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 모독자란 존재는 죽지 않는다. 자연사에서 자유로우며 병사 또한 마찬가지다. 독을 먹어 쓰러질 수는 있겠지만 독이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강하지 않은 이상 금방 자가 치유를 할 수 있다. 먹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으며, 몸이 반으로 갈라져도 재생이 가능하다.
하지만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모독자는 뇌를 다치면 몸을 움직이는 게 불가능해진다. 즉, 외부의 공격에서 무방비해진다는 의미이다. 모독자는 뇌를 다칠 경우 뇌의 재생에 온몸의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그렇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 지경이 되더라도 모독자가 죽는다는 건 아니다. 머리를 통째로 갈아 버려도 생명이 끊어지지 않으며 어떻게든 재생 단계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확실히 죽이는 방법은 머리를 갈아 버린 후 완전히 잿더미가 될 때까지 태워 버리는 것뿐이다.
하지만 만신전에서는 모독자를 죽이기보단 포획하는 것을 권장하기에, 모독자를 잡는 데에는 애로사항이 꽃피곤 했다. 일단 잡은 뒤, 정기적으로 머리를 갈아 주는 것.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들 그 방법만이 유일하다고 여겼었다.
그랬을 터였다.
“언니, 아무리 찌르고, 자르고, 토막 내도 재생하는 거야? 전에 잡았던 모독자 같아! 아하하하하!!”
지금 눈앞에 있는 소녀는 광적으로 웃어대며 엘피스를 유린하고 있었다. 가장 우려했던 대로의 방식을 그대로 실현하면서.
검은 구체가 머리를 파괴할 타이밍에 맞춰 엘피스가 아슬아슬하게 피하면, 소녀는 특유의 작고 빠른 몸으로 피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공격해 왔다. 꼬챙이로 찌르든, 베든, 자르든. 그러나 엘피스가 피하는 동작을 끝내는 그 순간, 소녀는 공격을 중지하고 재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공격이 얼마나 유효하게 먹혔든 간에 아쉬움 없이 바로 포기하고 말이다.
마치 짐승을 잡는 노련한 사냥꾼 같은 모습이었다. 저 능숙한 움직임을 누가 미친 어린아이의 것이라고 생각할까 싶을 정도로.
소녀는 엘피스가 가까이 다가올라 치면 귀신같은 타이밍으로 검은 구체를 형성하여 움직임을 차단한 뒤, 그 틈에 거리를 벌렸다. 엘피스가 감이 좋지 않았다면 아마 진작에 몇 번이고 머리가 날아갔을 정도로 타이밍이 절묘했다.
하지만 이 녀석의 가장 무서운 점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모독자의 포획을 할 때 어떤 방법이 가장 유리한지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모독자의 머리가 재생이 돼서 문제라면, 머리에 물건을 박아 넣으면 돼. 그럼 박아 넣은 부위만큼은 재생하고 싶어도 못하잖아.”
소녀는 그렇게 주절거리며, 지금까지 만들어 오던 검은 구체 대신 바닥과 평행을 이루는 형태의 기다란 창을 만들었다.
계속 검은 구체만 만들어 오다가 갑자기 기다란 물체를 만들어 내어 방심한 틈을 찌르는 공략법이었다. 구체가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하고 적절히 피하는 것을 노리고, 적절히 옆으로 머리를 피했다가 예상보다 더 긴 창에 머리를 관통 당하게 만든다는 전략.
엘피스가 아무리 감이 좋다고 한들, 그런 것까지 예측해 내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결국 -
그대로 기다란 창에 머리를 관통당하고 말았다.
처음엔 눈치 채지 못했지만, 곧이어 어마어마한 격통이 엄습해 왔다. 피부를 찢고 들어온 것도 아니고, 내부에서 물체가 형성되어 근육과 신경을 찢고 나오는데 지독하게 아픈 게 당연했다. 아마 이런 고통에 익숙하지 않은 자라면 벌써 기절했을 수준의 격통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게도 관통당한 곳은 뇌가 있는 위치가 아니라, 뺨이 있는 위치였다. 왠지 모를 불길함 탓에 방금 전까지 피하던 것보다 조금 더 멀리 발걸음을 옮겼던 덕이었다. 하지만 뇌만 다치지 않았을 뿐, 뺨에서부터 뇌가 있는 위치 직전까지 박힌 긴 창은 시야를 불편하게 하고,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엘피스는 단검으로 긴 창을 잘라낸 뒤 뺨에서 뽑아내려 했으나, 허사였다. 단검으로 창을 짧게 자르는 것까지는 가능했으나, 뺨에 박힌 창은 아무리 용을 써도 뽑아지지가 않고, 오히려 더욱 끔찍한 격통만을 불러 왔다.
