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공포물
데몬스
작가 : 리아트리스
작품등록일 : 2017.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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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애수
작성일 : 17-12-18     조회 : 505     추천 : 0     분량 : 5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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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부 애수

 

 

 1

 

 “경찰입니다!”

 지훈은 돌아봤다.

 도정이 달려오고 있었다. 오른 손에는 단검을, 왼손에는 손도끼를 쥐고 있었다. 양복저고리는 이미 벗겨진 지 오래고, 와이셔츠도 곳곳이 찢어지고 붉게 물들어 있었다. 도끼를 쥔 왼손은 어깨부터 손목까지 온통 피범벅이었다.

 “경찰입니다!”

 도정이 다시 외쳤다. 그의 입술은 시퍼렇게 부어 있었다.

 “빨리 피하세요, 형님!”

 온통 상처투성이지만 도정의 눈빛은 형형히 빛나고 있었다. 앙 다문 입가에서는 허물어지지 않는 투지가 엿보였다. 도정의 뒤로 쫓아오는 검은 무리가 보였다.

 “지훈씨!”

 귓가에서 여자의 외침이 들렸다. 자신의 한손을 잡고 있는 작고 차가운 손의 감촉이 되살아났다. 깡마른 손목에 파란 힘줄이 드러나 보였다. 팔을 따라 시선을 올리니 화장이 유난히 짙은 여자의 근심 가득한 얼굴이 보였다. 보랏빛으로 염색한 단발머리가 뺨에서 찰랑거렸다.

 “수…… 수진.”

 “빨리 가!”

 수진은 작지만 억센 아귀힘으로 지훈의 큰 손을 세차게 당겼다.

 지훈은 수진의 뒤를 따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도정은 검은 제복의 사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사내들은 이미 상처 입은 도정을 향해 몽둥이를 휘둘러댔다. 몽둥이가 아니라 경찰봉이었다. 도정도 단검과 손도끼를 동시에 휘두르며 완강히 맞서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들 뒤로 노란 불빛이 번쩍거렸고,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도정의 시선이 한순간 지훈을 향했다.

 “큰형님을 부탁합니다. 형님!”

 큰형님?

 지훈은 머릿속이 하얗게 지워지는 듯했다. 어떤 얼굴이 눈앞에 떠오르려는 순간 처절한 비명이 밤공기를 갈랐다.

 “아아아아아…….”

 도정의 목소리였다.

 지훈은 수진의 손을 맞잡고 뛰었다.

 골목은 좁았고, 샛길은 많았다. 발길이 가는대로 모퉁이를 돌아 샛길로 빠졌다.

 모퉁이 너머에서 느닷없이 덩치 큰 사내들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지훈은 몸을 비틀어 간신히 상대의 공격을 피하거나 허리를 숙이고 놈의 안면에 주먹을 꽂았다.

 운이 좋은 건지 실력이 좋은 건지 지훈의 몸놀림은 나쁘지 않았다. 상대의 공격을 절묘하게 피했고, 때로는 일격을 가해 상대를 제압했다. 수진도 지훈의 동작에 박자를 잘 맞추며 따라오고 있었다. 그녀는 체구가 작았지만 날렵했다.

 “경찰이야!”

 수진이 외쳤다.

 ‘경찰’이라는 말이 들릴 때마다 지훈은 가슴 한 쪽이 쿵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큰길로 이어지는 골목 끝에 노란 불빛들이 가득했다. 불빛들 사이로 바쁘게 움직이는 검은 실루엣이 보였다.

 지훈은 방향을 바꿔 왔던 길로 돌아가려했으나 그쪽에서도 제복차림의 사내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도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쪽으로……!”

 수진이 지훈의 손을 잡아끌었다.

 지저분한 낙서들로 가득한 건물 입구로 들어섰다. 건물 안은 어두웠다. 문도 복도도 보이지 않고 가파른 시멘트 계단만 어렴풋이 보였다.

 지훈은 수진의 손을 잡아끌며 계단을 올라갔다. 가쁘게 내뱉는 수진의 숨소리가 지훈의 귓가를 따라붙었다.

 발아래에서 퉁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쫓아오는 발소리, 고함 소리, 비명 소리가 난간 틈새를 뚫고 솟구쳐 올랐다.

 기나긴 계단이 마침내 끝나고 옥상이 나왔다.

 지훈은 옥상 문을 닫고 주변에 보이는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모아서 문 앞에 쌓아 놓았다.

 “지훈씨, 이쪽이야!”

 수진이 옥상 끝에 서서 지훈을 불렀다.

 “어쩌려고……?”

 지훈이 다가가는 순간 수진이 옥상 너머로 폴짝 뛰었다. 보랏빛 단발머리가 출렁, 허공에서 춤을 췄다.

