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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게임
작가 : 맨온파이어
작품등록일 : 201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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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혀진 범인
작성일 : 17-12-17     조회 : 241     추천 : 0     분량 : 9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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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장. 밝혀진 범인

 

 

 "도대체 왜 사라진 거야? 인과관계조차 없는 막연한 실종을 택한 이유가 뭐냐고."

 

 난 그 시절 담당형사라도 된 것 마냥 언성을 높이며 동훈을 질타했다. 그러자 이번엔 동훈이 처음으로 반응을 보이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하며 뒤로 물러설까 망설였지만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았다. 어차피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현실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그가 날 해코지한다면 이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아마 난 한차례 괴성과 함께 눈을 뜰 것이다. 지금쯤이면 집에 돌아갈 시간이 아닐까?

 

 "넌 영원히 집에 돌아갈 수 없어."

 

 그는 내 코앞까지 다가와 슬쩍 눈을 올려 머리를 보더니 담담하게 답변해주었다. 그의 눈에는 아까의 평온함은 사라지고 오직 좌절만 남았다. 그러나 그 좌절은 분명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었다. 내 현재 감정이 마주 서 있는 동훈의 눈동자에 그대로 투영된 것이다.

 

 "내가 사라진 이유는 누구보다 네가 잘 알 텐데? 답은 이미 네 머릿속에 있으니 굳이 입 아프게 얘기할 필요는 없을 테고. 또 다른 질문이 뭐였지?"

 

 그는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또박또박 자신의 대답을 전달했다. 내가 답을 알고 있다니? 난 고개를 저으며 강하게 부인했다. 제 아무리 꿈일지라도 옳고 그름은 확실히 해두자는 게 내 신념이었다.

 

 "신념? 너에게 그런 것도 있었나? 신념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죽이지 않아."

 

 동훈은 내 어깨에 손을 올린 채 가볍게 토닥여 주었다. 그러나 그 무게감은 내 부담감을 더해서인지 훨씬 더 묵직하게 느껴졌다.

 

 "아까 친구들을 죽인 범인이 누군지 알고 싶다고 했지?"

 

 그는 슬며시 내 귀에 입을 갖다 대고는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 울림은 내 고막을 타고 들어와 가슴을 강하게 흔들어 놓았다.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걔는 분명 죽었는데??!!!"

 

 다시 마주 선 동훈의 눈에서 공허함을 보았다. 그 눈빛은 너무나 새하얘서 더욱이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그의 시선이 휴대용 전축으로 향하자 죽어있던 아리아가 다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La scia ch'io pian ga, la du ra sorte."

 

 불현듯 학술제 마지막 장면에서 파리넬리로 분하여 열창을 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젠 헤어질 시간이군. 우리가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야. 너의 앞날에 행운이 가득하길 빌게."

 

 동훈은 등을 돌려 어둠속으로 사라져갔다. 그의 뒷모습이 완전히 지워질 무렵 불쑥 발밑이 꺼지더니 그대로 자유 낙하했다. 그토록 찾던 비밀의 문이 이렇게 갑자기 열릴 줄이야. 얼떨결에 다락방을 탈출했지만 마냥 달갑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내 몸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도를 받아 추락하는 공포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대체 도착점은 어디쯤일까. 블랙홀을 표류하듯 끝없이 추락하던 내 몸이 닿은 곳은 처음 있던 소파 위였다. 그 순간, 눈이 번쩍 뜨이면서 꽤나 길었던 악몽에서 깨어났다. 이미 온 몸은 식은땀으로 젖어있었고 머리는 숙취가 채 풀리지 않은 것처럼 어지러웠다.

 

 "물!! 물 좀 갖다 줘."

 

 몸을 움직일 자신이 없었다. 집에서 늘 하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부탁 아닌 명령을 했지만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켜야 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지금 이 집에서 살아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이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잊어먹는 내 자신이 한심했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꿈이었나 보다. 난 여전히 누워 있었다. 다시 한 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처음보다 힘이 더 들어갔다. 바닥에 발을 짚고 몸에 힘을 주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이것 또한 꿈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몸은 여전히 소파 위였다. 이런 식으로 꿈이 반복되는 현상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모든 걸 포기하고 다시 잠을 청하면 된다. 목이 타들어갔지만 별 다른 방도가 없었다. 잠은 금방이라도 다시 쏟아질 것처럼 내 의식을 간질이고 있었다. 쌓여있던 피로와 극도의 긴장감이 만들어낸 도도리표 같은 산물이었다.

