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과천의 야트막한 산 앞.
“도착했습니다.”
단정한 머리에 깔끔한 정장을 입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만한 평범한 회사원 같은 남자. 현장지원팀의 김호석이 차 안에 있는 둘을 돌아보며 말했다.
“알았죠? 절대 제 발목 잡지 말아요.”
“예예.”
김호석은 장난스럽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차 안에서 나오는 남녀를 몰래 노려봤다.
‘운 좋은 새끼들.’
열등감에 울분이 솟아올랐다. 당장이라도 저들의 자리를 빼앗고 싶었다.
현장지원팀.
말이 좋아 지원팀이지, 위마를 알고 있으나 은혈의 적성이 없는 사람들. 혹은 있어도 전투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에게 위마와 관련된 잡무를 떠맡긴 것에 불과하다.
‘나도 은혈 적성만 있었다면….’
인간을 초월한 강력한 힘.
어린 시절. 처음 자전거를 탄 적이 언제였는지는 기억도 안 나지만 그 힘을 처음 봤을 때만큼은 아직도 또렷이 떠오른다.
그 이후부터 언제나 김호석은 그 힘을 원하고 또 갈구했다.
하지만 현실은 잔혹했다.
은혈 적성검사를 받을 나이가 되었을 때, 호석에게 남은 건 적성 없음이라 적혀있는 판정표와 끝없는 절망감뿐이었다.
그 이후로 무력감 속에서 살아왔다.
혹여나 언젠가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는 일념 하에 협회를 떠나지도 않고 현장지원팀에 자원 했다.
그 길고 긴 고행의 시간도 이제 끝이 보인다.
순례자들이 힘을 휘두르는 모습을 손톱을 뜯으며 지켜보기만 했던 나날은 작별이다.
“산 위로 올라가면 되나요?”
장비를 가춘 소년이 호석에게 묻자 호석은 영업용 스마일을 지었다.
“맞습니다. 산 중턱에 생기고 있는 성지 속 요호(妖狐)의 포획, 혹은 사살이 이번 미션의 주된 목표입니다. 하급의 위마지만 지능이 높고 사사로운 요술을 사용하니 주의를 기울이시길.”
“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올게요.”
예의바르게 인사한 두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미소가 감돌던 호석의 표정이 차갑게 굳더니, 주머니에서 구형 피쳐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타겟. 목표 지점으로 출발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인류 해방을 위하여.”
호석의 몸에 전류가 흘렸다.
얼마나 걸렸을까. 언제나 승인을 보류하던 그 ‘조직’이 드디어 자신을 일원으로 받아 준 것이다.
이것으로 염원하던 소망이 이루어진다. 지고의 힘이 자신의 몸으로 들어올 것이다.
환희에 찬 호석의 귀에 산통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치직-
- 여기는 상황실. 김호석 대원. 현재 상황을 브리핑해주시겠습니까?
가장 좋은 부분에서 찬 물을 맞아버린 김호석은 잡친 기분을 최대한 가다듬고 차량에 부착되어있는 통신장비를 조작하며 말했다.
“지금 막 두 사람이 목표 지점을 통해 출발하였습니다. 현재까지 특별한 이상은 없습니다.”
- 알겠습니다. 대기하며 상황을 주시해주시길 바랍니다.
“상황 대기하겠습니다.”
호석은 그렇게 말한 뒤 피쳐폰으로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내며 차에 몸을 기댔다.
‘이제 방해할 사람도 없다.’
다음 정기보고 시간이 돌아오기 전에 조직이 전파방해장치를 기동시킬 것이다.
비상시를 대비해서 주변에 서유진이 대기하고는 있으나 그에 대한 방비도 해놓은 상태.
이상을 눈치 채고 달려온다 하더라도 도착까지 수 십분 넘게 지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최상급의 은장도를 소유하고 있다하더라도 초짜 둘이서 ‘그 위마’를 상대로 10분 이상 버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설령 그 녀석들이 이상을 눈치 채고 성지에 들어가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었다. 그 위마를 쓰러트려도 상관없었다.
그에 대한 대비도 해놓은 상태니까.
작전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이제 자신이 할 일은 기다리는 것뿐이라고 판단한 호석은 주머니 속에 있던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준비는 이걸로 끝났다.”
니코틴이 몸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호석의 눈에 탐욕이 깃들었다.
차 안에서 서민아가 은장도를 꺼냈을 때 순간 운전대를 놓을 뻔했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최상급의 은장도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녀석.
‘나는 오늘 그 은장도의 새로운 주인이 된다.’
김호석은 부풀어 오르는 기대감에 담배를 힘껏 빨아들였다.
“조금 무섭네.”
나는 불빛 한 점 없는 산속을 거닐면서 조용히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한밤의 산속 분위기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오한을 들게 만들기 충분했다.
성지가 하필 차로 들어갈 수 없는 곳에 만들어져서 우리는 희미한 빛에 의지해 줄곧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으 춥다.’
오늘 아침만 해도 인용이에게 열대야 때문에 죽을 뻔했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산속의 온도는 덥기는커녕 싸늘하기만 했다.
오한에 팔을 비비는 나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본 서민아가 자신의 찬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이라도 내려가는 게 어때요? 저 혼자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하지만 당당한 말투와는 다르게 서민아의 어깨가 아직도 잔잔하게 떨리고 있는 걸 본 나는 장난삼아 은근슬쩍 그 말에 동의했다.
“차라리 그럴까? 너 혼자서도 잘 할 거 같은데.”
