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지낸 지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별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별은 수다쟁이인 것이 틀림없다.
별은 마치 대화상대를 기다렸다는 듯이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걸었고, 이 때문에 나는 잠시라도 쉴 틈이 없었다.
나 또한 대화상대를 오랫동안 기다려왔지만, 별은 나보다 더 오랫동안 기다려온 것 같았다.
그런 별의 모습을 보면 마치 사막 속에서 헤매다 오아시스를 찾은 여행가 같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별의 이야기보따리는 줄어들지 않았지만, 나는 이제 별의 이야기가 귀찮지 않았고, 짜증은 더욱 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별의 이야기에는 그들과 다른 따뜻함과 상냥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대화하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기에 신선하고, 좋았다.
보통 어떤 이야기를 하냐면 내가 이때까지 어떤 곳에 여행을 해봤는지, 그곳은 어땠는지 이런 질문이었다.
하지만 아까 이야기했듯이 별의 이야기는 좀체 줄어들지 않았다.
물론 처음 만난 상대이기에 호기심이 왕성하리라 생각은 했지만, 계속되는 나의 질문에 나는 금방 타성에 젖고 말았다.
그래서 나 또한 별의 수다에 지지 않으려고, 별이 나의 이야기를 물어보듯이 나도 똑같이 별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다.
그 덕분인지 처음보다 매끄러운 대화가 이어졌고, 서로를 어느 정도 알게 됐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원하던 친구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이야기해도 지루하지 않고, 이야기하면 할수록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따스함이 느껴졌다.
이때까지 나는 우주국에서 갇혀 지내며 발사와 수리의 반복인 지루한 일상이었지만, 여기 이 별에 있는 뒤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별과 수다를 떨었다.
때로는 내가 묻는 말을 조금도 귀담아듣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할 때도 있지만, 미워 보이기는커녕 어린아이처럼 귀여워 보였다.
비록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몸은 여기저기 망가졌지만, 나는 여기에 추락한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카로스야. 너는 지구에서 어디로 가는 길이었어?”
“‘IC -031’이라는 행성인데 지구와 비슷한 환경인지 탐사하러 가는 길이었어.”
“IC -031? 인간들은 별이라는 예쁜 말을 두고 이상하게 이름을 짓는구나!”
사람은 숫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
아니, 좋아한다는 것보다는 집착과 광신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에 숫자가 안 붙는 것이 없다.
키, 몸무게, 나이, 그리고 시험점수로 사람의 됨됨이를 판가름하며, 심지어 그 판가름마저 숫자로 된 점수와 등급으로 매기기도 한다.
“그 사람의 첫인상은 어때? 주말에 무엇을 하면서 보내니? 애인은 있어?”
이렇게 사람을 알아본다면 가슴이 따뜻해지고 얼마나 좋을까?
“그 사람은 몇 살이니? 이번에 봤던 시험점수는 몇 점을 맞았지? 애인은 몇 명이나 만나봤어?”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이런 식으로 숫자로 사람을 판가름한다.
자로 잰 듯 이야기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 나보다 더 기계 같아 보일 정도다.
하지만 별은 그런 사람과 달랐다.
별은 숫자와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고, 그저 ‘나’라는 존재에 대해 순수한 마음으로 대화를 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안했다.
대화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별을 보면 참 순수한 것 같다.
가만 생각해보면, 사람은 처음부터 순수하지 못한 존재일까?
아니면, 순수했던 사람은 성장하면서 순수함을 잃어버리게 된 것일까?
그렇다면 누가 사람의 순수함을 빼앗았을까?
무엇 때문에 사람은 순수함을 빼앗겼을까?
“하하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차라리 ‘새로운 지구’라고 하면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듣기에도 얼마나 쉽고 편해! 사람은 겉멋만 잔뜩 들은 것 같아. 영어와 숫자가 있으면 멋있는 줄 아는 것 같아!”
“그러게 말이야! 있잖아. 예전부터 이카로스가 여기 오기 전에는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했어. 혹시 알려 줄 수 있어?”
