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은혈록
작가 : 실라인
작품등록일 : 201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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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성지순례(5)
작성일 : 17-12-16     조회 : 317     추천 : 0     분량 : 4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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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서민아 주변에는 그녀를 추켜 세워주는 사람뿐이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인재난에 휘둘리고 있는 대위마정화협회의 떠오르는 신성 중 하나니까.

 물론 그것은 언니보다 더 높은 은혈 적성과 ‘그 은장도’와 완벽할 정도의 적합률을 보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재능도 출중하고, 성격이 모나지 않았으며, 외모 또한 빼어났다.

 훗날 협회를 이끌어갈 사람이라며, 사람들은 서민아의 장래를 기대한다는 것을 넘어 미래의 바람을 담았다.

 처음 서민아는 그 시선을 달갑게 여겼다. 사람들이 자신을 믿어주고 기대한다는 건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 된 것처럼 만들어주었으니까.

 실제로도 서민아는 특별했다. 합격률이 낮다는 시험들도 자신에겐 장난에 불과했고, 어떤 장애물도 그녀를 가로막지 못했다.

 하지만 실패를 먼 나라 이야기로 생각하고 있던 그녀에게도 실패라 부를 수 있을만한 사건이 찾아왔다.

 바로 지금 서민아의 앞. 위마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남자에 의해서.

 언젠가 서민아는 밀명을 받은 한소윤의 뒤를 밟은 적이 있었다.

 그건 존경하는 언니가 활약하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서기도 했지만, 혹시 위급할 때에 자신이 한손 거드는 것으로 앞으로 같은 팀이 될 한소윤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기회를 찾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얼토당토않은 자만에 불과했고, 서민아는 그 대가를 받게 되었다.

 양팔이 부러지다 못해 으스러지는 고통 속에서 서민아는 난생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다.

 그것은 눈앞에 서 있는 은색 갑옷을 입은 괴한에 대한 공포심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한계에 대한 공포심이기도 했다.

 첫 실패라는 사건은 서민아에게 커다란 충격을 남겼다.

 시련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낙인이 찍히는 건 아닐까, 쓸모없다고 버려지는 게 아닐까 하며 유성 안에서도 불안감 때문에 회복에 전념하지 못했다.

 당연하지만 그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유성에서 나온 서민아를 모두가 따뜻하게 감싸줬다.

 물론 한소윤의 뒤를 말없이 따라간 것에 대한 질책을 받았지만, 그뿐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상냥한 마음 씀씀이는 오히려 서민아에게 더욱 큰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의 기대를 배신할 수 없다는 마음의 짐이 되었다.

 과거의 자신이라면 통신이 끊기게 된 순간 하산 쪽에 무게를 실었을 텐데 억지로 밀고 들어온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을 몰아세우고 있는 지금. 적을 눈앞에 놔두고 돌아간다는 건 서민아에게 있어서 가시밭길을 걷는 것 마찬가지였다.

 서민아는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며 자신을 다독였다.

 자신을 쓰러트렸던 적이 든든한 아군으로 변했고, 보급품 은장도와는 비교조차 불허한 ‘그 은장도’가 자신의 손안에 들어와 있다.

 혹시 또 실패하는 건 아닐까.

 지금이라도 되돌아가 구원을 요청하는 게 옳은 일 아닐까.

 “아니야! 나도 이제 순례자인 걸!”

 마인드 컨트롤로 마음을 다잡은 서민아는 확신을 가지기 위해 억지로 외치며 은장도를 해방했다.

 

 

 

 푸슉!

 서민아의 몸에 작은 은장도가 꽂혔다. 여린 몸체에서 은색의 피가 터질 듯이 뿜어졌고, 여섯으로 나뉘었다.

 나눠진 은혈은 이윽고 똑같은 형체로 변모해갔다.

 스틸레토 모양의 단검.

 검신이 가늘고 뾰족해 마치 송곳을 연상시키는 작은 단검들이 서민아의 등 뒤에 일정 간격을 두고 모이더니 칼날을 밖으로 펼치곤 수레바퀴처럼 빙글빙글 돌며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단검이 움직일 때마다 남는 붉은 잔상 때문인지 그 모습은 흡사 불교의 광배와도 같았다.

 ‘저게 새로 지급받았다는 은장도.’