 

 "정말 다시 자려고?"

 

 누군가가 잠을 깨웠다. 내 앞에서 칼을 들고 서있는 그 누군가가. 범인인가!! 눈을 완전히 뜨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반쯤 뜬 눈 사이로 보이는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범인은 내 얼굴을 본뜬 가면을 쓴 채 밑을 노려보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고자 입을 열었으나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마치 온 세상이 음 소거된 것 마냥 침묵으로 가득했다. 머릿속으로 빠르게 범인의 목소리를 반복 재생시켰으나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범인은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입 꼬리를 올려 웃어 보이더니 칼을 머리 위까지 들어올렸다.

 

 "안 돼!!!"

 

 내 마지막 한마디는 세상으로 나오지 못한 채 떨어지는 칼날에 잘려 구슬픈 단말마로 남았다. 이렇게 마지막 남은 한 사람마저 세상과의 작별을 고했다.

 

 

 *****

 

 "상태는 좀 어떻습니까?"

 

 수염이 잘 어울리는 흔치 않은 얼굴의 남자가 옆에 서 있는 주치의에게 물었다. 금테안경을 바로 고쳐 쓴 백발의 주치의는 간호사가 건네는 차트를 살펴보더니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의 상태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혈압, 맥박 모두 정상이며 곧 있음 의식도 돌아올 겁니다. 다만 추측하신대로 혈액검사 결과에서 코카인 양성반응이 나왔습니다. 이 정도 수치면 뇌 속 도파민을 끌어올리기 충분했을 겁니다. 게다가 혈중 알코올 농도 역시 정상인의 수치는 아니었으니까요."

 

 "무한한 행복감과 흥분을 느끼기 충분했다는 이야기군요."

 

 콧수염을 쓰다듬던 남자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울퉁불퉁 각 진 얼굴은 그가 무슨 일을 하는 지 잘 알려주고 있었다.

 

 "혈액검사에서 검출된 또 다른 약물성분이 있습니다. 바로 프로포폴입니다."

 

 "프로포폴이라면........ 수면유도제 아닙니까?"

 

 주치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일명 ‘우유주사’로 불리는 수면마취 성분입니다. 보통은 내시경이나 수술 시 사용하는데 일반인이 의사의 처방 없이 투약을 했다면 문제가 생기죠. 살면서 이런 케이스의 환자는 처음 봅니다."

 

 주치의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험악한 얼굴의 사내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주치의는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고 곧바로 화제전환에 나섰다.

 

 "형사님. 환자의 의식이 돌아오면 바로 구속이 진행되는 거죠? 저희 병원장님께서는 언론이 냄새라도 맡을까 노심초사하고 계십니다. 아시겠지만 이런 살인마를 맡고 싶어 하는 병원은 한 곳도 없지 않습니까. 아무튼 최대한 빨리 퇴원조치 할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금테안경 주치의는 형식적인 웃음을 띠며 인사를 하더니 간호사와 함께 병실을 나가버렸다. 이제 특실에 남은 사람은 콧수염 형사와 환자 단 둘뿐이었다. 환자는 깊은 심연에 잠긴 듯 죽은 사람처럼 누워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형사의 눈빛은 단호했지만 곳곳에 숨은 의문투성이를 풀지 못해서인지 답답해 보였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 많은 사람을 죽인 거야? 더구나 몇 년 동안이나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을 죽인 이유가 뭐냐고."

 

 그러나 환자는 대답할 생각이 없다는 듯 묵비권을 행사했다.

 

 "지금 당장은 대답하라고 강요하지 않아. 다만 잠에서 깨어났을 때에는 어떻게든 답변을 해야 할 테니 각오하고 있으라고."

 

 형사는 선전포고를 한 뒤에 병실을 나왔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키다리 신참형사가 경례를 하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디론가 급히 걷기 시작했다. 때마침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자 기다렸다는 듯 바로 전화를 받았다.

 

 "그래 나야. 알아보라는 건 어떻게 됐어? CCTV확보했다고? 알았어. 바로 그쪽으로 갈게."

