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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견문록
작가 : 노쓰우드
작품등록일 : 2016.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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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화
작성일 : 16-08-22     조회 : 917     추천 : 0     분량 : 5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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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그가 태어났을 때 그의 어미라 할 수 있는 여인은 이미 죽고 없었다.

 따뜻한 어미의 품이 가장 필요한 시기, 그는 보드라운 어머니의 젖 대신 딱딱하고 냄새나는 괴수의 젖을 빨며 자랐다.

 두 발로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 그는 어미의 품 대신 악취 가득한 자루를 들고 날라야 했다. 그는 토굴꾼이었으니까.

 선택권도 없이 주어진 토굴꾼의 일은 어린 그에게는 가혹하기만 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어른들마저도 하루에도 몇 명씩이나 죽어가는 끔찍한 생활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그렇게 가혹한 노동과 언제든 전장으로 변할 수 있는 살벌한 환경 속에서 그처럼 인내한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너희들은 자유다.”

 

 어느 날 지상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십만 미궁의 주인들이 포로를 방면했을 때 수많은 이들이 지옥 같은 미궁을 벗어나 따뜻한 볕 아래로 걸어나갔다.

 사람들은 그렇게 지옥에서 자라나 마침내 인류의 품으로 돌아온 이들을 가리켜 던전 베이비라고 불렀다.

 

 

 #1. 던전 베이비

 

 

 

 지저에서 나고 자랐다고 해서 익숙해지기에 지저는 너무도 끔찍한 세상이었다. 그래서 그는 땅 밑 어두운 세상을 증오하면서도 두려워했다.

 자신을 망가뜨린 지저 공작과 어둠에 복수하기를 바라면서도 그는 차라리 도망치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마침내 복수할 힘을 얻었을 때, 그는 망가진 자신의 삶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만 팔천이백삼십 뱀의 둥지, 나가의 미궁이 김진우를 주인으로 인식합니다.]

 

 ***

 

 “그래도 제가 하나뿐인 오빤데 동생 결혼식에 모른 척하는 건 웃기잖아요.”

 [없으면 없는 대로 사정 맞춰서 결혼하면 돼. 그러니 신경 쓰지 마.]

 “괜히 그랬다가 현지 구박 받아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 또 미궁인지 뭔지 들어가려는 거 아니지? 혹시 그런 생각 했으면…….]

 “아뇨. 걱정 마세요. 일단 저 일 있어서 끊을게요.”

 그대로 두었다가는 언제까지고 이어질지 모르는 잔소리에 김진우는 황급히 말을 마치고 스마트폰의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귓가로 ‘진우야!’ 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는 애써 무시했다.

 “결혼이라…….”

 하나뿐인 여동생이 언제 그렇게 컸는지 벌써 상견례까지 마쳤다.

 결혼이란 일이 분명 축복할 만한 일이기는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듣자 하니 상대 집안은 번듯한 중견 기업의 임원이라는데 제대로 구색이나 맞춰서 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늘 웃으며 자신을 반겨주던 아버지의 얼굴이 근래에는 어둡던 것을 기억한 그는 결국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비록 정부가 던전 베이비를 사회에 받아들이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준 가족이지만 그는 실제로 그들을 가족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껏 모른 척해왔지만 더 이상 눈치를 보다가는 하나뿐인 여동생을 빈손으로 시집보낼 판이다.

 드르륵.

 고민이 얼마나 깊었는지 제 손에서 몸을 떨어대는 휴대폰의 진동마저 느끼지 못할 지경이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는 화면에 떠오른 문구를 보고는 멍한 얼굴을 했다.

 ‘미궁관리사무소.’

 한동안 연락할 일이 없던 미궁과의 유일한 연결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미궁이라도 다시 들어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차라 무심코 통화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김진우 씨. 미궁관리사무소장입니다.]

 몇 번이나 통화를 한지라 그리 낯설지 않은 관리사무소 소장의 음성이다. ‘미궁은 절대 안 된다’는 잔소리, 오지게도 많이 들었다.

 오죽하면 소장의 음성을 듣는 순간 가장 먼저 그 말이 떠올랐을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그가 일거리라도 주려고 전화한 것은 아닌지 은근히 기대하게 되었다.

 던전 베이비로 태어나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땅굴을 헤매고 다니는 것밖에 없는 그가 유일하게 가족의 온정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이다.

