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던전 오너
탐색자들이 모든 통로를 다져놓은 것은 아니었다.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지저를 완전히 인간의 영역으로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실제로 조명을 설치하고 길을 다져놓은 통로에서조차도 언더 비스트들이 출몰하고 일이 비일비재했다.
지금 김진우 역시 그렇게 인간들이 미처 정리하지 못한 통로 중 하나를 걷고 있었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토굴, 발길을 내딛는 것조차 쉽지 않았지만 그는 거침없었다.
애초에 그가 살아온 세상은 빛보다 어둠에 닿아 있었으니까.
저벅저벅!
조용한 통로에 발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는 이따금씩 파랗게 안광을 발하는 눈으로 뒤를 따르는 장윤주를 바라보았다.
일행의 죽음에 책임이라도 느낀 것인지 그녀는 눈물을 그치고 난 뒤에도 입을 열지 않았다. 카메라를 꼭 그러안은 채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발을 내디딜 뿐이다.
“쉬도록 하죠.”
뒤를 쫓던 괴물들도 어느 순간부터인가 종적이 묘연해졌다. 사냥감을 포기하는 법이 없는 놈들이라 이상한 일이었지만 지금으로썬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길게 이어진 토굴 사이에 움푹 파인 틈새를 발견한 그가 장윤주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자신 역시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지저 세계의 시간은 더럽게 느리게 흘러간다. 예전에는 몰랐던 사실이다. 24시간 낮, 밤이 하루로 이루어진 지상의 시계에 익숙해진 그는 묘하게 갑갑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뒤를 쫓고 있을 괴물들의 존재를 잊고 있는 것인지 그는 일말의 초조함도 보이지 않았다.
먹다가 탈 날 것 같은 음식에는 섣불리 손이 가지 않는 법이다.
지저가 혹독한 것은 자신에게나 언더 비스트들에게나 마찬가지였다. 사냥감 하나 잡으려다 다치기라도 하면 당장 동료에게 잡아먹히는 수가 있었다. 최악의 경우 죽기 살기로 덤비면 아무리 수가 많다고 해도 한 몸 빼내는 것은 어렵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투는 마지막까지 미뤄둘 참이다. 살아남기 위해 짐승처럼 싸우는 것은 이제 지긋지긋했다.
게다가 전투가 벌어지면 장윤주의 안위를 지킬 여력이 없을 것이다. 지상에 올라가 잔금을 치를 그녀는 꼭 살아남아야 했다.
반나절을 꼬박 틈새에 처박혀 있었지만 괴물들의 추격은 없었다. 예상대로였다. 미궁을 떠난 지 5년, 무언가가 변해 있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궁관리사무소의 소장은 이번 일을 쉽고 안전한 일이라고 했다. 만약 5층 이상의 저층에서나 살던 놈들이 예사로 1층에 출몰했다면 그런 헛소리는 지껄이지 않았으리라.
재수가 없었나.
하필이면 이런 타이밍에 휘말린 자신의 운명이 참으로 얄궂다.
신세 한탄을 하고 화를 내자면 끝도 없는지라 그는 이내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지저 세계에 흐르는 미약한 기운, 그 불쾌한 공기가 조금이라도 옅은 방향을 향해 나아갔다. 그것만이 길잡이조차 없는 지저에서 빠져나가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어라?”
어둠 속을 헤매던 그는 순간적으로 등 뒤에서 깜박거리는 불빛을 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황급히 눈에 힘을 주고 확인해 보니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자신을 따라오는 장윤주의 손에 들린 카메라가 빛나고 있었다.
혹시라도 불빛에 이끌린 언더 비스트라도 있을까 염려된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아아아!”
그녀가 억눌린 소리를 내뱉으며 팔을 버둥거렸지만 그는 우악스럽게 카메라를 낚아챘다.
카메라의 측면에 달린 전원 버튼을 누르려던 그는 순간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는 카메라에 찍힌 영상을 재생시켰다.
적외선 모드가 켜져 있던 모양인지 화면 가득 녹색 빛이 들어왔다. 특별할 것 없는 화면, 흔들리는 통로의 모습 사이로 간간이 자신의 뒷모습이 스쳐갔다.
별 특별한 것이 없자 액정을 덮으려던 그는 그대로 굳고 말았다.
자신이 지나쳐온 토굴의 흙벽에 기이한 문장이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한 탓이다.
세모진 머리를 바짝 곤두세운 뱀이 기학적이다. 밖에서 보았다면 겉멋 든 사내의 문신이라고 해도 좋을 문양에 그는 심장이 뚝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말았다.
던전 엠블럼.
미궁의 상징과도 같은 문양,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궁에 들어서고 말았다는 것이다.
삡, 삡, 삡.
하필 지금 배터리가 떨어진 것인지 카메라가 비프 음을 울리다 꺼져 버렸다. 화면이 까맣게 변하고도 한참을 멍하니 있던 그는 와락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젠장!”
얼핏 보기에는 지저 세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저와 미궁은 엄연히 다른 세계였다.
지저가 그저 복잡하고 어두운 토굴이라면 미궁은 말 그대로 미로와도 같은 곳이다.
치명적인 함정과 살벌한 괴수들이 가득하고 방향 감각도 시간 감각도 사라진 괴이한 세계였다.
