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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몬스
작가 : 리아트리스
작품등록일 : 2017.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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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작성일 : 17-12-18     조회 : 493     추천 : 0     분량 : 6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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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1

 

 강하부두 제5 선착장. 오후 9시.

 검은 창문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척후병처럼 한 방울씩 조심스레 내리던 비는 어느 순간 대규모 아군병력과 합류하기라도 한 듯 거센 함성소리를 내며 매섭게 쏟아졌다. 지상을 향해 총공격이라도 퍼부으려는 기세다.

 창밖을 응시하던 적호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윗입술 위로 까칠하게 돋아난 짧은 콧수염을 엄지와 검지로 연신 쓸어내렸다.

 쏴아아…….

 빗소리가 순식간에 부두를 삼켰다.

 방파제에서 담배를 피우던 사내 세 명이 꽁초를 날리며 허겁지겁 사무실을 향해 뛰어 오는 게 창 너머로 보였다.

 문이 벌컥 열리며 긴 머리카락을 포니테일로 묶은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사무실로 들어섰다.

 “형님, 비 옵니다. 비!”

 사내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몸에 묻은 물기를 털어냈다.

 “날씨 한번 고약하네, 젠장…… 갑자기 쏟아지고 지랄이야.”

 뒤따라 들어온 사내들도 손바닥으로 얼굴과 옷을 연신 쓸어내며 투덜거렸다.

 그때 쾅, 소리가 나며 제대로 닫지 않은 나무문이 안쪽으로 열렸다. 차가운 바닷바람과 함께 빗물이 세차게 들이닥쳤다.

 “야! 문 똑바로 못 닫아?”

 사무실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적호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는 모처럼 차려입은 실크 양복이 빗물에 젖을까 신경 쓰였다.

 “그나저나 날 한번 드럽게 잡았습니다, 형님. 좋은 날 다 놔두고 하필 비바람 휘몰아치는 이런 날 거래를 하겠다고…….”

 적호는 창 너머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말이 없었다. 한손으로는 여전히 콧수염을 쓸고 있었다. 불안하거나 화가 날 때 무의식중으로 나타나는 행동이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흐린 날에는 늘 일이 순조롭지 않았던 것 같았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일이 꼬이거나 불이익을 당하곤 했었다.

 “형님. 근데 왜 꼭 여기서 약속을 잡는 겁니까? 그 새끼들 배타고 오는 것도 아닌데 왜 부두에서 만나자는 겁니까?”

 포니테일 사내가 물었다. 적호는 콧수염을 만지는 행동을 멈추고 양복 옷깃을 매만지며 다리를 반대로 꼬았다.

 “여기가 중국 놈들 본거지잖아. 놈들은 이곳 창고 하나를 통으로 쓰고 있어. 세관 놈들을 아주 조직적으로 매수해 놔서 이곳으로 들어오는 중국 배는 감시가 약해. 부두에다가 말 한마디만 해 놓으면 창고에 쌓아놓은 물건들을 언제든 빼낼 수 있거든.”

 “그럼 아예 창고 앞에서 만나면 되지 뭐 하러 이런 데서 만나자는 겁니까?”

 “창고 위치를 우리한테 알려주기 싫은 거지. 물론 보안이 허술하진 않겠지만 지들 곳간을 우리 앞에 열어젖히고 싶겠어?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놈들이 창고에서 물건을 챙겨 이리로 올 거야.”

 “하여튼 짱개 새끼들답네. 누가 훔쳐간다고 법석을 떨고 지랄이야. 사람을 꼬박꼬박 지들 나와바리까지 오게 만들질 않나…….”

 “형님. 근데 좀 늦는데요.”

 또 다른 사내가 끼어들었다. 적호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약속 시간이 10분 정도 지나 있었다.

 “그 새끼들 늦은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습니까?”

 “그랬지.”

