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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견문록
작가 : 노쓰우드
작품등록일 : 2016.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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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화
작성일 : 16-08-22     조회 : 579     추천 : 0     분량 : 6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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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임프

 

 

 

 지독스러운 한기에 김진우는 정신을 차렸다. 몇 번인가 눈을 깜박이다 보니 저 멀리 날아간 의식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이…….’

 멍하니 바닥에 누워 있던 그는 순간적으로 몸을 튕겨 올렸다. 의식을 잃기 직전에 들은 음성이 떠오른 탓이다.

 “아…….”

 석실의 한쪽 벽면에 문이 생겨나 있다. 완전히 밀실이나 다름없던 곳이 어딘가로 연결된 것이다. 휑하니 뚫린 공간 너머로 어둠이 넘실거리고 있다. 가만히 그 너머를 노려보다 보니 별다를 것 없는 통로가 그곳에 있다.

 얼떨떨한 얼굴로 문을 바라보고 있던 그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손등의 엠블럼을 덮었다.

 

 [나가의 미궁](활성화)

 □오너 김진우(4등급)

 □1등급 미궁(규모 4X4)

 □내구도 201/1050

 □ 시설

 *오너 룸(1등급)

 *포탈 (활성화 중 19:38:13 0/1)

 *게이트 (100/100)

 *?

 -미궁을 관장하는 오너의 능력이 부족합니다.

 -미궁의 시설을 활성화시킬 수 없습니다.

 

 정신을 잃기 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스테이터스 창. 멍하니 스테이터스 창을 바라보던 그는 포탈의 활성화 시간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네 시간이나 정신을 잃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혹시라도 가족이 자신의 부재를 눈치 챘을까 걱정되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등 뒤에서 후다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키이익!

 난생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소리. 뒤늦게 풀어진 마음속에 날카롭게 칼을 세운 그는 소리가 난 곳을 노려보았다.

 사사삭.

 고개를 돌리는 그 잠깐 사이에 무언가가 다시 이동했다. 일반인이라면 눈으로 좇을 수도 없을 정도의 속도. 하지만 그는 일반인이 아닌 던전 베이비였다.

 석실의 그림자 속으로 녹아든 작은 물체를 본 그는 생각할 것도 없이 몸을 날렸다.

 “캐애액!”

 단번에 덜미를 잡으니 작은 그림자가 발버둥을 쳤다. 작은 놈이 뭐 그리 힘이 좋은지 하마터면 놓칠 뻔한 그는 그대로 오른 주먹을 내질렀다.

 “칵!”

 비명을 내지른 그림자가 축 늘어졌다. 그렇게 발버둥을 멈추고 나서야 그는 그림자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여섯 살 꼬마 아이와도 같은 몸은 벌겋고 커다란 머리통은 머리카락 하나 없이 동글동글했다. 머리 위에 돋아난 두 개의 뿔과 엉덩이에 매달린 기다란 꼬리, 그는 직감적으로 이 괴생물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임프?”

 무심코 중얼거리니 축 늘어진 놈의 몸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가만 보니 눈꺼풀 아래가 끊임없이 떨리는 것이 정신을 잃은 것이 아니라 잃은 척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너 이 새끼, 잘 만났다!”

 성난 그가 양손으로 사납게 목을 잡고 들어 올리니 임프가 캑캑거리며 기침을 토해냈다.

 자신의 계략이 탄로 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금세 팔다리를 버둥거리는 임프였지만 애당초 짧은 팔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 돈 내놔!”

 김진우의 성난 고함 소리에 임프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렵게 번 돈, 여동생의 결혼식을 위해 쓸 소중한 돈이었다. 이 돼먹지 않은 놈이 훔쳐 간 천오백만 원 때문에 가슴에 한이 맺힐 지경이었다.

 그런데 마침 그놈이 제 발로 찾아온 것이다.

 마치 언더 비스트들의 그것처럼 새파란 광망을 토해내는 눈빛을 마주한 임프가 칵칵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돈 내놓으라고!”