 

 전화를 끊은 형사는 콧수염을 실룩거리더니 걸음에 가속도를 붙이며 복도 끝 쪽으로 사라져버렸다.

 

 

 *****

 

 기억이 순간순간 끊기더니 마지막으로 눈을 뜬 곳은 취조실로 보이는 지하 감옥이었다. 머리 위로는 오래된 백열등이 빛을 잃어가는 과정인 듯 어두침침하게 빛나고 있었다. 내가 왜 이곳에 앉아있는지 잠시 생각해보기로 하고 눈을 감았다. 마지막으로 눈을 감은 곳은 분명 펜션 소파 위였다. 범인이 내 몸에 칼을 내리꽂는 동시에 의식을 잃었다. 그러나 지금 내 신체 어디에도 창상은 감지되지 않았다. 설마 그것마저 꿈이었던 것인가?

 

 그렇다면 실제로 눈을 감은 순간은 더 과거로 돌아간다. 홀로 남은 저택에서 술을 먹고 취해 쓰러진 순간. 꿈에서 동훈을 보았고 그가 범인을 얘기해주었다. 그러나 기억이 나질 않았다. 설령 기억이 난다해도 꿈에서 들은 터무니없는 소리가 팩트가 될 수는 없었다.

 

 "자자, 이제 정신 좀 차립시다. 수면 내시경까지 다 끝났으니 집에 가셔야죠. 환자분. 프로포폴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겠어요?"

 

 맞은편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나서야 다시 눈을 떴다. 뿌연 조명 아래 맞은편의 남자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마흔 정도 되었을까? 중년의 얼굴치고는 조금 더 동안이었다. 콧수염이 잘 정돈되어 있는 인중이 인상적이었다.

 

 "여기가 어디죠?"

 

 사실 어느 정도 짐작은 갔지만 이것조차 꿈인지 현실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던진 질문이었다. 형사로 보이는 남자는 책상 위에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끼더니 의자를 당겨 앉았다.

 

 "이곳은 대전 지방 경찰청 지하 1층에 위치한 취조실입니다. 정선재 씨는 현재 피의자 신분으로 이곳에서 조사를 받고 계십니다. 저는 이번 사건을 맡은 경찰청 소속 특수수사팀의 팀장인 신민철 경감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몇 가지 질문을 드릴 건데."

 

 남자는 책상 위에 놓인 조서를 펜 끝으로 톡톡 치더니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취조에 앞서 한 가지만 말씀드리죠. 제가 틀에 박힌 절차를 워낙에 싫어하는 성격이라 쓸데없는 질문은 삼가겠습니다. 가령 호구조사 같은 질문으로 시간낭비하지 않겠다는 뜻이죠. 피차 길어져봐야 좋을 거 없으니까......... 이건 아무래도 피의자 쪽도 동의하시겠죠?"

 

 피의자라는 단어가 거슬렸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자세한 정황을 들어볼 필요는 분명 있었다. 그 후에 빠른 상황판단과 함께 스스로의 변호를 이어나갈 생각이었다.

 

 "좋습니다. 정선재 씨. 그럼 곧바로 질문에 들어가겠습니다. 왜 친구들을 죽였습니까? 살인의 동기에 대해 묻는 겁니다."

 

 "저는 누군가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대답해버렸다. 물론 혼자 살아남은 미안함과 죄책감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없는 사실을 인정해 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형사는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누구나 처음에는 그렇게 얘기하죠. 나는 죽이지 않았다고. 그런데 마지막에는 모두들 인정합디다.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비굴한 변명을 늘어놓죠. 그 차이를 결정짓는 건 역시나 증거의 유무겠죠? 정선재 씨에게는 아쉬운 일이지만 저희 쪽에는 이미 결정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결정적인 증거. 경찬이 죽기 전 떠들던 단어였다. 유희가 죽기 전 얘기해준 증거의 실체는 소주병에 들어있던 말보르 한 개피였는데 혹시나 이걸 말하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날 자신이 있었다. 그런 증거쯤이야 범인이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는 트릭에 불과했다.

 

 "그 증거가 뭐죠? 억울한 누명을 쓴 입장에서 굉장히 궁금해지네요."

