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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작가 : 홍단
작품등록일 : 201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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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 알레테아(6)
작성일 : 17-12-14     조회 : 281     추천 : 0     분량 : 5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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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빛만이 거리를 비추고 모두들 잠들어 있을 시간, 거리에 사람이 있을 만 한 시간도 아닌데, 그 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모습을 드러냈다. 큰 길의 샛길에서 빠져 나온 검은 존재는 팔을 뻗어 알레테아를 그대로 잡아당겼다.

 

  너무나도 갑작스런 상황에 알레테아는 검은 존재의 팔에 잡아 채인 채, 뿌리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끌려가고 말았다. 괴한의 존재 같은 것은 상정도 못 했던 터라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다만 이상하게도 검은 존재는 사납게 알레테아를 잡아당긴 후 그대로 알레테아를 감싸 안았다. 마치 알레테아가 이리로 오기만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따뜻한 천의 느낌이 그대로 느껴졌다.

 

  “누구야?”

 

  빨리 도망가야 하는 상황인데 도대체 어떤 놈이야? 한 시가 급한데... 라키샤가 뒤에서 쫓아오고 있을 지도 모르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모르는 사람이 자신을 껴안는다. 당황스럽고 무서울 수밖에 없는 상황.

 

  다들 자고 있을 이런 오밤중에 나타나 이런 짓거리를 하는 것을 보아하니 변태인가 싶었다. 알레테아는 아주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오늘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뭐 하는 거야, 이 한밤중에!”

 

  “쉿, 조용히.”

 

  “뭐가-”

 

  알레테아의 목소리는 방금 부딪힌 자의 손아귀에 의해 더 이상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읍, 읍하는 희미한 소리만이 입을 틀어막은 손아귀 사이로 간신히 튀어나왔다만, 별 의미를 갖지는 못했다.

 

  오밤중에 급하게 도망치는 데 만난 변태가 힘까지 세다니. 절망도 이런 절망이 없었다. 무슨 손아귀가 이렇게 억센지, 알레테아의 힘이 약한 것도 아닌데도 도저히 쳐 낼 수가 없을 정도로 손힘이 거셌다.

 

  도대체 누가 밤중에 이런 또라이 짓을 하는 거야, 그것도 이렇게 힘이 센 사람이... 라고 속으로 부들부들 떨며, 알레테아는 겁먹은 눈을 들어 자기를 붙잡은 변태자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살짝 놀라고 말았다.

 

  알레테아와 부딪히자마자 잡아채고 입을 막은 변태는 놀랍게도 금발의 여성이었다. 그것도 아름다운 자주색 눈동자를 가진 상당한 미모의 여자. 손아귀의 악력 탓에 당연히 남자일 줄 알았던 입장으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검은 존재라고 생각했던 건 온몸에 검은 로브를 두르고 있어서였다.

 

  하지만 보통의 여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체형이었다. 몸에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여성의 키는 놀라울 정도로 컸다. 알레테아조차 키가 크다는 소리를 듣고, 웬만한 남자들의 키에 꿇리지 않는데 이 여자는 알레테아보다도 컸다. 몸은 로브 안에 숨기고 있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손아귀가 거칠고 팔에 근육이 고루 붙어 있는 것이 절대 평범한 여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평범한 변태로도 보이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런 여자가, 알레테아를 붙잡은 채 상점 기둥의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뭐야, 지금 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조용히 해, 지금...”

 

  혼란스러워하며 몸을 떠는 알레테아의 귀에, 금발의 여자는 조용히 속삭였다.

 

  “네 뒤를 이상한 여자가 쫓아오고 있어.”

 

  별빛만인 가득한 거리, 적막감이 몸 구석구석을 후벼 파는 그런 목소리가, 여자의 입에서 조용히 흘러나왔다.

 

  고요한 목소리에 고요한 마음이 따르는 법은 절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 말과 동시에 알레테아의 입가에서 읍-하는 소리가 더욱 격렬해졌다. 벌써? 어떻게 알고? 리이는? 엄청나게 많은 의문이 알레테아를 향하여 집중포격을 하듯 날아들었다.