 그는 임프를 들어 올리고는 마구잡이로 탈탈 털어내기 시작했다. 커다란 머리통을 가누지 못해 이리저리 흔들어대던 임프가 저 죽는다고 비명을 질러댔다.

 하지만 한 번 화가 난 김진우가 쉽사리 손을 놓을 리가 없었다. 정황을 보아하니 지금도 쓰러진 자신의 몸을 뒤지러 온 것이 아닌가 싶어 그의 손길이 더욱 우악스러워졌다.

 “키에엑.”

 한참이나 그렇게 수모를 당한 임프가 필사적으로 손짓발짓을 하며 무언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괴물이었지만 김진우는 어쩐지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없어? 그게 없어? 그게 어떤 돈인데!”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단번에 머리를 부숴 버릴 듯 주먹을 들어 올리는 그의 모습이 살벌했다. 임프가 기겁하며 짧은 팔로 품을 뒤적대다 무언가를 불쑥 내밀었다.

 “이딴 거 필요 없고, 내 돈 가져오…….”

 고함을 질러대던 김진우는 임프가 내민 물건을 보고는 순간적으로 굳어버렸다. 자그마한 손바닥 위의 작은 물체, 그것의 정체를 뒤늦게 깨달은 탓이다.

 “다운 잼?”

 고사리 같은 임프의 손 위에 올려 있는 붉은 보석이 영롱한 빛을 발했다.

 

 ***

 

 다운 잼, 지저에서만 나는 특별한 보석이다.

 땅속 깊은 곳에 파묻혀 있기도 하고, 지저에서 자라는 희귀한 식물이 품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 귀한 보석을 언더 비스트나 크리쳐가 섭취하고 다시 또 지저를 헤매는 수많은 탐색자들이 그들을 잡아 채집하고 있었다.

 그렇게 얻은 다운 잼은 그 희소성만큼이나 높은 가치에 시장에서 거래되었다.

 1캐럿이나 될까 싶은 작은 놈은 일반적으로 수백만 원에 거래되고 일정 이상의 크기가 되는 놈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그런데 임프가 내민 빨간색의 다운 잼은 그 크기가 엄지손가락 한 마디는 되어 보였다. 시세에 무지한 김진우가 보기에도 수천만 원을 호가할 귀물이었다.

 “칵칵!”

 다운 잼을 보고 놀란 마음에 저도 모르게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 모양이다. 임프가 기침을 목을 긁어대며 기침을 해댔다. 뒤늦게 그가 손의 힘을 풀려는데 임프가 다시 또 품을 뒤지더니 이번에는 파란 다운 잼을 꺼내 들었다.

 “카아아악!”

 정신이 팔려 있는 그의 모습을 다운 잼에 관심이 없다고 오해한 모양이다. 그렇게 내민 두 개의 다운 잼이 임프의 손바닥 위에 올라와 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김진우가 다운 잼을 낚아채려는데 임프가 갑자기 발버둥을 쳤다.

 그 바람에 파랗고 빨간 다운 잼 중 하나가 데굴데굴 제단 위로 굴러갔다.

 그 와중에 김진우의 손을 벗어난 임프가 작은 몸을 데굴데굴 굴려 멀리 몸을 피했다.

 바닥을 박차고 일어나기가 무섭게 벌떡 몸을 일으킨 임프가 발을 동동 구르며 칵칵거리고 목을 울렸다.

 다운 잼을 김진우에게 빼앗긴 것이 억울하고 분한 듯했다.

 하지만 겨우 손아귀를 벗어났다가 괜스레 다시 잡힐까 무서웠는지 임프는 금세 게이트 너머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저 새끼!”

 뒤늦게 상황을 알아차린 그가 임프를 잡으려고 했지만 임프는 이미 사라지고 난 뒤였다.

 한숨을 내쉰 그는 서둘러 다운 잼 하나를 갈무리하고는 재단 쪽으로 굴러간 하나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또 없어?”

