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규동은 대현의 말에 놀라다가 슬쩍 웃었다. 대현은 그렇게 웃지 말라며 설거지를 끝내자마자 고무장갑을 벗었다. 규동은 웃다 말고 화장실에 갔다 온다며 조리실에서 나가갔다. 윤아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자신의 앉은키에 비해 높은 조리대 때문에 목이 아팠다. 윤아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베개로 삼았던 노트를 보았다. 노트는 쭈글쭈글해진 상태로 빳빳해졌다. 윤아는 노트를 손바닥으로 쓸어 펴면서 젤리 레시피와 한천 레시피를 번갈아 보았다. 그 순간 자신이 무엇을 하다가 잤는지를 떠올렸다. 윤아는 코로 냄새를 맡다가 급히 일어나, 조리실 안에 좁게 배치된 오븐 룸으로 뛰어갔다. 수많은 업소용 오븐들 사이에 시커먼 연기를 내는 오븐이 보였다. 탄 냄새가 진동했다. 롤케이크를 자르던 대현도 탄 냄새를 맡았다.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악!”
대현은 윤아의 비명에 칼을 도마 위에 내팽겨 치고 오븐 룸으로 뛰어갔다. 시커먼 연기가 보일 정도 오븐 안의 빵이 타고 있었다. 대현은 급히 오븐 룸의 전기 차단제를 내렸다. 윤아는 자리에 주저앉아 벌벌 떨었다.
“너 지금 장난해? 오븐에서 연기가 뿜어 나올 동안 뭐 한 거야!”
윤아는 말을 길게 늘어뜨리기만 했다. 대현이 언성을 높였다.
“똑바로 말 안 해? 빨리 안 일어서?”
“어…….”
윤아는 대현의 지시를 따라 하기는커녕 그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 몸을 덜덜 떨며 머리를 흔들었다. 대현은 화를 내며 조리실에서 마른 수건을 가져와 오븐을 열었다. 연기가 대현의 얼굴을 스쳐지나 천장으로 올라갔다. 대현은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오븐 팬을 꺼내 바닥에 던졌다. 탁, 큰 소리가 나면서 동시에 울려 퍼졌다. 새까맣게 탄 빵이 윤아의 손끝에 닿았다. 윤아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몸을 웅크렸다. 오븐 룸 입구에서 규동이 팔로 코를 막으며 들어왔다.
“이게 무슨 일이야?”
“내가 미쳤지. 네가 기특하다고 잠시라도 생각했던 내가 미쳤지! 너 이거 얼마동안 방치 해둔 거야? 오븐에서 이렇게 연기가 심할 정도면 얼마나 구운 거냐고! 너 때문에 조리실은 물론이고 로제와인 전체에 불날 뻔 했잖아!”
규동이 상황 파악을 하는 건 그리 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눈을 부릅뜨며 윤아를 닦달하던 대현을 막았다. 대현은 규동의 손을 뿌리치고 탄 빵을 발로 걷어찼다. 윤아의 몸이 더 심하게 떨렸고, 윤아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규동은 대현이 심하게 화내서 놀랬을 거란 생각에, 윤아와 눈높이를 맞췄다. 윤아의 얼굴은 생각보다 많이 초췌했고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규동은 윤아를 감싸 안으며 대현에게 그만하라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대현은 한숨을 푹 쉬고는, 오븐 룸의 문을 열어 연기가 빠져나가게 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윤아를 내려다보았다. 윤아는 규동에게 안긴 채 몸을 더 웅크리고 양 손으로 자신의 귀를 막았다.
“으…….”
윤아의 숨이 좀 더 거칠어졌다. 규동은 놀라서 윤아의 양 어깨를 손으로 짚으며 흔들었다.
“윤아야 왜 그래? 괜찮아? 대현아, 안 되겠다. 일단 오븐 룸에서 나가자. 여기에 더 있어봤자 좋은 건 없어.”
규동은 윤아를 이끌고 오븐 룸에서 나갔고, 대현은 규동보다 앞서 오븐 룸의 문을 열었다. 윤아는 몸을 비틀대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규동은 윤아와 했던 어깨동무를 풀었다. 윤아가 간신히 벽에 손을 짚었고 다른 손으로 목을 감쌌다.
“숫자…….”
“응? 뭐라고? 윤아야 목 아파?”
윤아의 눈에 힘이 풀렸다. 윤아는 몸을 심하게 비틀거리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
“틀림없어.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의 증상이야. 잘 치료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스터,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라니요? 윤아가 과거에 사고를 당했나요?”
외삼촌은 규동의 말에 고개를 좌우로 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현은 벽에 기대어, 윤아가 의식을 잃은 상태로 식은땀을 흘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식은땀이 이마에서 눈썹으로, 눈가로 그리고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규동은 대현을 바라봤는데, 대현이 마스터의 말을 이해하는 눈치였다. 규동은 뭔가 자신만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아의 식은땀을 닦아줄 수건을 가지고 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제가 경솔했습니다.”
