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과장은 애가 탔다. 해외에서 대규모로 마약을 들여온다는 정보를 지훈으로부터 들었던 터라 마음이 다급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풀리면 안 돼. 너도 잘 알잖아? 거래 일자가 언제야? 디데이를 그날로 잡아 버리자고.”
“그게…… 아직 정확한 날짜가 안 잡혔어요. 조직 내에서도 몸을 사리는 분위기거든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아요.”
“그럼 루트부터 봉쇄하는 게 어때? 중국이라고 했나? 그 쪽에서 물건이 들어올 때 현장을 덮치는 거야. 매입자를 족치면 매수자의 이름이 나올 거잖아? 놈들 입에서 ‘지전대’ 이름 석 자만 받아내면 게임 끝이야. 입건시키기에 충분해. 마약 사범은 극형을 피할 수 없어. 중국 놈들과의 거래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것까지 밝혀내면 놈은 끝장이야.”
“아뇨. 지전대 쪽에서 중국 놈들 입막음만 해 버리면 전대파와는 무관한 일이 되는 겁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막상 일이 터지면 지전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렇게 할 겁니다. 빠져 나갈 거라고요. 그런 후에는 숨죽이고 잠수를 타면서 내부 정화에 나서겠죠.”
“마약이 눈앞에서 뻔히 발견되는데 중국 놈들이 의리를 지키려 들지 않을 거야. 놈들은 오히려 지전대에게 자신들의 죄까지 뒤집어씌울 거라고. 중국 놈들을 잘 구슬리면 지전대의 과거 범죄행각까지도 모조리 입증할 수 있을 거야. 지금이 적기라고!”
지훈은 서 과장의 뜻을 완강히 반대했다.
“만에 하나까지 생각해 주세요. 실패하면 지전대의 경계심만 높이고, 무엇보다 제가 표적이 될 수 있어요. 제 목숨이 위태로워진다고요. 지전대가 작심하고 내부 수술에 들어가면 제가 발각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요.”
“벌써 5년이야. 들통 날 것 같았으면 벌써 들통 났겠지. 물론 언젠가는 들통 날 수도 있는 문제야. 그러니까 시간을 너무 끌어서도 곤란해.”
서 과장은 지훈을 안심시키는 척하면서 불안의 끈을 당기고 있었다.
“운도 따라줬다고 할 수 있겠지. 아무튼 지금까지는 잘 해왔어. 이제 임무를 완수하고 그곳에서 빠져나와야지. 더 시간을 끌면 정말 위험해질 수도 있어.”
서 과장의 말에도 수긍이 갔다. 벌써 5년이 지났고, 5년간 무탈하게 조직원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사전 준비와 경계가 철저했다고 하더라도 천운이 따라준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몇 개월도 되지 않아 신분이 탄로나 불귀의 객이 된 경찰들의 이야기를 지훈은 많이 알고 있었다. 운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느 날 지전대를 만나러 갔는데 그의 손에 지훈의 경찰 신분증이 쥐어져 있어도 이상할 게 없을 것 같았다. 사실 지훈은 그런 상상을 수도 없이 했고, 악몽으로 재현된 적도 많았다.
“끝내고 싶은 마음은 과장님보다 제가 훨씬 큽니다. 다그치지 마세요. 아직은 시기상조에요. 조직도 준비가 덜 됐고, 저도 준비가 덜 됐어요.”
서 과장은 더 이상 재촉하지 않았다. 지훈의 괴로움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던 것이다.
서 과장과 지전대 사이에 끼어 최후의 결전을 기다려야만 하는 지훈의 심정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하루하루가 삼도천을 서성이는 망자의 기분이었다. 불안과 공포가 목까지 차올라 있었다. 그러나 지훈이 마지막 일격을 보류하고 망설이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자신의 신분이 들통 나는 것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지전대를 배신하는 일이었다. 지전대를 사지로 내몰아야만 하는 상황을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무렵의 지훈에게 지전대는 피를 나눈 형제 이상의 존재였다. 믿음의 깊이나 인간적인 정으로만 본다면 서 과장과 비교도 안 될 지경이었다. 타인과 이처럼 가족 이상의 돈독한 정을 나누웠던 적은 지훈의 삶을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었다. 5년간 고락을 같이 하면서 지전대는 조직의 상하관계를 떠나 지훈이 인간적으로 신뢰하고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
서 과장도 이런 사실을 눈치 채고 있었다. 지훈을 재촉하는 이유이자 재촉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다그치면 지훈의 마음이 지전대쪽으로 기울 우려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마지막 작전을 앞두고 서 과장도 지훈만큼이나 노심초사하며 마음을 졸여야 했다.
