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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을 위해 일하고 있는 중에 사랑하는 아내가 죽었다. 그 때 루시드가 느낀 감정은 어땠을까. 그는 어떤 마음으로 루시드 드림이란 마법을 만든 것일까.
루시드에 대해 아는 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의 모든 걸 이해할 순 없었다. 그러나 체리나는 루시드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빌어먹을 블로섬 가문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체리나도 루시드 드림을 꾸고 싶었다.
겨우 힘든 시험이 끝났다고 생각했더니 가문에서 온 편지가 있다니. 그 편지의 내용은 또 어떤가.
가문에서 체리나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은 처음부터 이상했다.
[친애하는 체리나 블로섬양.]
친애하는? 누가 누구를? 블로섬 가문과 체리나는 암묵적인 적이었다. 아니지, 암묵적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게 더 이상했다.
체리나는 블로섬 가문을 싫어했다. 그리고 블로섬 가문은 체리나를 필요로 하지만 수치로 여겼다.
꿈에서라도 원하는 걸 모두 이룰 수 있다면. 그러면 체리나는 블로섬 가문이 없고 자신의 마음대로 뭐든지 이룰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아갈 것이다.
그렇다고 체리나가 큰 꿈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주 사소하게.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을 하고 남편을 꼭 닮은 아들 하나와 체리나를 꼭 닮은 딸을 하나 낳고 싶었다.
남편은…… 글쎄. 체리나는 아직 그렇게 깊이까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주 어렸을 때, 아주 잠시 웰리스와 결혼을 하면 예쁜 자식을 가질 수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해봤던 게 끝이었다.
하지만 체리나도 잘 알았다. 웰리스와 체리나는 절대 이어질 수 없었다.
그레이스 가문의 차남. 그레이스 가문에서는 체리나를 환영했다. 다만, 블로섬 가문에서 겨우 그레이스 가문의 차남에게 ‘진실의 눈’을 가진 체리나를 보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체리나는 어렸을 때부터 블로섬 가문 사람의 부인이 되는 교육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가문의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것은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 평범한 블로섬 가문의 남자면 말이다.
[이제 곧 체리나 블로섬양도 꽃 피는 나이가 됩니다. 비록 이 어미가 체리나양을 직접 낳은 것은 아니나 마음으로 그대를 낳았기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에 체리나양에 대한 걱정을 했습니다.]
어미? 누가 누구의? 아아, 블로섬 가문의 최고 부인이시니까 모든 블로섬 가문의 아이들을 품으로 안겠다는 포부인가?
전부 개소리였다. 체리나는 세리나 블로섬의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 적어도 철이 들기 전인 열두 살까지는.
세리나 블로섬의 배가 점점 불어올수록 세리나는 체리나에게 부드러워졌다. 체리나를 매섭게 노려보던 눈은 따뜻했으며, 가끔은 우울하게 있는 체리나를 안아주기도 했다.
그걸 보고 체리나는 오해했다. 아, 세리나 부인이 드디어 나를 좋아해주는 구나. 하지만 그건 체리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그건 배속에 있는 앞으로 태어날 아이를 위한 태교의 일환이었다. 별로 좋아하지 않은 사람도 너그럽게 봐주어야만 앞으로 태어날 아이가 큰 사람이 될 수 있다. 체리나는 지나가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체리나의 이복동생이자 블로섬 가문을 물려받을 장남인 테드 블로섬이 태어났다. 세리나 부인은 본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너는 이제 누나가 된 거야. 이런 건 동생에게 양보해야지.’
체리나는 모든 걸 양보했다. 누나니까, 동생이 있으니까 많은 걸 포기해야 된다고 했다. 체리나는 세리나의 말을 믿었다. 세리나가 아주 잠시 보여줬던 따뜻함은 그만큼 소중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체리나가 네 살이 되던 해, 체리나의 두 번째 이복동생인 카나리아 블로섬이 태어났다.
이번에는 여자아이였다. 체리나는 카나리아 블로섬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했다. 카나리아는 이름 그대로 노란색 귀여운 새를 닮았다.
어떻게 저렇게 귀여운 동생이 있을 수가 있지? 체리나는 카나리아에게는 양보하는 것조차 아깝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도 카나리아를 보러 그녀의 방에 찾아가던 길이었다. 체리나는 카나리아 방의 앞을 막고 있는 테드 블로섬을 만났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
체리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테드 블로섬은 그런 체리나를 비웃었다.
‘누가 누구를? 네가 내 유일한 여동생인 카나리아를? 네가 간다고 그 아이가 좋아할 것 같나보지?’
카나리아는 체리나가 찾아가도 항상 웃어줬다. 체리나는 카나리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대답했다.
