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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해변의 고래
작가 : 건강한참취
작품등록일 : 201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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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고래(1)
작성일 : 17-12-17     조회 : 390     추천 : 0     분량 : 6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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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만 있는 교실은 언제나 그랬듯 무법지대였다. 2교시에 우리 반 애들이 미술실을 장악했다. 반장을 중심으로 모인 수다파 무리는 바쁘게 수다를 떨었다. 화제는 아이돌에서 시작해서 게임을 들렀다가 영어선생뒷담으로 이어졌다. 캔버스를 모아놓은 뒤편에도 다른 무리가 있었다. 운동파에 속한 무리는 종이를 뭉친 공을 던지면서 놀았다. 공은 진열대 위에 놓인 머리 석고상 주변으로 아슬아슬하게 날아갔다. 몇 번은 다음 수학시간에 제출할 과제를 풀고 있는 번개파 애들 머리를 맞췄다. 운동파와 공을 맞은 번개파가 실랑이를 벌이는 가운데, 미술선생은 평소보다 10분 늦게 미술실에 들어왔다. 두꺼운 미술서적을 교탁 위에 내려놓았는데도 우리는 끝낼 기미가 없었다. 미술선생은 주먹으로 교탁을 두드렸다.

 “모두 조용! 자리에 앉아라. 안 앉은 학생은 벌점 때린다.”

  미술선생이 목에 핏대 세우기 전에 우리는 빈자리를 채우며 진시황릉의 병마용처럼 집결했다. 미술 선생은 두꺼비눈으로 분위기를 죽였다. 소란이 해결이 되자 미술선생은 족히 10년은 썼을 법한 누런 파일을 펼쳤다. 파일에서 출석부 용지를 꺼내 1번부터 차례대로 번호를 호명했다. 31번까지 부르고 체크한 횟수와 자리에 있는 학생 수를 확인하는 것으로 출석 체크를 마쳤다.

  수업은 스케치였다. 미술선생은 반 애들에게 교과서 2쪽을 낭독하게 하고 스케치 한 점을 다. 그리고 자기 할 일이 끝났다는 양, 편하게 의자에 앉아서 신문을 펼쳤다. 나는 드로잉 노트를 펼치고 샤프와 지우개를 준비했다. 스케치는 샤프로 잠깐 끄적이다 보면 금방 끝난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무런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옆자리는 시작했다. 나는 석회가루가 서려있는 칠판만 쳐다보았다. 내 머릿속과 비슷했다. 나는 주변에서 그릴 대상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신문을 넘기는 미술선생, 벌써 마치고 떠드는 반 친구들, 창백한 얼굴 조각상, 봄의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 죄다 평범해서 어느 것도 창작욕을 돋우지 못했다.

  그때, 옛날기억 하나가 의식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기억이 내가 몇 살 때였는지는 모르겠다. 아주 어릴 적에 TV를 보다가 외국 해변에 떠밀려온 고래 영상을 접했다. 족히 100개가 넘는 소행성만한 검은 덩어리가 종양덩어리마냥 모래사변에 달려있는 광경이 어린 나에게 강렬한 자극을 주었다. 수영복과 비치웨어를 입은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통을 들고 바닷물을 길었다. 사람들은 고래들을 위해 분란하게 움직였고, 고래들은 전부 죽은 것처럼 움직임이 없었다. 화면은 흰머리 노인 인터뷰로 바뀌었다. 책을 빼곡히 꽂은 책장을 배경으로 노인은 잠수정 초음파, 해류변화 문제, 해수오염 스트레스 같은 예상원인을 설명했다. 그리고 고래의 새까만 눈을 클로즈업한 장면으로 내용이 끝났다.

