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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견문록
작가 : 노쓰우드
작품등록일 : 2016.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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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화
작성일 : 16-08-22     조회 : 538     추천 : 0     분량 : 6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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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허공이 쩍 하고 갈라지더니 문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나가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가들이 전투에 합류합니다. 생전 처음으로 미궁 밖을 나온 나가들은 잠시 어리둥절해합니다. 적응하는 데 다소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나가 용사, 나가 궁수, 나가 병사의 전투력이 감소합니다.]

 

 그다지 반갑지 않은 메시지였지만 이미 기호지세였다.

 “전투 준비!”

 

 [던전 오너 김진우가 전투를 지휘합니다. 오너의 참전에 나가들의 사기가 오릅니다.]

 

 척, 척.

 포탈을 등지고 선 나가 용사들이 통로를 막고 서서 방패의 벽을 세웠다. 그 뒤로 나가 병사들이 창을 꼬나 쥐고 낮게 목을 울려댔다.

 나가 궁수는 기다란 팔에 걸맞은 무지막지한 활의 시위를 잔뜩 당기고는 눈을 빛냈다.

 그 기세가 어찌나 사나운지 달려들던 지옥거미들이 그 자리에 멈춰 선채 제자리걸음을 해댔다.

 팽팽하게 당겨진 일촉즉발의 긴장감, 하지만 대치 상태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가장 앞에 서 있던 지옥거미가 천장으로 풀쩍 뛰어오른 것이다.

 쐐엑!

 그리고 그 순간 쏘아진 나가 궁수의 무지막지한 화살이 지옥거미를 꿰뚫었다. 단숨에 눈이 꿰뚫린 지옥거미가 그대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캐애애액!

 지옥 거미들이 달려든다. 나가 궁수가 활시위를 다시 당긴다. 화살이 쏘아진다. 또다시 거미 하나가 쓰러진다. 하지만 뒤를 따르는 거미들의 수는 아직도 많기만 했다.

 우오오오오!

 나가 용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방패를 쥔 손에 힘을 주고는 충돌에 대비했다.

 곧이어 쾅 하고 지옥거미들이 있는 힘껏 방벽을 들이받고 그 충격에 나가 용사들이 주춤 물러섰다.

 그리고 그 순간 김진우가 나가 병사의 어깨를 박차고 전방을 향해 뛰어들었다.

 “합!”

 지옥거미가 그를 보고는 좌우로 갈라진 흉측한 주둥이를 쩍 벌렸다. 그는 드러난 속살을 향해 곧장 칼을 쑤셔 넣었다.

 거미가 비명을 지르며 이를 턱 닫았지만 그는 이미 거미의 머리를 타고 또 다른 목표물을 찾아 뛰어올랐다.

 캬아아아악!

 사방이 적이다. 거미들의 한가운데로 뛰어든 그는 흉측하게 털이 돋아난 다리 사이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드러난 배를 그대로 갈라냈다.

 거미들이 사납게 울부짖으며 그를 밟아 죽이겠다고 아우성을 쳐댔지만 거미들은 유독 배에 대한 방어가 취약했다.

 그래서 그는 순식간에 작고 큰 거미들을 찢어발길 수 있었다.

 “우! 아! 우! 아!”

 나가 용사들이 방패를 내밀고 목을 울려댔다. 방패로 만들어진 벽이 일제히 전진을 시작했다. 거대한 지옥거미들이 그 서슬에 분분히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그리고 나가 병사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좁은 통로에서 쓰기에는 다소 긴 창대를 휘저어 지옥거미의 딱딱한 껍질을 찔러댔다.

 둥근 표면이 미끄럽기까지 하니 매서운 창격도 미끄러지기 일쑤였지만 간간이 운 좋게 마디를 꿰뚫는 공격이 터져 나왔다.

 끼에에엑!

 거미들이 비명을 질렀다. 지저의 포식자가 또 다른 포식자를 만나 겁을 집어먹고 말았다.

