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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스물넷
작가 : 펙트
작품등록일 : 2016.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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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사라져버린 레시피
작성일 : 16-10-21     조회 : 154     추천 : 5     분량 : 5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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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효린, 얘 노트 못 봤냐?”

 

 

  대현이 효린에게 물었다.

 

 

  “아니?”

 

 

  리하는 자신의 팀으로 갔고, 효린은 윤아를 힐끔 쳐다보았다. 윤아와 효린은 눈이 마주쳤지만 서로 시선을 회피했다. 학원에 있었던 일로 서먹해졌다. 명수도 마찬가지였다. 명수는 애초에 자리를 떴다. 윤아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어제 저녁에 노트를 놔두었던 자리를 바라봤다.

 

 

  “일단 그건 런치 타임 뒤에 쉬는 시간이니까 그 때 찾아. 지금은 일이 우선이야.”

  “으응.”

 

 

  윤아는 대현의 말에도 일리가 있기 때문에 조리실 내에 배치된 락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파티쉐들이 윤아를 보며 일제히 웅성거렸다. 윤아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몇몇 파티쉐들이 윤아에게 다가왔다.

 

 

  “우리도 쉬는 시간 때 같이 찾아 줄게.”

  “그래도 쉬는 시간인데……, 너희들은 쉬어야지. 나 혼자 찾아도 괜찮아.”

  “여럿이서 찾으면 더 빨리 찾을 수 있잖아. 아이디어 노트라는 건 월말평가를 위한 거라서 중요하단 건 우리들도 잘 알아. 그러니까 도와줄게.”

  “얘들아, 정말 고마워.”

 

 

  파티쉐들은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분주해진 파티쉐들을 보고 윤아도 자신의 팀이 디저트 만드는 것을 도왔다. 윤아의 실력은 3주 전과 확연히 달랐다. 대현의 마카롱을 종류 별로 만드는가 하면, 명수의 초콜릿 무스 케이크를 알맞게 구워 그 위에 무스를 덧발랐고, 효린을 도와 수제 요플레와 캐러멜 소스, 그리고 사과 잼을 만들었다. 명수가 윤아의 손놀림에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거봐, 노력하면 다 된다잖아.”

  “너희들은 캐러멜 정도야 금방 만들 수 있겠지만 난 얼마나 태워 먹었는지. 매번 캐러멜 태워 먹는다고 규동이한테 한 소리 들었긴 하지만.”

  “규동이도 너 하는 거 도와줬어?”

 

  “응. 나 혼자 연습한 것 같은데 음, 지금 생각해보니까 늘 옆에서 도와준 것 같아. 덕분에 공부도 많이 됐고. 아, 어떤 깐깐한 남자가 이 말 들으면 되게 싫어하던데.”

 

 

  윤아는 환하게 웃으며 대현을 쳐다보며, ‘메롱’이라고 혀를 내밀다 집어넣었다. 명수는 그 깐깐한 남자가 누군지 알기에 반죽을 하다말고 크게 웃었다. 대현은 윤아를 노려봤지만 크게 화를 내지는 않았다.

 

 

  “야, 빨리 포인트나 원상태로 돌려놔.”

  “네 건 이미 다 돌려줬잖아! 이제 남은 건 명수의 개인 포인트거든?”

  “시끄러, 시끄러. 피해 보상 해놔.”

  “허. 그래, 좋아. 이번 월말평가에서 TOP 5가 들어가면 맛있는 거 사줄게.”

 

  “너 사주기 싫어서 일부러 그 말 하지? 네가 TOP 5에 들어갈 리가 없잖아.”

  “너 그만 나 무시해. 만날 찔보, 멍청이, 야. 너, 이게 뭐야. 좀 스무드하게 굴라고.”

  “스무드? 참나, 기가 찬다.”

  “나 이번에 정말 월말평가에 들어갈 자신 있어! 우리 팀에서 제일 잘 나가고 말…….”

 

 

  쾅. 효린이 프라이팬을 들어서 캐러멜을 만들다 말고, 조리대 위에 프라이팬을 던지듯 놓았다. 한순간에 윤아의 팀은 효린을 쳐다봤다. 효린은 험상궂은 표정을 짓다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캐러멜을 만들었다. 웃으며 농담을 나누었던 명수와 윤아의 눈 꼬리가 쳐졌다. 대현은 그 세 명을 번갈아보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이 키위 젤리 누가 만든 거야?”