‘적어도 너보다는? 누나한테 너라고 부르는 사람보다는 날 더 좋아할 거야.’
‘누나는 무슨.’
테드 블로섬은 끝까지 체리나를 막았다. 하지만 그가 막는다고 해서 포기할 체리나가 아니었다. 체리나는 꼭 카나리아를 만나고 싶었다. 만나서 그 천사같은 아이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결국 그녀는 끝까지 테드 블로섬에게 우겼다.
‘자기 몫도 잘 챙기지 못하는 멍청이 주제에.’
테드 블로섬의 한 마디였다. 체리나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누가 내 몫을 못 챙긴다고 그래?’
‘그러면 네가 그렇게 아끼던 목걸이는 어디로 갔지?’
‘그거는 카나리아가 가지고 싶다고 해서 내가 준 거야. 난 언니니까 당연히…….’
‘언니여서 당연히 동생에게 양보해야 된다고?’
테드 블로섬이 체리나의 말을 끊었다. 그는 큰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 말은 누가 해줬지? 아버지가? 아니면 어머니가? 아마 어머니가 했겠지. 그 말을 아직까지 믿고 있는 너는 얼마나 멍청한 건가.’
테드 블로섬이 주머니에게 뭔가를 하나 꺼냈다. 그건 체리나에게 매우 익숙한 물건이었다. 체리나가 아끼고 아끼던 목걸이.
열 살 생일선물로 아버지에게 받았지만 카나리아가 가지고 싶어 해서 그녀에게 넘겨줬던 그 목걸이였다. 그게 어째서 테드 블로섬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건가.
사실 체리나도 알고 있었다. 믿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눈으로 직접 확인한 사실은 생각보다 더 잔혹했다.
‘카나리아가 이걸 가지고 싶어서 너한테 달라고 한 것 같았나? 겨우 이런 싸구려 목걸이를? 웃기는 소리는 그만하지, 그래. 아무리 카나리아가 가지고 싶어 했다고 해도. 블로섬 가문은 이런 목걸이 하나 더 사는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지.’
테드 블로섬은 말을 덧붙였다.
‘이건 그냥 아버지가 준 물건을 네가 가지고 있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빼앗은 거야. 네가 지금까지 나한테 양보한 거? 그거도 다 필요 없었지. 블로섬 가문의 직계한테 양보라니. 블로섬 가문에 널린 것이 재보인데.’
충격이었다. 체리나는 그때부터 카나리아를 찾아가지 않았다. 방에서 잘 나가지도 않았다. 블로섬 가문에 있는 사람은 전부 믿을 수 없었다.
체리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체리나에 대한 태도가 변하지 않는 것은 책이었다. 채을 읽으면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그녀는 그렇게 책에 빠져들었다.
아, 괜히 쓸데없는 옛날 생각이 났잖아. 체리나가 자신의 이마를 만졌다. 편지의 가장 어이없는 부분은 그 다음에 이어졌다.
[체리나양은 아직 본인이 어리다고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성의 진정한 행복은 지아비를 만났을 때 찾아오는 법. 이제 체리나양의 나이 정도 되면 평생을 모실 지아비를 만날 시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문구를 읽는 순간 체리나의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언젠가 찾아올 거라 생각은 했지만 그게 이렇게 빠를 줄은 누가 알았을까. 아카데미로 들어오면 적어도 졸업할 때까지는 건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혹시 누군가 가문에 말을 한 건가. 웰리스와 함께 다니는 걸? 부정하기 힘들었다. 블로섬 가문에서 체리나를 이렇게 일찍 결혼시키려는 걸 보면 그게 가장 신빙성이 높았다.
어차피 결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일찍 가서 남편이 될 사람을 붙잡아 원하는 삶을 살아가도 나쁘지 않지. 일단 블로섬 저택에서 벗어나자. 체리나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그래서 이 어미는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체리나양과 어울릴만한 남자를 찾았습니다.]
그래, 얼마나 적당한 남자를 찾았는지 한 번 보자. 체리나는 편지의 내용을 비웃으며 다음을 읽어나갔다.
[혹시 위드 블로섬을 만나본 적이 있습니까? 블로섬 가문의 방계 쪽에 있는 능력이 좋은 남아입니다. 아마 체리나양도 만나면 마음에 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체리나양과 위드군의 만남을 만들려고 하는데, 시간의 여유가 된다면 다음 주 중으로 블로섬 저택에 찾아오세요.]
이건 권유가 아니라 통보였다. 위드 블로섬. 그 이름을 보는 순간 체리나는 블로섬 가문의 생각이 눈에 훤히 보였다.
