸에 도착한 내게 한 말이다.
그 말을 시작으로 바로 대련을 시작하자며 은장도를 해방하더니 계속 그래왔듯이 나를 죽도록 굴렸다.
앞으로 탱커 역할을 하게 될 테니 질릴 정도로 맞아 보는 게 답이라면서 말이다.
애초에 말이야 탱커지, 그냥 몸으로 받아내는 방패역할이나 하라는 말이다.
“으악 죽었다.”
내 뒤에 서있던 서민아가 목 근처로 다가온 서유진의 할버드를 힐끗 보며 감정 없이 말했다.
과자를 아작아작 집어먹는 서민아를 겨루던 할버드를 땅에 늘어트린 서유진이 나에게 탓하듯 말했다.
“이걸로 14번째. 그래가지고 누굴 지킬 수 있겠어?”
“끙….”
누군가를 지킨다.
말이야 쉽지 절대 간단하지 않다.
상대를 견제해 공간을 점하는 것도, 무엇을 흘리고 무엇을 버텨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도 보다 더 복잡해지고 어려워진다.
지금에서야 서민아가 지쳐서 가만히 있어주기라도 하지, 아까 요리조리 뛰어다녔을 때는 정말 고역도 그런 고역이 없을 정도였다.
지금까지…. 라 해봤자 며칠 되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갑옷만 믿고 닥돌만 해왔던 내게 누굴 지키면서 싸우라는 건 버거운 과제다.
물론 처음보다야 실력이 향상되기는 했다.
초반에 서유진을 몇 초도 안 돼서 서민아 앞으로 보내줬다면, 지금은 몇 분 정도를 그럭저럭 막아내고 있으니까.
“오늘 목표량 달성은 불가능 해보이네. 너. 할 마음 있는 거야?”
10분 동안 서민아를 보호하기.
서민아가 내세운 오늘의 목표치다.
오늘 최고 기록이 아마 6분 30초였던가.
사실 6분 30초 버틴 것도 서유진이 완급을 조절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서유진은 처음에는 약하게, 그리고 천천히 공격하다가 시간이 경과할수록 더욱 강한, 그리고 변칙적인 공격을 쏟아 붓는다.
처음부터 임펙트 스매쉬를 쓰거나 버스트를 썼다면 6분 버티기는커녕 1분도 넘기기 힘들었을 테지.
이건 서유진 나름대로의 교육방침이 있다는 뜻이고, 수고를 하며 가르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장난해? 재능이 없어도 정도가 있는 법이야.”
물론 저 말투 덕분에 고마움이 하나도 느껴지진 않는다.
아무튼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해질 텐데 지금 최고 기록부터 4분을 더 버텨내라니,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나도 먼 목표치다.
하지만 서유진은 무심하게 그저 해내라며 명령하고만 있다.
스파르타가 보고 울고 갈 정도야.
“언니…. 나 졸려.”
“하아.”
서민아의 투정에 서유진이 한숨을 쉬며 은장도를 해제했다.
“더 해봤자 의미도 없을 거 같네. 여기서 끝내야겠어. 재능이 전임자의 반만 되도 좋았을 텐데.”
또 알지도 못 하는 누군가와 비교하기 시작하는군.
나날이 짜증이 쌓여갔지만 이번에도 가까스로 폭발을 억지하는데 성공한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물었다.
“전임자가 누군데요? 그 세윤이라는 사람?”
“…몰라도 돼.”
내 질문에 서유진은 흠칫하더니 짧게 말하곤 입을 닫았다.
그럼 말을 하지 말던가.
‘후. 됐다.’
시간도 그렇고, 여기서 끝내자는 서유진의 말도 그렇고 이제 집에 갈 때가 되었다.
외부의 문제로 불거진 이 감정을 집 안으로 가지고 갈 수는 없으니, 깔끔하게 털어내야지.
“그럼 가볼게요.”
“내일도 이 시간에 와.”
“예예.”
마지막까지 날카로운 서유진의 경고 같은 말을 나는 대강 흘리며 트레이닝룸에서 나와 갑옷을 해제했다.
두 여자는 땀으로 적셔진 옷을 갈아입기 위해 탈의실로 직행한 듯 보였다.
그에 비해 나는 탈의실이나 샤워실을 들릴 필요가 없다.
