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불행히도 쉬이 잠이 들지 못했다. 항상 그랬다. 한 번 악몽으로 잠을 설치고 나면 그날은 꼴딱 밤을 새는 게 관례 수준이었다. 신음 소리를 내며 온몸을 바들바들 떨다가 침대 아래로 굴러 떨어지지나 않으면 다행일 정도로 알레테아의 악몽은 심각했다.
‘낙인 같은 건지도 몰라. 죄인의 딸이니까...’
알레테아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쓴 채 중얼거렸다. 목구멍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목소리가 괴로운 비명을 질러 댔다.
알레테아는 공부를 하러 수도에 갔던 덕에 운 좋게 신벌을 피하긴 했지만, 죄인의 딸이라는 오명만큼은 피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왜 자신이 죄인인지도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길거리마다 자신을 보며 욕하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의 말을 통해 자신이 무슨 죄악에 빠졌는지를 알게 되었다.
알레테아는 ‘모독자’를 숨김으로서 신들을 배반한 자의 자식이요, 저주받은 도시의 시민이었다. 그것이 알레테아의 죄였다. 그것도 핏줄에 새겨져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죄. 숨 쉬는 것만으로도 신을 모독하는 것이요, 수많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고 욕을 먹어도, 심지어 죽임을 당해도 입술 한 번 벙긋할 수 없는 죄인으로서의 삶이 알레테아의 앞에 일직선으로 펼쳐져 있었다. 일방통행이라 피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길이 있는 것도 아닌 단 한 개의 두려운 길만이 알레테아의 미래를 지배했다.
그런 길을 걷고 싶지 않았다. 가시와 모욕으로 점철된 길, 죄인의 삶에서 도망치고자 알레테아는 저주받은 도시에서 도망치고 수도에서도 도망쳐 멀리멀리 위치한 대도시로 향했다. 지금 길드를 세워 정착하고 있는, 니베이아 시를 향해서.
단순히 니베이아 시에 대대로 자신의 가문을 모셔오던 기사 가문의 본거지가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건 바로 니베이아 시가 평화의 신께서 머무르신다는 대신전이 있는 도시였기 때문이었다.
만신전에 모셔져 있는 20인의 신들 중에서도 평화의 신은 조금 각별했다. 폭력의 신이 가장 많은 신벌을 행하는 신이라 두려움의 대상인 반면, 평화의 신은 자애로움과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 덕에 가장 많은 추종자를 보유하고 있는 신이기도 했다. 아름답고 고결하며 모든 것을 포용하는 자라 불리는 신. 주로 대신전에 머무르며 신자들의 마음에 평안과 축복을 내려 주신다는 신이셨다.
알레테아가 평화의 도시에 정착하면서 죄인의 딸인 자신을 어떻게든 품어줄지도 모른다고 희망을 품었던 것도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평화의 신께서는 언제나 자신을 따르는 신자들을 축복하시니까. 자신의 괴로움과 죄를 안아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하지만 평화의 신의 도시에서조차 죄인이라는 낙인은 그대로였다. 자신의 죄라고는 죄를 저지른 도시의 생존자라는 것밖에는 없었음에도 모든 것을 포용한다는 신께서는 아무 응답이 없었다. 괴로운 가시밭길은 그대로 그녀 앞에 펼쳐져 있었고, 신의 자비는 길은커녕 길섶에서조차 찾을 수 없었다.
절망에 빠진 알레테아는 낙인에서 벗어나기 위해 별짓을 다 했다. 하루 한 번 신전에 가서 참배를 드리고, 눈물로 호소했다. 죄인의 자식이라는 증표나 다름없는 붉은 머리카락을 가리기 위해 항상 갈색 가발을 끼고 다녔다. 기도원의 수도자들 마냥 낡고 수수한 옷을 입었으며, 항상 신의 말씀을 달고 살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특출나게 노력을 한 부분이 있었으니 - 바로 ‘모독자’의 퇴치였다. 모독자라는 존재들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 불경한 말씀을 전파하고, 신들을 모욕한다고 했다. 한낱 인간이 악마의 힘을 받아 신을 흉내 내는 힘을 가지고 신을 능멸한다. 알레테아의 도시에서 숨겨주었다가 신벌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된 이유도 바로 모독자를 숨겨 주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께서는 도대체 왜 그런 끔찍한 짓을 하신 건지...