 적호는 일어섰다. 컴컴한 창 너머로 빗소리가 들렸고, 멀리서 몸을 뒤척이는 바다의 검은 실루엣이 보였다. 불길한 기분이 날개를 퍼덕였다.

 “통역 전화번호 알지? 한번 때려 봐.”

 “예. 형님.”

 포니테일 사내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늦은 밤부터는 전국에 많은 비가 내린다고 했다. 해안가에서는 돌풍과 뇌우까지 예상되고 있었다. 적호는 날이 더 나빠지기 전에 일을 마무리 짓고 이곳을 뜨고 싶었다.

 “안 받는데요. 형님.”

 적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중국 쪽에서 고용한 통역은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태생은 한국이었다. 한국인으로서의 자아가 여전히 남아 있어 동포에게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도록 힘을 써주곤 했다. 중국인과의 거래가 이처럼 오래 유지될 수 있었던 것도 통역의 노력 덕분이었다. 인상도 좋고, 성격도 밝은데다가 일에 있어서는 한 치의 빈틈도 없는 사람이었다. 우리 쪽 전화를 받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필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다시 해 봐. 말귀 안 통하더라도 중국 놈들에게도 전화 해 보고.”

 전화는 모두 불통이었다. 통역도, 중국인들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뭔가 일이 잘못된 게 아닙니까?”

 “혹시 짭새들이 냄새 맡은 거 아닐까요?”

 사내들이 술렁댔다. 적호는 분위기에 동요되지 않으려 입구 쪽으로 걸어가 문 위에 난 작은 창으로 밖을 내다봤다.

 밤비에 점령당한 부두의 모습은 적호의 마음만큼이나 침울해 보였다.

 적호는 침착하게 대처 방안을 강구하려 했으나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돼지처럼 땀을 흘리며 진노할 노인네의 붉은 얼굴만 비상등처럼 머릿속에서 명멸할 뿐이었다. 적호는 휴대전화를 켰다가 다시 껐다. 영감에게 알리는 것은 최후로 미루는 게 좋았다.

 “형님 전화가 왔습니다!”

 포니테일 사내가 소리쳤다.

 “통역입니다.”

 “뭐래?”

 “뭐라고 하는데, 뭐라고 하는 지 못 알아듣겠습니다. 여보세요? 예?”

 “이리 줘 봐.”

 적호가 전화기를 낚아챘다.

 “여보세요? 영우 씨?”

 적호가 통역의 이름을 불렀다.

 수화기 너머에서 미세하지만 어떤 소리가 들렸다. 적호는 입을 다물고 전화기를 귀에 바짝 갖다댔다. 간헐적인 숨소리와 함께 모기소리처럼 잉잉거리는 말소리가 들렸다.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롭게 가물거리는 목소리였다.

 전화기 너머의 상황을 하나씩 이해해 갈수록 적호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거기 위치가 어떻게 되죠?”

 침착하려 애썼으나 적호의 얼굴엔 노기가 역력했다. 사내들은 숨을 죽이고 적호의 통화를 지켜봤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금방 갑니다. 야, 차 출발시켜, 빨리!”

 적호는 실크 양복이 비애 젖는 것도 아랑곳 않고 사무실 앞에 대기해 놓은 검은색 아우디를 향해 뛰어갔다.

 “80번 창고로 간다. 서둘러!”

 사내들이 모두 차에 오르자 적호가 소리쳤다.

 아우디는 빗물을 가르며 선착장 도로를 질주했다. 먼 바다에서 섬광이 번쩍이더니 이내 천둥소리가 지상을 흔들었다.

 

 

 2

 

 헤드라이트 불빛에 드러난 창고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아니 열려 있는 게 아니었다. 문은 반쯤 떨어져나가 있었다.

 적호는 콧수염을 쓸었다. 차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시끄러웠다. 불안감이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적호의 가슴 속에서 팽팽하게 차올랐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적호는 허리춤에서 단검부터 빼들었다.

 “형님, 조심하십시오.”

