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무슨 할 말?”
“임윤아의 퇴사를 요청합니다.”
외삼촌은 자신의 귀를 의심해야만 했다. 안경을 벗고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옆에 위치한 탁자로 향했다. 탁자의 위에 있던 물건을 치우고 난 뒤, 의자에 앉아 대현을 상대편 의자에 앉혔다. 외삼촌은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얘기했고, 대현은 오늘 있었던 모든 일을 얘기했다.
“윤아는 출근한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어. 아직 숙련되지 않아서 그럴 거야.”
“아무리 초보라고 해도 여태껏 파티쉐들 중에 그 정도로 심한 사람은 없었어요. 김효린이라면 모를까. 그래도 걔는 만들 줄 아는 디저트라도 많지, 노력도 열심히 하지. 그런데 임윤아는 테스트 때만큼의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어요. 그저 덤벙거리기만 했다고요.”
“네가 조금만 이해해주라. 응? 윤아도 나름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중이잖니.”
“아뇨. 제 눈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어요. 언제까지 조카라고 그렇게 신경 써주실 건가요? 그렇게 치면 다른 파티쉐들은 억울하잖아요. 자신의 노력으로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걘 너무 쉽게 여기까지 와버렸어요. 전 그런 거 용납 못해요. 아무리 마스터의 부탁이라 해도 더는 못 도와줘요.”
“그래, 이해해. 네가 싫어하는 짓을 내가 무리하게 부탁하고, 그렇다고 이유를 말해준 것도 아니라서 미안하긴 한데……, 다 이유가 있어서 그래.”
“그 이유가 뭐기에 자꾸 저더러 시키는 건가요?”
외삼촌은 입을 꾹 다물었다. 대현은 이 상황이 무척 싫었다. 가끔마다 이상한 표정을 짓고, 알 수 없는 말만 하면서 툭하면 웃는 윤아가 이상했다. 아빠라고 해도 될 만큼 각별히 신경 쓰는 외삼촌도 이상했다. 밑도 끝도 없이 자신에게 하는 부탁은 더더욱 그러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저로서는.”
“미안하다. 괜히 복잡하게만 만들어서.”
“형편없는 애는 저희 팀에 필요 없어요.”
“형편없지 않아!”
외삼촌은 자신도 모르게 대현의 말을 잘랐다. 그러고는 갑자기 머리를 긁어대기 시작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게, 대체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몰랐고, 이렇게 빨리 말하는 날이 올 줄 몰랐다. 마음 같아선 나중에 기회가 생길 때 말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계속해서 무작정 부탁을 해서도 안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하필 싫어하는 짓을 부탁하는 것도 모자라 현재의 윤아의 상태를 돌봐달라니, 대현이 화낼 이유는 충분했다.
“몇 달에 한 번씩 월말평가 때 오는 평가원 기억나?”
“네. 마스터와 각별한 사이라고…….”
“걘 매제야.”
“여동생의 남편이요?”
“더 엄밀히 말하자면 윤아의 아빠지.”
“네?”
6년 전, 그러니까 윤아가 열여덟 살 때의 일이었다. 윤아는 여태껏 살면서 아빠와 얘기를 나눈 적이 크게 없었다. 오히려 윤아가 눈치를 보고 살았고, 매번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 해결하곤 했다. 그럴 때와 늘 자신과 비교되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윤아의 오빠인 유영이었다. 유영은 윤아와 같이 대대로 물려지는 요리에 관련된 직업을 희망했다. 유영과 윤아를 비교했을 때, 윤아의 실력은 유영보다 훨씬 우월했으나, 아빠는 유영을 더 챙겼다. 은밀한 기대는 윤아에게 향했으면서 진정 챙겨주고 뒤에서 밀어줬던 대상은, 딸인 윤아가 아니라 아들인 유영이었다. 유영이 요리 학원을 다니고 싶다면 그 다음 날 다니게 해줬고, 윤아가 다니고 싶다고 용기 내어 말하면, 아빠는 단칼에 안 된다고 거절했다. 엄마는 아빠보다 박하지는 않지만 윤아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
윤아는 그런 가족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유영에게 가끔 질투를 느낄 때가 있었지만 유영에게 반감을 느끼는 정도까진 아니었다. 다만 가족이란 울타리에서 자신의 위치가 동떨어진 기분이 들 뿐. 결국 윤아는 매번 집에서 하는 연습은 너무나 좁은 범위의 공부이니, 직접 빵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배우겠다고 다짐했다. 아빠 몰래 하는 일이라서 조마조마 했던 일은 많았지만, 덕분에 많이 배웠고 평소에 좋던 실력에서 더욱 향상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빵집에서 화재가 났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탈출했는데 윤아 혼자만 탈출하지 못했다. 주위에선 불길이 치솟았고, 물건들이 하나둘씩 불타 쓰러졌다. 탄 냄새는 빵집 안에 자욱했고, 윤아는 연기를 계속 마신 터라 정신을 잃었다. 다행이도 소방관이 뒤늦게 와서 윤아를 구해 병원으로 옮겼다.
