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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스물넷
작가 : 펙트
작품등록일 : 2016.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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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착한 건지 둔한 건지
작성일 : 16-09-10     조회 : 265     추천 : 5     분량 : 9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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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

 

 

  “대현아, 대현아, 쟨 왜 또 여기 왔어?”

 

 

  로제와인 디저트 뷔페의 디너 타임. 리하가 대현에게 팔을 두르면서 윤아를 가리켰다. 리하는 놀란 것도 놀란 거지만 못마땅해 하는 눈치였다. 윤아는 파티쉐들에게 기운차게 안녕, 하고 인사했다. 몇몇 파티쉐들은 윤아의 행동에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어제 그 일을 벌여놓고도 조리실에 발을 들여놨다는 것에 뻔뻔하다고 생각했다. 윤아는 어색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최대한 웃어보였지만 크게 효과는 없는 듯 했다.

 

 

  “윤아야,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

  “나 당분간은 재료에 손도 안 댈 테니까 걱정 마. 난 단지 청소하러 왔어.”

  “청소?”

  “으응, 영업시간이 끝나면 너네는 바로 집 가면 돼. 내가 청소하면 되니까.”

 

 

  윤아의 말에 규동은 걱정스러웠다. 할 말도 많고 물어볼 것도 많은데 무엇부터 물어봐야할지 몰랐다. 다른 파티쉐들은 윤아를 보며 저끼리 웅성거렸다. 여전히 대현에게 팔짱끼던 리하는 어이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다 곧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슬쩍 웃어댔다. 대현은 그런 리하를 밑으로 내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리하는 대현이 무슨 뜻으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몰랐을 뿐더러, 대현이 그런 행동을 한 건지도 몰랐다. 대현은 거슬린다며 리하의 팔짱을 뺐다. 규동이 다시 말을 이었다.

 

 

  “너 혼자서 괜찮겠어?”

  “어제도 했는걸. 나 고등학생 때도 청소 일부러 안 했는데 여기서 다 해보겠다.”

 

 

  윤아는 농담을 하며 헤실헤실 웃어댔다. 대현은 그 말에 콧방귀를 꼈다. 자신이 매번 심한 말을 했는데도 저렇게 웃을 수 있다는 게 이상할 따름이었다. 게다가 윤아는.

 

 

  “고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으면서…….”

 

 

  대현은 아차, 하며 급하게 입을 다물었다. 스스로도 놀랐는지 동그랗게 뜬 눈으로 윤아를 쳐다봤다. 윤아도 여간 놀랐는지 멍하게 대현을 바라봤다. 대현은 헛기침을 하다가 빨리 만들기 시작하라고 말했다. 파티쉐들은 일사분란하게 다시 빵을 굽기 시작했고, 윤아는 복도에 서서 통유리 너머로 그들이 빵을 만드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만드는 순서나 반죽하는 형식이나 장식하는 방법을 꼼꼼히 지켜봤다. 리하가 다 된 케이크에 과일로 장식을 할 때, 문득 윤아가 생각이 나서 고개를 들었다. 윤아는 대현이 만드는 초코 무스 케이크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대현과 무심결에 눈이 마주했는데, 대현은 민망한 듯 다시 시선을 내렸다. 리하는 도저히 못 참겠다는 식으로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어느덧 폐관 시간이 되었다. 대현은 조리실에 나타나야할 윤아가 보이지 않자 심술궂은 표정으로 조리실에서 나갔다. 그러니 바로 윤아가 보였다. 윤아는 자기도 모르게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 밀대를 지지대로 삼아 졸고 있었다. 대현은 발로 윤아의 발끝을 툭툭 쳤다. 윤아는 깜짝 놀라 어깨를 들썩이며 잠에서 깨어났다. 밤새 뭘 했던 것인지 많이 피곤해보였다. 대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윤아는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청소를 하겠다며 부랴부랴 조리실로 들어갔다.

 

  조리실에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윤아는 눈을 쉴 새 없이 깜빡거리며 잠에서 깨어나려 노력했다. 그 다음 설거지를 비롯해 바닥을 쓸고 닦았다. 6년간 몸을 크게 움직이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힘이 부쳐 쉬었다 청소하기를 반복했다. 청소를 다 하고 났을 땐,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잠시 쉬려는 듯 자리에서 주저앉다가 다시 일어섰다. 기지개를 쭉 켜고 싱크대 옆에 놔뒀던 공책을 펼쳤다. 아까 폐관 시간이 되어 사람들이 갈 때, 효린이 윤아를 불러 주었던 공책이었다. 자신이 신참이었을 때 이 공책을 보면서 꾸준히 연습했다며, 윤아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준 것이었다. 여태껏 파티쉐들의 월말평가에서 선정되었던 디저트와 레시피, 심지어 이번 달에 만들고 있는 디저트의 레시피도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꼼꼼히 봐왔던 부분과 조금씩 다른 부분이 눈에 들어올 때는 신기하기도 하고, 새로 배운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윤아는 재료를 꺼내고 연습을 시작했다. 계속 덤벙거리는 바람에 실수의 연속을 거두었지만 아주 조금씩 자세가 나오기 시작했다.

