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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게임
작가 : 맨온파이어
작품등록일 : 201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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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희생자
작성일 : 17-12-17     조회 : 236     추천 : 0     분량 : 6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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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장. 세 번째 희생자

 

 

 "일단 우리 셋이서 여기 앉아 지수를 지켜줘야 해. 지수가 먼저 우리를 공격하는 일은 없을 거야. 이대로 아침이 올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어."

 

 나는 소파에 앉아 팔짱을 낀 채로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입으로 나오는 한음 한음에 정성을 실어 노래 한곡을 완성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두 번째 곡을 이어나갔다. 어떤 일에 집중할 때 나오는 오래된 습관 중 하나였다. 물론 지금은 졸음을 예방하기 위한 차원이기도 했다.

 

 휘파람을 불며 은근슬쩍 경찬의 얼굴을 살폈다. 뭔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은 채 조그맣게 입술을 움직이고 있었다. 과연 그는 다음 범행을 위해 어떤 작전을 펼칠까.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난 상태에서 섣불리 움직이기란 쉽지 않을 터. 어쩔 수 없이 무리수를 두게 된다면 ‘정당방위’란 이름으로 즉석에서 처단할 생각이었다.

 

 한편 옆에 앉은 유희는 또 다시 눈꺼풀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이미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친지라 장기전으로 갈 확률은 적어 보였다. 내 휘파람을 자장가 삼아 고개를 꾸벅이며 졸던 그녀는 결국 중력에게 패배를 인정하고 쓰러져버렸다. 이미 너무 거대해져버린 잠의 유혹 앞에서는 커피도 담배도 소용이 없었다.

 

 경찬 역시 중얼거리던 입술을 딱 붙인 채 묵언수행을 택했다. 물론 저것조차 연기일 확률이 높았지만 정확하게 분별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건 분명 내 판단력이 흐려진 탓도 있었다. 나조차 잠이란 블랙홀 앞에서는 예외일 수 없었다. 휘파람을 불며 우주를 방랑하던 나그네는 어디론가 조금씩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중력과 싸움을 하던 유희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오히려 무중력 공간에서 둥둥 떠다니는 기분은 약간의 쾌락마저 느껴졌다. 졸리면서도 무엇인가에 취한 느낌? 분명 술은 더 이상 먹지 않았는데. 또 다시 논리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옆에서 코를 고는 경찬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경찬을 잡고 흔들어보았지만 더 이상 어떤 힘도 없다는 듯 풀썩 쓰러져버렸다.

 

 그 순간, 잠깐이지만 어떤 향이 코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건 분명 아까 피던 담배의 향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알고 있던 담배의 향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그저 원래 피던 담배가 아니라서 그러려니 했던 내 자신이 원망스러워졌다. 이것은 맛의 차이가 아닌 성분의 차이였다.

 

 "담배도 일종의 마약이야. 우리 같은 사람들이나 기호식품으로 생각하지. 해외에서는 이미 담배를 마약으로 규정짓고 있잖아. 그래서 말인데 꼭 한번 실험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하나있어. 조금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인간의 심리를 다룬 플라시보 효과와 담배의 상관성을 알아보고 싶은 거야. 플라시보 효과는 워낙 유명하니 잘 알겠지만 굳이 정리해보자면 ‘인간의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 정도가 되겠지? 전기가 나간 냉동 창고에서 스스로 춥다고 생각하며 얼어 죽은 사례가 대표적이고. 여기서 부터가 시작이야. 담배의 외관은 그대로 유지하되 그 안의 성분을 하나는 유해화학물질이 아닌 일반약초로, 또 하나는 코카인이나 대마초 같은 마약성 물질로 채우는 거야. 피 실험자는 자신이 들고 있는 물체를 담배라 믿고 들이 마실 거야. 분명 처음에는 맛의 차이를 느끼고 당황하겠지만 자신의 뇌에 이미 저장된 기억, 즉 고정관념으로 인해 그 맛을 받아들이게 되고 결국 담배를 태울 때와 마찬가지로 같은 쾌락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이게 가능하다면 우리는 일반약초로 니코틴을 대체할 수 있고 마약에 중독되지 않을 수 있어. 즉, 일반약초와 유해화학물질, 그리고 코카인이 하나의 성분으로 통일될 수 있는 거지."

 

 혜나가 담배의 노예로 전락하는 자신의 모습에 회의감을 느낄 무렵 임기응변으로 내뱉은 나의 한마디. 설마 그녀가 그걸 실천으로 옮길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다만 그녀는 일반약초가 아닌 코카인 성분을 이용했을 뿐. 어째서 그녀는 더 강한 자극이 필요했던 걸까. 지금의 나처럼 환각마저 보였을 텐데. 어느 새 혜나는 내 앞으로 다가와 입을 맞추었다. 미처 하지 못한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는 슬픈 표정으로 웃어보였다. 나는 그녀를 붙잡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몇 걸음 못가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의식이 점차 흐려지더니 마지막으로 지수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난 살인자가 아니야."

