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 세계라고 사나운 괴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상위 포식자들이 존재한다면 그런 괴물들의 피식자도 있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일행이 잡은 괴물은 피식자 중의 하나였다. 그런 괴물의 피를 온 사방에 도배했으니 포식자들이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게 도리어 이상한 일이었다.
“바닥의 피 절대 밟지 말고 물러섭시다.”
벌써부터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발을 동동 굴려대는 인원들을 보며 김진우는 차분하게 말했다.
“뛰지 말아요. 아직 거리가 있으니까.”
“이, 이렇게 소리가 크게 들리는데.”
“땅속에선 모든 소리가 울려요. 이 정도 소리면 최소한 20분은 있어야 도착할 겁니다.”
달리 말하면 20분 거리에 있는 발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올 정도로 무겁고 사나운 놈들이 접근하고 있다는 말이지만 그는 굳이 그들에게 그런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굳이 저들을 불안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갑시다.”
메아리치듯 울려 퍼지는 소리에 압도되기라도 한 것일까. 도전적인 얼굴로 그를 노려보고 있던 경호원들마저 군말 없이 그의 지시에 따랐다.
그런 그들의 뒤로 촬영팀이 빠른 걸음을 내딛는데, 카메라맨이 자꾸만 자신의 신발을 힐끔거렸다.
“뭐 해? 안 가?”
장윤주의 말에 카메라맨이 바닥에 슥 신발을 문지르더니 이내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걷는 정도이던 김진우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더니 나중에 가서는 거의 전력질주에 가까운 속도가 되었다.
정작 본인은 힘 하나 들이지 않는 듯한 얼굴이었지만 그를 따라 달리는 일행은 죽을 맛이었다.
“좀, 좀 천천히!”
“아까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든지요.”
처음부터 협조 따위 없던 일행의 태도가 지금의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당연히 그의 말투가 고울 리 없었다.
이미 달리는 도중에 언더 비스트들이 몰려든 이유가 경호원들이 신나게 걸레짝을 만든 괴물의 피 냄새 때문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 바람에 고용주의 사나운 눈초리를 받은 경호원들은 방금 전과는 달리 바짝 굳은 얼굴이었다.
땅속 통로의 한기를 막아주던 옷 안쪽으로 땀이 흥건하게 흘러내렸지만 일행은 불평조차 할 수 없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한참을 달려도 등 뒤를 따라오는 소리가 멀어질 생각을 않은 탓이다.
가장 먼저 낌새를 눈치 챈 것은 당연하게도 김진우였다.
달리던 걸음을 멈춘 그가 코를 벌렁거리며 일행을 살펴보았다. 뭔가 잘못된 것도 모르고 그가 걸음을 멈추니 좋다고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는 일행의 모습이 한심하기 작이 없다.
“젠장!”
일행을 쭉 훑어보다 카메라맨을 바라본 그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성큼성큼 걸었다. 허리를 접고 기침을 토해내던 카메라맨이 그 서슬에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분명 피 밟지 말라고 했을 텐데?”
살벌하게 번뜩이는 그의 눈빛에 주눅이 든 카메라맨이 저도 모르게 발을 뒤로 빼며 딴청을 피웠다.
카메라맨의 앞에 허리를 굽힌 김진우가 우악스럽게 신발을 벗겨냈다. 신발 바닥에 벌겋게 묻은 빨간 얼룩을 본 그가 와락 인상을 찡그렸다.
“촬영하다가 실수로…….”
변명이랍시고 하는 말이 가관이다. 그가 그토록 경고했건만 대체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목숨을 갖고 장난질을 친다는 말인가.
그는 화를 내는 대신 차가운 말투로 상황을 설명했다.
“원래대로였다면 이쯤에서 떨궜겠지만 상황이 지저분하게 됐군요. 다시 달려야겠습니다.”
아직도 숨이 턱까지 차올라 있는 참이다. 일행의 얼굴이 꺼멓게 죽어버렸다.