“…남자가 강단이 없어서야. 그냥 옆에 있기만 해요.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나를 훈계하듯 말하고는 있지만, 서민아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더 놀려주고 싶지만 긁어 부스럼이라 판단한 나는 적당히 매듭지었다.
“믿습니다. 서민아님.”
“징그럽게. 그런 말 좀 하지 마요.”
“그래 그래.”
어쩜 이렇게 하린이 어릴 때랑 똑같은지.
덕분에 다루기가 쉽다니까.
‘뭐 어쨌든.’
문명의 흔적과 동떨어진 밤의 산길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나는 슬며시 말했다.
“갑옷 입고 있을까?”
“지금요? 왜요?”
내 말에 서민아가 의아하다며 고개를 갸웃 거리며 묻자 솔직하고 심플하게 대답했다.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
갑옷을 입고 있어도 큰 데미지만 받지 않는다면, 그리고 격한 운동을 하지 않는 이상 은혈의 소모 값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그런 로우 리스크에 반해 얻는 리턴은 크다.
예상치 못 한 기습에 대비할 수도 있고, 심리적인 안정감으로 인한 정신적인 피로를 반감할 수 있다.
추가적인 내 설명에 서민아도 납득했는지 새침한 표정으로 긍정했다.
“산이 통제되고 있어서 볼 사람도 없고 하니 괜찮겠네요.”
나는 득의양양한 얼굴로 갑옷을 입을 준비를 했다.
쉽게 동의할 줄 알았지.
사실 서민아 입장에서도 평범한 남자 대신 갑옷으로 무장한 사람이 곁에 있는 게 더 안심이 될 테니 말이다.
스르륵.
서민아의 허락도 떨어졌겠다, 나는 곧 바로 갑옷을 해방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 마다 은빛 갑옷이 달과 별빛을 반사하며 번뜩였다.
“후. 좋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조금 어두컴컴했던 숲길이 낮처럼 밝게만 보였다.
동시에 내 마음속 평화가 찾아왔다.
안전해졌다는 것에서 비롯된 심리적 안정감인지, 이 갑옷이 신경안정제처럼 내 대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건지는 모른다.
어찌되었든 갑옷을 입게 되면 차분해지는 건 사실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들이 아름답게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강화된 시력으로 바라본 밤하늘은 내게 자연이 주는 경관이란 게 무엇인지 알려준다는 듯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사람을 절로 압도하는 그 광경을 야심한 시각 아무도 없는 산 중턱에서도 느긋하게 감상할 정도의 여유를 가지게 된 나는 역시 갑옷을 입은 게 정답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여유를 가지게 된 건 나뿐만이 아닌지 서민아의 발걸음도 조금 더 가벼워졌다.
치치칙-
“응?”
그렇게 한결 여유로워진 산행 도중 갑작스런 소음이 내 귀를 간지럽혔다.
나는 발걸음을 멈춰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봤다.
- 여기는 상황실. 현재 상황 브리핑 바랍니다.
“어…. 그러니까.”
나는 협회에서 반은 스마트워치를 조작해 응답하기 위해 왼손을 들었다.
“아.”
시야에 들어온 것은 스마트워치 대신 갑옷으로 뒤덮여 있는 손목.
머쓱하게 손을 내리자 서민아가 한심하다며 자신의 스마트워치를 들어 조작했다.
삑.
“서민아 외 1명. 현재 목표지점으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 확인했습니다. 목표지점 도착 시 보고 바랍니다.
삑삑.
무난하게 응답하고 스마트워치를 만지작거리는 서민아를 보며 나는 무심코 딴 생각에 빠졌다.
‘이상한 곳에서 근미래적이라니까.’
우리들이 착용하고 있는 이 스마트워치는 기본적인 전자기기로서의 활용이야 말할 것도 없고 위마의 대략적인 등급 판별 및 좁은 범위의 성지 탐색 기능, 사람막이 간이 결계와 긴급 회복 스펠 등을 사용할 수 있는 그야말로 오버테크놀로지의 결정체였다.
애당초 이 어두컴컴한 산길을 무리 없이 헤쳐 나갈 수 있는 것부터가 이 스마트워치 덕분이다.
원리는 모르지만 시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은 여타 플래시라이트처럼 앞만 비춰주는 게 아닌, 주변을 새벽녘처럼 은은하게 비춰 시야를 무리 없이 밝혀주고 있다.
“뭐해요?”
앞서 걸어가던 서민아가 내가 따라오지 않는 걸 보더니 내게 다가와 물었다.
“아니 그냥. 이 상태로 통신이 될까 싶어서.”
나는 건틀릿으로 단단히 무장된 왼손을 들어올렸다.
보다시피 내 스마트워치는 건틀릿 안에 고이 잠들어 있는 상태다.
스마트워치만 따로 빼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팔을 들어내자니 그야말로 아킬레스의 건, 우투리의 겨드랑이가 되어버린다.
수많은 기능이 있는 비싼 기기인데 정작 갑옷과 동시에 사용할 수 없다니, 절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특히 상황실과의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주어질 작전에서 많은 장애가 될 거라는 건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미리 빼놓은 다음에 갑옷 위에 착용할까도 생각해봤는데, 내가 몸으로 받아내는 전투스타일을 구사해야 하는 이상 아무리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해도 쉽게 망가질 테지.
“나중에 건의해요. 어차피 오늘은 제가 하면 되니까. 좀 빨리 와요.”
어물쩍 거리는 게 짜증났는지 서민아가 거친 손짓으로 부르자 어쩔 수 없이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곤 빠른 걸음으로 서민아를 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