 “수진아!”

 “빨리 와!”

 옥상 너머에서 수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훈은 옥상 끝에 섰다. 이쪽보다 한 층 가량 낮은 앞 건물 옥상을 뛰고 있는 수진이 보였다. 달리다가 지훈을 돌아보며 손짓한다.

 등 뒤에서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옥상 문 앞에 쌓아뒀던 물건들이 바깥으로 밀려나며 무너지고 있었다. 문틈 새로 경찰봉과 검은 워커들이 보였다.

 지훈은 앞으로 몸을 날렸다.

 발이 지면에 닿는 순간 앞구르기를 하며 앞 건물 옥상 위로 착지했다. 수진은 벌써 다음 건물을 향해 몸을 날리고 있었다. 지훈은 수진의 뒤를 쫓아갔다. 뒤를 돌아보니 경찰들도 건물을 뛰어넘고 있었다.

 “지훈씨, 빨리 와!”

 수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습은 보이지 않고 어둠 속에서 목소리만 들렸다. 지훈은 달렸다.

 몇 개의 건물 옥상을 뛰어넘은 지 알 수 없었다. 어느새 수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또 한 번 허공으로 도약하는 순간 발아래에 운동장처럼 넓은 옥상이 펼쳐졌다.

 “지훈아. 여기다!”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지훈은 사방을 두리번대며 목소리가 난 방향을 찾았다. 옥상 끝에 우뚝 서 있는 호리호리한 체구의 남자가 보였다.

 “여기야!”

 남자가 다시 말했다.

 지훈은 달려갔다. 눈앞의 남자가 점점 가까워졌다.

 흰 머리가 돋아나기 시작한 부스스한 올백 머리. 반듯한 이마 아래 이성이 깃든 깊고 검은 눈. 고뇌가 느껴지는 주름들과 깊이 파인 볼우물. 학자처럼 꽉 다문 입술.

 “형님!”

 지훈이 소리쳤다.

 “전대 형님!”

 큰형님이다.

 전대파 보스 지전대.

 전대 형님이 이런 곳에 있었다니…….

 “형님…….”

 “이쪽이다.”

 지훈이 다가가자 지전대는 몸을 돌려 옥상 난간 아래를 가리켰다.

 옥상 난간부터 골목 바닥까지 줄사다리가 늘어져 있었다. 사다리를 타고 건물을 반쯤 내려가고 있는 수진의 보랏빛 단발머리가 보였다.

 “형님. 경찰들이 오고 있습니다. 먼저 가십시오.”

 “아니, 먼저 가라.”

 지전대는 난간에서 돌아서더니 전방의 어둠을 응시했다. 그의 손에 뭔가가 쥐어져 있었다. 지훈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K-5 12연발 권총. 언젠가 지훈이 선물한 것이었다.

 “난 이게 있잖아?”

 지전대는 권총을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이게 있어서 그동안 얼마나 폼이 났는지 몰라. 친구들이나 지역 두목들을 만날 때도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진짜 두목이 된 느낌이었어.”

 지전대가 지훈을 슬쩍 바라보더니 볼우물을 깊게 패며 웃었다. 부처처럼 너그럽고 인자한 웃음이었다. 지훈은 가슴이 쓰라렸다.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니 수진은 사다리를 거의 다 내려가고 있었다.

 전방의 어둠 속에서 무리지어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경찰은 한 둘이 아니었다. 이번 작전을 위해 투입된 경찰 병력은 무려 100여 명에 달했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전대파 보스 지전대의 검거, 혹은 사살이었다.

 “어서 가. 놈들은 내가 최대한 막아 볼 테니.”

 “안됩니다. 형님. 총을 저한테 주시고 먼저 내려가세요.”

 지훈이 손을 뻗었다. 지전대가 어깻짓으로 지훈의 몸을 떠밀었다.

 “가라니까. 우두머리가 돼서 식구들 내팽개치고 먼저 내뺄 수 없다.”

 먼 곳에서 와 닿은 불빛에 반사되어 K-5의 총신 끝이 반짝거렸다.

 검은 무리들이 전방을 뒤덮고 있었다.

 “이 새끼들!”

 지전대가 방아쇠를 당겼다.

 권총이 불을 뿜자 전방의 대열이 약간 흐트러졌다. 지훈의 가슴이 터질 듯 쿵쾅거렸다.

 “형님. 총을 이리 주십시오.”

 “어서 가라니까. 네가 가야 나도 갈 수 있어.”

 “총을 주십시오.”

 지훈이 손을 뻗어 K-5의 총신을 움켜잡았다. 지전대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뭐하는 짓이야?”

