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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작가 : 홍단
작품등록일 : 201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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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 알레테아(10)
작성일 : 17-12-15     조회 : 275     추천 : 0     분량 : 4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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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레테아는 신을 뵙기 전 무엇을 해야 하는지 걱정했지만, 곧 그런 걱정은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평화의 신을 알현하기 전 알레테아가 해야 하는 일은 신관들이 다 알아서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웃 입기, 화장하기는 물론 씻기는 것까지도 신관들이 알아서 해 주었다. 특히 그 중 가장 호화롭고도 대단한 대우를 받았던 건 욕실에서였다. 하얀 대리석으로 된 욕실은 황금색 가구들로 이곳저곳 장식되어 있어 매우 부유한 느낌을 주었는데, 얇고 새하얀 옷을 입은 신관들이 알레테아를 뜨거운 물이 가득 찬 대리석 욕탕으로 안내했다. 더운 물에는 좋은 냄새가 솔솔 풍기는 라일락꽃이 가득 띄워져 마치 천국에 온 느낌마저 주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죄인 주제에 평화의 신전에서 엄청난 호사를 누린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에 그치지 않았다. 신관 중 금으로 된 혁대를 찬 여자가 다가오더니, 은으로 된 향합을 기울여 알레테아의 몸에 부어 주었다.

 

  미끌미끌하지만 지금까지 맡아 본 향유 냄새 중에서도 비교할 게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냄새. 알레테아는 좀 더 냄새를 음미하고 싶어 향유를 부은 곳에 코를 가져다 대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신관 여럿이 다가와 한 곳에 뭉쳐 있던 향유를 몸 구석구석에 펴발라 주었다.

 

  “으아아!”

 

  알레테아는 저도 모르게 부끄러워져 짧게 비명을 질렀다. 온몸이 부끄러움에 붉게 달아올랐다.

 

  사실 이렇게 누군가 목욕을 해 주는 것은 도시에 신벌이 내리기 전까지만 해도 당연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 시녀들이 몸에 향유를 발라 주고 구석구석 씻겨 주었던 게 그제야 기억이 났다. 당시에는 구석구석 씻겨 주면 기분이 좋아져서 막 웃었던 것 같은데, 완전히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죄인으로 전락해 길바닥에서 구른 지 몇 년이나 되었다고 이렇게 되었는지. 알레테아는 남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신관들은 알레테아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싸늘한 눈빛을 보내며 투덜거리며 흉을 보았지만 그 정도쯤은 어찌 되도 좋았다.

 

  목욕을 하고 나온 이후도 알레테아가 고민할 것은 없었다. 신관들은 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신전답게 눈처럼 하얀 예복을 입혀주었다. 일종의 토가 같은 것으로, 거대한 천을 이곳저곳 접어 옷 형태로 만든 뒤 고정시키는 형태였다. 순금 바탕에 새하얀 진주를 박은 옷핀으로 옷을 고정하여, 형태가 더 이상 흐트러지지 않도록 했다.

 

  여러모로 불편한 옷이었지만 그런 게 신경 쓰일 알레테아가 아니었다. 곧 신을 알현케 되니까. 알레테아는 곧 신을 알현하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그런 사소한 것 따위는 깡그리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왜 부르시는 걸까? 설마, 그 동안 고생했으니 너의 죄를 사한다는 것은 아닐까? 그동안 기도도 열심히 하고, 신의 말씀을 설파하고... 정말 모범적으로 살았어. 모독자도 잡았는걸!’

 

  머릿속이 꽃밭이었다. 신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걸까. 어쩌면 죄인의 신분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제단이 있는 중앙 홀의 문을 열기 직전에는 아예 죄를 사하고 선택받은 백성이 될 권한을 주시는 건 아닌가. 그런 상상까지 했다. 상상하는 건 자유라지만, 알레테아의 기대감은 그렇게까지 멀리멀리 뻗어 나가 있었다.

 

  방금 전 꾼 악몽 따위도, 라키샤도, 이상한 신입도, 알 수 없는 여자도, 난장판이 된 길드도! 걱정이라곤 눈 녹듯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악몽을 꾸고 나서 울며 소리지르던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부푼 꿈을 안은 채, 알레테아는 중앙 홀을 굳건히 지키던 황금 문의 자물쇠가 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진주와 다이아몬드로 잔뜩 장식되고 그 위에 부조로 거대한 날개를 펼친 자애로운 신의 모습이 새겨진 황금의 문이, 알레테아의 눈앞에서 열리고 있었다.

 

  평소 기도하러 올 때마다 항상 굳게 닫혀 있는 것만을 보았는데. 자신의 앞에서 이 문이 열리게 되리라고는 단 한 번도 기대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문이 열리고 있다.

 

  이 문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될 줄이야... 알레테아는 기절할 것 같은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심호흡을 했다.

 

  심장의 고동 소리가 터질 듯이 쿵쾅쿵쾅, 귓전을 때리는 가운데, 황금 문이 열렸다.