 그들이 나가에 비해 터무니없이 약한 것은 아니었다. 거미들과 나가들의 차이가 있다면 지휘관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뿐이었다.

 김진우의 선전에 용기백배한 나가 용사들이 대범하게도 방패를 열고 돌기가 잔뜩 돋아난 둔기로 거미들을 찍어댔다. 단단한 표피가 단번에 박살이 나며 역겨운 체액이 흘러내렸다.

 “아아아아!”

 그중에서도 특출 나게 눈에 띄는 나가 용사가 있었다.

 나가 용사라고 다 같은 건 아닌지, 다른 나가들보다 머리 하나는 큰 나가 용사는 그야말로 무자비하게 지옥거미들의 껍데기를 바수고 머리통을 박살 냈다.

 캑.

 나가 용사의 분전에 잠시 한눈을 판 탓일까. 어느새 등 뒤까지 접근한 거미를 발견한 김진우가 칼을 빼들고 달려들다 멈춰 섰다.

 거미의 흉측한 눈알에 꼬리만 남고 깊게 파고든 화살을 본 탓이다.

 혼전. 빛이라고는 등 뒤에 열린 포탈에서 새어 나오는 푸른빛뿐이었다. 어스름한 통로 속에서 거미들의 포효와 비명이, 그리고 나가들의 웅혼한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

 

 [강대한 거미 군단을 상대로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나가 병사 둘이 전사했습니다.]

 [모든 병력의 숙련도가 올라갔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신병이 아닙니다. 전투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미궁 밖에서 치른 첫 전투를 성공적으로 이끈 당신의 용맹에 나가들이 감탄합니다. 카리스마가 대폭 상승합니다.]

 [김진우가 초보 지휘관에서 평범한 지휘관이 되었습니다.]

 

 메시지 창이 떠오르기가 무섭게 살아남은 나가들의 몸에서 일제히 빛이 솟구쳤다.

 그리고 그 빛이 모두 사라졌을 때, 나가들은 어딘지 모르게 전보다 한층 더 사납고 용맹하게 변해 있었다.

 “크아아아악!”

 좀 전의 전투에서 유독 날뛰어대던 나가 용사가 승리의 포효를 하자 다른 나가들이 뒤따라 목을 울려댔다. 비록 살아남은 나가라고 해봐야 용사 둘에 궁수 하나뿐이었지만 그들의 포효는 그 자체로 전율이었다.

 

 [거미 공작의 군대를 상대로 나가의 군대가 승리했습니다. 나가의 미궁에 대한 소문이 조금씩 지저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명성이 상승했습니다.]

 

 잠시 넋을 놓고 나가들을 바라보던 김진우는 이내 눈앞에서 깜박거리는 메시지 창에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까지 나가의 미궁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자신만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미궁의 존재에 대한 소문이 퍼져 나갈 것이라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김진우는 이내 고개를 흔들어 잡생각을 떨쳐냈다.

 이미 각오한 바다. 지옥거미들의 뒤를 쫓기로 마음먹을 때부터 그는 이러한 일을 어렴풋이나마 예상하고 있었다.

 이제 와서 후회할 겨를 따위는 없었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미궁을 조금이라도 더 강화하는 것이 현명한 일일 테니까.

 ‘전부 합쳐서 중상급 다운 잼이 아홉 개 나왔어요.’

 전투가 끝나자 모습을 드러낸 도미니크가 나가 일꾼들이 해체한 거미의 사체를 살펴보며 말했다.

 기진맥진해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김진우도 그 말에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홉 개?”

 ‘네. 그리고 지옥거미의 사체는 함정을 만드는 좋은 재료랍니다.’

 흐뭇한 얼굴로 나가 일꾼들이 운반 중인 거미들의 시체를 보며 도미니크가 말했다.

 “믿고 맡길게. 이번에도 도미니크 덕분에 살았어.”