“더, 더는 못 가요, 난.”
될 대로 되라며 장윤주가 차가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김진우가 스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언더 비스트들은 말입니다, 절대로 사냥감을 쉽게 죽이는 법이 없습니다. 싱싱한 걸 좋아하거든요. 부드러운 내장을 파먹고 말랑말랑한 팔다리의 살점을 뜯어 먹죠. 그리고 팔딱거리는 심장은 가장 마지막에 시식할 겁니다.”
그녀가 해쓱한 낯빛이 되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별것 아닌 말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드러난 피부에 오돌토돌 닭살이 돋아 있다.
“어차피 달려봐야 오래 못 달릴 겁니다. 도망치다 뒤를 잡히느니 차라리 싸우는 게…….”
그래도 지은 죄가 있어 이제껏 입을 다물고 있던 경호원들이 다시 나섰다. 개조 엽총의 위력을 톡톡히 본지라 은근히 자신감에 차 있다.
“무립니다. 혹시라도 방금 전에 죽은 괴물을 생각하고 있다면 단단히 잘못 짚었습니다. 그놈들은 언더 비스트라고 부를 수도 없는 놈들, 기껏해야 먹이사슬 가장 아래에 있는 놈입니다.”
사람은 때로는 자신이 믿고 싶은 바를 너무나도 맹목적으로 믿고는 한다. 지금이 딱 그 짝이었다.
후들거리는 다리와 쉽게 진정이 되지 않는 호흡, 지칠 대로 지친 일행은 차라리 진실에서 고개를 돌리는 것을 선택했다.
마침 자신들을 대신하여 싸워줄 경호원들이 있고, 실제로 그들은 커다란 괴물 한 마리를 순식간에 처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헛구역질이 올라올 정도로 지친 몸을 이끌고 달리느니 그들을 믿어보는 게 차라리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어쩔 겁니까?”
주도권을 완전히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경호원 하나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물었다.
김진우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며 몇 번이나 입을 열었다 도로 닫았다.
아무리 말해봐야 그들이 설득되지 않을 거란 사실을 깨달은 탓이다.
‘진우야.’
순간적으로 자신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그렁거리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위험한 짓 하지 말라며 몇 번이나 당부하던 주름진 얼굴이 눈앞에 그려졌다.
하지만 어머니의 얼굴은 이내 자신이 건네준 천오백만 원을 받아 들고 차마 기쁜 내색도 못하고 미안함에 훌쩍거리던 현지의 얼굴에 밀려 사라지고 말았다.
아직 받지 못한 천삼백만 원 상당의 보수가 떠오른 그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그리고 그가 고민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정체불명의 괴물이 달려오는 소리는 계속해서 가까워지고 있었다.
선택권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게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던전 베이비로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하던 지저 세계를 다시 발을 들이지도 않았으리라.
천삼백만 원의 돈, 5층 이상의 저층을 들락날락거리는 이들에게는 푼돈이나 다름없는 금액이다.
하지만 당장 부도가 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가세가 기운 김진우의 가족에게는 큰돈이었다.
“제 지시에 따라주십시오.”
스스로도 얼마나 의미 없는 말인지 알면서도 그는 그렇게 말하며 촬영팀의 사내가 들고 있는 정글도를 뺏어 들었다.
***
놈들은 영리했다. 그들은 인간이 어둠 속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지하 통로를 울려대는 소리가 조용해진다 싶더니 천장의 전구가 하나둘 깨져 나갔다.
성큼성큼 다가서는 어둠, 경호원들은 이번에도 경솔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그들은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장탄수라고 해봐야 몇 발 되지 않는 알량한 개조 엽총의 탄을 일시에 쏟아 부은 그들은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털투성이의 손길에 끌려가고 말았다.
지독스러울 정도로 길고도 우악스러운 팔뚝, 날카로운 손톱이 갈고리처럼 쇄골 사이를 파고들더니 그대로 사내들을 끌고 갔다.
