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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장미의 유혹
작가 : 인구수낭비
작품등록일 : 2017.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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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 환상 (2)
작성일 : 17-12-18     조회 : 317     추천 : 0     분량 : 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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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체리나와 웰리스가 갈 수 있는 장소 중에 가장 안심이 되면서도 조용한 곳은 역시 개인실이었다. 차분하게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웰리스의 것보다는 체리나의 개인실이 좀 더 좋았다.

 

  하지만 체리나는 외간 남자를 방 안으로 들인 여자가 될 수 없었다. 가문에서 또 어떤 말을 들으려고.

 

  아카데미 내에는 사람들의 보는 눈이 많았다. 그리고 아카데미에서 시작된 소문은 곧 사교계를 떠돌았다.

 

  체리나는 혹시 그들을 보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그들의 주변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결국 둘은 웰리스의 개인실로 이동했다.

 

  어젯밤에 처리하다 남은 서류들이 책상 위를 더럽혔다. 책상의 끝에는 마시다가 만 찻잔도 보였다.

 

  생각보다 지저분한 모습에 체리나가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웰리스가 어색한 웃음소리를 내며 책상 위에 있던 서류들을 한 곳으로 몰아넣었다.

 

  “도대체 어디에 앉아야 돼?”

 

  “아무 곳에나. 아, 아니야. 저기 소파에 앉으면 될 거 같다.”

 

  웰리스가 가리킨 곳에는 다행히 깔끔하게 정리된 소파가 있었다. 소파의 앞에는 조금 낮은 탁자가 보였다.

 

  “그럼 너는 내 맞은편에 앉아.”

 

  “그래.”

 

  체리나와 웰리스는 각자가 정해준 자리에 앉았다.

 

  “너 요즘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거야?”

 

  “응?”

 

  웰리스의 갑작스런 질문에 놀란 체리나가 몸을 움찔했다. 체리나의 사소한 행동을 놓칠 휄리스가 아니었다. 그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채 체리나에게 물었다.

 

  “뭔가 있구나.”

 

  “……아무 것도 없어.”

 

  체리나가 웰리스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이제 와서 우리 사이에 비밀을 만들려는 건 아니겠지? 네가 왜 그런지 내가 직접 찾기 전에 말하는 게 더 좋을 거다?”

 

  “진짜 아무 것도 아니야.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중요한 일인지 아닌지는 일단 들어보고 내가 판단할게. 그래서 요즘 너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데?”

 

  웰리스는 단호하게 말하며 체리나의 고개를 자신에게 향하도록 했다.

 

  체리나는 잠시 망설였다. 웰리스에게 그걸 말해줘도 되는 것일까. 정말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는데. 괜히 말했다가 걱정만 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그녀가 웰리스의 눈을 보자 말할 수밖에 없었다.

 

  “꼭 들어야겠어?”

 

  체리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응.”

 

  웰리스는 대답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걸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꿈? 그래, 그건 꿈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기분이 좋지 않아지는 그런 사소한 악몽.

 

  “사실 언제부터였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아.”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지금 그게 웃으면서 할 말이냐? 그건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일이란 거잖아!”

 

  “아니야. 소소한 일이기 때문에 기억할 필요를 못 느낀 거겠지.”

 

  “네가 하는 그 말을 참 믿겠다.”

 

  웰리스가 안경을 벗어 탁자 위에 올렸다. 그는 생각만해도 골치가 아픈지 미간을 가볍게 주물렀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을 끝까지 들을 거야, 말 거야.”

 

 “알았어. 일단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볼게. 계속 이야기해봐.”

 

  다시 한 번만 더 말을 끊어봐라. 체리나는 말이 끊기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 으름장을 놓았다.

 

  “정말로 이제는 뭐라 안 할 거야?”

 

  “응.”

 

  “진짜로?”

 

  “알았어. 진짜로.”

 

  체리나는 심호흡을 하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게 꿈인지 아닌지 사실은 잘 모르겠어. 그런데 아마 꿈이 맞을 거야. 항상 잠에서 깨어나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으니까.”

 

  “꿈이란 말이지.”

 

  체리나가 웰리스를 살짝 노려봤다. 웰리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다물었다.

 

  “꿈이 아니라 그냥 잠시 깊은 생각에 빠졌던 것일지도 몰라.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랑 꿈을 꾸는 건 거의 비슷하니까.”

 

  웰리스는 벗어놨던 안경을 꼈다. 잠시 무언가 생각을 하는지 조용히 있던 그가 체리나에게 물었다.

 

  “꿈이면 깨면 되잖아.”

