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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무협물
구주강호를 질주하다
작가 : 야운
작품등록일 : 20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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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돌아온 소가주(3)
작성일 : 16-04-21     조회 : 400     추천 : 0     분량 : 5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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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화몽은 어느 가문과 혼사가 오가는 것이냐?”

 운몽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단천몽이 멈칫했다.

 이것 또한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묻는 모양새가 막내의 혼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아는 것 같았다. 예전부터 아픈 몸에도 가족을 살폈던 운몽을 생각하며 단천몽은 자신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게 조금만 빨리 오지. 하긴 형이 빨리 왔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지만.”

 마지막 말은 대놓고 들으라는 소리였다.

 탓하는 소리에도 미소만 짓는 운몽을 보고 단천몽은 울컥한 얼굴로 쏘아붙였다.

 “태평하게 웃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적풍보(積豊堡)의 둘째 공자가 막내의 신랑 될 작자란 말이야.”

 운몽은 표정을 굳히며 동생을 바라봤다.

 “내가 아는 그 적풍보가 맞나?”

 “맞을걸. 기루에 도박, 고리대금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지금은 이곳 풍덕현에서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세를 가졌지.”

 “둘째라는 자는 어떤 자인데?”

 “보주라는 그 인간을 보면 몰라? 첩만 열 명이 넘는다고. 그 첫째 아들이라는 소보주는 어떻고? 개망나니라고 소문이 자자한 놈인데 그 동생이라고 다를까?”

 옅은 한숨을 쉰 운몽은 말을 이었다.

 “그런 곳과 혼사가 오간 이유가 뭐야?”

 얼굴이 시뻘게진 단천몽이 분노한 말을 토해냈다.

 “뻔하잖아. 당숙들이 혼사를 주선했다고. 자금이 만만치 않으니 우리에게 이득이 되었으면 되었지 손해 볼 것은 없다나. 말려보았지만 집안 어른들의 강압에 아버지도 별 소용이 없나 봐. 휴우! 형제 없이 홀로 당숙들과 맞서기에는 너무 힘이 부치시는 모양이야.”

 운몽은 아침에 어머니와 여동생의 안색이 어두웠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자신에게 안 좋은 집안일로 걱정시키지 않으려는 배려가 엿보였다. 그리고 자신에게 말해봤자 해결은 못 한 채 쓸데없는 걱정만 시킬 거라는 생각도 보였다.

 마음이 아팠다.

 “그거뿐인지 알아? 세가의 사업장 관리도 모두 당숙들이 하고 있다고. 거기서 걷어 들이는 이익을 당숙들이 중간에서 모두 가로채고 있고. 본가는 지금 이름만 본가지 실제적인 단씨세가의 본가는 첫째 당숙네라고.”

 자신이 없는 팔 년 동안 집안은 그들의 터무니없는 욕심에 입지가 좁아진 것은 물론 가세마저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운몽은 담담한 얼굴로 물었다.

 “세가의 사업을 맡은 이들 모두가 당숙들을 따르는 것이냐?”

 전혀 흥분하지 않는 운몽을 보고 속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답답함을 느낀 단천몽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형까지 흥분한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이리되기까지 아무런 힘도 되지 못했던 자신의 탓이 더 크기도 했기에 단천몽은 힘없이 입을 열었다.

 “아직은 대놓고 그리하지는 못하지. 광산촌(鑛山村)의 강 어른만은 우리 편을 들어주고 있고.”

 단천몽이 갑자기 원망하듯 크게 소리쳤다.

 “난 대체 아버지가 왜 저렇게 당숙들에게 당하고만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우유부단한 것도 저 정도면 병이라고.”

 “천몽아!”

 운몽이 차갑게 소리쳤다.

 전에 없던 운몽의 기세에 단천몽은 흠칫했다.

 그 순간, 운몽이 자신이 알고 있던 형과는 전혀 다른 인물처럼 보였다. 어린 시절에도 부드러움 속에서 완고함이 있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사람의 기를 단번에 죽이는 기세는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어느새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단 운몽은 단천몽만 들리도록 목소리를 낮추었다.

 “아버지에겐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고충이 있을 거다. 너와 아버지가 고민의 무게가 같다고 생각하지 마라.”

 단천몽은 입술만 깨물며 말했다.

 “미안. 나도 모르게 흥분했어.”

 “그래!”

 운몽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동생의 처소를 나왔다.

