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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를 잠시나마 잊어보려 집 앞 마트에서 산 막대 아이스크림은 버스가 도착할 때 쯤엔 이미 반은 녹아있었다. 개학이 일주일 남아 남들은 다 여행가거나 남은 여름방학을 만끽할때 독서캠프로 인해 학교를 가고 있는 내 처지가 참 안타까웠다.
몸이 떨릴정도로 찬 바람이 나오는 버스와 반대로 버스 밖 공기는 숨막힐 정도로 습했고, 뜨거웠다. 학교와 버스정류장이 거리가 좀 먼탓에 학교도서관에 도착했을 때엔 타지 않으려 바른 선크림이 무안할 정도로 온몸이 땀에 절었다.
선풍기 바로 밑자리에 앉아 땀을 식히고 있으니 친구가 왜 이리 늦게 왔다 타박하며 내 옆자리에 앉았다. 애시당초 독서캠프에 오게 된 이유도 혼자 신청하긴 싫다며 내 이름도 같이 적어낸 친구탓인데. 뾰루퉁한 표정으로 쳐다보니 그제서야 실실거리며 장난이였다, 한다.
땀과 땀에 젖은 옷이 다 말라갈 무렵 독서캠프 담당이신 사서 선생님이 평소처럼 푸른색 보틀을 손에 쥐고 들어오셨다. 보틀을 책상에내려놓고 도서관을 한번 둘러보시더니
" 첫날이니 뒤에서 책 한권씩 꺼내와 읽자 "
라며 짧은 말을 남기고 전화를 걸며 밖으로 나가셨다.
선생님이 나가시자마자 발 빠른 몇몇이 학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로맨스 소설을 꺼내갔다. 만화책을 읽기엔 눈치가 보일듯 하여 그냥눈에 꽃히는 책을 찾을 때 까지 책장 주변을 돌아다녔다.
도서관엔 큰 책장 8개가 두줄로 세워져있고 책상 근처에 작은 책장들이 세워져있는 형태인데, 작은 책장은 주로 만화가 있어 큰 책장을 몇번이고 돌았다. 그러다 창가자리 가장 구석에 있는 책장중 한 칸이 통채로 비워져있는걸 보았다. 책장 앞으로 가보니 비어있는 칸에는 표지가 책 두께의 반을 차지하는 책 한 권이 덩그러니 있다.
제목은 적혀있었지만 작가명과 학교이름이 적힌 도장이 없는걸 보고 누가 놔두고 간게 아닐까 예상했다. 표지엔 제목과 일치하게 까만토끼가 그려져있다. 펼쳐보니 책은 맨 첫장을 제외하곤 백지였다. 그
옆엔 귀여운 까만 토끼 한마리가 그려져있었다. 동화책인가 싶어 읽을 책을 찾아야 한다는 일도 까먹은채 그 책을 읽기시작했다.
[ 어느날, 빨간 지붕의 집에 사는 하얀 토끼 부부가 딸을 낳았어요. 그런데 에구머니나 딸의 털이 토끼 부부네 자동차 바퀴보다도 더 새카만 색이지 뭐에요? 그러나 부부는 까만 토끼를 정말 사랑하였답니다.
" 어머, 저 색좀 보세요 어떰 저리 못생길수가 있죠? "
" 그러게요, 혹시 알아요? 다리밑에서 주어온것일지 "
이런 말이 들릴 때 마다 부부는 까만 토끼의 귀를 막았고 까만 토끼에게 사랑의 말을 들려주었어요.
까만 토끼는 어느새 뛰어다닐 수 있을 만큼 쑥쑥 컸어요. 의사소통도 가능해졌죠.
사실 까만 토끼는 숨겨진 비밀이 있어요. 그건 바로 부모님과 친구들의 얼굴이 모두 탈을 쓴 것 처럼 보인다는 거죠. 그러나 까만 토끼는 잘못되었다는걸 몰랐어요. 아주 어릴떄부터 그리 보였으니 당연하다 생각한것이죠. ]
한 장을 다 읽고 백지만 쳐다보고 있었다는 걸 친구가 내이름을 부르며 책장에 점점 가까이 오는 발소리를 듣고서야 알아차렸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이 책을 친구에게 보여주면 안될듯하여 동화책을 비어있던 책장에 던져넣고 그 옆에 있던 책 한권을 집었다. 그러곤 친구를 제쳐 다시 자리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