 

  “내가 꿈인 걸 알아차리면 그럴 수 있었겠지. 아무리 생각을 하려고 노력해도 잘 모르겠어. 꿈이야? 현실이야? 누가 따로 묻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만히 있을 때 이게 꿈인지 아닌지 확인을 하지는 않잖아.”

 

  체리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지 아니면 현실에 있는 건지 고민에 빠진 적이 없었다.

 

  꿈이라고 생각되는 그곳에서 체리나는 어딘가에 묶여 있었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가려졌다.

 

  진실을 보는 눈이 가려진다고 진실을 보지 못했던 적이 있었던가. 체리나가 기억하는 한 그런 일은 없었다. ‘눈’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그건 신체 부위의 하나인 ‘눈’으로 보는 게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조차 이용을 할 수 없었으니. 원래 되다가 안 되다가 했지만 감각이 아예 막힌 느낌을 느끼는 건 처음이었다.

 

  왜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 거지? 여기는 어디지? 어떤 이유로 이러는 거야? 어떻게 해야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이런 것들 외에도 체리나가 고민을 해야 될 것이 많았다. 꿈속인지를 확인한다고? 그건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만이 부릴 수 있는 사치였다.

 

  “같은 꿈을 여러 번 꿨다며.”

 

  “응.”

 

  “계속 같은 꿈을 꾸면 뭔가 이상한 느낌은 들었겠지.”

 

  “같은…… 꿈인가?”

 

  생각을 시작한다. 그러면 체리나는 어딘가에 묶여 앉아 있었다. 눈은 가려졌다. 지금 무슨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으면 위에서 체리나를 향해 물이 떨어졌다.

 

  체리나는 계속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에 대한 대답은 얻지 못한다. 그리고 또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나면 어딘가에서 자고 있었다.

 

  일어나는 일의 순서는 같았다. 체리나가 생각하는 것도 미묘한 차이를 제외하면 거의 비슷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기에. 그곳에는 다른 사람을 느낄 수 없었기에 모두 같은 장소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잘 모르겠어. 꿈의 내용이 서로 이어지는 건지 아니면 전부 같은 내용의 꿈인지.”

 

  “그거에 대해서 고민하느라 요즘 그렇게 힘들어보였던 거야?”

 

  “꼭 이것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아마도.”

 

  “하아.”

 

  웰리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체리나가 웰리스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힘들었다. 웰리스는 말을 할 것 같이 하더니 결국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뭐야, 그 반응은.”

 

  “아니야. 네가 뭐라 하지 말라며. 안 하기로 약속했으니까 그냥 조용히 있으려고.”

 

  “이미 충분히 뭐라 했으면서 이제야 조용하겠다고? 엄청 궁금하게 만들어놓고선?”

 

  체리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웰리스에게 달려들 것처럼 보였다.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그의 볼을 강하게 치고 싶었다.

 

  “그렇게 궁금하면 말해줄까.”

 

  웰리스가 탁자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치며 물었다. 체리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그럼 너부터 말해.”

 

  “뭐를? 이미 다 말해줬잖아.”

 

  체리나가 웰리스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체리나는 웰리스가 원하는 대답이 무엇인지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웰리스에게 그에 대한 대답을 들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 표정 보니까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다. 알았어. 그럼 내가 먼저 말할게. 대신 듣고 나서 너도 말해야 돼.”

 

  체리나는 웰리스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저렇게 나올 줄 알았어, 하고 중얼거린 웰리스가 말을 이었다.

 

  “일단 중요한 건 너를 소소하게 괴롭히는 그 꿈인 것 같다고 말한 거. 넌 그게 뭐라고 생각했어?”

 

  “꿈? 지금은 역시 꿈이라고 생각해.”

 

  “나도 그걸 꿈이라고 말하는 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해. 조금은 다르지만.”

 

  “약간 다르다고?”

 

  웰리스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 부분이?”

 

  “너한테는 그게 꿈이 맞을 지도 몰라. 그런데 그냥 평범한 꿈이라고 보기엔 이상한 부분이 많잖아.”

 

  웰리스는 체리나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책장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잠시 그의 손이 갈 곳을 잃고 헤매더니 이내 책 한 권을 꺼냈다. 그는 책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이게 뭔데.”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 책은 사람의 손을 많이 탄 것처럼 보였다. 요즘에 출판되는 책은 다 처음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마법이 걸려있는 상태로 나오는데. 그렇지 않은 걸 보면 책은 출판된 후 적어도 백 년이 지났을 것이다.

 

  “루시드 드림.”