“아냐. 이미 지난 일인데 어쩌겠어. 너도 많이 놀랐지?”
“예, 뭐 조금…….”
대현은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다음번에도 윤아가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윤아가 발작을 일으킬 때 숫자를 꼭 세줘.”
“숫자는 왜요?”
“발작 증세가 일어나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윤아가 치료를 받을 적에, 그런 증상이 나타나면 내가 항상 옆에서 긴 호흡에 맞춰 숫자를 세줬거든. 윤아가 그 숫자에 맞춰 안정을 찾았어. 숫자를 세지 않으면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해서 기절을 하니까 조심해야해.”
대현은 외삼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외삼촌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현의 옆에 서서 고맙다고 말한 뒤, 밖으로 나갔다. 대현도 외삼촌을 따라 나가려다 뒤를 돌아봤다. 윤아는 여전히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대현은 발을 돌려 윤아에게 향하려다, 다시 몸을 돌려 방문을 열었다. 때마침 규동이 수건을 들고 왔다.
“윤아 간호 안 해줘?”
“내가 그런 걸 왜 해.”
“그럼……, 내가 할게.”
“그러든지.”
규동은 대현이 나간 것을 확인한 후 윤아의 옆에 있던 의자에 앉았다. 식은땀을 흘리며 미간을 찌푸리는 윤아가 보였다. 규동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꽤나 심각한 상황이란 건 알 수 있었다. 규동이 식은땀을 천천히 닦아줄 때였다. 윤아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규동이 다급하게 상태를 물었지만 윤아는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윤아는 여태껏 규동이 자신을 간호했다고 생각했다. 한 쪽 팔꿈치로 침대를 디디고 일어설 시도를 하자, 규동은 윤아의 행동을 막았다.
“지금은 누워있어. 조금 이따가 약 먹어야 하니까 그 때 앉아. 내가 식은땀 닦아줄게.”
규동은 정성스럽게 윤아의 식은땀을 닦아주었다. 윤아는 힘없이 벽시계를 보았다. 벌써 새벽이었다.
“이제 그만해도 돼. 너 내일 출근해야지.”
“난 괜찮아. 이제 약 먹게 일어나.”
규동은 힘겹게 일어나는 윤아의 몸을 부축해 일으켜주었다. 윤아는 건네받은 물과 약을 먹고 물 잔을 규동에게 주었다.
“윤아야, 어, 이거 굉장히 조심스러운 이야기인데……, 옛날에 무슨 일 있었어?”
정적이 흘렀다. 윤아는 잔뜩 불안해진 표정을 짓고서 산만해졌다. 규동은 윤아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윤아도 잇따라 규동의 손을 꽉 잡았다. 윤아는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규동은 윤아를 안으며 토닥여주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윤아야. 내가 괜한 말을 했어.”
“나야말로 미안해.”
“아니야. 네가 뭐가 미안해. 그래도 다음에 힘든 일이 있으면 맘에 두지 말고 나한테 꼭 말해줘. 알았지? 난 네게 힘이 되어주고 싶어.”
“응.”
그날 아침, 윤아는 눈을 뜨고 손에 뭔가 잡히자 고개를 들었다. 규동은 의자에 앉아 윤아의 손을 잡은 채 잠들어 있었다. 밤새 윤아를 간호해주었던 것이다. 윤아는 다른 손으로 규동을 흔들어 깨웠다. 윤아의 활기찬 모습을 엉겁결에 본 규동은 윤아를 따라 웃으며 일어섰다. 윤아는 자칫하다간 늦을 거라며 규동을 이끌고 방에서 나왔다. 방에서 갓 준비하고 나온 대현과 눈이 마주쳤다.
“왜 둘이 같이 나와?”
“규동이가 날 간호해줬어. 덕분에 다 나았어.”
“규동이 넌 얘가 뭐가 예뻐서 밤새 간호해? 빨리 준비나 해.”
“너 뭔 말을 그렇게 하냐. 내가 뭐가 어때서! 나 이정도면 나름 예쁘…….”
“이런 미친.”
윤아는 민망하다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대현은 혀를 차며 윤아의 머리를 손으로 꾹 눌렀다. 한순간에 윤아를 제지했다. 대현은 그 상태로 윤아의 머리를 돌렸고, 윤아의 몸은 윤아의 머리에 따라 돌려져 규동을 향하게 했다.
“아아, 아파!”
“너 고맙단 인사는 했냐?”
“아. 규동아, 간호해줘서 고마워. 나 들어 올리느라 힘들었지? 나 정말 무거운데…….”
