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판타지/SF
던전 견문록
작가 : 노쓰우드
작품등록일 : 2016.8.22
  첫회보기 작품더보기
 
제 18 화
작성일 : 16-08-22     조회 : 521     추천 : 0     분량 : 5569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9. 지저의 들개들

 

 

 

 “끌어들여서 잡는다.”

 정찬식의 지시에 탐색자들이 바닥에 방패를 박아 넣었다. 창잡이들이 그 사이에 창을 끼워 넣고 그 앞으로 던전 베이비들이 나섰다.

 “누가 유인할래?”

 “제가 하죠.”

 김진우가 한 발 나서며 말했다.

 “오케이. 그럼 이 앞 코너 돌아서 바로 있으니까 가급적이면 몇 놈만 유인해요.”

 “조심해요, 진우 씨.”

 이준영이 조심하라는 말에 대충 알았다는 표시를 해 보인 그가 조심스럽게 어둠을 헤치고 나아갔다. 채 스무 걸음이 되지 않아 정찬식이 말한 코너가 나왔다.

 그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어 코너 너머를 확인했다.

 어둠 너머에 드러난 여섯 마리의 괴물은 원숭이를 닮아 있었다. 어슬렁거리는 놈들의 꼬락서니가 원숭이 일가족의 나들이처럼 보일 정도로 평화로워 보였다.

 하지만 어지간한 고릴라보다 큰 덩치와 옆구리에 돋아난 한 쌍의 팔, 이따금씩 보이는 날카로운 이빨은 보는 이의 오금을 저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크리쳐를 확인한 김진우가 다시 코너 너머로 고개를 빼고는 말했다.

 “네팔원숭이입니다. 수는 전부 여섯이고, 큰 놈 다섯에 작은 놈 하나.”

 던전 베이비들이 빠르게 손짓을 주고받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아마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리라.

 탐색자들의 방진이 더욱 촘촘하게 오므라드는 것을 본 김진우가 조심스럽게 코너 밖으로 몸을 빼냈다.

 아직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 서로 툭탁거리며 장난을 치는 네팔원숭이들의 모습을 보며 그는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박수를 쳤다.

 순간적으로 원숭이들이 고개를 빳빳이 세웠다.

 “옵니다.”

 커다란 머리통만큼이나 커다란 안광이 자신을 향하는 것을 본 김진우는 일행에게 말하고는 서둘러 몸을 빼냈다. 그 순간 네팔원숭이 무리에서 두 마리의 네팔원숭이가 튀어나왔다.

 

 [네팔원숭이들과의 전투가 시작됩니다.]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 창을 보며 그가 일행에게 외쳤다.

 “수컷 두 마립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뒤를 따라 네팔원숭이 두 마리가 코너를 돌며 모습을 드러냈다.

 원숭이들은 코너 바로 앞에 대기하고 있는 인간들을 발견하고 당황했는지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그들이 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정찬식이 나직하게 말했다.

 “플래시.”

 탐색자들의 방패에 달려 있는 플래시가 일제히 빛을 발했다. 어둠에 익숙해져 있던 네팔원숭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양팔로 눈을 가렸지만 때는 이미 늦고 난 후였다.

 정찬식이 플래시라 말하는 순간 이미 몸을 돌리고 눈을 감고 있던 김진우는 곧장 눈을 뜨고 원숭이들에게 달려들었다. 갑작스러운 섬광에 괴로운지 눈을 잡고 울부짖는 원숭이 둘. 그는 이를 드러내며 칼을 내리찍었다.

 크아아아악!

 뜨뜻한 피가 날아올라 뺨을 적셨다. 일격에 쇄골이 꿰뚫린 원숭이가 양팔을 휘저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김진우가 손잡이를 그러쥔 손아귀에 힘을 주며 어깨를 털어내자 네팔원숭이는 그 두꺼운 목이 반쯤 잘려나가며 절명하고 말았다.

 그 순간 코너 너머에서 괴성이 들려오며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일행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고개를 돌린 그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죽어!”

 으르렁거리듯 사나운 고함 소리. 던전 베이비 하나가 무식하게 두꺼운 칼을 내리찍었다.

 네팔원숭이가 두꺼운 근육으로 둘러싸인 팔을 내밀어 칼을 쳐내자 곁에 있던 또 다른 던전 베이비가 겨드랑이에 칼을 쑤셔 넣었다.

 크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양팔을 휘젓는 원숭이. 그 뒤로 정찬식이 훌쩍 뛰어올라 네팔원숭이의 머리에 칼이 내리찍었다.

 하지만 두개골을 깨기에는 힘이 달렸던 것일까. 원숭이는 꼬꾸라지는 대신 포악하게 소리를 치며 정찬식을 향해 손을 뻗었다.

 칼을 그대로 내려놓은 그가 허리춤에서 석궁을 꺼내 들어 상처 입은 겨드랑이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그사이에 또 다른 던전 베이비들이 원숭이의 무릎 뒤를 내리찍었다.

 우어어어!

 성인 남자가 통곡하듯 궁상맞은 소리. 원숭이의 비명에 던전 베이비들이 낄낄거리며 웃어댔다.