 동생의 말을 들은 듯 아버지 단학이 민망함을 감추려고 잰걸음으로 집무실을 향하는 것이 보였다.

 아버지의 어깨는 어느 때보다 축 늘어져 있었다.

 운몽은 조부가 자신에게 유언처럼 당부했던 말이 떠올랐다.

 (장손아! 앞으로의 단씨세가는 네가 하기에 달려있다. 네 아비는 내가 너무 강호의 흉흉한 일을 자주 경험한 터라 어떻게든 보호하려고만 애를 썼단다. 그래서 그런지 네 아비에게는 인정은 많으나 맺고 끊는 결단력과 냉정함이 부족하다. 지금 이대로 단씨세가에 큰 화가 없다면 네 아비는 훌륭하게 단씨세가를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조부의 안색이 어두워졌었다.

 (단씨세가에 일이 생기면 너는 아비보다 몇 배의 결단력과 냉정함을 보여야 한다. 네가 몸은 건강하지 못하지만, 심성만은 누구보다 강하다는 것을 안다. 단씨세가의 소가주는 너라는 것을 잊지 마라.)

 지금 생각하면 조부는 당숙들의 성격을 어느 정도 아셨던 것 같다고 운몽은 생각했다. 조부는 조모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 밖에 자식을 두지 못하셨다.

 조모를 잃고 조부는 그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강호를 돌아다니느라 아버지 단학을 한동안 첫째 당숙이 있는 종조부(從祖父)에게 맡기신 적이 있다고 들었다.

 조부가 없는 동안이라지만 아버지는 그때의 은혜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또 한 당숙들은 그런 아버지의 성격을 파악하고 저리 대놓고 본가를 무시하는 짓을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제 소가주인 자신이 돌아왔다.

 

  3

 

 단씨세가는 대호무림회를 참가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길을 나섰다.

 단학, 단천몽과 함께 돌아온 운몽까지 동행하게 되자 임 부인마저 쫓아간다고 성화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단화몽까지 가세해 어찌 생각하면 가족여행이 되고 말았다. 거기에 임 부인의 남동생이자 운몽의 외숙부인 임좌량까지 동행했다. 나머지 인물은 단씨세가와 임좌량이 데려온 사람들이었다.

 대호무림회는 삼일 뒤부터 시작하는 터라 일행은 유람하듯 서두르지 않았다. 운몽도 말 위에 앉아 따뜻한 햇볕과 주변 경관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 운몽의 눈에 아버지 단학의 모습이 들어왔다.

 일부러 고민을 내색하지 않는 것인지 단학의 표정에는 어두운 기색이 없었다.

 내색하지 않는 아버지를 보며 예전에는 그것이 어른의 모습이라 생각했었다. 지금은 믿음을 주지 못하는 자신이 죄스러우면서도 홀로 고민하는 아버지가 안쓰러웠다.

 마차에 임 부인과 앉아있던 단화몽은 고개를 삐죽이 내밀고 그런 운몽을 바라봤다. 단화몽은 기억 속에 운몽과 지금의 운몽이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달라졌다고 여겼다.

 부드러운 미소는 그대로였다. 열두 살 어린 시절에는 뭐라고 정의 내릴 수 없던 분위기를 느꼈었다. 지금도 그 분위기는 여전했다. 마치 자기만의 세상에 홀로 몰입해 있는 분위기였다.

 오라버니의 그런 분위기가 싫어 혼자 생각에 잠겨있는 그를 보면 달려가서 괜히 땡깡을 부리곤 했었다.

 달라졌다고 생각되는 것은 건강해진 혈색 때문일 거다.

 순간, 운몽이 단화몽을 돌아봤다. 삐죽이 고개를 내민 것이 귀엽다는 듯이 짙은 미소까지 보였다.

 단화몽은 지금의 오라버니가 예전보다 훨씬 밝아진 것 같아 마주 미소를 보이다가 장난스럽게 코끝을 손가락으로 뒤집었다.

 돼지코를 만들어 보이는 여동생을 보고 운몽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우르릉!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무거운 구름이 몰려와 하늘을 틈 없이 메웠다. 우문세가까지는 아직 반나절의 거리가 남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적당한 장소에서 비를 피하면서 노숙을 해야 할 듯했다.