일곱 살 때 부모님을 교통사고로 여의고 형제하나 없이 외할머니 댁과 친척집을 고아처럼 떠돌며 외롭게 자란 지훈에게 지전대는 막역한 친구이자, 듬직한 형이었고, 흉허물까지도 감싸주는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고민하고 갈등하다가도 지전대의 얼굴을 떠올리면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으며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흰 머리가 돋아나기 시작한 부스스한 올백 머리. 반듯한 이마 아래 이성이 깃든 깊고 검은 눈. 고뇌가 느껴지는 주름들과 깊이 파인 볼우물. 학자처럼 꽉 다문 입술.
지전대는 나무랄 데 없는 보스였다. 위엄과 수완을 갖췄으며, 조직원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도 알았다. 지훈을 위해 위험을 무릅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지훈을 위해 칼을 맞았고, 지훈을 보호하려다가 조직원들과의 반목을 자처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암흑가의 한 축을 움직이는 거대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5년간 지훈은 지전대를 미워할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 그의 사업 자체가 법을 어기는 행위라는 것쯤은 지훈에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못했다. 건달이 아니라도 법을 어기며 돈을 버는 인간들은 세상 곳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버젓이 법을 어겨놓고도 발뺌을 하고, 순진한 척, 착한 척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역겨운 인간들이 주변에 넘쳐났다. 지전대를 미워할 수 없었던 것은 그가 인격적으로 모자람이 없다는 데 있었다. 건달이라 보기 힘들 정도로 그의 행동에는 기품이 흘렀으며, 함부로 폭력을 행사하는 일도 없었다.
오히려 경찰들의 무분별한 폭력과 비인간적인 모습들이 지훈을 당황케 했다.
경찰은 무자비한 폭력으로 범죄자들을 진압했다. 이미 투항하고 무기를 버린 이들에게도 폭력은 종종 멈추지 않았다. 일찍 투항했다가 피투성이가 되도록 얻어맞은 조직원 하나는 뇌출혈로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진압 과정에서 시민들의 보호도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위험 속에 방치된 어린 꼬마와 여학생들을 경찰에 쫓겨 도망가던 지훈이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켜 주어야만 했다.
검거한 조직원들을 거짓 약속으로 꼬드겨 조직의 배신자로 만들어 버리거나 아예 코를 꿰어 자신들의 정보원으로 이용해 먹는 경찰도 허다했다.
“어이, 지난번처럼 또 몇 놈을 불어 봐. 아니면 네가 살살 부추겨서 죄를 짓도록 만들어. 만족스런 결과가 없으면 널 처넣거나 아니면 네가 배신자라는 것을 조직에 슬쩍 흘려버릴 수도 있어.”
한번 약점 잡힌 범죄자들은 평생 경찰의 개 노릇을 해야만 했다. 이미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목줄을 경찰은 끝까지 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경찰에 약점이 잡혀 개 노릇을 하다가 결국 조직의 응징으로 싸늘한 시체가 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죽음 따위 경찰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지훈으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경찰의 냉정하고 혐오스런 일면들이었다.
“경찰 놈들은 모두 개자식들이야. 우리만큼이나 나쁜 새끼들이니 죽이더라도 상관없어.”
지전대도 경찰에게는 강한 적대감을 보였다. 예의 모범시민 같은 인간성도 경찰 앞에서는 차단되는 모양이었다. 조직 생활을 30년 넘게 해왔기에 경찰에 대한 혐오감이 지훈보다 훨씬 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전대에게는 개인적인 사정도 있었다. 경찰 때문에 남동생을 잃은 것이다.
지전대는 동생과 함께 조직 생활을 시작했다. 산전수전을 겪으며 밑바닥부터 함께 성장해 왔기에 지전대에게 동생은 형제 이상으로 각별했다. 기반이 잡히자 지전대는 동생을 이 바닥에서 빼내고 싶어 했다. 그늘진 세계를 살아가는 것은 형인 자신만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마침 결혼을 앞두고 있던 동생도 형의 뜻을 기꺼이 받아들여 조직 생황을 청산했다.