 “자빠뜨린다! 비켜!”

 그간 말 한마디 없이 조용하던 던전 베이비 하나가 피투성이가 된 네팔원숭이의 뒷무릎에 칼을 쑤셔 박았다.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진 네팔원숭이의 위로 칼과 둔기가 내려쳐졌다.

 손을 휘저으며 발악하던 네팔원숭이는 그대로 축 늘어지고 말았다.

 김진우는 던전 베이비들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급한 크리쳐들을 상대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 던전 베이비들은 마치 예전 지저를 떠돌던 그 무렵으로 돌아간 듯 살기등등했다.

 톱니바퀴 돌아가듯 연결되는 협공이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 버렸다.

 자신과는 다르다.

 심층에 도사리고 있는 단단한 크리쳐들을 상대하느라 급소에 칼을 꽂아 넣는 전투 방법을 선호하게 된 자신과는 다르게 저들은 마치 깨어지지 않으면 깨어질 때까지 칼질을 해댈 것처럼 저돌적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들이 위험해 보이지 않는 것은 그만큼 그들의 호흡이 좋았던 탓이리라.

 “또 옵니다!”

 바짝 다가선 발소리에 김진우가 다급하게 경고했다.

 우워우워!

 코너에서 나타난 네 마리의 네팔원숭이는 절명한 동족의 시체를 보곤 울부짖었다. 아슬아슬한 타이밍, 네팔원숭이 하나를 완전히 난도질한 던전 베이비들이 다시 전투 준비를 했다.

 동족의 시체를 보고 흥분한 네팔원숭이들은 무식할 정도로 저돌적이었다. 교활한 땅 밑 사냥꾼들의 면모 따위는 보이지 않는 광폭한 모습이다. 하지만 동족을 잃은 분노를 풀기에는 상대가 좋지 않았다.

 던전 베이비들은 이보다 깊은 곳에서 살아 돌아온 강자였다.

 김진우가 급소를 찾아 칼을 꽂아 넣는 동안, 이준영과 정찬식을 비롯한 던전 베이비들은 방금 전과 비슷한 방식으로 원숭이들을 상대했다.

 끼야아아아!

 기괴한 고함 소리를 내지르며 네팔원숭이의 사타구니를 베어가는 던전 베이비의 참격에 네팔원숭이가 비명을 질렀다.

 “넌 남자도 아냐, 새끼야!”

 또 다른 던전 베이비가 야유를 퍼부으며 그렇게 쓰러진 네팔원숭이의 목뒤를 찍어버렸다. 그런 그의 주변으로 이준영과 정찬식이 정신없이 칼을 찌르고 베어댔다.

 무식하다면 무식하고 효율적이라면 효율적인 전투였다. 불과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남은 네 마리의 네팔원숭이 역시 정리되었다.

 “휴우, 진우 씨가 셋이나 상대해 준 덕분에 엄청 편했어요.”

 “이야, 진짜 장난 아닌데요? 8층에 있었다고 들었는데 어디 이름 있는 미궁에 있었던 거 아냐?”

 네팔원숭이들의 사체를 탐색자들에게 맡긴 던전 베이비들이 김진우를 둘러싸며 말했다.

 일격필살의 참격으로 네팔원숭이들을 셋이나 제압한 그를 보고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정작 김진우는 던전 베이비들의 능숙한 협공에 깜짝 놀란 상태였다.

 하지만 놀라움은 던전 베이비들 쪽이 더 컸던 모양이다. 그들은 김진우를 둘러싸고 호들갑을 떨어댔다.

 “급소를 노렸는데 운 좋게 세 번 다 맞아떨어졌을 뿐입니다.”

 “에이, 운 하나로 그게 되나. 진짜 어디 미궁에 있었어요?”

 소란을 겪고 싶지 않다는 부탁을 이준영이 성실하게 이행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때문에 곤란한 상황이 오고 말았다.

 눈을 빛내는 던전 베이비들을 보며 그가 곤란한 얼굴을 해 보이자 이준영이 나섰다.

 “진우 씨는 마르쿠스의 미궁에 있었어요.”

 “거 봐.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마르쿠스 정도는 돼야지. 찬식이도 8층에서 태어났지만 진우 씨 정도는 아니거든.”

 이준영의 임기응변에 던전 베이비들이 떠들썩하게 호들갑을 떨어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이름을 판 마르쿠스의 미궁이라면 혈사자의 미궁이라고도 불리며 악명을 떨친 지저의 강자가 다스리던 곳이다.

 8층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이 미궁은 종전이 되는 순간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집어삼킨 괴물이었다.

 “끄응. 어쩐지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더라니. 마르쿠스의 미궁에서 태어났으면 올라오는 길에 줄줄이 흉악한 놈들이 다스리는 미궁을 통과했겠네. 고생했수다.”

 정찬식이 새삼 놀라운 얼굴로 감탄하며 말했다. 어색한 표정으로 대충 시선을 외면한 그는 이준영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어쩔 수 없었다는 뜻을 온몸으로 내보였다.

 “덕분에 이번 일정이 조금 수월해지겠네.”