 몇 명은 수레에 실린 짐이 젖지 않도록 천을 씌웠다. 비가 오기 전에 조금이라도 추위를 가시게 하려고 적당한 나뭇가지를 주워 화톳불을 피우는 이들도 있었다. 천의 귀퉁이를 사방 나뭇가지에 묶어 화톳불이 비를 맞지 않도록 하늘을 가리는 사내도 있었다.

 몇 명은 타고 온 말들을 잎이 우거진 나무 밑으로 몰아넣고 놀라지 않도록 진정시켰다.

 뚜뚜뚜둑!

 빗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싶더니 추적추적한 비가 내렸다. 생각보다 아직은 그리 빗줄기가 굵지 않았다.

 사내들은 한쪽으로 비스듬히 드리운 천 때문에 비가 들지 않는 화톳불 주위로 모여들거나 우립(雨笠)과 도롱이를 걸치고 우거진 나무 밑으로 몸을 피했다.

 단학과 단천몽, 임좌량은 임 부인과 단화몽이 있는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운몽이 따라 들어오지 않자 단학이 그를 돌아봤다.

 운몽은 빗속에서도 기분 좋은 얼굴로 사내들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정말 건강해졌구나 싶어 단학은 이미 청년이 된 운몽의 행동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또래의 청년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싶다는 마음이 느껴져 단학까지 흐뭇해졌다.

 “소가주! 이리로 오십시오!”

 “아니, 이쪽으로 오세요.”

 단씨 본가 사람들이 호들갑스럽게 말하자 임좌량이 데려온 사람들은 운몽을 바라봤다. 단씨세가 사람들이 소가주에게 너무 격의 없이 대하는 것 같아 그가 어떤 인물이기에 그러는지 호기심이 인 것이다.

 사내 한 명이 화톳불에서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죽순을 꺼내 운몽에게 내밀었다.

 “원래 대나무 숲에서 낙엽에 묻고 구워야 제맛인데 이리 구워도 제법 먹을 만합니다. 좀 떫기는 합니다만.”

 “대체 이런 건 또 언제 준비한 건가요?”

 운몽이 죽순을 받으며 미소로 물었다. 껍질을 벗기고 덥석 베어 무는데 여기저기서 소리쳤다.

 “어이구, 뜨거울 텐데.”

 “조심하세요.”

 이들도 거리낌 없이 운몽에게 구운 죽순을 건넸지만 아무리 그래도 상대는 소가주였다. 입에 맞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는 터에 입안까지 화상을 입는다면 안 주느니만 못 한 일이 된다. 긴장한 채 사내들이 운몽이 죽순을 먹는 것을 바라봤다.

 운몽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맛있는데요.”

 지켜보던 사내들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 그렇지요? 하하하! 이게 은근히 맛있다니까요.”

 “노숙할 때 이 죽순을 먹으면 상당히 든든하기까지 하지요.”

 “어어! 다 먹지 말라고요. 저 하나 더 먹을 겁니다.”

 운몽의 장난스러운 말에 주변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네네! 여기 더 있습니다. 많이 드세요. 소가주!”

 임좌량이 데려온 사람들은 한쪽에서 그런 운몽과 단씨세가의 사람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들의 주인에겐 운몽 같은 친근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운몽이 갑자기 임좌량이 데려온 사람들을 바라봤다.

 “이리 와서 같이 드시지요.”

 서로 간에 여간해서 왕래할 일이 별로 없는 이들이었다.

 어색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편을 가르듯 따로 앉아있는 것이다. 단씨세가의 사람들도 말 붙이기가 어려운 참이었는데 운몽이 이리 말하자 옳거니 하고 조금씩 자리를 터주었다.

 “이리 오시오. 같이 먹읍시다.”

 임좌량이 데려온 사람들도 이들의 밝은 분위기에 동화되어 서로 섞여 앉았다. 통성명하고 이야기를 나누니 추적추적한 빗줄기에도 이들의 분위기는 훨씬 화기애애해졌다.

 두 패로 나뉘었던 사람들이 같이 어울리자 운몽은 일어나 자리를 비켜주었다. 한적한 곳으로 향하던 운몽의 눈에 단화몽이 마차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비를 바라보는 여동생의 표정은 어두웠다. 혼사 얘기가 나왔을 때 잠시 보이던 표정이라 운몽은 여동생이 그 일로 고민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하긴 평생을 살아야 할 신랑과 그 집안이 안 좋은 소문이 나도는 곳인데 걱정을 안 할 리 없다.

 옅은 한숨을 내쉰 운몽은 비를 뿌리는 하늘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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