“아, 난 널 간호해줬을 뿐이야. 널 조리실에서 여기까지 업고 데려 온 건…….”
대현이 갑작스럽게 윤아의 머리를 세게 밀었다. 윤아는 몸이 앞으로 쏠려 넘어질 뻔 하다가 겨우 균형을 잡았다. 윤아는 손으로 머리를 비비며 대현을 쏘아보았다.
“아! 야, 도대현!”
대현은 어깨를 으쓱이며 계단으로 내려갔다. 윤아는 규동에게 누가 자신을 업었는지 물었다. 규동은 어색하게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윤아는 대현과 규동을 번갈아보며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
조리실의 파티쉐들은 정신없이 바빴다. 200명씩 두 팀의 손님들 때문에 숨 돌릴 틈도 없이 디저트를 만들었다. 윤아는 복도의 창문을 통해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힘든 게 눈에 띄게 보였는데도 분주하게 디저트를 만드는 모습이 부러웠다. 윤아는 자신의 아이디어 노트를 멍하게 보았다. 대현이 윤아를 불렀다. 윤아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고 자신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대현이 이리 오라는 손짓을 했다. 윤아는 파티쉐들에게 피해가지 않도록 조리실에 들어가다가 리하와 부딪혔다. 리하는 윤아를 쏘아봤다. 윤아는 멋쩍게 웃으며 ‘미안’이란 말을 하며 도망치듯이 대현에게 갔다. 리하는 대현과 윤아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네가 마카롱 만드는 거 도와.”
“나?”
“그래.”
“내가? 만들어? 여기서?”
“그렇게 놀라지 말고, 빨리 옷 갈아입고 손 씻고 내 옆에서 만들어.”
“어, 응! 잠시만 기다려!”
윤아는 설렘 반 걱정 반의 조바심을 가지며 옷을 갈아입고 대현의 옆에 섰다. 찬찬히 주위를 둘러봤는데, 모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명수와 규동은 드디어 때가 왔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효린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리하는 빤하듯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고 다른 파티쉐들은 걱정과 함께 기대에 찬 표정을 지었다. 윤아는 부담을 느꼈다.
“그런데 왜 하필 마카롱이야?”
“마카롱이 인기가 많을뿐더러, 너한테 다른 것도 맡기고 싶지만 불안해서, 제대로 만들 줄 아는 마카롱이라도 만들라고 한 거야. 마카롱 분야는 나 혼자니까 일손이 더더욱 부족해. 너 좋다고 시키는 거 아니니까 더 토 달지 말고 맛 별로 만들어. 이번 기회에 네가 얼마나 연습했는지 보여줘.”
순간적이었다. 대현이 살며시 웃는 것은. 어쩌면 이번이 처음이었을 지도 몰랐다. 윤아의 표정은 점차 밝아졌다. 뭔가 용기를 받은 기분이었다. 윤아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현과 같이 마카롱을 만들었다. 윤아가 손목의 힘이 약한 바람에 대현이 여러 가지 맛의 반죽을 하면, 윤아는 그것을 짤주머니에 넣어 오븐 틀에 짰다. 그 후에 둘이서 오븐 룸에 가서 꼬끄를 굽고, 다시 다른 반죽을 하는 것을 반복했다. 윤아와 대현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일정하고 빠르게 꼬끄 반죽을 짰다. 같은 팀인 명수와 효린은 그 모습을 잠시 동안 멍하게 바라봤다.
드디어 런치 타임이 끝났다. 삼 십 분 동안의 휴식이 주어졌다. 파티쉐들은 녹초가 되어 의자에 앉아, 탁자에 늘어지듯 엎드렸다. 대현과 명수는 간신히 의자에 꼿꼿이 앉은 상태였다. 윤아는 생생하다는 걸 증명하듯 혼자 왔다 갔다 하기에 바빴다. 결국 대현에게 정신 사납다고 혼쭐이 났다.
“명수야, 나 또 질문해도 돼?”
“지금?”
“안……되겠지?”
“아냐 돼. 뭔데?”
명수는 뻐근한 목을 몇 번 돌린 뒤, 윤아의 질문에 성의껏 대답했다. 윤아는 그것을 필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매번 이렇게 알려줘서.”
“아냐. 너 진짜 열심히 하네. 보기 좋다.”
“헤헤, 고마워. 나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서…….”
윤아는 순간적으로 대현을 쳐다봤다. 대현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실력을 키워나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대현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윤아는 괜히 대현을 의식했다는 생각이 들어 뒤통수를 긁적였다. 대현은 콧방귀를 뀌며 딴 곳을 쳐다보다, 우연히 효린을 보게 되었다. 효린의 눈은 명수와 윤아를 향해 있었는데, 그리 좋은 시선은 아니었다. 대현은 턱을 괴고 다른 곳을 보는 척 효린을 지켜봤다. 대현의 표정이 점점 굳어져갔다. 저 눈빛, 똑같았다. 그 여자가 예전에 다른 여자들을 보았을 때의 눈빛과. 지금의 윤아에게 바라보는 효린의 시선이.