 던전 베이비들이 수다를 떨어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네팔원숭이들의 시체를 완전히 헤집은 탐색자들이 별다른 소득이 없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잡담 그만 하고, 이동합시다. 피 냄새 맡고 달려드는 놈 있으면 곤란해.”

 더 이상 얻을 것도 없는데 피 냄새가 가득한 곳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일행은 냄새를 지우고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

 

 과연 5층은 4층과는 차원이 달랐다. 조금만 방심하면 어둠 속에서 크리쳐의 습격이 가해지니 일행은 단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가장 활약이 두드러진 건 당연히 김진우였다.

 “진짜 신기하네. 혹시 진우 씨도 뭐 감지에 특화된 케이스요?”

 “아무래도 살려고 발버둥 치다 보니…….”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전투 메시지를 밝힐 수도 없는지라 그는 대충 얼버무렸다. 불편한 화제라 입을 다물려는데 던전 베이비들이 한마디씩 해왔다.

 “그러게. 방금 전에도 그 넓적 뱀 새끼, 진짜 지 몸 밟고 지나가는데도 꿈쩍도 안 하고 기다리고 있었잖아. 진우 씨 아니었으면 탐색자 중 최소 둘은 죽었을걸.”

 “그걸 진짜 어떻게 알았어요? 기척도 없었는데.”

 잡담을 자제하라는 당부도 잊고 떠들어대는 던전 베이비들의 모습에 김진우가 선두의 정찬식을 바라보았다.

 원래대로라면 습격에 대비해 주의를 줬을 그가 별 말을 하지 않는 건 자신의 감각 이상으로 새로 합류한 던전 베이비의 감각이 훌륭하기 때문이리라.

 제 일도 아닌데 던전 베이비들의 칭찬에 이준영이 뿌듯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게 너무 민망해서 김진우는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도착했다.”

 정찬식의 말에 일행이 감탄했다.

 “우리가 이제껏 온 것 중에 제일 편하게 왔지?”

 “미친놈아, 여기서 편한 거 찾다가 골로 간 새끼가 한둘인 줄 아나. 헛소리하고 있어.”

 “그래도 갑자기 습격당해서 피해 생기는 일은 없었잖아. 우린 몰라도 탐색자들 피해 없는 건 이번이 처음이야.”

 아닌 게 아니라 지저에만 들어왔다 하면 한둘은 꼭 죽어 나간다는 일반 탐색자 중 죽은 이가 하나도 없었다.

 “진우 씨, 앞으로도 우리랑 같이할 거죠?”

 대답하기 곤란한 말이라 그저 어색하게 웃는 걸로 대답하니 탐색자 중에 몇몇이 애원하듯 간절한 눈빛을 보내왔다.

 아무래도 김진우의 존재가 자신들의 생존률을 어마어마하게 올려준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잡담 그만 하고. 내려갑시다. 내려가서 바로 조금만 가면 야영지로 쓸 만한 공터가 있으니까 오늘은 거기서 쉬는 걸로 하고.”

 정찬식의 말에 일행은 금세 대열을 갖추고 구덩이로 뛰어들었다.

 

 ***

 

 6층은 5층에 비해 비교적 통로가 넓은 편이었다. 칼니박쥐조차도 날개를 펴는 대신 겅중거리며 뛰어다녀야 하던 통로가 이제는 2차선 도로만큼 넓어져 있다.

 갑갑한 속이 조금은 뚫리는 느낌이었지만 이게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통로가 넓어졌다는 건 그만큼 거대한 크리쳐들이 운신할 폭이 된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6층의 크리쳐들은 수가 적은 대신 하나하나가 덩치가 크고 강했다. 이제까지의 전투가 다 대 다의 전투였다면 앞으로는 하나의 강력한 적을 상대로 하는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이다.

 “정지.”

 생각에 잠겨 있던 김진우가 정찬식의 음성에 고개를 들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곧 야영지에 도착할 거라며 다소 풀어져 있던 그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변해 있다.

 “선객이 있는 모양이야.”

 야영지까지 코너 하나를 남겨둔 상황, 일행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규모는 우리랑 비슷, 어쩌면 그 이상… 이런…….”

 정찬식이 앞을 노려보다 표정을 굳혔다. 뒤늦게 천장과 벽에서 깜박거리는 동작감지기를 발견한 탓이다.

 “저쪽에서 마중 나온다. 전부 준비해.”

 

 
 

맨위로맨아래로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19 제 19 화 8/22 576 0
18 제 18 화 8/22 522 0
17 제 17 화 8/22 539 0
16 제 16 화 8/22 531 0
15 제 16 화 8/22 586 0
14 제 14 화 8/22 598 0
13 제 13 화 8/22 539 0
12 제 12 화 8/22 585 0
11 제 11 화 8/22 552 0
10 제 10 화 8/22 630 0
9 제 9 화 8/22 703 0
8 제 8 화 8/22 575 0
7 제 7 화 8/22 580 0
6 제 6 화 8/22 563 0
5 제 5 화 8/22 543 0
4 제 4 화 8/22 555 0
3 제 3 화 8/22 628 0
2 제 2 화 8/22 572 0
1 제 1 화 8/22 919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