 포니테일 사내가 외쳤으나 적호는 아랑곳 않고 창고 입구를 향해 재빠르게 달려갔다.

 두꺼운 철문이 문틀에서 반쯤 빠져나와 있었다. 자세히 보니 문 안쪽 하단부가 움푹 파여 있었다. 강한 힘에 의해 철문이 바깥으로 밀려나며 하단부가 문틀에서 벗어난 것이다.

 철문의 두께는 10센티미터에 가까웠다. 어지간한 힘으로는 육중한 철문을 이렇게 만들 수 없었다. 적호는 지게차나 불도저 같은 중장비를 생각했다. 창고에서 물건을 쌓거나 나르려면 중장비가 필요하기는 했다.

 적호는 단검을 쥔 손아귀에 힘을 주고 심호흡을 했다. 떨어져 나간 문 틈 사이로 느껴지는 창고의 기척은 고요했으나 모종의 위험이 감지됐다.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었다.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다.

 적호는 머리를 반만 내밀고 창고 안을 빠르게 살폈다.

 “형님 어떻습니까?”

 빗물을 튀기며 다가온 사내들이 적호의 옆으로 늘어섰다. 그들의 손에는 날이 긴 회칼이 쥐어져 있었다.

 “분위기가 오싹한데요. 형님.”

 “뭔 일이 생겨도 단단히 생긴 모양입니다.”

 적호는 조용히 하라는 듯 사내들을 향해 한 손을 들어 보였다. 사내들은 적호의 뜻을 알아차리고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적호는 창고 안에 시선을 못박아둔 채 꼼짝도 않았다. 꿀꺽, 하고 목울대로 마른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제가 먼저 들어갈게요.”

 포니테일 사내가 적호를 지나쳐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뭐야 이게……?”

 사내의 발길이 창고 입구에서 멈췄다. 그는 얼어붙은 표정으로 전방을 응시하고 있었다.

 불안과 호기심이 동한 사내들이 하나 둘씩 창고로 들어섰다. 그들은 창백한 표정으로 눈을 치뜬 채 바보처럼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적호가 맨 마지막으로 사내들 뒤에서 걸어왔다. 늪 속을 걷는 것처럼 적호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토네이도가 휩쓸고 간 것처럼 창고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냄새가 먼저 코를 찔렀다. 사나운 냉기와 함께 창고 특유의 묵은 냄새가 사방에서 뻗쳐왔고, 한 발을 더 내딛는 순간 지독한 피비린내가 바닥에서 솟구쳐 올랐다.

 붉은 페인트를 엎질러 놓은 듯 사방은 핏자국으로 가득했다. 시야가 닿는 곳 어디에도 붉은 빛이 역력했다.

 창고 중앙부에 쌓여 있던 짐들이 대부분 무너지고 파손되어 주변은 아수라장이었다. 부서진 나무 상자와 터진 종이 박스들이 난무했고, 커다란 팔레트들도 엉뚱한 곳까지 날아가 있거나 부서져 있었다. 상자가 파손되면서 토해낸 내용물들이 바닥에 즐비해 창고 중앙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지경이었다.

 통조림이나 봉지에 든 스낵 같은 가공식품부터 약초처럼 보이는 마른 잎사귀나 토막 난 마네킹의 팔 다리까지 온갖 수상한 물건들이 바닥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물건들 사이에 잘려나간 인간의 신체 부위와 내장들도 섞여 있었다.

 사내들의 입에서 전율의 탄식과 욕설들이 쏟아져 나왔다.

 만나기로 했던 중국인 네 명은 전원 숨져 있었다. 그들은 사방에서 흩어져 발견됐는데 죽은 모습들이 처참했다.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형님?”

 “이 새끼들이 왜 이렇게 된 거죠?”