 

 분명 외친다고 소리쳤는데 막상 내 귀에 들리는 소리는 중얼거림 수준이었다. 그러나 내 진심이 그녀의 귀에 닿았기를 희망하며 의식의 셔터를 닫아버렸다.

 

 

 *****

 

 

 내 귀를 깨운 건 경찬의 오열이었다. 그건 분명 흐느낌을 뛰어넘은 드라마에 나올법한 오열이었다. 지금껏 내가 알던 경찬은 눈물을 잘 보이지 않는 무미건조한 스타일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절대 울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눈물을 아끼던 남자였으니까. 사춘기 남자들의 첫 경험인 몽정처럼 반강제적으로 배출하지 않는 이상 그에게서 눈물을 보는 일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소리는 분명 경찬의 것이었다. 확신이 선 뒤에야 눈을 뜨고 실체를 바라볼 수 있었다. 내 앞에 펼쳐진 광경은 다시 눈을 감고 싶을 정도로 잔혹하면서도 그 이상의 가혹성을 띠고 있었다. 곧이어 상황을 알아차린 유희마저 이성을 잃은 채 울부짖으면서 펜션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지수가 죽었다.

 

 그녀의 예언은 현실이 되어 내 눈앞에 나타났다. 왼쪽 손목에는 한 뼘 가까이 되는 기다란 흉터가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미 너무 많이 흘러내린 피는 탁자 밑에 붉은 강을 이루고 있었다. 의자에 걸터앉은 지수는 모든 생명을 빼앗긴 듯 창백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칼로 왼쪽 동맥을 그어버렸어. 엄청난 양의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겠지. 맥박과 호흡이 천천히 사라졌을 테고 마지막으로 심장이 멈추면서 의식을 잃었을 거야. 그 짧은 시간동안 지수는 범인과 독대하고 있던 거야."

 

 범인이란 말에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마지막으로 본 지수의 겁에 질린 표정이 악몽처럼 되살아난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런 표정을 지은 건지 묻고 싶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었다. 그녀마저 세상을 떠나 버렸다.

 

 "일단 사건을 정리해봐야 할 거 같아. 가장 먼저 지수를 발견한 건 경찬이 너지?"

 

 난 탁자 옆 의자를 하나 끌어내 그곳에 앉으면서 물었다.

 

 "알리바이 조사라도 하겠다는 거야? 그렇다면 제일 불리한 건 나겠네. 네 말처럼 내가 가장 먼저 지수를 발견했으니까."

 

 경찬은 날이 선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 기다림 끝에 연인이 된 소중한 사람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 허망함이 눈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데 그 눈물이 거짓이라면?

 

 "네가 처음 봤을 때에도 저 상태 그대로였어?"

 

 난 모든 감정을 뺀 채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현장보존의 원칙을 얘기하는 거야? 맹세컨대 지수의 털끝하나 건들지 않았어. 물론 동맥분출을 막기 위해 지압을 한 걸 제외하고는."

 

 경찬은 피가 잔뜩 묻은 양손을 들어 보였다. 손뿐만 아니라 옷 군데군데에도 상당량의 피가 묻어 있었다. 지수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났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피투성이의 경찬은 소름끼칠 정도로 용의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계획한 살인을 저지른 뒤 가장 먼저 일어난 척 지수를 붙잡고 오열한건 아닐까.

 

 "혹시 처음 지수를 발견한 시간도 기억나? 나도 졸면서 계속해서 시간을 확인 중이었는데 마지막으로 본 시간이 4시 30분이야. 5시 반 전으로 기억해버렸거든. 그런데 현재시간은 5시 30분. 자느라 뻐꾸기 소리도 듣지 못한 채 한 시간이 흘러간 거야."

 

 "시간을 확인할 여유가 있었겠어? 당장 내 앞에 지수가 저런 모습을 하고 있는데.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나도 뻐꾸기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거야. 대략적인 감으로 봤을 때 5시 10분쯤이었던 거 같아. 당장 너희를 깨울 생각은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정신을 놓고 있었으니까."

 

 나는 시계의 시침과 분침을 머릿속으로 돌려가며 사망추정시간을 예측하고 있었다. 사실 난 경찬에게 거짓 사실을 늘어놓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시간은 4시 30분이 아닌 5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들은 것이었다. 의식이 완전히 끊기기 전 어렴풋하게나마 뻐꾸기 울음소리를 들었다. 혹시나 저 30분 사이 시간의 덫에 걸리지 않을까 희망해 보았지만 경찬은 유유히 빠져나갔다.