 

  그리고 황금 문의 사이로 나타난 황금 제단의 앞으로 - 거대한 날개를 가진 순백의 남자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알레테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대한 하얀 날개에는 촘촘히 하얀 깃털이 박혀 보석 같은 빛을 뿜고 있었고, 순백색 옷에 순백의 머리카락을 한, 지금까지 봐 온 누구보다도 신성한 모습의 존재가 알레테아의 앞에서 미소 짓고 있었다. 순백색이 아닌 부분이라고는 황금색의 눈동자와, 은은히 빛을 뿜어내는 황금 면류관뿐이었다.

 

 ✳

 

  두근두근. 심장의 고동이 알레테아의 가슴 속에서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제단이 놓인 중앙 홀을 꽉 채우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도저히 멈춰지지가 않았다. 인간의 심장 소리란 게 이정도로 크다는 것을 알레테아도 처음 알았을 정도로 고동은 거대한 소음을 일으켰지만, 그럼에도 멈춰지지 않았다.

 

 ‘불경하다 여기시는 건 아닐까. 아아, 리이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

 

  리이 역시 선택받은 백성으로 임명되었을 때, 평화의 신께 부름을 받았었다. 평화의 신께서는 리이의 온화한 마음과, 모독자를 쫓는 공을 치하하며 자신의 백성으로 선택해 주셨다고 들었었다.

 

  “눈부실 정도로 하얀 날개를 가진 순백의 신이셨습니다. 머리카락도, 옷도, 모든 것이 순백이더군요. 그 모습이 어찌나 황홀하던지... 신께서 저를 어루만져 주시며 ‘이제부터 너는 나의 백성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자애로워서 눈물이 다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러면서 살짝 눈물을 흘렸었지. 그 리이가 눈물을 흘리다니... 놀라워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던 기억이 났다.

 

  그 당시엔 울보냐고 놀렸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질투가 나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저 모습을 보고 제정신 차릴 수 있으면 사람이 아닐 테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고동 소리마저 죄스러울 정도로 아름답고 자애로운 신의 모습에, 알레테아는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털썩, 하고 거의 주저앉는 수준으로 딱딱한 대리석 바닥에 무릎을 부딪쳤으나,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일어나거라. 내 앞에서 무릎 꿇을 필요 없다.”

 

  평화의 신은 허공에 떠 있다가 천천히 신전 바닥으로 내려와 발을 딛으며, 그리 말하였다. 온화하고 고운 남성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중앙 홀 내부로 퍼져나갔다.

 

  이 세상의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그런 다정한 목소리. 알레테아는 신의 말씀을 면전에서 듣는다는 사실에 그만 아찔해지는 것을 느끼며, 어떻게든 자세를 일어서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다리가 후들거려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어, 그대로 무릎을 꿇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었다.

 

  “하, 하오나...”

 

  “놀랄 필요 없다. 긴장을 풀도록 해라. 널 부른 것은 긴히 신탁을 내릴 일이 있어서일 뿐이니...”

 

  도대체 무슨 신탁을 내리신다는 걸까. 평화의 신께서 저 자비롭고 환한 미소로, 어떤 말씀을 내리신다는 걸까... 알레테아는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신의 말씀을 기다렸다.

 

  그리고 신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말씀은... 알레테아를 기절하기 직전까지 몰고 가기 충분했다.

 

  “네 죄를 사해주고자 한다.”

 

  꺄아악! 알레테아는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 냈다. 신 앞에서, 신성한 신전 안에서 비명을 지른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어떻게든 꾹꾹 눌러 참아 냈다. 불경하다고 취소하실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비명을 참아 내고 나니, 두 번째 난관이 바로 들이닥쳤지만 말이다. 눈물이 흘러나오려 했던 것이다. 그동안 더럽게 고생하고, 길바닥을 구르고, 신전에 매일매일 나와 기도하고,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 모든 고생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알레테아는 비명을 참아내니 흐느낌이 나오려 하는 것을 어떻게든 참아 내려 애를 썼다. 하지만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것을 참아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드디어, 드디어 이 지옥 같던 죄인의 낙인을 벗을 수 있어. 신께서 내 기도를 들어 주셨어... 이젠 빌어먹을 악몽과도 안녕이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평화의 신께 영광을!”

 

  알레테아는 연거푸 절을 올리며 신께 최대한 감사를 표했다. 아아,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제 기도를 들어 주셔서 감사합...

 

  “단.”

 

  단?

 

  감사를 표하는 말을 마치려는 바로 그 순간, 신의 음성이 알레테아의 말을 서슴없이 잘라 냈다. 마치 잘 벼려진 칼과 같이 단칼에 알레테아의 찬양을 갈라 내 버렸다. 찬양의 말이 혀끝에서 밀밀히 맴돌다가 사라진다.

 

  알레테아는 혀끝에서 맴돌다 녹아내린 찬양의 말을 곱씹으며, 지금 상황이 갑자기 어떻게 전개되는 있는 것인지 알아내 보려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곱씹어 보아도 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알레테아는 감이 잡히지 않아 애매하고도 어딘가 절망스러운 눈으로 평화의 신을 올려다보았다. 그 자비롭고 아름답던 존안. 하지만 그 한 마디를 내뱉고 나서의 신에게서는 그 어디에서도 자비와 평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냉골 같이 차가운 얼굴과, 서릿발처럼 매서운 눈동자만이 알레테아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다른 신이 강림하기라도 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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