알레테아는 세계 곳곳에 있는 모독자들을 색출해 내 효과적으로 처리하기 위하여 ‘길드’를 결성했다.
모독자들은 제국 곳곳에서 자신의 그릇된 사상을 전파하고 제국인들을 괴롭히기에, 제국인들 중 일부는 모독자를 잡기 위한 일종의 자경단을 운영하곤 했다. 그 중 구성이 충실하고 세력이 큰 경우 만신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교서를 내렸는데, 그런 교서를 받은 단체를 ‘길드’라고 불렀다.
알레테아가 결성한 것이 바로 그런 단체였다. 모독자를 색출하고 포획함으로서 속죄를 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이다.
아비와 반대되는 행동이었다. 비록 알레테아는 아비가 무슨 짓을 하는 지도 몰랐고, 도시가 왜 신벌을 받았는지도 몰랐었으나 알게 된 이후부터는 아버지와 반대되는 행동을 함으로서 낙인을 지울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그렇게 죄인의 오명에서 벗어나기만을 빌었다.
내일 아침 스카우터와 만나 새로운 길드원들을 모으고 협상하기로 약속했던 것도 다 그런 연유에서였다. 솔직히 돈도 거의 되지 않는 일이고, 무엇보다도 위험한 일이었다. 모독자란 본디 몰래 움직이며 인간들을 유혹하고 유혹에 넘어간 이를 자신의 권속으로 만들어 부리는 자였다. 교활하기 이를 데 없는 악한들... 거기다가 이루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하고 끔찍한 능력을 발휘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보니 생사의 기로를 몇 번이고 넘나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어 버렸다. 길드원에게 전투 보고를 받던 도중 잠시 고개를 돌린 사이 길드원의 머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적도 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죄를 씻을 수만 있다면 어찌 되도 상관없다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되뇌며 길드를 끌어 왔던 알레테아였다. 알레테아는 언제나 제 몸을 아끼지 않았고 오히려 깎는다는 심정으로 길드 운영을 강행했다.
그리고 불과 한 달 전, 미쳐버리기 직전까지 고생을 한 끝에 모독자 하나를 포획할 수 있었다.
잡는 과정에서 출혈이 막심하기는 했다. 수십은 되는 길드원이 달려들었는데도 포획은 끔찍하게 어려웠다. 수많은 자들이 다친 것은 당연지사였다. 심지어 이번 모독자는 권속을 부리지도 않았고, 나이도 비교적 어렸다.
나이 어린 모독자는 경험이 부족한 만큼 다른 모독자들보다 힘이 약할 수밖에 없기에 상대적으로 포획이 쉬우리라 여겼지만... 위대한 신에게 선택받은 우수한 길드원들이 포진해 있었음에도 모독자의 힘에 미치지 못했다.
모독자는 악마에게 받았다는 정체불명의 힘을 사용하여 선택받은 ‘백성’까지도 고통 속에서 죽어가게 만들었으며 아무리 창을 꽂고 칼로 베어 내도 끊임없이 재생했다. 분명 검으로 팔을 베어 냈는데 어느 순간 베어낸 자리에서 살덩어리가 꾸물꾸물 올라오며 팔 형태로 재생되는 것을 본다면 어떤 사람이라도 무시무시한 공포에 휩싸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악마의 힘이란 게 저런 거구나 싶어지는 공포감이 온몸을 휘감던 그 기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모독자는 이상한 기구를 사용하여 길드원들에게 빛을 비추었고 빛을 쬔 자들은 서서히 썩어 문드러져 죽어간다는 최후를 맞이했다. 이런 끔찍한 최후를 맞는 데에는 신께 선택받은 백성들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목숨을 걸고 최전방에서 싸운 이들이 끔찍한 냄새를 풍기며 붉은 살덩어리를 내놓고 죽어가는 모습에 다들 치를 떨었고, 사기는 점점 떨어져 갔다. 아무리 길을 찾으려 해도 포획할 길이라곤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매우 껄끄러운’ 방법을 사용해서야 간신히 포획에 성공할 수 있었다. 신을 모시는 정상적인 길드라면 절대 써서는 안 되는 저열하고 모독적인 방법이었다. 몇몇 길드원들이 혀를 내두르며 떠났을 정도였으니 오죽했을까...