 빈말이 아니었다. 혹시 몰라 일러두기는 했지만 필요할 때 바로 병력을 보내주었고 부재중에도 착실하게 미궁을 꾸려나간 그녀이다.

 만약 그녀의 헌신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마음 놓고 땅 밑을 헤매고 다닐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영광은 오롯이 주인님께.’

 도미니크가 눈꼬리를 휘어 올려 보이며 장난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저번에 맡겨둔 가방 있지? 그것 좀 가져다 줘.”

 그의 말에 도미니크가 미리 챙겨두었던 가방을 건네주었다. 가방을 받은 그가 돌아서는데 나직한 속삭임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그럼 주인님, 부디 지상까지 무탈하시기를.’

 

 ***

 

 “후아!”

 입안이 얼얼해질 정도로 매콤한 해장국을 마신 김진우는 우습게도 그제야 살아남았다는 실감이 났다.

 사실 이번 일정은 그 딴에도 제법 모험수였다.

 지저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나가들을 소환하여 리허설을 갖기는 했지만 지옥거미와 나가들의 전투력에 대해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 결과 둘이나 되는 나가 병사를 잃고 말았다. 믿고 있던 나가 용사들마저도 거미들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으니 실로 아슬아슬한 전투였다.

 하지만 결국 승리한 것은 자신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위험을 무릅쓴 만큼 김진우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얻었다. 중상급 다운 잼, 시가로 계산해도 3억은 넘을 법한 수익을 올린 것이다.

 당장 처분할 수는 없겠지만 이번에 올린 수익은 언젠가는 요긴하게 쓰일 날이 올 것이다.

 그 생각에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던 것일까. 누군가가 시비를 걸어왔다.

 “누구는 걱정하느라 잠도 못 잤는데 뭐가 그리 좋아서 웃고 있어요?”

 고개를 드니 아랫입술을 깨문 이준영이 보인다.

 “그 해장국 맛있어요? 아주 맛있어 죽겠죠? 그러니까 그렇게 웃고 있지.”

 날이 선 말투와는 다르게 그녀의 얼굴은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애매한 표정이다.

 “먹을래요?”

 김진우가 뻔뻔스럽게 먹다 남긴 해장국을 내밀자, 그녀는 기가 찬지 코웃음을 쳐 보였다.

 “됐거든요?”

 하지만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그녀였다. 맞은편 의자에 앉은 그녀는 수저를 뺏어 해장국을 한입 먹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맛도 더럽게 없네. 여긴 진짜 음식도 못하면서 바가지는 엄청 씌워.”

 “게이트 식당들이 다 그렇죠, 뭐.”

 천연덕스럽게 다시 수저를 빼앗아 그가 해장국을 먹으려는데 이준영이 수저를 뒤로 숨겼다. 김진우가 ‘왜?’라는 얼굴로 인상을 찌푸리니 그녀가 말했다.

 “가요. 제대로 된 음식 먹여줄 테니까.”

 “그럴 필요 없는데…….”

 “장난해요? 그 고생을 하고 나와서 이깟 맛도 없는 해장국이나 먹고 있게.”

 정말로 괜찮다며 손을 휘젓던 그는 이준영의 표정을 보고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범벅이 된 그녀의 얼굴은 툭 건드리면 확하고 터질 것만 같았다.

 “근데 내가 올라온 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게이트 경비대에 부탁했어요. 이렇게 생긴 사람이 엉망진창 꼴로 올라오면 바로 연락 달라고.”

 걱정하느라 잠도 못 잤다는 말이 아예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다.

 “어떻게 된 거예요?”

 차에 올라타기가 무섭게 그녀가 사정을 물었다. 죽었을 거라 생각한 자신이 살아 돌아왔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 기색이다.

 김진우는 차량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장난해요? 지옥거미만 해도 열 마리였는데 운이 좋아 도망쳤다고요? 그럼 그 괴물들한테 죽은 탐색자들은 전부 병신이게요?”