  해변에서 자살한 고래 이미지가 선명하게 구상되었다. 고래의 크기, 해안가의 구도를 정할 필요가 없었다. 손이 가는 대로 선이 그려졌다. 노트 면을 반으로 나눠서 왼쪽 면에 모래사변, 오른쪽 면에 바다를 그렸다. 그다음, 크기가 다른 타원을 하나씩 늘렸다. 타원은 노트 위에 착상시킨 배아였다. 타원들에게 지느러미가 생기고 팔다리가 생겼다. 타원들의 형체가 점점 구체화되더니 고래가 되고 사람이 되었다. 나는 고래 머리에 음영을 세기다가 손가락 근육에 경련이 일어났다. 뜨거운 통증이 손가락 마디사이에 스며들었다. 죽음을 그린다는 것이 고통스러운 작업인지 몰랐다. 수업시간 종료 10분을 남기고 그림을 마무리했다. 나는 완성된 그림을 보고나서 자신에게 놀랐다. 내가 이런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데자뷰 같은 이질적인 현실감이었다. 미술선생은 자리에서 나와서 데스크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데스크 위에 올려놓은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미완성되거나 수준 떨어진 그림이 있으면 그린 사람에게 잔소리 한 사발 남겼다. 그러다가 내 자리 앞에서 멈췄다. 미술선생은 그림을 가리키며 나에게 물었다.

 “잘못 그렸니? 고래가 왜 뭍에 올라갔어. 달리 따라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고래 떼죽음을 그렸다고 설명을 드렸다. 미술선생은 얼굴을 찡그렸다.

 “고래를 그릴 거면 그냥 고래를 그릴 것이지. 뭔 말이 많아. 다음 시간에 다시 그려와.”

  미술선생은 미술가답지 않게 앞뒤가 막혔다. 더는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아서 나는 군말 없이 대답을 했다. 옆자리 애는 내 그림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초침이 12시를 지나감과 동시에 벨소리가 수업 종료를 알렸다. 미술선생이 수업이 끝났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반 애들은 시끄럽게 의자를 끌면서 교실을 나갈 채비를 했다. 나도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려는데 내 앞에 여자애 한 명이 다가왔다.

 “너, 이름이 조은주지?”

  조은주. 내 이름이 귓가에 살포시 도달하자마자 스며들었다. 그녀는 이름만 불러주었을 뿐이었지만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아준 은인 같았다. 그녀는 나를 잘 안다는 듯이 대했다. 나는 전혀 몰랐다. 다른 반 학생이 같은 반인 척하고 속였나싶었다. 나와 그녀는 말 한 점 섞어보지도 않은 사이였다. 그녀의 얼굴은 파리했으며 눈동자는 고요한 흑점 같았다. 머리카락 한 올 흩트리지 않고 단정하게 뒷머리를 올린 스타일이 음악실에 있는 검정 피아노가 어울렸다. 내 기준에 괜찮은 외모에다 여리여리한 체구를 가졌다. 가슴에 달린 명찰이 눈에 들어왔다. 류자인. 그녀의 이름은 류자인이다. 생경한 상황에 내 정신은 흐리멍덩해졌다. 자인은 아랑곳하지 않게 그림을 가리켰다.

 “혹시 그림 좀 빌려줄 수 있을까?”

 

  해변의 고래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머물렀다. 뭘 해도 고래 생각 밖에 없었다. 머리에 뚜껑이 달렸다면 당장 바다로 가서 내다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고래는 잊어버리려할수록 바다에서 새로운 고래가 뭍으로 떠밀려왔다. 수업시간 동안, 선생이 하는 말이 의미가 되기 전에 붕괴했다. 칠판에 써진 글자가 라틴어 같이 알아먹을 수 없게 변형됐다. 선생의 꾸중과 내려가는 점수는 내 삶에 파탄이 시작했다는 걸 알리는 신호였다. 얼마 안 있으면 중대한 모의고사가 치러진다. 남은 시간이 도화선처럼 타들어 가고 있다. 그때까지 방법을 모색해야했다. 나는 타들어가는 불빛을 보면서 불안에 젖어들었다.