그렇게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김진우는 그런 그들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손길이 너무나도 많은 탓이다.
멋대로 도망치거나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있는 촬영팀을 전부 챙기기에는 상대가 너무 많고 흉악했다.
그래서 그는 차라리 장윤주 하나만을 살리는 것을 선택했다.
“흐윽… 흑!”
등에 업힌 장윤주가 눈물콧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그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컥컥거리며 고통스러워하는 그녀였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이미 경호원들이 당한 시점에서 그들의 일정은 실패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잔금을 받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장윤주라도 살리지 않으면 그 실낱같은 가능성마저 사라지고 만다.
한참을 달려대던 그가 그녀를 털썩 내려놓았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리가 풀려 버린 그녀가 마치 내동댕이쳐지듯 바닥을 뒹굴었다.
그 당당하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이 엉망진창이다.
일어날 생각도 못하고 텅 빈 눈동자로 허공만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 김진우가 착잡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도 잠시, 그는 이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자신들이 달려온 통로를 바라보았다.
원래대로라면 출구를 향해 달려야 했다.
촬영이고 뭐고 전부 망치고 그녀 하나만 살아남은 마당에 목표한 2층의 미궁에 가봐야 소용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자신이 길을 잘못 들어섰음을 알고 있었다.
길을 잃은 것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그는 몰이를 당한 것이다.
기껏해야 사납고 난폭할 뿐인 괴물 놈들이 영악하게도 퇴로를 차단하고 사방에서 몰려든 것이다. 경악할 만한 일이었지만 생각해 보면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었다.
미궁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었으니까.
암담했다. 짐까지 딸린 마당에 돌아갈 길까지 막혀 버렸으니 앞길이 막막했다.
그깟 1층의 괴물들 따위, 사실 그에게는 하찮기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토록이나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그가 본 털투성이 팔뚝의 주인이 절대로 1층에서 출몰할 만한 놈이 아닌 탓이다.
자신의 착각은 아니었는지 용케도 챙겨온 카메라를 장윤주의 손에서 뺏어낸 그는 작은 패널을 조작했다.
[탕!]
[끄아아악!]
마치 갈고리처럼 길게 휘어진 손톱과 2미터는 될 법한 검은 팔뚝이 어둠속에서 튀어나왔다.
언젠가 자신에게 욕설을 퍼붓던 경호원이 정육점의 고기처럼 쇄골에 손톱이 박힌 채 쭉 끌려들어 갔다.
[살려줘!]
고통과 공포로 일그러진 얼굴로 살려 달라 외치는 경호원의 모습, 그는 그 너머를 보았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붉은 눈동자가 수십이다.
김진우는 눈에 힘을 주고는 화면을 노려보았다. 붉은 안광 뒤로 숨겨져 있던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얼핏 보기에는 오랑우탄처럼 생겼지만 그보다 몇 배는 흉악하고 못생긴 놈들의 모습이 보였다.
천장에 손톱을 박아 넣고는 구름다리를 타듯 성큼성큼 다가서는 그들을 본 그는 자신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마 한가운데를 가로지른 붉은 벼슬을 매단 원숭이들이라면 그가 알기로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괴물은 절대로 지저의 1층에서나 등장할 만한 놈이 아니었다.
“젠장!”
자신이 발길을 끊은 사이에 지저의 먹이사슬이 변해 버린 것일까. 5층이나 되어야 간간이 보일 법한 흉악한 놈이 입구에서 하루거리도 되지 않는 곳을 헤매고 있었다.
“빌어먹을!”
다시 한 번 욕설을 내뱉은 그는 바닥에 늘어져 흐느끼는 장윤주를 우악스럽게 들어 올렸다. 마치 짐짝처럼 어깨에 그녀를 짊어진 그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놈들은 이대로 자신들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한번 눈에 담은 사냥감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집요한 사냥꾼들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그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빛나고 있었다. 그는 10층 이상의 심층에서 태어나고 자라 마침내 살아남아 돌아온 던전 베이비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