 “그냥 먼지가 가라앉기 전에 도망쳤어요. 정말 죽을 만큼 고생했지만, 운이 따라 살아남았습니다.”

 “지금 나 미안하라고 그러는 거죠?”

 도대체 어쩌라는 것인지, 이래도 저래도 신경질적인 그녀의 태도에 김진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표정이 변하자 이준영이 화들짝 놀라며 사과했다.

 “따지려던 건 아니에요. 내가 원래 말투가 이래놔서. 그냥 진우 씨가 살아 돌아온 게 너무 고맙고 좋아서.”

 솔직하지 못한 여자였다. 하지만 그 모습이 싫지는 않았다.

 그녀는 고마움과 미안함을 어떻게든 풀려고 필사적이었다.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여자치고는 제법 호탕한 성격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의 그녀는 자신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

 그게 조금은 안 되어 보여 김진우가 정색하고 말했다.

 “어차피 지저에서 나고 자란 목숨, 빚이 어디 있습니까. 애초에 우리가 여기 있는 게 덤으로 사는 삶인데.”

 사람들은 말한다. 전쟁이 끝이 났기에 던전 베이비들이 지상으로 올라온 것이라고.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너희들은 자유다.’

 미궁의 주인들이 선언했다. 그리고 그 선언은 말 그대로였다. 그들은 단지 던전 베이비들을 풀어주었을 뿐이다.

 끔찍한 땅 밑 통로를 뚫고 지상에 올라오는 것은 온전히 던전 베이비들의 몫이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크리쳐와 비스트들에게 희생될지 그들은 관심도 없었다.

 “여기가 아직도 땅속인 줄 알아요? 빚을 졌으면 갚는 게 인지상정이라고요.”

 하지만 그녀는 어지간히도 고집이 센 여자였다. 결국 초특급 호텔식 식사와 바라지도 않던 명품 정장, 그리고 이런저런 물건을 대접 받고 말았다.

 그녀는 마치 잘나가는 던전 베이비란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기라도 할 작정인지 돈을 펑펑 써댔다.

 식사 한 끼에 수십만 원이 나가고 옷가지 몇 벌에 수백만 원이 깨졌다. 그런데도 그녀는 더 사주지 못해 안달이었으니 김진우도 지치고 말았다.

 “준영씨, 이제 됐으니까 저 집에 좀 들어갈게요. 저 좀 쉬고 싶어요.”

 “마, 마사지라도 받을래요? 좋은 데 있는데.”

 마지막까지 어떻게든 신세를 갚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차라리 눈물겨웠다. 김진우는 결국 다음 만남을 약속하고서야 겨우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준영님으로부터 30,000,000원이 입금되었습니다.]

 

 휴대폰이 드르륵 하고 몸을 떨었다. 입금자 명을 확인한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3천만 원이라면 위험에 대한 대가로는 턱없이 적았다.

 하지만 실패한 임무에 대한 보상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컸다.

 선발대의 수익이라고 해봐야 간신히 챙긴 중상급 다운 잼 하나가 전부였을 테니까.

 “다녀왔습니다!”

 여행이라도 다녀오겠다며 집을 떠난 그인지라 그의 어머니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반겨주었다.

 “밥 먹었니? 뭘 또 이렇게 사왔어.”

 “아, 누가 좀 선물로 줘서요.”

 선물이란 말에 눈을 가늘게 뜬 어머니가 내용물을 확인하곤 기겁하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그는 오랜만에 돌아온 집의 평화로움을 만끽했다.

 잠깐의 휴식, 하지만 영원히 누릴 수 없는 평화이기도 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그는 곧 포탈을 열었다. 포탈을 넘자 기다리고 있었는지 도미니크가 바로 반겨주었다.

 ‘무사 귀환을 축하드립니다.’

 그녀의 인사에 대충 고개를 끄덕여 준 김진우는 나가의 왕좌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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