 그래서 그는 소장이 형식적으로 늘어놓는 안부의 말을 들으며 안달이 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소장의 인사는 길지 않았다.

 [다른 게 아니라, 김진우 씨, 이번에 일거리가 들어왔는데 아직도 미궁 탐사에 대한 생각은 없습니까?]

 기분이 묘했다. 바라기는 했지만 막상 필요할 때 이런 제의를 받으니 뭐라 대답하기가 애매했다. 그의 침묵을 거절로 알아들은 것인지 소장이 넋두리를 했다.

 [제가 오죽하면 김진우 씨한테 전화까지 했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요즘 정부에서 인력을 많이 빼가는 바람에 손이 부족해 죽겠습니다. 어지간하면 다시 생각해 보시죠.]

 지금 이 순간에도 미궁만큼은 절대 안 된다고 골백번이 넘도록 당부하던 어머니의 음성이 들려왔다.

 하지만 이내 그 걱정 가득한 음성은 멀어지고 상견례 날짜를 잡아두고도 혼자 끙끙거리던 여동생 현지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김진우 씨 부모님께서 워낙에 완강하시다는 건 알지만, 이번 임무는 그다지 위험한 것도 아니고 동맹 미궁 쪽만 도는 건데 어지간하면 좀…….]

 “보수는요?”

 [부탁 좀 드리… 네?]

 그의 말이 뜻밖이었는지 소장이 버벅거리며 되물었다.

 “보수가 어떻게 되는지 물었습니다.”

 [아, 일단 간단한 가이드 일만 보는 걸로 해서 2주 잡고 3,400만 원입니다. 여기서 세금하고 이거저거 제하면… 일당으로 계산해서 하루 170만 원 정도 되겠네요.]

 위험천만한 미궁을 들어가는 것치고는 보수가 꽤나 적은 편이다.

 [일단 2층까지만 도는 거라서……]

 변명하듯 말하는 소장의 말에 그는 알았노라 대답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시 찾아가서 이야기하는 걸로 하고 통화를 마치려다 그는 막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선금은 얼마나 됩니까?”

 [그런 이야기는 없었는데… 일단 하시겠다고 하면 제 권한으로 1,000만 원 정도는 먼저 지급하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그는 복잡한 마음에 고개를 휘저었다. 일단 천만 원이면 급한 대로 예단비에 보탤 정도는 될 것이다. 급한 불은 끈 것이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양부모는 그가 다시 미궁에 발을 들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휴우.”

 한숨을 길게 내쉰 그는 ‘될 대로 되라’ 하고 중얼거렸다.

 

 ***

 

 미궁의 주인들 중 상당수가 패배를 선언하거나 더욱 깊은 지하로 숨어들었지만, 땅속 미궁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전쟁의 와중에 미궁에서 발견된 수많은 물자의 가치가 증명되었고,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수많은 탐색자들이 땅 밑을 헤집고 다녔다.

 미궁은 노다지였다.

 하지만 위험하기도 했다. 미궁의 주인들은 패배를 선언하고 인류와의 공존 내지는 굴종을 택했지만, 그들의 통제를 벗어난 수많은 언더 비스트들이 어두운 통로를 헤매고 다닌 탓이다.

 전쟁통에도 좁은 통로와 단단한 언더 비스트들의 가죽 탓에 꽤나 애를 먹은 사람들이다. 일확천금에 눈이 먼 사람들이 만만하게 보고 달려들었다가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하지만 미궁과의 전쟁에 참전한 수많은 군인들이 탐색자가 되어 그 대열에 합류하며 미궁 탐색은 안정화되었고, 이제 와서는 다소 위험하지만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꿈의 직장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서 사회에 적응을 마친 던전 베이비들의 힘은 군계일학이었다. 어미의 젖 대신 괴수의 젖을 빨고 자란 탓인지 그들은 초인적인 육체 능력과 신기한 힘을 발휘했다.

 김진우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만약 그의 양부모가 위험천만한 미궁에 출입하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면,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져 가세가 기울지 않았다면,

 “이거 통화는 종종 했지만 얼굴 뵙는 건 처음이네요.”