 

  윤아가 집에 도착했을 땐 집 전체에 불이 꺼져있었다. 윤아는 사람들이 잠에 깨지 않도록 조용히 씻고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 위에 뛰어들며 한 바퀴를 굴렀다. 온몸이 쑤셨다. 특히 어깨와 팔이 아팠다. 스스로 어깨를 주무르며 공책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오늘 만든 것을 복습하며 사소한 재료의 양까지 외웠다. 그런데 얼마 가지 못해 윤아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평소 이상으로 무리하게 움직인 것도 모자라, 갑작스레 공부하려니 마음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슬며시 침대에서 일어나 테라스로 향했다. 파라솔에 매달린 조명이 켜져 있었다.

 

 

  “어? 규동아, 여기서 뭐해?”

  “안 잤어?”

  “잠이 안 와서 나왔어. 이건 뭐야?”

  “아이디어 노트야.”

  “아이디어 노트?”

 

 

  윤아는 효린이 자신에게 준 노트와 같은 건인가, 궁금하여 규동의 옆에 앉았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윤아의 행동에, 규동은 흠칫 놀라다가 윤아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윤아는 마냥 호기심에 가득 찬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이디어 노트라는 건, 월말평가를 위한 거야. 윤아는 아직 로제와인에 온지 얼마 안 돼서 잘 모르겠지만 월말평가는 매 달마다 있는 평가야. 월말 평가 때마다 주제가 있기 마련인데 대부분의 월말평가 때는 새로운 자신의 순수 창작 디저트를 평가해서 몇몇 개를 선발해. 그리고 지난달에 실적이 별로 없었던 디저트를 없애고 새로운 디저트를 새로운 메뉴로 선정해. 좋은 디저트를 만들기 위해서 직접 배우고, 느끼고, 생각난 것을 노트에 메모를 해놓는 거야. 그렇게 하다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되고 더 멋진 디저트를 만들 수 있어. 월말평가는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포인트를 받고 그랑프리 대회 참여권을 가질 수 있어.”

 

  “정말 복잡네. 매 달마다 어떻게 그걸 다 생각해? 나올 아이디어는 있어?”

  “가끔 귀찮거나 힘들 때도 있지만 나름 하다보면 재미있어. 포인트를 받기엔 이게 제일 짭짤하거든. 내 거 한 번 볼래?”

  “네 아이디어인데 봐도 돼?”

 

 

  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는 규동을 보고는 곧바로 노트를 펼쳤다. 월말평가에 합격했던 디저트도 있었고 불합격한 디저트도 있었지만, 윤아의 눈엔 모두 굉장한 디저트였다. 다 둘러볼 때 쯤, 언뜻 대현도 노트에다 무슨 그림을 그렸던 것이 떠올랐다. 윤아는 그 노트가 아이디어 노트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포인트를 순식간에 많이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월말평가라는 사실에 솔깃했다. 3주 동안 꼬박 청소를 해서 받는 포인트가 고작 5 포인트인데, 이번 월말평가를 노릴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라는 생각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계속 팔을 주무르네……, 내가 해줄게.”

  “아니, 안 그래도 괜찮……, 은데.”

 

 

  규동은 윤아의 팔을 주무르며 안마를 해주었다. 윤아는 나른해졌는지 규동이 안마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윤아가 생각하기에 규동은, 섬세하면서도 대현과 다르게 친절한 것 같았다.

 

 

  “윤아야, 청소는 힘들지 않았어? 꽤 늦게 들어온 것 같은데, 위험하게.”

 

  “계속 조리실에 있었어. 청소를 다 하고나서 하루 빨리 팀에 복귀하려면 아니, 그보다 깎인 포인트를 애들한테 다시 돌려주기 위해서는 내 실력을 빨리 늘려야지. 그래서 연습한다고 늦게 들어왔어. 앞으로도 그럴 거야.”

  “청소랑 연습을 병행하면 힘들지 않을까……. 보아하니 너 잠도 안 자고 방에서 계속 뭘 하는 것 같던데.”