 

  왜 처음부터 루시드 드림을 떠올리지 못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체리나는 루시드 드림을 잘 알았다. 루시드 드림에 대해서라면 웰리스보다 체리나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죽은 아내를 극도로 그리워한 한 궁중 마법사가 만들어낸 마법. 꿈에서라도 아내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궁중 마법사였던 루시드는 그리 생각한 것이다.

 

  오랜 연구 끝에, 루시드는 자신의 의지로 꿈을 조절할 수 있는 마법을 하나 만들어냈다. 꿈에서라도 아내를 만날 수 있다면. 루시드 드림은 꿈 안에서 아내를 만나기 위해 만들어졌다.

 

  “네가 나한테 알려줬던 거잖아. 그게 언제였더라.”

 

  “……열 살 때. 네 생일에.”

 

  “아아, 그랬지.”

 

  “그때 왜 이걸 네가 나한테 말해줬더라. 이제 기억도 잘 안 난다.”

 

  파티장에서 네가 너무 외로워보여서. 울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자고 있을 때라도 날 찾아오라고. 그래서 꿈에서 만나서 같이 놀자고.

 

  체리나는 대답을 속으로 삼켰다.

 

  “루시드 드림은 자각몽을 꿀 수 있는 마법이잖아.”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루시드 학파는 다르게 주장하지만.”

 

  웰리스가 책을 폈다. 책의 차례를 손가락으로 훑어가며 읽어 내려가던 그는 한 항목에서 멈췄다. 쪽수를 확인한 그는 그에 해당하는 부분을 폈다.

 

  “루시드 학파의 역사. 이 부분을 보면 마법을 하나 더 개발했다고 나오지.”

 

  책을 쓴 루시드는 이미 죽어서 없었기 때문에, 그가 말년에 만들어낸 마법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순 없었다. 루시드 학파의 사람들은 이걸 보고 타인의 꿈에 간섭하는 마법을 만들어낸 것이라 주장했다.

 

  “너무 허무맹랑하잖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오늘 네 말을 듣기 전까지는.”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체리나의 물음에 웰리스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그녀의 왼쪽 손목을 가리켰다. 갑자기 왼쪽 손목은 왜. 체리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의문을 표했다.

 

  “그쪽 팔 좀 들어봐.”

 

  체리나가 조용히 자신의 왼쪽 팔을 들어올렸다. 손목을 가리고 있던 아카데미 제목의 소매가 내려가고, 체리나의 손목이 드러났다.

 

  체리나의 손목은 오랫동안 강한 자극을 받았을 때처럼 붉게 부어있었다. 반대쪽도 들라고 웰리스가 말했다. 체리나는 오른팔도 들었다. 반대쪽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

 

  “꽤 전부터.”

 

  “근데 왜 말 안 했어.”

 

  “나는 또 너한테 새로운 취미가 생긴 줄 알았지. 아아, 얘가 블로섬 가문을 그렇게 싫다고 하더니 이제야 명문 가문의 영애답게 고상한 취미가 생겼구나, 생각했어. 원래 명문가의 사람일수록 고상한 취미를 가지잖아.”

 

  “고상한 취미는 무슨.”

 

  더러운 취미겠지, 하고 체리나가 중얼거렸다.

 

  “혹시 너 꿈에서 어디에 납치가 되거나 묶여있던 거 아니야? 묶여있는데 손목을 움직이려고 했겠지. 그걸로 인해 손목에 강한 자극이 가해져서 부어오른 거고.”

 

  체리나가 웰리스의 시선을 피했다. 웰리스의 시선은 끈질기게 체리나를 향했다. 그는 포기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체리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빌어먹을 정도로 똑똑한 학생 대표님.”

 

  “그거 때문에 꿈인 거 같은데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거잖아.”

 

  꿈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실제 몸에 변화가 일어났으니까. 평범한 꿈이라면 그럴 리가 없으니까. 웰리스가 하는 말이 전부 옳았다.

 

  “그럼 이제 다 밝혀졌으니까 남은 하나도 솔직하게 말해보실까, 체리나 블로섬양?”

 

  “뭐를?”

 

  “그 꿈 비슷한 거 말고. 너를 괴롭히고 있는 게 하나 더 있는 거잖아.”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굳이 물어보는 건 어떤 심보지. 체리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려주면 그 꿈 비슷한 걸 일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줄게. 루시드 드림이라면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알았어, 알았다고.”

 

  이걸 입으로 직접 말하게 되다니. 체리나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사실에 인상을 찌푸렸다.

 

  “가문에서 온 편지에 뭐라 적혀 있던 거야?”

 

  어차피 이제 와서 편지의 내용이 없던 일로 변할 일은 없으니까. 체리나는 눈을 질끈 감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며칠 후에 가문의 개망나니 위드 블로섬이랑 약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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