 손을 뒤로 뻗어 천천히 돌고 있는 여섯 개의 단검 중 하나를 집어 드는 서민아.

 나는 본능적으로 저 단검 하나하나에 무지막지한 힘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쩔래. 생각해놓은 작전 있어?”

 내 물음에 서민아는 자신만만하게 요구했다.

 “이쪽으로 못 오게만 해주세요.”

 “그거면 돼?”

 “일단은요.”

 “좋아. 간다!”

 나는 엉기적거리며 쓰러진 몸을 일으켜 세우는 가시도마뱀을 향해 질주했다. 내 몸통 박치기에 일어서던 가시도마뱀이 다시 한 번 바닥에 처박히자 서민아는 그곳으로 들고 있던 은장도를 던졌다.

 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단검은 언뜻 보기엔 빠르기만 할뿐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콰과과광!

 사람의 고막을 찢어버릴 정도로 연속해서 터지는 폭발음이 들려왔다.

 단검이 가시도마뱀의 몸에 부딪히자마자 주변을 잡아먹을 듯이 연달아 폭발한 것이다.

 제법 멀리 떨어져있던 나에게도 강렬한 열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와. 장난 없는데?’

 고작 한 번의 투척으로 이토록 압도적인 힘을 선보일 줄이야.

 아까 서민아에게 들었을 때는 과장이겠거니 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오히려 모자란 감이 있다.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다섯으로 줄어든 단검들을 바라봤다.

 6개의 단검이 마치 탄알과 같고, 전부 던지면 재장전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일일이 던져야 한다는 점 때문에 붙은 이름.

 엣지드 리볼버.

 명칭의 기원처럼 디메리트가 많긴 하지만, 괜히 명실상부 최강의 공격력을 가진 은장도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어쨌든, 이 정도면 죽었을 거 같은데.

 “아직 살아있어요!”

 그런 내 마음을 읽은 건지 서민아가 다섯 개 남은 단검 중 하나를 잡아채면서 외쳤다.

 그 말에 나는 몸을 돌려 가시도마뱀을 돌아봤다.

 연기와 먼지가 자욱하게 깔린 동굴 구석에서 가시도마뱀은 몸이 조금 그을린 것만 제외하면 멀쩡해보였다.

 “저 녀석도 내 과네.”

 그다지 빠르지 않고, 힘이 강한 편도 아니다.

 하지만 저 폭발을 정면으로 맞고서도 멀쩡한 걸로 보건데 맷집만큼은 끝내주는 모양.

 그 말은 곧 지구력 싸움이 되리란 뜻.

 ‘…일 리가 없지.’

 같은 타입끼리의 전투라면 당연히 지원군이 있는 쪽이 유리하다.

 ‘폭발에 휘말리는 것만 조심하면 되겠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리볼버라기 보단 대포와 같은 위력을 함축하고 있는 단검이 한 번 더 가시도마뱀에게 쇄도했다.

 나는 단검이 또 다시 한 번 엄청난 폭발을 일으켜 아까처럼 가시도마뱀을 패퇴시킬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툭.

 “어?”

 응?

 서민아와 나. 그리고 가시도마뱀까지.

 우리 모두는 머리 위에 물음표를 만들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서민아는 단검을 다시 연달아 가시도마뱀을 향해 던졌다.

 툭. 피쉬이이익.

 “어? 어라?”

 힘 빠지는 소리와 함께 불발탄처럼 아무 일 없이 바닥에 떨어지는 단검을 보며 서민아가 눈에 띄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쪽으로 걸어오는 가시도마뱀의 앞을 가로막으며 겁먹은 얼굴로 말을 더듬는 서민아를 향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왜 그래?!”

 “제. 제어에 실패했어요!”

 숙련도 부족.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서민아에게서 다루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예상했어야 했는데.

 연달은 실패로 조급해하는 서민아에게 나는 크게 소리치며 가시도마뱀과 부딪쳤다.

 “내가 마크하고 있을 테니 당황하지 말고 차분하게 해!”

 “윽. 알, 알고 있어요!”

 서민아는 두 눈을 감았다.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걸로 보아 정신을 다잡는 모양이다.

 전투가 한창 와중에 시야를 닫는 건 그야말로 자살행위나 다름없지만, 다르게 보면 서민아가 나를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해서 기분이 조금 묘해졌다.