미궁에서 나고 자란 던전 베이비 김진우는 미궁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곳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살벌한 곳에 자신이 발을 들인 것이다.
하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미궁은 잠잠했다. 괴이쩍은 숨소리를 내뱉으며 통로를 오가는 괴수도 없고 발바닥을 찔러오는 가시 함정도 없었다.
1층에 위치한 미궁이라 그런 것일까. 그럴 리가 없었다. 1층이라고 하지만 엄연히 이곳은 한때 미궁의 주인들이 지배하던 곳 중 하나이다.
그런 미궁이 단지 1층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이토록 조용할 리 없었다.
탁, 탁.
김진우는 초조한 마음에 발끝으로 땅을 두들기며 생각에 잠겼다. 던전 베이비들이 지저에서 대우를 받는 것은 어디까지나 언더 비스트들을 상대할 때뿐이었다.
진짜 미궁의 괴수라고 할 수 있는 언더 크리쳐들은 던전 베이비들도 상대하기 벅찬 괴수들이었다.
“빌어먹을.”
어쩐지 자꾸만 욕지거리를 할 만한 상황이 오는 것 같아 답답한 기분이다. 하필이면 길을 들어도 미궁으로 들어설 것이 뭐란 말인가.
그는 이 미궁이 버려진 미궁이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그의 바람이 통한 것일까. 한참을 헤매는 동안 그는 그 어떤 크리쳐도 함정도 만나지 않았다.
이제는 이곳이 버려진 미궁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침입자라고 할 수 있는 자신들을 그대로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건가.”
그는 조금은 마음을 놓고 말았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날카롭게 날이 서 있던 마음의 칼이 무디어진 것은.
그리고 그렇게 경계심이 허물어진 순간 그는 바닥이 꺼지고 자신의 몸이 붕 뜨는 것을 느꼈다.
***
속이 울렁대는 기분에 신음을 내뱉은 그는 멍한 가운데 눈만 수차례 깜박였다. 차가운 바닥의 감촉에 정신이 조금씩 명료해졌다.
벌떡.
그리고 그제야 자신의 상황을 떠올린 그는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으윽……!”
갑작스레 찾아온 통증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화끈한 감촉, 아무래도 떨어지면서 팔이 부러진 모양이다.
일어서는 것만큼이나 빠르게 주저앉은 그는 퉁퉁 부어오른 팔목을 붙잡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게 왼팔 외에는 다친 곳이 없는 모양이다.
통증에 이를 악문 그는 고개를 들어 자신이 떨어진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까마득한 높이, 팔 하나로 끝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잠시 통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린 그는 숨을 몰아쉬다 주변을 살펴보았다.
사방 10미터나 될까 싶은 넓지 않은 공간에 홀로 앉아 있다. 떨어지는 순간까지만 해도 부둥켜안고 있던 장윤주가 보이지 않았다.
“윤주 씨!”
소리 높여 불러보았지만 그저 메아리치듯 좁은 공간이 울려댈 뿐이다.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장윤주의 모습에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우습게도 지금 이 순간 그가 떠올린 생각은 앞날에 대한 걱정보다는 잔금을 받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추락의 충격 탓인지 머리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아 그마저도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는 멍한 얼굴로 한참을 앉아 있었다.
김진우가 정신을 차리고도 다시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서서히 주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로세로 10미터 남짓한 공간, 실로 기묘한 곳이다. 바닥은 그가 어떤 미궁에서도 본 적 없는 매끈한 돌이 깔려 있고 사방의 벽은 알 수 없는 문양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미궁이란 공간에 어울리지 않게 고급스럽고 고풍스러운 모습을 한 작은 제단이 있다.
제단의 한가운데에는 가슴께에나 닿을까 싶은 좁은 돌이 솟아올라 있다. 비스듬히 깎여나간 상단부는 평평한 것이 무언가를 올려두기 딱 좋게 되어 있다.
통증에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그는 홀린 듯이 제단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는 중앙에 놓인 석탁을 향했다.
가까이서 보니 석탁의 상단에는 자신이 카메라를 통해 확인한 던전 엠블럼이 새겨져 있다.
바짝 머리를 세우고 혀를 날름거리는 듯한 뱀의 문양, 어찌나 잘 그려놓았는지 마치 뱀이 살아서 자신을 노려보는 것 같았다.
쉿, 쉿.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듯한 바람 소리에 그는 어깨를 움츠렸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어쩐지 뱀의 혀가 움직인 것만 같았다.
쉬이잇.
처음에는 자신의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석탁에 새겨진 문양, 뱀의 눈동자가 데구루루 움직여 자신을 향했을 때 그는 혼란스러운 머리로나마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익!”
수많은 위기를 겪으며 몸에 배어버린 반사신경, 이번에는 생각보다 행동이 빨랐다. 검은 뱀의 문양이 꿈틀거린다 싶은 순간 그는 덜렁거리는 팔을 붙잡고 뒤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홀로그램처럼 협탁에서 튀어 오른 뱀이 부러진 팔을 덥석 물었다. 화끈한 통증, 마치 불로 거죽을 태워 버리는 듯한 고통에 그가 입을 쩍 벌렸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으로 기이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만 팔천이백삼십 뱀의 해방자, 음습한 땅 밑을 계승하고 나가들의 왕좌에 앉을 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