놀랍게도 윤아는 화상은 물론 피부에 그을린 곳 하나 없었다. 그렇지만 그 후로 후유증에 시달려야만 했다. 불만 봐도 발작을 일으킬 정도의 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가 생겼다. 윤아의 가족은 윤아를 찾았고, 아빠는 윤아가 다시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못하도록, 요리에 관련된 일은 절대 하지 못하도록, 공부에만 열중해서 평범한 대학에 졸업해, 중소기업에 취직할 것을 강조했다. 윤아는 파티쉐의 꿈을 저버리지 못하고 끝까지 하겠다고 말했지만, 윤아의 몸이 버텨주지 못했다. 갈수록 장애의 증상이 심해졌고, 쇠붙이를 잡거나 오븐을 볼 때마다 일종의 환상통을 느끼거나 심각한 경우엔 정신을 잃곤 했다. 길게 물어지는 증상으로 인해 어릴 때의 기억도 흐릿해졌고, 기억이 있다한들 신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뒤죽박죽이었다. 그렇게 있다고 믿었던 친구들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마저 차츰차츰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윤아가 성인이 되던 해. 평범한 대학에 졸업해 기업에 취직하기는커녕, 대학도 가지 못했다. 아빠는 무턱대고 자신의 친구가 운영하는 정신 병원에 윤아를 데려갔다. 그리고는 몇 년을 가두다시피 입원시켰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윤아는 자신의 꿈이 뭐였는지, 자신의 친구는 몇 명이었는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재능이 무엇인지, 아무런 기억도 찾지 못하고 몇 년 동안 허송세월을 보냈다. 그저 화재 때문에 위험했다는 것, 자신이 약을 통해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뒤, 윤아가 치료에 성공하면서 고등학생 때의 기억이 조금씩 돌아왔지만, 자신의 친구들과 어릴 적의 기억은 끝까지 돌아오지 못했다.
외삼촌은 윤아의 아빠가 스승의 오랜 제자이자, 매제이었으므로, 윤아가 태어날 때부터 지켜봐왔다. 아빠가 챙겨주지 못했던 부분을, 당사자인 윤아도 모를 만큼 뒤에서 열심히 챙겨주었다. 윤아가 파티쉐가 된다고 했을 때, 아빠 몰래 외삼촌이 가르쳐 주기도 했고, 스승이 운영하는 제과제빵 학원에 데려가기도 했다. 그렇게 윤아의 성장을 봐오다,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에 제일 걱정했었다. 윤아 자신이 바랐던 꿈이 사라졌다 했을 때, 윤아가 소소한 케이크를 만들면서 했던 노력과 재능도 같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떻게든 윤아를 돕고 싶었고, 자신의 매제이자 제자 동지인 윤아의 아빠처럼, 쉽게 파티쉐의 꿈을 포기해버리는 일을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윤아가 꿈을 되찾았을 무렵, 자신이 운영하는 로제와인에 윤아를 스카우트 했다.
“윤아는 6년이란 공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좋던 재능이 있어도 자각하지 못해. 게다가 몸도 둔해져서 다시 적응을 하려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해. 하지만 윤아의 아빠는 윤아가 파티쉐가 되는 걸 정말 싫어해. 조만간 이 사실이 알게 된다면 해외 출장에 돌아오자마자 윤아를 찾으러 로제와인으로 올 거야. 분명 그러겠지. 네가 감히 뭘 하겠냐고, 그럴 자격도 능력도 없으니 애당초 때려치우라고. 그 전에 윤아의 재능을 되찾아 최대한 실력을 끌어올려야해. 윤아의 아빠가 아무 소리도 못할 만큼.”
“……그래서 저한테 부탁한 건가요?”
“그것도 그렇지만, 윤아는 제일 중요한 시기인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기를 놓쳤으니까 친구도 거의 없다고 봐. 6년이란 공백 동안에 많은 게 바뀌어버린 사회를 적응 못하는 건 당연해. 고작 할 수 있는 거라곤 중학생이 할 수 있는 생활에 그쳐. 어릴 적 내게 했던 응석들, 가족에겐 할 수 없었던 응석들이 스물네 살에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어. 몸도 마음도 어린 시절에 머물고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윤아와 같은 나이인 너와 친구들이 도와줬으면 해. 윤아가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너는 로제와인에서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한시라도 빨리 재능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미안하다, 밑도 끝도 없이 부탁한다고만 윤아를 맡겨서.”
“저보다 더 한 실력자가 한 명 있잖아요.”
대현은 괜히 투덜대며 말했다. 외삼촌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너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내가 너를 더 신뢰한다면 그걸로 된 게 아닐까?”
“뭔 말이라도 못 하신다면.”
“윤아 옆에서 아주 조금만 도와줘도 괜찮아. 지켜봐봐, 윤아의 노력하는 모습과 성장하며 다시 자신의 재능을 되찾는 모습을. 분명 너한테도 도움이 많이 되고, 가만히 지켜보면 뿌듯하고 기특할 거야.”