 전방의 검은 무리가 전열을 가다듬고 빠르게 다가왔다.

 지전대가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지훈은 총신을 움켜쥔 손을 위로 들었다.

 탕!

 권총은 하늘을 향해 격발됐다.

 지전대가 큰 눈을 껌벅이며 흔들리는 시선으로 지훈의 얼굴을 응시했다.

 지훈은 이를 악물고 억센 힘으로 권총을 빼앗았다. 매서운 기세에 밀려 지전대는 엉거주춤 뒷걸음질 쳤다. 옥상 난간 끝에 뒤꿈치가 가닿았다. 시멘트 난간의 높이는 겨우 종아리 정도라 지전대의 몸이 금방이라도 뒤로 넘어갈 것만 같았다.

 지전대는 몸이 휘청거리는 것도 아랑곳 않고 핏발선 눈을 지훈에게서 떼지 않았다. 두 손은 여전히 허공으로 향해 무의미하게 뻗어 있었다. 지훈은 권총을 쥔 손을 아래로 떨어뜨리며 지전대에게서 몇 걸음 물러났다.

 “너…….”

 충격과 분노로 지전대의 목소리가 떨렸다.

 “설마…….”

 “형님, 죄송합니다.”

 “그럴 리가…….”

 “형님, 저는…….”

 “그럴 리가…….”

 “경찰입니다!”

 타앙!

 예고도 없이 총성이 터졌다.

 지전대의 가슴에서 핏줄기가 솟구쳤다.

 “형님!”

 지훈은 권총을 쥔 자신의 손과 피로 물들어가는 지전대의 가슴을 번갈아 응시했다. 방아쇠를 당긴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쥐고 있는 K-5 총구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네가…….”

 “형님!”

 탕!

 다시 한 발의 총알이 지전대의 배를 꿰뚫었다.

 지전대는 고개를 숙이며 검은 피를 토했다.

 지훈이 쥔 권총에서는 끊임없이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냐. 내가 쏜 게 아냐.”

 지훈은 권총을 바닥으로 내던졌다.

 “제가 쏜 게 아니에요. 저는 형님을…….”

 지훈은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지전대의 몸이 뒤로 기울더니 난간 너머로 사라졌다.

 “형님!”

 지훈은 옥상 끝으로 달려갔다.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난간을 짚은 채 아래를 내려다봤다. 지전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지상의 어둠이 지전대의 몸을 삼켜버린 것이다.

 “형님……!”

 지훈은 목 놓아 자신의 보스를 불렀다. 공허한 외침이었다.

 “저는 형님을…… 구하려고 했습니다.”

 지전대가 살아 있을 때 잇지 못했던 말을 이제야 뇌까렸다.

 “경찰이 오기 전에 투항시켜 목숨만은 구해 내려고 했던 겁니다.”

 지훈은 난간 위에 이마를 짓찧었다. 무슨 말을 해도 변명이고, 개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이유를 갖다 대도 자신이 배신자라는 사실은 변함없을 것이다.

 배신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훈은 고개를 들었다.

 “도정이냐?”

 대답이 없었다.

 “백도정, 너냐? 어서 투항해! 살 길은 그것뿐이야!”

 배신자!

 경멸에 찬 싸늘한 목소리가 지훈의 목덜미를 칼날처럼 스쳐갔다. 지훈은 ‘헉’ 소리를 지르며 뒤돌아봤다. 보이는 것은 사면 깜깜한 어둠뿐이었다.

 배신자!

 앙칼진 여자의 목소리였다.

 “수…… 수진이…….”

 지훈은 목을 길게 빼고 어둠의 한 곳을 응시했다.

 난간 너머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수진아?”

 지훈이 난간 너머로 목을 빼는 순간이었다.

 어둠 속에서 피 묻은 손이 쑥 올라와 지훈의 목을 움켜쥐었다.

 “컥!”

 “이 배신자!”

 두개골이 온통 갈라진 지전대가 해골처럼 뻥 뚫린 두 눈으로 지훈을 노려보고 있었다. 학자처럼 이성적이고, 부처처럼 인자했던 얼굴 가죽은 온통 찢어지고 짓이겨져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너덜거리는 피부 사이로 드러난 시뻘건 얼굴은 악귀의 형상 그 자체였다.

 “네 놈이 날 배신하다니……! 네 놈이……!”

 “혀…… 형님!”

 “네 놈이 날 배신하다니……!”

 뻥 뚫린 두 눈에서 검은 핏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네 놈이……!”

 지훈은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목을 움켜쥔 차가운 손가락들이 금방이라도 피부를 파고들 것만 같았다.

 네 놈이……!

 으아아아악!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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