 하지만 그 잠깐 사이에 또 다른 임프라도 다녀간 것일까. 제단 위로 굴러간 파란 다운 잼이 보이지 않았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네.”

 이번에는 그도 단단히 약이 올랐는지 눈을 시퍼렇게 뜨고는 제단 부근을 뒤졌다.

 돌로 만들어진 의자 주변부터 제단 구석구석까지 그는 바닥을 기다시피 하며 마나 잼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수 없었다.

 

 [중급 다운 잼이 제단에 바쳐졌습니다. 임프가 지저 깊은 곳을 돌아다니며 품에 안고 있던 탓에 품질이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손상된 미궁의 내구력을 복구하고 업그레이드하기에는 충분합니다.]

 그 순간 허공중에 나타난 메시지, 그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얼굴이 되었다.

 

 [내구력의 복구까지 앞으로 24시간, 미궁의 등급을 올리기까지 앞으로 72시간 남았습니다.]

 멍하니 눈앞을 스쳐 가는 메시지를 보고 있던 그가 와락 소리를 질렀다.

 “누구 마음대로!”

 

 [한번 제단에 바쳐진 다운 잼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화가 난 그를 약이라도 올리듯 떠오른 문자, 그는 고래고래 악을 써댔다. 임프라는 놈이 돈 봉투를 훔쳐 가는 바람에 여동생의 예단비도 제대로 주지 못했다.

 그런데 겨우 임프를 잡아 다운 잼을 얻었더니 이번에는 미궁이 날름 삼키고 말았다.

 화가 나지 않는 게 도리어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그가 길길이 날뛰든 말든 미궁은 다시 다운 잼을 뱉어내지 않았다. 결국 자포자기한 그는 남은 하나의 다운 잼을 품에 안고 그대로 미궁을 떠나야 했다.

 

 ***

 

 “1,700만 원! 그 이상은 못 줘!”

 카랑카랑한 음성. 눈치를 살피듯 교활하게 굴러가는 눈동자를 본 김진우는 필사적으로 표정 관리를 했다.

 “크기는 큰데 속이 비었어. 어떤 놈이 껍데기가 만질만질해질 정도로 안고 다녔어. 이런 건 아무리 커도 제값 못 받아.”

 감정사의 말에 그는 대답하는 대신 침묵을 고수했다. 던전에서 나고 자랐고 지상에 올라와서도 사람을 많이 접해본 적 없는 그는 누군가와 흥정을 하는 데 미숙했다.

 어설프게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는 대신 침묵을 고수하는 것이 차라리 흥정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 오래였다.

 “1,800만 원! 더 받고 싶으면 다른 데 가봐. 나도 더는 못 챙겨줘.”

 아니나 다를까, 감정사가 한참을 버티다 항복을 선언했다. 테이블에 올려놓은 빨간 다운 잼을 바라보던 그가 슬쩍 손에 쥐는 시늉을 해 보였다.

 감정사가 혀를 차며 고개를 홱 돌리는 것이 정말로 더 이상은 값을 지불할 의향이 없는 기색이다.

 “팔겠습니다.”

 “끙. 가공비까지 하면 인건비도 못 건지겠구만.”

 감정사가 속에도 없는 말을 했지만 그는 무시했다.

 혹시라도 자투리라도 떨어질까 기대하던 감정사의 얼굴에 실망한 빛이 떠올랐지만 그는 무표정하게 자리를 지키고 섰을 뿐이다.

 결국 1,800만 원에 붉은색 다운 잼을 팔아치운 김진우는 감정소를 나섰다. 문을 나서기가 무섭게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1,800만 원이라니, 임프에게 도둑맞은 돈을 메우고도 300만 원이 남는 큰돈이다. 겨우 잃어버린 돈이 메워진 것이다.

 가장 필요할 때 쓰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웠지만 이렇게라도 다시 복구가 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집에 돌아가니 부모님은 노후를 편안하게 보낼 사업을 궁리하느라 여념이 없다.

 대충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온 그는 방문을 잠그고 스테이터스 창을 불러왔다.