아마 보통의 길쭉한 창을 소환한 게 아니라, 구멍이 잔뜩 뚫린 창을 소환한 듯싶었다. 모독자의 몸은 재생력이 어마어마해서 조금이라도 다친 부위가 있으면 그 부위를 어떻게든 메우려 든다.
만약 이물질에 몸이 관통당할 경우 재생할 수 없는 부위를 메꾸고자 재생력이 계속 발동되어, 결국 관통한 이물질을 새로 재생된 세포가 밀어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만약 이물질에 구멍이 여기저기 나 있다면 능력에 의해 재생된 세포가 이물질에 뚫린 구멍 내부에까지 침투하기에 오히려 이물질이 빠지지 못하게 단단히 잡고 있는 형국이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워낙 재생능력으로 형성된 세포들이 구멍을 단단히 옥죄기에 뽑기도 어려웠다.
“미친 아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수완이 굉장하잖아. 모독자를 잡았다는 말이 사실인가 보군.”
엘피스는 살짝 투덜거리며 다시금 소녀와 대치했다. 소녀가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전까지는 하나도 어렵지 않아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 몰아붙일 줄은 몰랐다고 생각하면서.
“언니, 혹시 모독자야? 그럼 가져가도 돼? 라쉬미가 평생 먹어도 남을 거 같아. 그럼 라쉬미가 배고플 걱정도 없어지겠어!”
소녀는 여전히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말하고 있었다.
“라쉬미가 배고파해. 저번에 모독자를 잡았는데, 길드장님이 잡으면 나 준다고 했는데, 거짓말 했어...”
그러더니 또다시 풀이 죽었다. 아까까지는 웃고 있더니만 갑작스레 절망으로 가득 찬 얼굴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는 혼자 다시 중얼중얼 거렸다.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
‘지금 시간이... 이쯤 되었으면 알레테아가 다 부서진 집까지는 갔겠어. 그 정도면 이제 따라잡힐 염려도 없지.’
하지만 엘피스는 열세에 놓여 있음에도 그렇게까지 당황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격통 탓에 좀 힘들긴 했지만, 통증에 신경을 쓰는 대신 시간을 확인할 따름이었다. 알레테아가 충분히 도망쳤을 정도로 시간이 흘렀는지 말이다.
그리고 충분히 시간이 흘렀음을 알았을 때, 엘피스는 다시 행동을 개시했다. 자신을 공격하는 소녀를 처리하기 위하여.
엘피스는 일단 자신이 서 있는 거리의 바닥 부분을 확인했다. 방금 전까지 소녀가 자신을 몰아붙이면서 만들어 낸 구체가 몇 개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나, 둘, 셋, 넷... 총 열 다섯 개.
이 정도 개수면 충분하다 싶었다. 엘피스는 검은 구체 중 하나를 한 손으로 들어 올리며, 대충 무게를 재 보았다. 속이 꽉 찬 데다 머리만해서 무겁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던질 만하고, 크기도 딱 적당했다.
그리고 녀석이 다시 공격해 오는 타이밍에 맞추어 - 엘피스는 들어 올렸던 구체를 냅다 소녀의 머리를 향해, 정면으로 집어 던졌다.
상당히 무거운 구체였지만 엘피스의 괴력 앞에선 무의미했다. 엘피스는 한 손으로 구체를 집어 올리고 올리자마자 무슨 투포환 발사하듯 소녀의 머리를 향해 발사했다. 소녀가 물체 형성을 위해서 엘피스와의 거리를 그리 넓혀 놓지 않았기에, 구체는 중간에 힘 떨어질 일도 없이 엄청난 속도로 소녀의 머리를 직격했다.
비록 다시금 자신의 머리를 노리고 형성된 구체 탓에 정확히 던져졌는지 판단할 시간이 부족했지만, 아까 꽤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석궁을 쏠 때조차도 자세 잡을 것 없이 직감적으로 머리를 노렸던 엘피스였다. 그런 엘피스가, 이 정도 짧은 거리에서 머리를 직격으로 노릴 수 없을 리가 없었다.