대현은 더 이상 투덜대지 않았다. 윤아에 대해 더 언급하지도 않았다. 외삼촌이 넌지시 웃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자신의 손으로 시선을 돌렸다.
“일단 알겠습니다.”
대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 문을 열었다.
“비밀로 해줄 거지?”
대현은 눈을 아래로 깔다가 외삼촌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애를 완전히 인정하는 건 아니에요.”
외삼촌은 씩 웃고는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대현이 한숨을 쉬며 서재에서 나갔다. 서재에서 나가자마자 갓 씻고 나온 윤아와 마주쳤다. 윤아는 주뼛거리며 대현의 눈치를 살폈다. 대현은 그런 윤아를 무시하고는 거실 소파에 앉았다. 윤아는 그제야 대현의 옆을 스쳐지나 서재에 들어갔다. 외삼촌이 윤아를 다시 맞이했다.
“외삼촌, 저어……, 벌점 15점 받으면 얼마동안 활동 정지죠?”
“너 벌점 19점 받았지?”
“어, 그걸 어떻게……?”
윤아는 당황한 표정을 짓다 금방 풀이 죽은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 대현이 서재에서 나간 걸로 보아 이미 외삼촌과 얘기를 한 것 같았다. 애써 자신을 로제와인에 스카우트 해준 외삼촌에게 기대를 저버리는 행동만 한 것 같아, 윤아는 도저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고개를 들지 않은 탓에 외삼촌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외삼촌의 목소리는 불안할 정도로 차분했다.
“윤아.”
“네.”
“네 경솔한 행동은 대현에게 잘 들었다. 너는 비록 벌점 20점은 아니지만 그에 가까운 19점이었고, 손님들과 파티쉐에게 평판을 들었다. 게다가 대현이 네가 퇴사하길 청했다.”
“네.”
“너는 실격이다. 아무리 네가 내 조카라고 해도 룰은 룰이야.”
“죄송합니다…….”
“……라고 다른 사람들이었으면 이미 잘리고도 남았지만 넌 아직 로제와인을 그만 두기엔 하루 밖에 일 안 했으니까 한 번만 눈감아 줄게. 대현이랑도 좋게 얘기 끝났으니까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이제.”
“정말요?”
“그럼, 당연하지. 다만 3주 동안은 일을 할 수 없어. 벌점은 15점 초과 했으니까. 대신 영업시간이 끝나고 청소는 네가 맡도록 해. 청소를 하면서 애들이 어떻게 디저트를 만들고 아이디어를 각색하는지 지켜봐. 그리고 애들이 다 간 시간이나 휴일에는 너 혼자 쓸 수 있도록 해줄게. 이 집에서 요리를 하기엔 너무 좁기도 하고 부족한 재료도 많으니까.”
“정말, 정말 그렇게 해도 돼요?”
“다음부턴 이렇게 안 봐줄 거다?”
윤아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외삼촌을 와락 안았다. 고맙다, 열심히 하겠다, 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외삼촌은 고개를 끄덕이며 윤아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윤아는 빨리 내일이 된다면 좋겠다고 말한 뒤 서재에서 뛰쳐나갔다. 거실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던 대현과 눈이 마주쳤다. 대현은 책을 보며 무언가를 아주 골똘히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윤아는 대현을 향해 바보처럼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고마워.”
“뭐가?”
“네가 날 봐준 만큼 내가 더 열심히 할게. 더 잘할게.”
대현은 콧방귀를 뀌며 책장을 넘겼다.
“말만 잘한다고 하지 진짜로 보여주는 건 없잖아.”
“기초부터 공부할거야.”
“그 많은 기초 몇 주 만에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 해. 지킬 수 있는 만큼만 말하라고. 괜히 의욕만 세워서 망신보지 말고. 연습이든 공부든 뭐든 할 거면 확실하게 해야지 띄엄띄엄 대충 해서 될 문제 아냐.”
“누가 언제 대충 한데?”
대현은 책장을 넘기려다 말고 멈췄다. 윤아가 말하는 중간에 고갤 들어 윤아를 쳐다보았다.
“나는 대현이 네가 인정할 때까지, 아니 네가 인정하고 나서도 열심히 할 거야.”
대현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책장을 넘겼다.
“미리 말해두는데 잔머리 굴릴 거면 때려치우는 게 좋을 거다.”
여태껏 로제와인에서 앞으로 잘 하겠다고 해놓고 도망치거나 비겁한 짓을 해온 사람들이 많았다. 대현은 그런 사람들에게 꼭 하던 말이 있었다.
‘지름길이 있는 줄 아나 본데.’
“지금 당장은 연습만이 내가 살 길이야.”
‘연습만이 네가 살 길이야.’
대현은 자신의 생각과 윤아의 말이 일치하자 놀랐는지 눈을 크게 떴다. 한순간의 정적이 흘렀다. 대현은 윤아에게 맘대로 하라고 말했다. 윤아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대현을 지나쳐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얼마간 책을 보고 있었을 때, 대현은 무언가 문득 떠올랐는지 그 충격에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