 사내들은 시끄럽게 떠들기만 할 뿐 시체 가까이에는 섣불리 다가가지 못했다.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십대시절부터 주먹다짐과 칼부림 속에서 성장한 이들이라 어지간한 피와 폭력에는 이골이 나 있었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시체들의 몰골은 그들의 경험과 상식을 초월하고 있었다. 이 바닥 밥을 20년 가까이 먹으며 조직의 우두머리에까지 오른 적호조차도 이런 시체는 본 일이 없었다. 시체에 가해진 폭력의 흉포함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 지경이었다.

 적호는 쪼그리고 앉아 중국인 시체 하나를 꼼꼼히 살폈다. 복구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어른 머리통 하나가 들어가고도 남을 만한 구멍이었다. 복부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지경이었다. 당연히 총상은 아니었다. 총상처럼 상처 부위의 살들이 타들어간 흔적이 보였지만 이렇게 큰 탄환은 상상할 수 없었다.

 ‘대포라도 맞은 건가.’

 적호는 고개를 치켜들고 시체 뒤의 벽을 살폈다.

 콘크리트 벽 한 쪽에서 움푹 들어간 흔적을 발견했다. 정말로 포탄이 때리고 간 것처럼 파손 자국이 크고 깊었다. 바닥을 샅샅이 살펴도 탄두나 탄피 비슷한 것은 찾을 수 없었다. 가공할 무기가 뭐였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적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다른 시체들도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한쪽 다리가 허리 부분부터 떨어져나갔거나, 양쪽 팔이 어깨부터 떨어져나가 있었다. 가슴과 목이 반쯤 날아가 머리통이 덜렁거리는 시체도 있었다. 모두 같은 무기에 당한 듯했다.

 시체뿐만 아니라 주변 곳곳에서도 비슷한 흔적들을 찾을 수 있었다. 파손된 박스나 팔레트, 콘크리트 지지대, 철제 선반들에도 시체에 난 것과 비슷한 둥근 형태의 구멍이 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문틀에서 반쯤 떨어져나가 있던 입구의 철문에도 움푹 파인 자국이 있었다.

 “형님, 전화가 왔습니다.”

 포니테일 사내가 외쳤다.

 “통역입니다.”

 적호는 아차 하는 심정으로 사방을 두리번대다가 사내에게서 전화기를 건네받았다.

 “영우 씨. 지금 어디 계세요? 우리는 창고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층?”

 적호는 고개를 들었다. 한쪽 벽에 이층으로 이어지는 철제 계단이 보였다. 이층이라 해봐야 농구장의 이층 관람석처럼 일층에서 볼 수 있는 노출된 통로에 불과했다.

 컨테이너 박스에 창과 문을 낸 작은 사무실이 이층 끝에 있었다. 통역은 그 안에 혼자 숨어 있다고 했다.

 “너희 둘은 여기 있어.”

 적호는 포니테일 사내만을 데리고 이층으로 향했다.

 “영우 씨. 괜찮아요? 지금 그쪽으로 갈게요.”

 적호는 여전히 전화기를 귀에 댄 채 철제계단을 올라갔다.

 

 달그락……!

 일층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내 둘은 동시에 어떤 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귀를 쫑긋 세우며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이게 뭔 소리지?”

 “저쪽이야.”

 사내들은 창고 중앙에 있었는데 소리는 가장자리 벽면 쪽에서 들렸다. 잠깐 머뭇거리다가 사내들은 소리 나는 방향으로 향했다. 겹겹이 쌓인 상자의 벽들을 지나 창이 있는 벽까지 걸어갔다. 통역을 만나기 위해 이층으로 향하던 적호와는 정반대 쪽이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사내들은 걸음을 멈추고 일순간 긴장했다.

 비릿한 냄새가 풍기며 쩝쩝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사내들의 동공이 커졌다. 상자 틈 사이로 움직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뭐라고요?”

 적호는 전화기에 귀를 바짝 갖다대며 큰 소리를 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아직 있다니요? 뭐가요?”

 적호는 이층 통로를 걷다가 멈춰 섰다.

 “뭐가 있다는 거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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