 

  “아, 공부 한다고……. 내가 대현이한테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주기로 했거든. 말로만 말고 직접 보여 달라니까 괜히 의욕이 생기더라.”

 

  “내가 도와줄게.”

  “정말?”

 

  “응. 너 혼자 열심히 한다고 해도 틀린 부분을 또 틀릴 수도 있고, 모르는 부분도 있을 테니까 내가 도와줄게. 현재 로제와인에서 대현이가 제일 잘하지만 나도 나름 뒤처지지 않는 실력이야. 그러니까 내가 도울 수 있는 거라면 다 도와줄게.”

 

 

  6년간의 긴 공백, 사람의 심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존재가 서서히 투명해지는 위험한 기간이었다. 분명 제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어딘가 구멍이 나기 시작한다면 점점 커질 테고, 그 구멍이 자신에게 미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면 위험에 노출되기 쉬울 터. 분명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주위 사람의 힘도 필요할 것이다. 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고 환하게 웃었다.

 

  자신을 도와준다는 규동의 말에, 윤아는 힘을 얻어 더 열심히 공책을 보며 레시피를 통째로 외웠다. 외운 레시피는 사람들이 다 나간 조리실에서 혼자 만들어보고 맛을 평가해보았다. 만약 자신이 만든 디저트가 맛없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처음부터 다시 꼼꼼히 확인했고, 다른 재료를 보충해서 반죽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새벽까지 하고, 청소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날이 밝았다. 외삼촌이 말하는 ‘가족’이 눈치 채지 않도록 목욕을 해서 잠을 깨워 같이 밥을 먹었다. 그들이 출근을 할 때 쯤 방에서 잠을 자는데 두 세 시간 자는 게 고작이었다. 일어나면 다시 공부를 했는데, 종종 빵을 반죽하고 굽는 것을 상상했다.

 

 

  쿵. 쿵.

 

 

  대현이 신경질적으로 계단을 올랐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며칠 새 무리하는 것 같더니만, 이것도 얼마 가지 못하네.”

 

 

  윤아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

 

 

  “야, 안 일어나?”

 

 

  대현이 윤아의 이불을 걷었다.

 

 

  “컨디션 조절하면서 하든가 무식하게 무리하니까 늦잠 자는 거잖아.”

 

 

  윤아는 눈을 뜨지 못한 채 대현의 말에 반응을 하는 것 같았으나, 몸을 잔뜩 웅크리고서는 오들오들 떨었다. 그제야 대현의 눈에 윤아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들어왔다. 몸살이다. 대현이 한숨을 쉬며 다시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냥 자라. 오늘은 나오지 마.”

 

 

  윤아가 그 말에 눈을 부릅뜨며 일어났다.

 

 

  “안 돼. 가야해.”

  “아서라. 그 몸으로 어떻게 공부를 하고 마감 청소를 하냐?”

  “그래도 내가 한다고 했다는 건 마저 해야 해.”

 

 

  대현이 말리려다가 참았다. 굳이 하겠다는 의지를 자신이 꺾는 것은 아닐까, 하며.

 

 

  “대신 힘들면 집 가. 택시비 줄 테니까.”

 

 

  런치 타임이 끝나 파티쉐들이 교대로 디너 타임을 준비하거나 식사를 하고 있었다. 윤아는 서둘러 청소하는 것을 도우며 남은 반죽이나 크림의 맛을 보았다. 이틀 전엔 아이디어 노트를 만들어 궁합이 맞는 맛들을 골라 적기도 했다. 윤아가 가끔 모르는 것이 있으면 규동에게 물어 해답을 찾기도 했다. 윤아의 노력하는 모습에, 규동은 점점 더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심지어 개인적인 시간이나 밥 먹는 시간에도 따로 윤아와 둘이서 만나 가르쳐 주기도 했다. 대현은 그런 윤아를 뒤에서 몰래 지켜보곤 했다. 처음엔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좀 더, 좀 더, 라며 윤아를 속 몰래 응원하고 있었다.

 

  디너 타임 때 윤아는 피팅룸 소파에 기대어 쉬고 있었다. 대현이 바쁜 와중에 피팅룸에 들어왔다. 말없이 윤아에게 조그마한 유리병에 든 쌍화탕을 건넸다. 윤아가 아무 생각 없이 받다가 뜨거워서 자신의 옆 소파 빈자리에 던졌다. 대현이 순간 윤아를 노려보았다.

 

 

  “던졌냐?”

  “앗, 미안. 미안. 뜨거운지 몰랐어.”

  “전자레인지에 돌렸으니 그렇지.”