 

  하지만 의문보다 더 앞서는 감정이 있었으니, 바로 공포였다. 그 말을 듣자마자 몸이 와들와들 떨리고, 다리에 다시 힘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금 공포가 온몸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잡히면 죽는다, 거짓말쟁이의 심장을 뽑아 갈 거야. 그것도 살아 있는 상태로 난도질하고 뽑아 갈지도 몰라...

 

  그런데 이 미친 사람 때문에 도망칠 수가 없잖아!

 

  “신전으로 도망치려나 본데, 이대로라면 신전까지 가기 전에 따라잡힐 거다.”

 

  그런 알레테아의 심정을 포착하기라도 한 건지, 아니면 그냥 지금 상황에 대한 개념이 없는 건지. 그 사람은 무심한 목소리로 자기 의견을 전하기만 했다.

 

  ‘죽을 거야, 죽을 거야...’

 

  하지만 그 무심한 목소리와는 별개로 알레테아는 미쳐 죽을 것만 같았다. 미친년에게 쫒기는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새로운 미친년이 나타나 자신이 도망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리이가 어찌어찌 만들어 준 기회를 이년이 다 날려먹고 있다.

 

  알레테아는 원망을 잔뜩 담은 눈으로 여자를 노려보았다. 이제 너 때문에 죽고 말 거야! 빨리 비키지 못해...

 

  “네 바로 옆에 있는 음식점 뒤편으로 빠지면 후미진 골목이 나올 거다. 쭉 가다가 완전히 부서진 집이 나오면 거기서 오른 쪽으로 꺾어 가도록 해. 그렇게 가다 보면 평화의 신전이 있는 대로변에 도착할 거다. 이 루트는 저 여자도 모를 거야.”

 

  어랍쇼. 도망을 가려는 걸 방해하려는 줄로만 알았는데... 여자는 잔뜩 낮춘 목소리로 오히려 친절히 비밀 루트를 가르쳐 주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여자 도대체 뭐지? 알레테아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신을 붙잡고 있던 여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여자는 알레테아의 시선이 부끄럽기라도 한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건지 알레테아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는 것을 슬쩍 피했다. 그리고 그 상태로 다시 말을 걸었다.

 

  “바쁘잖아. 빨리 가도록 해.”

 

  “당신 도대체 누구죠? 왜 갑자기 나타나서 이런 짓을 하는 거예요? 그런 건 어떻게 알...”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 도망치도록 해라. 그 길로 쭉 가. 그 동안 내가 어떻게든 막아 볼 테니까.”

 

  “네?”

 

  알레테아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같이 저주 받은 죄인에게 기다렸다는 듯 나타나 도와주는 자. 그것도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꺼이 도와주고 있었다.

 

  손가락이 잘린다는 것을 모르고 도와주는 거겠지만,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소녀가 쫓아오고 있는데 도와줄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기이하게만 느껴졌다.

 

  아는 사람이면 또 모르겠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이란 것도 알레테아의 이해력을 시험했다. 금발 자체는 흔하다지만 자신보다도 큰 키에, 반짝이는 자주색 눈동자를 가진 사람은 단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자주색 눈동자는 제국 내에서도 굉장히 희귀한 눈동자 색이라, 보았다면 기억을 못 할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짐작 가는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뭐야, 길드장님 어디로 갔지? 어디 계세요, 길드장님! 기부하시기로 하셨잖아요!”

 

  그 순간 멀지 않은 곳에서 라키샤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 무미건조하고도 광기어린, 라키샤의 것이라는 것을 단번에 깨달을 수 있는 끔찍한 목소리가 알레테아의 귓전을 때렸다. 그 목소리에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온 몸에 쪼로록 소름이 돋는다. 지금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당신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저 녀석에게 걸리면 죽을 지도 몰라요. 왜 도와주는 거죠? 같이 도망쳐요!”

 

  알레테아는 알려준 비밀 통로를 따라 도망칠 준비를 하면서, 동시에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빨리 도망쳐야 하는데, 리이 때처럼 또 다시 두고 가려니 마음이 켕긴 탓이었다. 생판 모르는 여자라지만 자신을 도와주겠다는 자가 손가락 기부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니까. 같이 도망치는 게 한결 편할 것 같았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뜻밖의 것이었다.

 

  “난 네게 빚이 있어.”

 

  “네?”