  점심시간에 모두들 급식실로 뛰어가는 사이, 나는 본관 밖으로 나왔다. 건물 외벽을 따라 드리운 그늘이 본관에서 이웃하는 과학관까지 길을 만들었다. 그늘 길은 본관 앞 계단에서 접히면서 내려가다가 다시 펴졌다. 차도에서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졌다. 나는 본관에서 과학관을 향해 내려갔다. 과학관 뒤편은 오랫동안 방치되다보니 제멋대로 자란 풀과 날벌레가 초원을 이뤘다. 바닥 블록 틈으로 손가락 한 마디만한 풀이 삐져나왔다. 가로등에 쳐진 거미줄에 민들레 홀씨가 다닥다닥 붙었다. 거기서 벚꽃나무 옆 벤치에 앉아있는 자인을 찾았다. 그림을 돌려준다고 이 자리에 불렀다. 실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을 맞으며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뭐 하고 있었어?”

 “글 써.”

  자인의 치마 위에 B5 크기의 스프링 노트가 펼쳐져있었다. 글이 짧은 것을 보아하니 얼마 안 쓴 듯했다. 나는 글 내용을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갔다. 자인은 재빠르게 노트를 덮었다.

 “아직 미완성된 글은 못 보여줘.”

 “그럼 완성된 것만 보여줘.”

 “싫어.”

  지는 내 그림을 실컷 봤으면서. 담임 험담일까. 혹시 자인의 마음은 그런 것일까. 글을 보여주는 일에 부끄러움을 느끼나. 나는 사실 글보다 자인이 내 그림에 가진 관심이 궁금했다. 창작자인 내가 봐도 죽은 고래에는 관심 가질만한 매력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그림의 사정을 알고 보면 징그럽다고 느낄 것 같았다. 나는 마트 수산코너에서 볼 수 있는, 얼음바닥에 널은 꽁치도 안 본다. 자인은 내 그림을 가지고 뭘 하려고 했던 걸까. 자인은 노트 새 페이지를 뜯어서 샤프와 함께 내 손 위에 올렸다. 나는 깜짝 놀랐다.

 “뭐 하는 거야.”

 “그때처럼 또 그려봐. 네 안에 있는 걸 끄집어내서 종이 위에 가두는 거야.”

  나는 자인의 의도를 전혀 몰랐지만, 일단 옆자리에 앉아서 샤프를 쥐었다. 이상하게도 샤프를 쥐자마자 손이 저절로 페이지 위를 달렸다. 이번에도 비정상적인 상황이 일어났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그릴 대상을 생각한다. → 그린다.’가 아니라 ‘그린다. → 그린 대상을 인지한다.’로 순서가 바뀌었다. 금세 페이지에 십자가를 세긴 타원형 무리가 나타났다. 타원형은 구체적인 형체로 바뀌어갔다. 나는 형체에 음영을 넣어서 입체성을 더했다. 내가 그리는 동안, 자인은 창작 작업으로 돌아갔다. 자인은 무언가를 열심히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조막만한 지우개의 수난이 멈추지 않았다.

  내가 거의 마무리를 할 즈음이 돼서, 자인이 먼저 작업을 마쳤다. 자인의 노트 페이지는 지저분했다. 샤프심으로 눌린 자국이 황폐하게 남았다. 창작자가 노력한 흔적은 있는데, 글은 고작 6줄에 불과했다. 내 눈에는 종이 낭비였다. 나의 경우는 결과가 고래가 아닌 사람이었다. 마흔 살 정도의 여성은 후줄근한 땡땡이 냉장고바지와 꽃무늬 터틀넥을 입었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페이지 위쪽 가장자리와 그녀의 목을 선으로 연결했다. 그 선은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끈이면서, 그녀에게 죽음을 선사한 값싼 교수대였다. 여성의 얼굴에 어떤 고통과 슬픔도 담기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머리 위에서 내려온 끈을 신의 뜻으로 받들었는지, 죽음에 대하여 후회가 없어 보였다. 지그시 감은 눈이 한없이 초연했다.

 “생생하게 그렸네. 사람을 직접 죽이고 스케치한 것 같아. 정말 죽이지 않았겠지만.”

  내 옆에 자인이 그림을 보려 어깨 한쪽을 잡고 얼굴을 내 입술 옆에 밀착했다. 숨소리에 따라 미약하게 자인의 입술이 움직였다. 그녀는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림을 어떻게 그렸어? 미술관 같은 데서 본 건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떠올랐어. 그래서 이상해. 고래그림은 옛날에 TV에서 본 걸 그렸지만 이건 기억에서 나온 게 아닌 것 같아.”