그런데 훗날 지전대를 표적 수사하던 경찰이 과거 행적을 빌미로 동생을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가정을 지키고 싶었던 동생은 조직원 몇 명을 팔면서까지 경찰의 요구에 응대해줬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다. 형까지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동생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경찰서로 자진 출두하러 오토바이를 운전해 가던 도중 중앙선을 넘어 반대 차선에서 달려오는 버스를 들이받은 것이다. 오토바이와 함께 동생의 몸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분노한 지전대는 자신을 표적 수사하던 경찰 책임자를 비밀리에 납치해 직접 운전한 버스로 치어 죽이고 시체를 분쇄기에 넣었다. 경찰에 대한 씻을 수 없는 증오가 심장에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이후로도 경찰에 대한 적의는 맹렬했다. 물론 대부분은 조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응에 불과했지만 기회가 오면 경찰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지켜볼 때마다 지훈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저 폭력이 언제든 자신을 향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지훈이 경찰인줄은 꿈에도 몰랐던 지전대는 단 한 번도 지훈 앞에서 폭력이나 폭언을 보인 적이 없었다. 지훈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늘 부드럽고 신사적이었다. 동생을 대하는 형의 마음처럼 살갑기도 했다.
“넌 내 동생과 많이 닮았어. 내 동생도 너처럼 키가 훤칠하니 크고, 듬직했지. 말수도 적고 점잖았으며, 머리도 너만큼이나 비상한 놈이었어.”
지전대는 지훈에게서 종종 죽은 동생의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지훈은 그때마다 기꺼이 그의 동생이 되어 주고 싶었다. 지훈 역시도 지전대 같은 형이 있었으면 싶었기 때문이다.
지전대와 함께 한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지전대를 배신하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졌다. 경찰제복을 입는 순간 가슴 속에 차올랐던 신념과 정의도 시간이 갈수록 전도되고 있었다. 지전대와 함께 조직을 관리하고 번창시키는 일이 신념이고 정의처럼 느껴졌다. 지전대의 폐부에 배신의 칼날을 꽂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악행처럼 여겨졌다.
지훈은 계속 망설였고, 그 사이에도 지훈에 대한 지전대의 믿음은 굳건해져만 갔다. 지전대는 지훈을 형제 이상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뒤를 이를 후계자로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지전대는 심각한 표정으로 지훈에게 약속 하나를 받으려 했다.
“지훈아. 혹시 경찰에 둘러싸였는데 우리 둘 중에 한 명만 빠져나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네가 빠져나가라. 알았지?”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래야만 해. 널 고장 난 인간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 그런 인간은 조직을 제대로 이끌 수 없어. 이미 고장 난 인간 밑에는 고장 난 인간들밖에 모이지 않아. 그래서는 안 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앞으로 이 조직을 이끌어 갈 사람은 바로 너란 말이야.”
“……!”
“그러니까 이 자리에서 약속을 해라. 너와 나 두 사람 중 한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 오면 주저 없이 네가 살아남겠다고.”
지훈은 대답할 수 없었다. 지전대는 몇 번 다그치다가 결국 지훈의 침묵을 동의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렇다고 벌써부터 심각해질 필요는 없어. 그런 상황이 안 올 수도 있고, 내가 잡히거나 죽지 않는다면 너에게 짐을 떠맡기는 시기도 한정 없이 늦어질 테니까. 하하…….”
이후 지훈의 마음은 더욱 무겁고 괴로워졌다. 자신이 온전히 분노할 수 있는 치명적인 오점을 하나라도 찾을 수 있길 바라며 지전대를 지켜봤지만 허사였다.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무엇이 정의고, 무엇이 신념이지도 모른 채, 심지어 스스로의 정체성마저 가늠할 수 없는 혼란 속에서 결국 매섭게 등을 떠미는 서 과장의 손에 지훈은 몸을 내맡기고 말았다.
“전…… 경찰입니다.”
이 말을 내뱉는 순간 지전대의 입에서는 이상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높낮이가 없는 단조로운 곡소리 같기도 하고, 죽음에 임박한 짐승의 서글픈 울부짖음 같기도 한 비명 소리가 십여 초간 길게 이어졌다. 지훈을 쏘아보는 지전대의 핏발선 눈동자 속에는 원망과 탄식과 안타까움과 비애가 뒤섞여 있었다. 그 눈을 마주하고 있을 자신이 없었으나 어쩐 일인지 지훈은 눈꺼풀조차 깜박할 수 없었다. 지전대의 낯빛이 시체처럼 창백해지고, 표정이 참담하게 일그러지는 것을 지훈은 끝까지 지켜봐야만 했다. 그 얼굴이 뇌리에 문신처럼 새겨지는 순간 지훈의 삶은 악몽으로 바뀌고 말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