  “웬 거야?”

  “몸살.”

 

 

  대현은 시간 없다는 듯 일방적으로 윤아에게 택시비를 건네며 말했다.

 

 

  “이제 집 가. 마감 청소는 나랑 규동이 둘이서 할 거니까.”

  “뭐? 안 돼.”

  “배려해줄 때 곱게 집 가라.”

 

 

  대현은 피팅룸 문을 열며 다른 한 손으로 손을 휘젓고는 가버렸다. 윤아는 쌍화탕을 입김으로 불어 식히고 맛보았다. 으웩, 미간을 찌푸리며 목을 뒤로 뺐다.

 

 -

 

  윤아는 새벽까지 부엌에서 마카롱을 만들고 있었다. 자신이 만든 마카롱의 맛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때, 윤아의 옆에서 한 손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마카롱을 집었다. 윤아는 놀란 가슴에 몸을 움찔거리며 고갤 올렸다. 대현이었다. 대현은 마카롱을 한 입 베어 물었다.

 

 

  “향이랑 맛이 너무 강해.”

  “그치?”

  “먹다가 거부반응 올라오겠다.”

  “그 정도야?”

 

 

  대현과 윤아의 눈이 마주쳤다. 대현은 입을 꾹 다물다가 자리에 앉아 윤아의 아이디어 노트를 살폈다. 그리고는 하나씩 지적하며 말했다.

 

 

  “마카롱에 풍미를 더하는 재료들은 아몬드 파우더에 혼합하는 방법과 머랭에 혼합하는 방법이 있어.”

 

 

  윤아는 잠시만 기다려달라며 급하게 대현의 말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아몬드 파우더엔 수분이 적은 재료를 넣고, 머랭에는 식용색소 같이 다소 수분을 함유하고 있는 재료를 넣어도 상관없어. 맛과 향은 은은하게 즐길 수 있도록. 이렇게 무식하게 많이 때려 넣지 말고!”

 

 

  그 시점부터였다. 대현이 윤아에게 다그치면서까지도 옆에서 계속 남아 마카롱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윤아는 입을 삐죽 튀어내며 중얼거리다가 대현의 눈초리를 받으면 다시 말 없이 대현의 말을 빠짐없이 필기했다. 윤아의 엄청난 집중력에 대현은 윤아를 빤히 쳐다보았다.

 

 

  ‘엄청난 얼굴.’

 

 

  대현이 윤아의 이마에 손을 짚었다. 윤아가 필기를 멈추고 뭐하는 거냐고 물었다. 대현은 윤아의 몸살이 나았다는 걸 알고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마저 마카롱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윤아는 조금은 붉어진 볼을 머리카락으로 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

 

  파티쉐들은 처음엔 윤아가 자꾸만 바쁜 모습만 보여주니, 일부러 하는 짓인 줄 알았다. 그래서 뒷담 아닌 뒷담을 나누었는데, 특히 리하가 그 뒷담을 주도했다. 부쩍 규동과 가까워졌고, 명수와 효린과도 친해진 것도 모자라, 대현과 자주 있는 모습이 비춰지자, 리하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윤아가 하던 청소를 방해하거나, 견과류 분태를 일부러 쏟기도 했다. 초콜릿은 식기에 굳어버리면 설거지하기가 번거로워지는데, 일부러 초콜릿을 가득 남겨 굳혀놓기도 했다. 한 날은 윤아가 복도에 쭈그려 앉아, 아이디어 노트에 그림을 그렸을 때였다. 리하가 지나가면서 윤아의 발에 걸려 삐끗한 척을 하며, 들고 있던 물 컵을 윤아의 노트에 쏟아 붓기도 했다. 그 때문에 윤아의 아이디어 노트가 물에 흠뻑 젖어 번져 못 쓰게 되어버렸다. 윤아는 언제부턴가 자신에게 유독 실수를 하는 리하의 행동을 눈치 채고 있었지만, 오히려 괜찮다며 웃어 넘겼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면 새로운 아이디어 노트를 만들어 쓰기도 했다.

 

 

  “명수야, 미안한데 나 또 질문해도 돼?”

  “뭔데?”

 

 

  명수는 쉬는 시간이라 간신히 앉아서 쉬고 있었는데, 윤아의 부름에 윤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가 무스 케이크를 만들어봤거든? 보통 일반 케이크 시트(빵) 사이에 넣는 크림의 양대로 발랐는데, 무스 케이크용 시트가 자꾸 찢어져. 내가 무스 전용 시트를 잘못 만든 거야?”