 

 피의자가 초지일관 배짱을 부리는 모습이 거슬렸던 걸까. 형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조서 밑에 깔려있던 봉투 하나를 내게 건넸다. 그것은 혈액 내 여러 가지 성분이 수치별로 적혀 있는 혈액검사 결과지였다. 모든 내용이 영어로 표시되어 있었지만 결과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딱히 없었다. 다만 몇 번을 다시 봐도 납득이 안 되는 성분들이 알록달록한 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이제야 표정이 조금 딱딱해지는 거 같은데? 이걸 보고도 모른 척 잡아떼면 정말 영문학도가 맞는지부터 확인해 보려고 했는데."

 

 혈액을 분석한 데이터에 따르면 난 코카인과 프로포폴을 몸 안에 투여했다. 수치도 제법 높았고 무엇보다 국내에서 금지된 약물이 검출됐다는 사실 자체가 분명한 범법행위였다. 역시나 경찬이 건넨 혜나의 담배가 문제였다. 코카인이 가득 찬 담배를 줄로 태웠으니 몸 안에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런데 프로포폴은 뭐지?

 

 "요즘 인터넷이 워낙에 발달돼서 이런 약물 구하는 거야 일도 아니었을 테고. 평소 글을 쓰는 직업의 피의자는 여타 일반인보다 상상력이 훨씬 더 뛰어났고 늘 이상세계의 무언가를 갈구했다. 그날 음주와 함께 마약에 손을 댄 피의자는 환청과 환각으로 인해 제3의 세계를 보았고 갑작스런 살인욕구가 일었다. 정말이지 다양하고 잔인하게 살육을 벌여놨더군."

 

 불과 며칠 전 일이었지만 내겐 꽤나 오래된 기억처럼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그날의 기억을 자꾸 밀어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똑똑히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평생 안고 가야할 살아남은 자의 삶의 무게였다.

 

 "처음에는 분명 그렇게 생각했어. 이건 마약 때문에 이성을 잃은 인간의 무차별 살인이다. 그런데 몇 번을 되돌려 봐도 도통 말이 안 되거든? 일단 각각의 피해자들은 모두 사망추정시각이 확연하게 차이가 나. 즉 이들은 순서대로 죽어나갔다는 뜻이야. 자신의 운명을 모른 채 희망을 품고 기다리다 봉변을 당한 셈이지. 날씨 탓을 하며 외부로의 탈출을 막고 저택 내부 전화기와 와이파이를 제거한 환경 설정. 그래. 이건 완벽한 계획살인이었어."

 

 "계획살인이란 말에는 저도 동의해요. 그래서 저도 범인을 잡기 위해 그 안에서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고요."

 

 그 안에서 내가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들을 얘기하려고 했지만 형사는 단호하게 손바닥을 들어보였다. 마치 내 알리바이는 더 이상 효력을 갖지 못한다는 듯 강압적인 자세였다.

 

 "추리소설 작가라지? 소설에서나 쓸 법한 트릭을 이용해서 순차적으로 친구들을 죽였어. 아마 거기서도 쾌락을 느꼈을 거야. 허구가 아닌 현실에서 손쉽게 살인이 일어나니 뭔가 뿌듯했겠지. 게다가 스스로는 탐정역할을 하며 자신이 만들어낸 트릭을 친구들에게 설명하느라 바빴을 거야. 그런데 몸은 전혀 지치지 않았어. 당신에게는 든든한 조력자인 약물이 있었거든. 거칠게 표현하자면 약 빨고 사람을 죽인 셈이지. 당신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및 살인, 상해의 죄목으로 법정 앞에 서게 될 거야. 아마 지금껏 살아온 시간만큼 감옥에서 썩게 되겠지."

 

 "몸 안에서 약물이 검출됐다는 이유만으로 살인자로 내모는 건 대체 어느 나라 형법에 나와 있습니까? 더구나 추리소설 작가가 자신의 트릭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지금 소설을 쓰고 있는 사람은 바로 당신 같은데?"

 

 논리와는 전혀 동떨어진 추리를 하고 있는 남자를 더 이상 지켜보지 못하고 윽박을 질렀다. 대한민국 경찰 특수수사팀의 팀장이란 사람이 이 정도 재목밖에 안 되는가 참으로 한심스럽고 개탄스러웠다.

 

 "여기서 말해봤자 내 입만 아프지. 나중에 법정에서 이 사건의 진실을 말하면 난 자연스레 면죄부를 받게 될 겁니다. 더불어 결정적인 증거라는 게 고작 약물 양성반응이라면 그와 관련된 처벌만 받겠습니다. 그 외 살인이나 상해의 죄목은 인정할 수 없.............."