 “좋아. 힘내서 가볼까.”

 나는 가시도마뱀과의 교전을 통해 확실히 깨달았다.

 이 녀석은 절대 못 이길 상대가 아니다.

 그건 가시도마뱀 스스로도 알고 있는지, 아까보다 기세가 많이 죽었다. 내던져진 가시도마뱀은 이제 먼저 돌격하지 않고 눈치만 슬금슬금 보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갈등에 빠졌다.

 혹시 이대로 도망치려 한다면 그냥 놓아줘도 되지 않을까?

 본래라면 위마를 놓치는 순간 큰 사단이 나겠지만, 이건 상정 외의 사태다.

 윗사람들이 알아서 쓰러트리겠지.

 ‘…아니다.’

 조금 수고롭지만 쓰러트릴 수 있다면 쓰러트리는 게 좋겠지. 그 편이 윗사람들한테서 점수를 더 얻을 수 있을 거고.

 나는 생각을 정리하곤 가시도마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샤아아아악!”

 내 마음을 읽었는지 가시도마뱀은 머리를 낮추고 오지 말라는 듯 사나운 기세로 위협했다.

 나는 그 소리를 무시하고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일정 거리가 되자 순식간에 사이를 좁혔다.

 지축을 힘차게 짓밟으며 가시도마뱀 눈앞에 등장한 나는 그 힘을 모두 이용해 면상에 숄더 태클을 먹였다.

 크게 충격을 받은 가시도마뱀이 화가 난 듯 난리를 피우며 아가리를 이리저리 놀렸다. 실수로 빼내지 못 한 내 왼손이 녀석에게 덥석 물리자 나는 오른손으로 녀석의 이빨을 마구 난타했다.

 ‘드럽게 단단하네.’

 아마 가시도마뱀도 깨물어지지 않는 내 손을 보면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

 콰광!

 멘탈을 회복했는지 서민아의 융단폭격이 다시 시작됐다.

 엣지드 리볼버의 연이은 총격에 가시도마뱀이 버티지 못 하고 입을 열자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냉큼 빠져나왔다.

 “후끈한데?”

 강한 열기가 동굴 안을 몰아치자 나는 사우나에 온 것처럼 들뜨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물론 내가 갑옷을 입었기에 망정이지, 맨 몸이었다면 우리의 원래 목표인 요호처럼 열화에 불타 형체도 없이 사라졌을 테다

 “재장전 할게요!”

 엣지드 리볼버의 주인이라 열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 서민아가 주변으로 흩어진 단검을 향해 손을 뻗자 단검들은 던져질 때의 속도가 무색할 정도로 천천히 서민아에게 모였다.

 하지만 나는 무방비 상태의 서민아를 지켜주지 않았다.

 비틀비틀 거리는 가시도마뱀의 몸은 이제 더 이상 본연의 색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까맣게 변했기 때문이다.

 놈의 몸을 지켜주던 단단한 가시는 이미 녹아 뭉개진지 오래.

 서문이가 한두 번 더 단검을 투척하거나, 내가 레이크로 물렁해진 살을 파헤치면 그 순간 가시도마뱀의 목숨이 끊길 것이다.

 ‘뭐.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되겠지.’

 칼로 찌르는 순간 피 같은 부산물이 몸을 뒤엎을 텐데, 그런 일은 사양하고 싶다.

 콰앙-!

 오늘의 마지막이 될 폭발음이 귀를 강타했다.

 동굴 한쪽이 일부 무너지고 천장에서는 잔해가 떨어졌다.

 먼지로 자욱해진 시야.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나는 가시도마뱀이 생을 마감했다고 판단했다.

 “예상외로 쉽게 끝났네.”

 은에 대한 저항력이 높아서 긴장했더니, 맷집만 단단할 뿐이었다.

 “다 제가 뛰어나서죠.”

 가슴을 펴고 으스대는 서민아지만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서민아의 화력이 아니었다면 싸움은 길고 어렵게 늘어졌을 테니까.

 “그래. 네 말이 맞아.”

 내가 담백하게 수긍하자 서민아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 네. 제 말이 맞죠. 네.”

 하여튼 뻔하다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동굴 입구를 향해 손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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