갑옷을 입게 되면 땀도 나지 않고, 옷이 헤질 일도 없다. 해제하기만 하면 입기 전 상태 그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덕분에 조금이라도 빨리 이 지옥 같은 트레이닝룸을 벗어날 수 있었다.
“실전에서 제일 중요한 건 적당히 긴장을 유지하는 거예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아무리 오늘의 목표가 하급의 위마라지만 사람을 습격하는 괴물이라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방심은 절대 금물. 아시겠죠?”
“네. 명심하고 있어요.”
이번에 들은 것까지 포함하면 세 번째지만, 나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겨 잊지 않도록 다짐했다.
짧디 짧고 흔하디흔한 조언도 반드시 외워두려고 하고 있다.
왜냐하면, 오늘이 바로 내가 첫 실전을 겪게 되는 날이니까.
“서민아양도. 아시겠죠?”
“네에~.”
“그럼 두 분 다 힘내세요!”
정정해야겠다.
오늘이 바로 ‘우리가’ 첫 실전을 겪게 되는 날이니까.
내 옆에 당돌히 서 있는 여자아이.
서민아 또한 나와 함께 첫 실전에 나선다.
비슷한 시기에 정식 순례자가 된 사람들끼리 같은 첫 성지순례를 치루는 일은 제법 흔한 일이라고 한다.
강성하도 한소윤과 같이 했다고 말했다. 그 때 싸우는 모습에 반했다니 하는 사족을 덧붙이며.
어쨌든 나는 서민아와 함께인 시점에서 상당히 안도하고 있다. 이 작은 아이가 의지가 된다던가, 도움이 될 거라던가 하는 생각 때문이 아니다.
서민아는 급작스럽게 협회에 가입한 나와는 다르게 어렸을 적부터 협회가 건립한 특수목적학교에서 위마에 관련된 모든 것을 정석적으로 배워왔다.
그래도 분명 아직 중학교 2학년의 어린 소녀라는 건 부정할 수 없을 텐데도 이런 일을 시킨다는 건, 실전 환경이 비교적 안전할 것이라는 증거.
아무리 그래도 첫 실전이라는 점, 미지의 적과 만나고 교전할 것 등에서 비롯된 불안감이 조금 잔존해 있기는 하다.
근데 따지고 보면 나나 서민아나 보면 첫 실전은 아닌가? 서로 나와 만났을 때 뼈가 부러지도록 싸웠으니까.
‘아니다. 인간 대 인간과 인간 대 위마는 다르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연구소에서 나와 지원팀이 준비한 차량에 탑승한 나에게 서민아가 틱틱 거렸다.
“발목 잡지 마요.”
건방진 행동이지만 젖살도 빠지지 않은 얼굴로 뚱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그저 귀엽게만 느껴졌다.
‘하린이도 저런 때가 있었지.’
동생으로 인한 홍역을 치러서 그런지 저 정도는 내게 애교에 불과하다.
그 훈훈한 분위기가 맘에 들지 않은 건지 서민아는 자신의 은장도를 꺼내면서 짐짓 험악한 얼굴을 지었다.
“이 은장도 보여요? 그때 썼던 건 견습생을 위한 D급 은장도였다고요. 저번처럼 만만하게 봤다간 큰코다칠 거예요.”
자세히 들여다보니 서민아의 말대로 저번에 봤던 은장도와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수수하다 못해 밋밋해보였던 예전 은장도와는 달리 본부장님을 비롯한 서유진, 한소윤 등이 가지고 있는 은장도처럼 미려한 문양들이 청아하고 고결하게 새겨져 있었다.
내가 은장도를 감상하고 있자 만족했는지 콧바람을 내며 서민아는 시트에 몸을 눕혔다.
그 순간 나는 눈치 챘다. 서민아의 어깨가 아주 조금 떨리고 있다는 것을.
과연.
웬일로 나한테 이렇게 계속 말을 거나 싶었는데, 아무래도 과도하게 긴장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지인 누나 앞에서는 쌘 척 하더니, 역시 아직 어린 아이다.
나는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적당히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그래도 내가 실수하면 커버 좀 쳐줘. 봐줘라. 응?”
“흥. 뭐, 그쪽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팀원인 이상 제가 한 번쯤은 도와드리죠.”
잘난 척하며 뻗대는 그 모습에 나는 폭소가 터질 뻔 했지만 간신히 참아내며 다른 농담을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