 

 "설마 지수가 나쁜 생각을 품고 저지른 건 아니겠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와중에 유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녀는 모든 에너지를 잃은 듯 벽에 몸을 기댄 체 위태롭게 서 있었다.

 

 "자살이란 얘기를 하고 싶은 거야?"

 

 경찬은 아까보다 더 날카로워진 목소리로 유희를 겨냥했다. 유희는 고개를 숙인 채 애써 시선을 맞추지 않았다.

 

 "사실 나도 같은 생각을 해봤어. 모든 죽음에는 가능성을 열어둬야 하니까. 엄청난 불안감과 공포로 인해 스스로 손목을 그었는지도 몰라."

 

 나는 지수의 왼쪽 손목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뒤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있어. 다들 보았겠지만 이 흉터의 방향 말이야. 이 사선 조금 이상하지 않아?"

 

 내 말에 경찬과 유희가 시신 근처로 다가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왼쪽 손목의 흉터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잠시 뒤 경찬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지수는 자살하지 않았어. 오른손잡이가 자신의 왼쪽 손목을 그었는데 방향이 저렇게 될 순 없지. 보통의 오른손잡이라면 오히려 반대방향으로 그었을 거야. 유희 너도 잘 봐봐. 분명 사선이 우측 상단에서 시작해서 좌측 하단으로 이어지고 있어."

 

 경찬은 지수의 손목에 그어진 사선을 따라가며 유희에게 열띤 설명을 덧붙였다.

 

 "다만 다른 사람이 지수의 손을 잡고 그었다면 이 그림밖에 나올 수 없어. 범인은 자신의 왼손으로 지수의 손을 제압한 뒤에 칼을 쥔 오른손으로 손목을 그어 나간거야. 즉, 범인은 오른손잡이인 셈이지."

 

 경찬은 오른손으로 바닥에 떨어져 있는 식칼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뭔가 어색한 듯 왼손으로 칼을 옮겨 잡더니 자연스럽게 몇 바퀴 돌려보았다. 그 칼은 순식간에 내 복부를 찌르고 들어올 것 같았다. 기분 탓인 걸까. 내 등줄기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다들 알겠지만 난 왼손잡이야. 난 범인이 아니라고."

 

 경찬은 스스로를 용의선상에서 제외시켰다. 그리고 남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그의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다. 누군가가 오른손잡이라고 말하는 순간, 당장이라도 처벌을 할 것처럼 기세등등한 눈빛이었다.

 

 먼저 침묵을 깬 쪽은 유희였다. 그러나 긴장한 탓에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나는 양손잡이야. 다만 주로 쓰는 손은 오른손이고. 그런데 난 지수를 죽이지 않았어. 정말이지 내가 누군가를 죽일 이유는 눈곱만큼도 없다고."

 

 그녀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호소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서 눈물은 더 이상 무기가 될 수 없었다. 오로지 확실한 알리바이와 구체적인 증거만이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었다.

 

 "난 오른손잡이야. 이렇게 되면 내가 지수를 죽인 범인이 되겠군."

 

 난 지수 옆으로 다가가 길게 뻗은 흉터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오른손잡이만이 저지를 수 있는 범행인가? 아니면 그렇게 보이도록 누군가가 조작한 것인가?

 

 "그런데 만약 지수가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서 저지른 범행이라면, 그러니까 범인이 굳이 지수의 왼손을 제압할 이유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충분히 왼손으로도 저 각도를 그을 수 있을 거 같은데?"

 

 난 무릎을 약간 구부려 오른손으로 지수의 왼쪽 팔목을 잡았다. 그리고 왼손이 칼인 것 마냥 밑으로 사선을 그어보았다. 어색하긴 했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지수는 분명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으리라. 그 증거를 찾기 위해 조심스럽게 지수의 머리카락을 넘겨 목을 살폈다.

 

 "역시나 아까처럼 교살이 먼저 일어났어. 뒤에서 낚시 줄로 목을 조른 흔적이 있어."

 

 난 모두에게 보란 듯 교살의 흔적을 가리켰다.

 

 "사실 의식이 있는 사람을 제압해가며 칼질을 하기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워. 죽음 앞에서 인간은 초월적인 힘을 발휘하거든. 상대가 여자일지라도 그 힘을 억누르기란 쉽지 않았을 테지. 그래서 범인은 먼저 지수의 의식을 끊어버렸어. 그리고 여유 있게 마무리 작업을 하고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연기를 한 거지. 맞지, 경찬아?"

 

 난 확신에 찬 목소리로 경찬을 지목했다. 비록 상대가 칼을 들고 있었지만 두렵지 않았다.

 이제 범인을 알아냈으니 그의 반응에 맞게 대처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내가 지켜야 할 사람은 이제 유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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