다른 가문으로 ‘진실을 보는 눈’을 놓치는 건 아깝다. 하지만 꽤 능력이 있는 블로섬 남아를 체리나에게 버리는 것도 좋지 않았다.
블로섬 가문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위드 블로섬이 사고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미래가 창창하던 블로섬 가문의 남아는 사교계에 바람둥이로 소문났다.
웬만큼 괜찮은 집안의 여식은 모두 건들었을 것이다. 위드 블로섬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미망인을 건들었단 소문도 돌았다.
블로섬 가문은 일타이피를 원했다. 체리나를 블로섬 가문에 묶어놓으면서 위드 블로섬에게 적당한 아내를 만들어준다. 그래서 체리나와 위드를 엮었다.
“미친 거 아니야?”
웰리스는 체리나가 저 편지를 처음 읽었을 때와 완전히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는 표정이 어두워졌다가 허탈한 미소를 짓더니 결국 헛웃음소리를 냈다.
“드디어 블로섬 가문이 미쳤네. 어떻게 그 망나니 위드 블로섬을. 아니, 위드 블로섬은 네 그 망할 여동생이 좋아한다며.”
웰리스는 말을 한 뒤 아차 싶었다.
“……혹시 그거 때문이냐.”
“뭐가.”
“너의 그 깨물어 죽여도 못마땅한 여동생이 망나니 위드 블로섬을 좋아해서 블로섬 가문이 나선 거 아니냐고. 너는 중간에 껴서 뭔 죄야. 네가 뭘 잘못했다고 겨우 그딴 놈한테 보내려고 난리인데?”
웰리스가 화를 내는 건 오랜만이었다. 그는 씩씩거려도 화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지 목에 차고 있던 넥타이를 풀었다.
“내가 그랬지. 어차피 블로섬 가문에서는 수준 낮은 남자를 엮어줄 거라고.”
“그걸 알아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체리나가 웰리스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꿈은 무슨 빌어먹을 꿈. 자꾸 납치를 당해서 괴로운 꿈? 그래, 중요하지. 하지만 지금 겨우 꿈을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너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결국 그 놈이랑 결혼해야 돼. 그렇다고 중간에 파혼이라도 해줄 거 같아?”
절대 아니다. 그건 체리나도 알았다.
“블로섬 가문에서 분명 그놈한테 말하겠지. 일단 체리나 블로섬을 본처로 나둬라. 체리나 블로섬이 아들 하나만 낳으면 그 이후로는 맘대로 살아도 된다고. 여자를 마음껏 만나도 된다고.”
위드 블로섬은 블로섬 가문에 붙잡여 사는 걸 저주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에게 저런 조건을 걸어오면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체리나도 알지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체리나가 고개를 숙였다.
“네가 뭘 잘못했다고 고개를 숙여. 고개 들어, 체리나.”
웰리스가 체리나의 고개를 들어올렸다. 체리나와 웰리스의 시선이 마주쳤다. 체리나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녀는 눈물을 웰리스에게 보이기 싫어 눈을 질끈 감았다.
“눈 떠.”
웰리스는 날카로운 말과는 다르게 부드러운 손길로 체리나의 눈가를 닦아줬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진짜 모르겠다. 그래도 적어도 위드 블로섬이랑 결혼하고 싶단 생각은 하지 않고 있겠지. 그냥 네가 먼저 선수를 쳐.”
“뭐를 어떻게?”
“만나고 있는 남자가 있다고 당당하게 말해. 그리고 그 남자랑 결혼을 약속했다고 해. 신전에서 했다고 하면 가문에서도 뭐라 못할 거야.”
“이제 와서? 그런 거짓말을 가문에서 믿을 거 같아?”
“믿게 하면 되지. 진짜로 신전에 가서 약속을 하면 되잖아.”
“누구랑?”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아나. 그렇게 되면 체리나와 약속을 한 남자는 어쩔 수 없이 체리나와 결혼을 해야만 했다. 신의 앞에서 약속을 하는 건 자신의 모든 걸 건다는 의미니까.
체리나는 겨우 자신의 사정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급하게 부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친한 남자도 없었다.
그런 체리나의 걱정이 헛된 거라는 걸 말하려는 것처럼 웰리스가 체리나에게 말했다.
“내가 해줄게.”
“뭐?”
체리나는 잘못들은 줄 알았다. 그녀가 다시 묻자 웰리스는 체리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시 한 번 말했다.
“내가 해주겠다고. 신전에 가서 결혼 약속.”
“지금 내가 너랑 장난을 하는 줄…….”
“장난 아니야.”
웰리스가 체리나의 손을 붙잡았다. 그는 그녀를 놓을 생각이 없는 걸 말해주려는 것처럼 그녀의 손을 꽉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