하지만 어떻게든 모독자를 포획하여 잡아냈을 때의 그 쾌감이란!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포획되어 만신전에 끌려가기만을 기다리는 모독자의 모습을 보며 알레테아는 그 때만큼은 죄인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지금까지 겪었던 고통과 모독자를 잡기 위해 쏟았던 인고의 시간이 드디어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 그렇게 확신을 하며 홀가분하게 잠이 들었었다.
하지만 악몽은 그대로였고 홀가분해지는 일은 없었다. 붉은 꽃밭에서 시신들은 알레테아를 향하여 똑같은 말을 외쳐 댔으며 거리의 사람들은 알레테아를 여전히 괴롭히고, 저주했다. 결국 몸서리를 치며 잠에서 깨어나 남은 밤을 꼴딱 새워야 했다.
‘어째서, 어째서지? 죄를 씻으려고 모독자까지 잡아 바쳤잖아. 그런데 왜?’
알레테아는 마음속으로 울부짖으며 입술에서 피가 흐르도록 잘근잘근 깨물었다. 붉은 입술에서 선혈이 터져 나와 시트까지 적셨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계제가 아니었다. 괴로움은 그대로였고, 죄가 씻어지는 일 따위 없었다.
심지어 다음 날 모독자를 인수하러 온 만신전의 신관들조차 알레테아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 고생을 하면서 모독자를 바쳐 올렸건만, 그들은 감사의 인사를 짤막하게 전하였을 뿐 그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숨만 쉬는 고깃덩어리가 된 모독자를 끌고 알레테아의 눈앞에서 천천히 사라졌을 뿐이었다.
만신전은 최고신을 모시는 제국 최고의 신전이라 신관들은 절대 죄인과 눈을 마주쳐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문인 것만 같았다. 알레테아는 울적한 마음으로 괴로이 잠을 청해야 했고, 결국 또 악몽을 꾸고 말았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꼬락서니가 이어지고 있는 형편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잘못을 해서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저 아버지가 저지르고 도시가 저지른 죄에 연좌제로 적용되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죄를 씻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 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다. 모독자를 숨겨주었던 아비의 행동에 반하여 모독자를 잡아 올리기까지 했는데도 죄가 씻어지는 일은 없었다.
모독자만 잡으면 죄를 씻을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으며 지금까지 버텨 온 알레테아로서는 작금의 상황이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벼랑 끝에서 떨어지기 직전 간신히 나무뿌리 하나를 잡았는데, 그 뿌리가 썩은 뿌리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면 이런 느낌일 것만 같았다.
“신이시여, 절 보고 어쩌란 말이십니까? 저는 그저 죄인인 채로 살아야 하는 겁니까?”
알레테아는 흐르던 피가 말라 붙어 얼얼해진 입술로 다시 한 번 기도를 올렸다. 아까와는 달리 원망과 분으로 가득 찬, 그런 기도였다만. 알레테아는 분에 얼룩진 목소리로 신을 향하여 열렬히 기도했다. 평화의 신, 폭력의 신, 그리고 최고신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신의 음성도, 뭣도 내려오지 않았다. 모든 것은 여전히 그대로였으며, 오로지 어떻게든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는 자신만이 침대에 앉아 기도를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끙끙대며 흐느끼는 소리가 침대 시트를 따라 흘러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