 

 

  윤아는 잃어버린 노트의 행방에만 신경을 쓰느라, 저번에 만들었던 키위 젤리를 까먹고 있었다. 윤아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파티시엘을 통해 냉동실에서 꺼낸 젤리를 받을 수 있었다. 파티시엘에게 사과를 하고선 통의 내용물을 살펴보았다. 젤리는 키위와 분리되었는데, 통이 흔들리는 대로 따라 흔들렸다. 같은 팀인 명수와 대현이 키위의 상태를 보고서는 아직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역시 넌 멍청해.”

  “이, 이거 왜 이래?”

  “윤아야, 그건 키위의 성분 때문에 그래. 키위는 단백질을 분해하기 때문에 동물성 원료인 젤라틴을 분해해버려. 젤리를 만들 땐 키위를 끓인 후에 젤리를 만들어야 해.”

 

 

  외삼촌이 어깨를 토닥였다. 윤아가 고개를 들자, 외삼촌은 넌지시 웃었다. 윤아를 포함한 모든 파티쉐들이 외삼촌을 보자마자 들떴다. 외삼촌이 오랜만에 디저트 뷔페에 발을 디뎠기 때문이었다.

 

 

  “마스터, 여긴 어쩐 일이세요?”

  “마스터 보고 싶었어요!”

  “그래도 명분이 파티쉐이신데 디저트 뷔페에 자주 오셔야지, 너무 다른 일만 보느라 여긴 소홀해지신 거 아세요?”

 

 

  파티쉐들에게서 마스터란, 유명한 연예인이나 다름없었다. 외삼촌은 로제와인이라는 특 1급 호텔 자체를 경영하기 때문에, 그에 관한 일은 물론이고 세 군데의 뷔페에도 신경을 써야했다. 파티쉐 출신이라서 로제와인의 디저트 뷔페를 가장 애틋하게 여기는데, 자신이 몇 주 동안 가보지 않는다고 해서 불안해하지는 않았다. 외삼촌이 믿고 맡겨도 손색이 없을 만 큼 대현이나 규동 외의 쟁쟁한 실력의 파티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가 오랜만에 아무런 이유도 연락도 없이 디저트 뷔페에 발을 디뎠다.

 

 

  “내가 총주방장인데 요 근래에 너무 신경을 써주지 못한 것 같아서 말이야. 오늘 디너 타임은 나도 끼워주라.”

 

 

  외삼촌의 말 한 마디로 모든 파티쉐가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를 시작했다. 아직 쉬는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파티쉐들은 잔뜩 기대에 부푼 표정으로 재료를 준비했다. 심지어 시작하자며 재촉하는 파티쉐도 있었다. 윤아의 눈엔 외삼촌이 멋져 보였다. 동경, 한 사람의 말에 모두를 일어서게 할 수 있는 힘. 그 힘이, 그 자리가, 윤아를 설레게 했다.

 

 

  “야, 뭐해. 어서 반죽해.”

  “있잖아, 대현아.”

 

 

  대현은 윤아의 앞에 놓인 재료를 보다가, 윤아의 부름에 윤아를 쳐다봤다. 윤아의 시선은 여전히 외삼촌을 향했고, 윤아의 표정은 여태껏 대현이 봐온 사람들의 미소 중에 제일 눈부셨다.

 

 

  “나도 외삼촌처럼 저런 날이 올까? 동료에게 사기를 북돋게 해주고 다 같이 즐겁게 디저트를 만드는, 그런 날이 올까?”

 

 

  그 미소가 보는 사람마저 설레게 했고 흐뭇한 표정을 짓게 만들었다. 대현의 표정은 아주 잠깐이었지만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응.”

 

 

  외삼촌은 파티쉐들이 만드는 것을 한 번 지켜봤는데도 그 레시피를 꿰뚫고 척척 만들었다. 맛은 물론이고 디자인을 응용하여 더 훌륭한 작품을 만들었다. 노련한 손놀림과 몸의 박자가 최고의 디저트를 만들어낸 것이다. 외삼촌은 디저트의 커팅까지 마무리 한 뒤에 자신이 부족하다 싶은 파티쉐의 옆에서 코치를 해주었다. 파티쉐들은 자신의 실력에 민망해 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외삼촌은 그런 파티쉐에게 어깨를 다독이며 웃어주었다. 천천히 파티쉐들의 손동작을 보다가 윤아의 팀으로 다가올 때였다.

 

  대현은 윤아가 외삼촌에게 간 시선을 보며 불현듯 한 여자 아이의 환한 미소를 떠올렸다. 너무나 환해서 어렸던 대현이 넋 놓고 바라볼 정도였다.

 

 

  “이 팀은 거의 완벽하네. 윤아야, 아주 잘 하고 있어.”

  “정말요? 진짜요?”