 

 순간 턱하고 말문이 막혔다. 방금 내가 내뱉은 단어가 머릿속을 몇 바퀴나 맴돌더니 다시 한 번 입 밖으로 나왔다.

 

 "상해 죄?.........저 말고 살아남은 사람이 또 있습니까?!!"

 

 형사는 당황한 채 눈만 껌뻑거리는 내 모습이 우습다는 듯 따라해 보였다.

 

 "살아남은 사람이 또 있습니까? 암요. 또 있고말고요. 복부에 몇 번이나 칼을 찔렸지만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행운의 주인공이 계시죠. 물론 당신에겐 불행이겠지만......... 결정적으로 그분이 당신을 범인으로 지목했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복부에 칼을 찔린 사람이라니. 내 기억에 없는 이야기가 스멀스멀 정체를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당신은 여전히 아니라고 하겠지만 당신의 칼에 찔린 그 분은 다행히 고비를 넘기고 어제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겼습니다. 아무리 요즘이 말세로서니 아직까지는 신도 살인마의 편을 들지는 않는 거 같습니다."

 

 "그 살아남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얘기해주세요. 그 사람과 할 말이 있어요."

 

 나는 책상 앞으로 몸을 당겨 형사의 손을 잡았다. 형사는 역시나 예상했던 장면이라는 듯 껄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아니, 좀 전의 당당하던 모습은 어디가고 이렇게 애걸복걸 하시나요. 게다가 피의자가 살아남은 피해자를 만나고 싶다니요.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격이지 그런 교섭권은 형사생활하면서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형사는 웃음을 멈추기 힘들다는 듯 오랫동안이나 배를 잡고 큭큭거렸다. 그러나 웃음이 멈춘 뒤에 그의 눈빛은 냉철하다 못해 차가웠다.

 

 "이 분의 정체가 궁금하다는 건 백번 이해하지만 아마 법정 위에서나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아까 변호사 얘기를 하셨는데 십중팔구 국선변호사가 이 사건을 맡을 겁니다. 어떤 변호사가 뻔히 패할 걸 알면서 살인자의 변호를 맡을까요. 제 아무리 돈이 좋아도 자신의 커리어에 해가 가는 재판을 맡을 바보는 없습니다. 제발 사명감 있는 국선변호사가 와주길 기원합니다."

 

 그는 이미 모든 취조는 종료되었다는 듯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깜빡 할 뻔했는데 아까 말한 결정적인 증거는 혈액성분 분석 자료가 아닙니다. 사실 펜션 주인으로부터 건네받은 자료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펜션 앞 가로등에 설치된 CCTV내용입니다. 언뜻 보기로 당신이 한 여자 분, 그 민유희 씨죠? 아무튼 그분 뒤를 죽자 사자 뒤쫓는 정선재 씨의 모습이 고스란히 CCTV에 포착되었습니다. 굳이 확대까지 할 필요는 없었지만 화면배율을 늘려보니 민유희 씨 표정이 가관이더군요. 공포에 사로잡힌 얼굴은 영락없이 살인마에게 쫓기는 희생양의 심리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계곡을 표류하다 바위틈에 걸린 민유희 씨의 시신도 확인이 됐고요. 자세한 영상은 법원에서 증거로 제출될 예정이니 그때 확인하시면 되겠군요. 그럼 오늘 취조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취조실을 나가버렸다. 누군가에게 논리적으로 하소연을 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허망하게 무산될 줄은 몰랐다. 마치 승패가 결정된 축구게임에서 정규시간이 모두 지나고 추가시간만 남은 듯한 느낌이었다. 곧 있음 주심의 휘슬이 울리면서 이 사건은 막을 내리리라.

 

 이 경기를 설계한 자는 누구인가. 그건 아마 나 말고 살아남은 또 다른 한명일 것이다. 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를 완벽하게 범인으로 몰아넣었다. 나조차 아직 다 풀지 못한 수수께끼의 연속을 어떻게 만들어 냈을까. 난 다시 눈을 감고 그날의 첫 프레임으로 되돌아갔다. 힘을 잃은 백열등은 몇 초간 깜빡거리더니 모든 빛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또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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