 [나가의 미궁] (활성화)

 □오너 김진우(4등급)

 □1등급 미궁(규모 4X4) (업그레이드 중 48:35:11)

 □내구도 626/1050(24:35:11)

 □시설

 *오너 룸(1등급)

 *포탈(사용 대기 시간 00:24:22 0/1)

 *게이트(100/100)

 *?

 -미궁을 관장하는 오너의 능력이 부족합니다.

 -미궁의 시설을 활성화시킬 수 없습니다.

 얄밉게도 다운 잼을 날름 삼켜 버린 미궁은 보란 듯이 업그레이드며 수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울화통이 치민 나머지 그는 처음으로 미궁에 가는 것을 거르고 말았다. 그저 이따금씩 스테이터스 창을 불러내 조금씩 줄어가는 숫자를 볼 뿐이었다.

 하지만 다시 시간이 흐르자 그는 냉정을 찾을 수 있었다. 사실 잃어버린 돈 봉투 속의 1,500만 원은 그렇다고 쳐도 다운 잼을 팔고 남긴 차익 300만 원은 불로소득이다.

 어느 정도 화가 풀렸다. 게다가 자꾸만 깜박거리며 줄어가는 스테이터스 창의 수치들을 보고 있자니 호기심이 동했다.

 동기화가 끝나고 생긴 게이트를 떠올려 봐도 무언가 변화가 일어날 게 분명했다.

 그래서 그는 정확하게 업그레이드가 완료되는 72시간이 지나고 다시 미궁을 찾았다.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던 포탈의 느낌도 조금은 적응이 된 듯한 기분이다.

 그 덕분에 그는 보다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석실을 둘러볼 수 있었다.

 가장 먼저 그의 눈에 띈 것은 시야를 가득 메울 정도로 빼곡하게 떠오른 메시지 창이었다.

 

 [미궁의 업그레이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미궁의 등급이 1등급에서 2등급으로 격상됩니다. 잠겨 있던 시설들이 새롭게 활성화되었습니다.]

 [미궁의 활성화로 조금 멀리 있던 비스트와 크리쳐들이 미궁의 존재를 인식합니다.]

 [아직은 안전합니다. 하지만 서둘러 방어를 준비해야 합니다.]

 [둥지를 통해 1등급 나가 일꾼을 소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신없이 올라오는 메시지 창에 기겁한 그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는데 어둠 너머에서 어슬렁거리는 무언가가 보였다.

 “너!”

 무심코 소리치니 어둠 속에서 기웃거리던 작은 그림자 임프가 화들짝 놀라 후다닥 도망쳤다. 김진우가 그런 임프의 뒤를 쫓았다.

 “캭!”

 마치 따라오지 말라는 듯 뒤를 보며 목을 울려대는 임프,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걸음을 멈출 리 없었다. 스스로가 미궁의 주인이라는 자각은 아직 없었지만, 그래도 자신만의 공간에 자꾸만 들락거리는 임프가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이다.

 김진우가 한번 달리기 시작하자 그야말로 전광석화와도 같았다. 날래기가 다람쥐보다 더한 임프보다 빠르게 내달린 그는 순식간에 임프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카카칵!”

 임프가 잠깐 비명을 지르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시무룩한 얼굴로 눈을 굴리는 임프의 모습이 마치 사냥꾼의 손에 잡힌 토끼와도 같았다.

 하지만 정작 임프를 잡은 김진우는 임프를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그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뭔가 변했다.

 그다지 전력을 다한 것도 아닌데 몸이 멋대로 쏘아져 나갔다. 평소라면 한참을 쫓았어야 할 임프를 불과 눈 몇 번 깜박이기도 전에 잡았으니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얼떨떨한 표정을 한 그는 자신이 달려온 거리를 가늠해 보곤 깜짝 놀랐다. 거의 100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눈 몇 번 깜짝할 사이에 달려온 것이다.

 마침 발치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주워 올린 그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쩍!

 설마설마하던 김진우는 쪼개진 돌덩이를 보고는 입을 떡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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