“이번 돌아오는 휴일에 또 학원으로 와.”
“아냐. 이제 나 혼자서 해도 돼.”
“저번에 너 말 없이 갔잖아. 내가 너 끝까지 만드는 거 봐줬어야 하는데, 내가 다른 거에 정신 팔리느라 까먹었어. 이번엔 정말 제대로 봐줄게.”
“네가 뭐 그렇게 말 한다면야 나야 좋지. 그럼 마지막으로 잘 부탁해.”
“시간은 그 때보고 정하자. 내가 오전에 볼일이 있거든.”
“응, 좋아.”
대현은 마냥 신나게 웃고 있는 윤아를 보았다. 골머리를 앓듯 관자놀이가 쑤셨다. 자신에게 무슨 상황이 벌어지는 지도 모르고 그저 낭창하게 웃는 윤아 때문이었다.
“어휴, 저 멍청이.”
-
“오, 짧은 기간 동안에 이 만큼 실력이 오르다니 대단하네.”
“아냐. 네가 많이 도와줬잖아. 덕분에 이제 혼자 만들어도 끄떡없을 것 같아.”
“케이크는 딸기 맛으로만 만들 거야? 내 생각엔 다른 맛도 만드는 것을 도전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피자두나 파인애플처럼 새콤한 맛으로.”
“어? 나도 그 생각 했었어! 이것도 사람들이 좋아할까 말까 일 텐데, 다른 것도 만들어도 되나 싶어서 이 스케치 뒤에 적어놓기만 했어.”
“네가 이렇게 노력했으니까 다른 것도 잘 만들 수 있을 거야. 효린이도 얼른 예전처럼 돌아와야 할 텐데…….”
“왜? 효린이한테 무슨 일이 있어?”
“저번에 말해줬다시피 일에 집중하지 않아. 어딘가 모르게 초조해 보여.”
“무슨 일이 있던 거 아닐까? 네 여자친구인데 한 번 물어봐.”
“뭐? 여자친구? 그런 거 아냐. 우린 서로 고백도 안 한 사이야.”
“사귀는 거 아니었어? 둘이 다정하게 같이 있는 모습 보고 사귀는 줄로 알았어.”
“그런 거 아냐. 개인적으로 몇 번 만난 것뿐이지, 효린은 날 좋아하지 않을 거야.”
“왜? 내가 보기엔 효린이가 널 좋아하는 것 같던데.”
“애써 그렇게 말 안 해줘도 돼. 그냥 나 혼자 짝사랑인 거지.”
윤아는 그제야 알았다는 듯 눈이 점점 커졌다. 많이 놀란 눈치였다. 명수는 수줍게 웃었다.
“나 효린이를 정말 좋아해. 윤아야, 이건 비밀이다?”
윤아는 입을 쩍 벌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명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명수는 윤아에게 마지막으로 만들어 보자며 설거지할 고무장갑을 쥐었고, 윤아는 생각에 잠긴 상태로 한걸음씩 발걸음을 옮겼다. 효린도 윤아에게 잘 해주었는데 둘의 성격도 외모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명수와 효린이 같이 손잡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당사자인 명수보다 얼굴이 더 빨개진 상태로 웃었다. 정말 멋진 것 같았다. 윤아는 문득 기억 속의 남자 아이와 대현을 떠올렸다.
그 때, 윤아가 발을 삐끗하는 바람에 몸이 앞으로 치우쳤다. 몸을 더 앞으로 치우치다간 자신이 만들었던 케이크를 망칠지도 몰랐다. 명수가 윤아가 넘어지지 않게 무의식중에 손목을 잡았지만, 윤아가 넘어지는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명수도 함께 넘어졌다. 다행이도 명수가 자신도 넘어지는 순간에 윤아를 옆으로 끌어냈기 때문에, 케이크는 멀쩡했다. 윤아는 엉덩방아를 찧었는지 엉덩이를 만지다가 앞을 쳐다봤다. 명수의 얼굴이 자신의 얼굴과 가까웠다. 명수는 당황해서 윤아에게서 떨어졌다. 명수의 등이 싱크대와 부딪히는 바람에 싱크대 위에 놓였던 도구들이 명수의 정수리에 떨어졌다. 윤아와 명수는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윤아가 급한대로 가지고 있던 휴지로 명수에게 묻은 반죽을 닦아주었다. 명수가 머리칼을 털다가 문득 우뚝 서 있는 효린과 마주쳤다.
효린은 이미 방금 전의 모습을 본 상태였다. 효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너희 지금 뭐하는 짓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