소녀는 자신의 머리를 향하여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는 구체를 능숙하게 날랜 몸짓으로 피했다. 그러나 한숨 돌릴 새도 없이 곧바로 다음 위기에 직면했다.
자신이 날아오는 구체를 피하자마자 바로 다른 구체가 자신의 머리를 향하여 날아왔던 것이었다.
엘피스가 한 개를 던지고 나서 쉬지 않고 바로 다음 것을 집어 던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치지도 않는지 엘피스는 괴력을 이용해 소녀가 피할 만 한 위치를 향해 검은 구체를 집어 던졌다. 그것도 한 손으로.
소녀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낭패였다.
자기 무기를 이용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거니와, 구체 하나하나가 사람 머리만하고 둘 사이의 거리가 짧다 보니 잠시나마 시야가 날아오는 구체에 의해 가려졌기 때문이었다.
시야가 가려지면 상대방의 머리 위치를 제대로 특정할 수가 없어, 아까처럼 공격을 해도 먹히지 않고 오히려 상대에게 던질 것만 더 주는 꼴이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뭐 힘이 저렇게... 그래봤자지. 지금만 잘 피하면 돼. 어차피 개수에 제한이 있어!’
아까 자신이 공격할 때 사용했던 구체의 수는 기껏해야 열 개 남짓. 그 이상까지만 버티면 자신이 이기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소녀는 생각했다. 던질 게 없어지는 순간 그 원망스러운 골통을 박살내 주리라.
그러나 그렇게 마음먹으며 자신의 머리를 겨냥한 구체를 여섯 개 째 피하고 일곱 번째를 피할 준비를 하는 그 순간, 소녀의 눈에 비친 것은 구체가 아니었다.
그건 바로 여섯 번째 구체가 날아오면서 시야를 가린 틈을 타, 구체 뒤를 바짝 뒤쫓아 들어온 엘피스였다. 한 손에는 단검을, 한 손에는 석궁을 든 채로, 소녀의 바로 코앞까지 와 있었던 것이었다.
“아아아아!”
소녀는 이런 초보적인 전술에 속았다는 것이 분했는지, 분노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애초에 일곱 번째는 집어던져지지도 않았다. 계속, 쉴 새 없이 구체가 날아오고 그걸 피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다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을 확인하지 못하고 방심한 것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쉽게 상대가 되니까, 방심하고 있다가 머리가 굳어 버리기라도 한 건지, 멍청한 짓을 저지르고 만 라키샤였다.
라키샤는 어떻게든 거리를 벌리기 위해 무언가를 소환하려 했으나, 그걸 가만히 둘 엘피스가 아니었다. 엘피스는 곧바로 팔을 휘둘러 라키샤의 목을 노리고 단검을 집어던졌다. 둘 사이의 거리가 너무나 짧아서 라키샤가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기에, 라키샤는 단검을 막아내기 위하여 작은 방패를 소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방금 전 같은 금속으로 된 창도 쉽게 잘랐는데, 코앞에서 던져진 단검이 작은 방패 따위를 못 뚫을 리가 없었다. 단검은 마치 비눗방울을 통과하듯 작은 방패를 꿰뚫고 라키샤의 목을 직격해 그대로 파고들었다.
푹 - 소리와 함께 소녀의 하얀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아나왔다. 안 그래도 핏기 없던 피부가 더욱 새하얗게 느껴질 정도로, 목에서 솟구친 피는 소녀의 하얀 피부 곳곳을 적셨다. 칼로 찢어발겨져 공기가 훤히 통하는 목구멍 사이로 의미모를 신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켁... 크게엑”
그러나 이쯤 되면 포기할 법도 한데, 질기게도 소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소녀는 피가 펄펄 흐르는 목을 감싸 쥔 채로 다시 한 번 구체를 소환하여, 엘피스의 머리통을 날려 버리려 했다. 마지막으로 모든 힘을 쥐어짜서.
이 정도 상처를 입었으면 목숨이 아까워서라도 그만두리라 생각했는데, 이 지경까지 지독하게 물어뜯으리라고는 싸우고 있던 엘피스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 탓에 자신의 머리를 노려 구체가 소환되는 것을 감지하였으나, 피하기엔 이미 늦어 버리고 말았다.
‘제기랄!’
그리고 결국 구체가 소환되는 것을 피하지 못했다. 엘피스의 얼굴에서 피가 뿜어져 나와, 길바닥을 흠뻑 적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