 “그럼 무의식에서 나온 걸까. 최면 걸린 사람이 기억에 없는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말이야. 이 여자는 너의 잠재적 영역에서 나왔을 수도 있어. 그것이 어떻게 의식의 표층에 나타났을까.”

  잠재적 뭐라고? 자인의 말에는 통역이 필요했다. 내가 평소에 쓰지 않는 말만 골라서 꺼냈다. 자인은 나와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자살했는지 생각해봤어?”

  자살한 여자의 사정 따위는 알 턱이 있나. 나에게 그녀는 이해한 대상이 아니고 이해가 필요한 대상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어. 그릴 때, 아무 생각 안 하고 그렸어. 아마도 생활고가 아니었을까.”

 “생활이 힘들어서 죽었는데 여자얼굴이 반가사유상 같니. 생활고는 충동의 동기가 될지언정 실행의 동기가 될 수 없어. 물론 충동이 행동을 유발하긴 해. 졸리면 잠을 자고, 배고프면 밥을 먹어. 하지만 자살에도 이런 행동원리를 적용시켜도 될까. 자살을 원하는 충동과 자살을 실행하게 하는 무언가는 분리할 필요가 있어. 세상에 충동의 동기는 널리고 널렸어. 너만 해도 최소 10개는 넘을걸. 학업 스트레스, 통제에 따른 고통, 자유의 박탈, 경쟁에서 느끼는 패배감,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지 알 수 없는 미래의 불확실성……그런데 너는 자살을 안 했잖아.”

 “당연하지. 죽음을 원하지 않으니까. 세상이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아까운 수명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어.”

 “인간이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갖는 건 당연해. 생물에게 내재된 생존 본능이니까. 하지만 네 견해와 달리 세상에는 자살이 계속 일어나고 있어. 지금도 비소를 입 안에 털어 넣는 사람이 있고 측두부에 베레타 권총을 겨눈 사람이 있고 교량에서 맨몸으로 뛰어내리는 사람이 있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물을 통틀어서 사람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의지로 자살을 실행한다고 하지. 아니, 고래를 포함해서 두 종류인가.”

 “내 머릿속에는 고래가 있어.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죽은 고래가. 이것 때문에 요즘 힘들어. 내가 자살을 이해하지 못해서 고래가 떠나지 않은 건가. 네가 생각하는 자살이 뭐야. 잘난 척 그만하고 설명해봐.”

  자인은 대답대신 자신의 작업물을 뜯어서 나에게 주었다. 페이지에 적힌 글은 시였다. 그 시는 내 그림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었다. 누가 봐도 잘 썼다고 동의할만한 솜씨였다. 문자는 세차고 거센 감각소여로 내 안으로 침투해서 새끼손가락 끝 모세혈관까지 퍼진 것 같았다. 자인이라는 사람이 신비로워 보였다.

 “칭찬은 쪽팔리니까 사절한다. 이건 네가 가져. 선물이랄까. 내가 글을 쓰는 일과 네가 그림을 그리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그게 무슨 말이지?”

 “앞으로도 그림을 계속 그렸으면 좋겠어. 자료가 늘수록 자살 현상에 대해서 더욱 알 수 있을 거야. 쉽지는 않겠지만 함께 한다면 혼자 하는 것보다 수월하겠지. 그리고 의견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나한테 말해줘. 내 글을 참고해도 괜찮아. 어때?”

  자인은 단단히 착각한 모양이었다. 나를 자신과 똑같다고 착각하고 있다. 나는 자인과 다르다. 하지만 거절하기가 망설여졌다. 거절해도 내게 고래가 남아있을 것이다. 지금 증상이 나중에 심해져서, 파릇파릇한 나이에 망상증 환자로 정신병원에 가고 싶지 않다. 고래를 치우고 내 삶을 되찾아야 한다. 나는 자인에게 알겠다고 답했다. 자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나는 20% 만큼의 웃음을 띠었다. 뭔가 께름칙한 분위기 속에 응했으나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무엇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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