 

  “정확히 말하면 네 아버지께 빚이 있지. 여기까지다. 빨리 도망치고, 다 잊어버려.”

 

  의미 불명의 대답이었다.

 

  “아니, 지금 무슨 소리에요? 빚이라니...”

 

  “어서 가. 안 갈 거면 여기서 잡혀 죽던가. 이쪽으로 오라고 도발해버린다?”

 

  말 한 마디가 그렇게 아찔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도발’이란 말을 듣자마자 몸이 즉각적으로 ‘도망쳐 이 멍청아!’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여자의 무표정한 얼굴이 진짜로 안 가면 도발할 것 같아서, 알레테아는 바로 꼬리를 내리고 발을 떼었다.

 

  결국 알레테아는 그 신원불명의 여자를 뒤로 한 채 골목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자책감이 좀 들기는 했지만,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안 도망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아니, 무엇보다도 빚이라니...’

 

  신벌로 인해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어연 십 년도 넘었다. 그런데 아버지께 빚을 졌다니, 빚을 진 시기가 적어도 십 년은 더 전이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여자의 나이는 아무리 많게 잡아도 이십대 중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키만 컸지 얼굴은 자신보다도 어려 보였다! 빚을 진 시기가 얼마나 어린 시기일지 감도 안 잡히는데 그걸 또 갚으러 왔다니 이상하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무엇보다도, 아버지는 신벌로 인해 돌아가셨기에 부정한 자로 낙인찍혀 그에게 빚을 갚는다는 행위 자체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아버지와 채무 관계에 있던 자들 중 알레테아에게 빚을 갚은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도 빚을 갚는다니,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저 여자 정체가 도대체 무엇인지, 언제 빚을 진 건지, 갚지 않아도 되는 빚을 왜 갚으려 드는지... 아무것도 명확히 결론 내릴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혼란을 가득 안은 채 알레테아는 골목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여자가 말했던 부서진 집이 등장하자 들은 대로 오른 쪽으로 꺾어 다시 내달렸다. 뒤쪽에서 어렴풋이 비명소리 같은 것이 들렸던 것 같았지만... 가책을 느끼면서도 알레테아는 달리고 또 달렸다. 다리가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도록, 빠르고 또 빠르게 달려갔다.

 

  그리고 결국 평화의 신전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것도 예상보다 빠르게, 안전하게 도착했다. 모두 그 여자가 가르쳐준 길 덕분이었다.

 

 ✳

 

  그 다음부터는 더 이상 공포에 떨 일 따위 없었다. 이 도시의 영주는 알레테아가 죄인이기는 하나 모독자를 사냥한다는 이유로 굉장히 잘 대접해 주는 자였다. 길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자금을 대는 자도 그였고 말이다.

 

  그가 상시 평화의 신전에 거주하며 숙식을 모두 신전 안에서 해결한다는 것을 아는 알레테아는 신전에서 일하는 사람을 불러 영주에게 보호를 요청했고, 영주는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

 

  비록 평화의 신전 신관들이 알레테아를 따가운 눈으로 째려보는 것이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들은 죄인이 평화의 신전에 들어와 하룻밤을 보내려 한다는 것 자체를 매우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를 신경 쓸 계제가 아니었다. 알레테아는 자신의 보호를 요청함과 동시에 길드 건물 안에 있을 길드원들 또한 보호를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손가락이 잘려나갔을 자들의 치료도 필요했고, 무엇보다도 리이와, 자신을 도망치게 해 주었던 그 남자의 신변이 어떻게 되었으려나 걱정이 되었다.

 

  ‘리이... 리이 괜찮을까. 그 남자는 또 어떻게 되었을까? 손가락이 모조리 잘려 버렸을 지도 몰라.’

 

  그렇게 영주에게 여러 가지를 요청하면서, 알레테아는 한 가지를 더 추가해서 요청했다.

 

  “이 신전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상점가에, 미친 길드원과 대치하고 있는 여자가 있을 겁니다. 아니, 이미 중상을 입고 말았을지도 모르겠네요... 그 여자 좀 구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영주님. 자주색 눈동자에, 금발의 여성입니다!”

 

  멍청하게도, 검은 로브의 여자가 ‘다 잊어버려’라고 말했던 것은 까맣게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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