  “음, 무스 케이크용 시트가 다른 케이크의 시트보다 지나치게 가벼워서 그래. 가벼운 만큼 시트 사이에 넣는 크림이 무거우면 찢어지는 건 당연하지. 크림은 묽은 샹티 크림(생크림에 설탕을 넣고 휘핑한 크림)이 좋아.”

 

  “아아, 그렇구나.”

 

 

  윤아는 명수가 말하는 대로 노트에 적었다. 그 때,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파티시엘이 끼어들었다.

 

 

  “크림은 아무 크림을 넣어도 상관없지 않아? 어느 정도 부드럽게만 만들면 될 걸?”

  “아니거든. 내가 먹어 보기엔 샹티 크림이 좋았어.”

  “그건 네 주관적인 생각이고.”

 

 

  윤아는 서로 시비 거는 파티시엘과 명수를 지켜보다, 파티시엘에게 시선을 두었다. 저 파티시엘은 분명 리하와 같이 어울려 다니는 파티시엘이었다. 무슨 악감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은근히 윤아를 괴롭혔다. 그런 파티시엘이 자신에게 가르쳐 주다니, 윤아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대현 역시 파티시엘의 행동이 의외였는지 상황을 지켜보았다. 아니, 더 자세하게 얘기하자면 윤아를 지켜보았다. 최근 들어 부쩍 조리실의 분위기가 바뀐 것 같았다. 점점 긴장이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절대 나쁜 의미는 아니었다. 윤아의 주변에서 뭔가가 조금씩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윤아를 시기했던 파티쉐들이 어느새 윤아가 모르는 부분을 가르쳐주거나, 서로 논쟁을 하며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노력을 하지 않고 대충 디저트를 만들었던 파티쉐에게도 부쩍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물론 마냥 긍정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 리하를 포함해 몇몇 사람들은 치밀하게 박차고 오르는 윤아를 경계하기도 했다.

 

  윤아는 모두와 얘기를 나누는 게 좋아서 사람의 얼굴과 순간적인 표정을 관찰했다. 그 순간 머리가 새하얘져 멀쩡히 자리에 앉은 상태인데도 몸을 휘청거렸다. 대현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티가 나지 않게 한 손으로 윤아의 등을 떠받쳐 주었다. 윤아는 고개를 세게 휘저으며 정신을 차린 뒤 대현을 올려다보았다. 대현과 윤아의 눈이 마주쳤다. 윤아의 얼굴은 그새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입술에는 핏기가 없었다.

 

 

  “너 잠 얼마나 잤어?”

  “응? 많이 잤어.”

  “얼마나 잤냐고.”

  “두 시간……, 한 시간 정도? 헤헤.”

 

  “멍청아, 몸 다 상해. 잠은 충분히 자란 말이야. 파티쉐의 기본은 체력인데, 아직 실력도 없는 게 체력마저 없으면 어떡하자는 거냐.”

  “미안해…….”

 

 

  대현은 뜬금없이 사과하는 윤아의 말에 괜히 저 혼자 마음이 찔렸다. 윤아의 말투가 소심했지만 진지했기 때문이었다.

 

 

  “정말 미안해. 나 때문에 포인트 많이 깎여서. 나 확실히 실력도 없고 덤벙대서 우리 팀에게 피해를 많이 줬지만, 이제부턴 정말 열심히 할게. 미안해. 내가 고작 하는 게 미안하단 말에 웃는 거라서, 미안해…….”

 

 

  윤아는 자기 할 말만 말한 채 눈을 감았다. 윤아의 고개가 점점 앞으로 치우치자, 대현이 자신의 어깨를 빌려주었다. 윤아는 얕게 실눈을 뜨며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윤아는 대현에게 많은 것을 물어보고 싶었다. 왜 그 때 말없이 가버렸는지, 왜 그 동안 연락이 없었는지.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건지.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짓는 대현을 보니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윤아는 다시금 눈을 감았다.

 

  윤아와 대현의 앉은키가 꽤나 차이나서 그런지, 윤아의 꺾인 목이 아파보였다. 대현은 괜히 투덜거리며 허리를 살짝 구부렸다. 항상 어리바리한 게 답답해 보였던 윤아가 조금은 안쓰러웠다. 자신은 윤아의 과거에 뭣도 모르고 했던 막말이었는데, 윤아는 그 모진 말들을 조용히 받아주고 있었다.

 

 

  “이게 착한 건지, 둔한 건지.”

 

 

  대현은 살며시 눈을 감은 윤아를 바라봤다.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윤아의 이름을 되뇌다 멈추었다.

 

 

  ‘간만에 재회했으면 좀 더 건강하게 왔어야지.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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