 가운데 머리가 휑하니 벗겨진 관리사무소 소장과 마주할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사정은 들었습니다. 요즘 춘부장께서 사업이 어려우시다고. 가내에 경사가 있는데 참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축하도 위로도 아닌 애매한 말이지만 김진우는 개의치 않았다. 그가 이 자리에 온 것은 일 이야기를 들으려고 온 것이지 가정사를 떠벌리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일단 일은 말씀드린 것처럼 2층에 위치한 미궁까지 안내하는 가이드 역입니다. 왕복 2주 정도 잡고 있고 일정이 지연될 시에는 책정한 일당의 150프로가 지급될 겁니다.”

 “위험한 일은 아닙니까?”

 “아시다시피 대한민국 지저 2층까지는 전부 우호적인 미궁뿐이라 오가며 만나는 언더 비스트들만 조심하면 될 겁니다. 어차피 따로 인력이 파견될 테니 그마저도 김진우 씨가 신경 쓸 일은 아닙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로 안내만 시킬 모양이다. 하기야 고작 일당 200도 안 되는 돈으로 던전 베이비를 부릴 수는 없으니 일이라도 편해야 하는 게 당연했다.

 “일단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이고, 나머지는 의뢰인과 직접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의견을 묻는 듯했지만 이미 소장의 말투는 그가 할 대답을 알고 있다는 투였다. 자신이 오는 사이에 이런저런 조사를 했을 게 분명했다.

 아니, 어쩌면 그는 처음부터 김진우의 사정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전화를 했을지도 몰랐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일이 편하다고 해도 이런 보수를 부르지는 못했을 테니까.

 느물거리는 소장의 얼굴을 보며 그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장이 있지도 않은 가운데 머리를 한쪽으로 넘기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

 

 어쩐지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따로 연락을 해 알아보니 요즘 던전 베이비들의 몸값이 말이 아니었다.

 종전이 된 지 이제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 일반 탐색자들이 던전 베이비들 없이도 탐색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노하우가 쌓인 탓이다.

 그 탓에 5층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이상 딱히 던전 베이비들을 찾을 이유가 없었다.

 현금 지급기 앞에 선 그는 보수로 받은 천만 원에 기존의 예금 오백만 원을 출금했다. 그리고는 오랜만에 본가를 찾았다.

 “연락도 없이 웬 일이냐?”

 말과는 달리 어머니가 그를 보며 반색했다.

 “아버지는 아직 안 들어오셨어요?”

 “요즘 일이 많으신 모양이다. 많이 늦으시더라.”

 끝끝내 자신에게는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는 어머니를 보며 그는 복잡한 얼굴을 해 보였다.

 만약 여동생 현지가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한참 동안 어려운 사정을 몰랐을 것이다.

 “오빠 왔어?”

 어려서는 괴물 보듯 하며 그를 경원시하던 여동생 김현지가 웃는 낯으로 그를 반겨주었다.

 “저 현지랑 잠깐 이야기 좀 할게요.”

 “밥 먹고 갈 거지? 차려둘 테니까 얘기 끝나면 나와서 먹어.”

 “아버지 돌아오시면 같이 먹을게요.”

 늦게까지 있다 갈 거란 투로 이야기하니 어머니가 환하게 웃어 보였다.

 비록 제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정이 절절이 묻어나는 모습이다. 그 모습에 먹먹해진 그는 현지를 끌고 방으로 들어섰다.

 “받아.”

 오늘 인출한 돈을 건네니 그녀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예단비에 보태 써. 나중에 더 줄 테니까.”

 돈을 세어본 그녀가 놀라서 돈을 도로 돌려주었지만, 그는 한사코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집안 사정 어렵다고 괜히 꿀리지 말고.”

 금세 눈물을 글썽거리며 미안한 얼굴을 해 보이던 그녀가 그를 와락 안아주었다. 그녀의 온기가 심장까지 와 닿았다.

 이거면 충분해.

 그는 그렇게 용기를 얻어 밤늦게 돌아온 아버지와 어머니 앞에서 미궁 복귀를 알렸다. 그리고 그는 예상대로 오래도록 시달려야 했다.

 

 [이번 주쯤 시간 괜찮으시면 의뢰인 측에서 만나고 싶다는데 어떻게 할까요? 연락처 넘겨 드릴까요?]

 걱정 가득한 잔소리에 시달리느라 하얗게 뜬 얼굴이 되어 아침에 일어난 김진우는 소장의 문자를 보고는 바로 답장을 했다.

 [네. 연락처는 010-XXXX-XXXX이고 의뢰인 이름은 장윤줍니다. YBS 시사교양국 PD니까 전화 안 받으면 문자 남기세요. 바로 연락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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