 

 

  외삼촌과 대현의 눈이 마주쳤다. 대현은 외삼촌의 미소에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대현이 민망하다는 표정을 짓자, 외삼촌은 대현의 어깨를 안마하듯 툭툭 두드리다 손을 놓았다. 윤아는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대현에게 자랑을 했다.

 

 

  “나 이제 우리 팀의 수치가 아니야. 그치?”

  “뭔 말을……, 그렇게 하냐.”

  “그럼 너도 이제 날 인정해주는 거야?”

  “몰라.”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좋아하는, 매사에 긍정적인 윤아였다. 외삼촌은 윤아의 모습에 흐뭇해하며 다른 팀에게 가려다가, 효린을 보았다. 효린이 망고 손질하는 게 어설펐다. 외삼촌은 효린의 손목과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하는 요령을 가르쳐주었다. 효린의 얼굴이 한순간에 붉어지더니 효린은 푹 숙여 고개만 끄덕였다. 효린은 지그시 이를 갈았다. 효린의 귀에 윤아의 말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

 

 

  “윤아의 사정을 봐서, 윤아가 받는 포인트는 7점에서 12점으로 올렸어.”

  “외삼촌, 그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돼요. 대현이 말로는 5점 받기도 힘들다고 하던데, 전 고작 삼 주 동안 무려 7 포인트나 받았어요. 더 받기엔 너무 날로 먹는 거 같아요.”

 

  “괜찮아. 이 정도의 포인트를 받는 건 다른 애들도 인정해 줄 거야.”

  “과연 그럴까요. 아직도 저 싫어하는 애들이 있을 텐데.”

 

 

  걱정이 가득한 윤아의 표정을 본 외삼촌은, 난간에 팔을 기대어 밖 풍경을 보다말고 뒤돌아, 난간에 등을 기대었다. 그리고 윤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하루만에 19점이나 감점을 받은 건 네가 한 일 맞지?”

  “네…….”

  “윤아가 말한 고작 삼 주. 그 삼 주 동안 7점이든 12점이든 그 만큼의 포인트를 받은 것도, 네가 한 일이고 네가 한 노력 때문에 받은 거야. 절대 날로 먹은 게 아니야. 외삼촌의 성의를 봐서라도 12점을 받아줘.”

 

  “알겠어요. 나머지 7점은 꼭 월말평가에 TOP 5로 들어가서 받겠어요. 나, 오늘 외삼촌의 모습을 보고 꼭 마스터의 자리에 오르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마스터의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많은데도?”

  “그 만큼의 각오는 되어있어요.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할 거예요.”

 

  “그래, 열심히 해봐. 그 각오로 미친 듯이 해봐. 아무리 천부적인 재능이 있더라도 노력이 없다면 절대 꼭대기에 오를 수 없어.”

 

 

  ‘넌 가능성이 있으니까. 네 아빠가 할 수 없었던 일을 해내고 말 거니까.’

 

 

  “오늘 집에 가면 대현이랑 규동이한테 항상 도와줘서 고맙다고 케이크를 만들어 줄 건데, 외삼촌 것도 만들어 드릴게요. 오늘은 일찍 집에 오실 거죠?”

  “당연하지. 지금 가서 서류 정리하고 일찍 갈게. 우리 윤아가 만드는 디저트 꼭 먹어보고 싶다.”

  “실망 드리지 않게 열심히 만들어드릴게요!”

 

  “그래, 그래. 아참, 노트는 찾았어?”

  “아뇨. 다른 애들도 같이 찾아주고 있어서 곧 찾게 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있었던 곳이 어딘데?”

 

 

  리하는 복도로 나와 파티쉐 전용 계단으로 가려는 참에 우연히 듣게 되었다.

 

 

  “마스터가 임윤아의 외삼촌이라……. 이거 재밌겠네.”

 

 -

 

  대현과 윤아는 서로 지각했음에도 남 탓을 하며 출근하느라 시끌벅적했다. 규동은 그저 웃으며 둘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윤아가 조리실에 발을 디딜 때였다. 리하가 윤아를 보자마자 다가와, 윤아의 가방을 뺏어 뒤지기 시작했다. 윤아가 당황하며 그만 하라고 소리쳤지만, 리하는 꿋꿋하게 뒤지며 밝히라는 아리송한 말만 했다. 보다 못한 규동이 리하의 손목을 잡아 힘주었다.

 

 

  “그만 둬. 함부로 윤아의 가방 건들지 마. 대체 뭘 밝히라는 거야?”

 

 

  주변에서 파티쉐들이 저마다 수군거렸다.

 

 

  “너희 둘. 임윤아한테 속고 있어.”

  “뭐?”

  “쟤 노트 잃어버린 거, 자작극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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