별의 질문에 잊고 있었던 과거가 떠올랐다.
여기에 지내느라 잊고 있었던 나의 외로웠던 과거가 내 머릿속을 괴롭혀 기분이 씁쓸했다.
과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싫지는 않았지만, 과연 어느 누가 어두운 과거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을까 싶어서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어두웠던 과거가 아닐지라도 나는 오랫동안 갇혀 반복적인 생활을 해왔었기에, 놀랍거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여기 오기 전까지 한 것이라고는 고작 책을 본다거나 발사와 수리의 반복이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탓인지 몰라도, 어떻게 이야기를 하면 재미있게 이어 갈 수 있을지 아직 감을 잡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별과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처음이고, 별의 성격이 어떤지 아직까지 잘 몰라서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골똘히 생각하게 됐다.
“어려운 이야기면 안 해도 괜찮아.”
별은 내가 이야기하기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는지, 아니면 궁금했던 나의 과거를 알지 못한 아쉬움 때문인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 별을 보자마자 놀랍고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아름답게 반짝이며 별을 장식한 모래가 서서히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색 또한 점점 어두워졌다.
마치 별의 기분에 따라서 모래의 빛과 색이 바뀌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서둘러 풀이 죽은 별을 위해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머리를 굴렸다.
마침내 이야기할 소재를 떠올렸고, 나는 별이 더 슬퍼하기 전에 재빨리 물어봤다.
“아니야. 괜찮아! 혹시 내가 지냈던 지구에 관해 들어보지 않을래?”
“응! 그것도 듣고 싶었던 이야기야. 나 말고 다른 별과 행성은 어떤지, 또 이카로스가 지냈던 행성은 어떤지 궁금해!”
다행히 별이 지구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것 같다.
만약에 별이 지구 이야기를 듣기 싫다고 했더라면 내가 지냈던 우주국 이야기를 할 생각이었다.
만약 우주국 이야기를 했더라면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었기에 이야기하는 나와 이야기 듣는 별 둘 다 따분했을 것이다.
“지구는 모든 행성의 특징을 다 모아놓은 곳 같아. 어떤 곳은 모래만 잔뜩 있고, 어떤 곳은 얼음만 잔뜩 있어. 그리고 어떤 곳은 항상 뜨거운 불이 치솟아.”
“정말 그런 곳에서 생명체가 있단 말이야? 위험한 곳 아니야?”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별은 화들짝 놀라는 눈빛이었다.
하기야 뜨거운 불이 치솟고, 얼음이 가득하며 모래바람이 부는 행성이라고 하면 어느 누가 안 놀랄 수 있을까?
실제로 그런 행성 있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아무래도 지구에 대해서 잘못 설명해준 것 같다고 느낀 나는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아니야. 모든 곳이 그렇지만은 않아. 어떤 곳은 나보다 더 큰 건물도 있고, 나보다 더 큰 기계가 사람을 싣고 우주에 다녀오기도 해.”
“이카로스가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지구가 어떻게 생겼는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어. 혹시 지구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줄 수 있어?”
하지만 나의 덧붙인 설명은 별의 궁금증만 더 크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역시 나의 설명하는 능력은 부족한 것임이 틀림없다.
“잠깐만 기다려봐.”
별이 보고 싶어 하는 지구의 사진이 데이터베이스에 있는지 검색해봤다.
다행스럽게도 데이터베이스에서 지구의 사진을 찾을 수 있었다.
‘데이터 검색 완료. 빔 프로젝터 송신 중.’
빔 프로젝터로 반짝거리는 모랫바닥에 지구의 사진을 선명하게 비췄다.
별은 지구의 사진을 보자마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모래는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운 색을 띠면서 빛났다.
아까 내가 설명을 해줬을 때, 별의 놀람은 끔찍한 상상을 한 느낌의 경악이었다면, 이번의 놀람은 미지의 세계에 눈을 떠 흥미를 느낀 경이로움인 것 같다.
“우와……. 지구는 정말 아름답구나. 이카로스가 이야기했을 때는 얼음과 불, 그리고 모래만 있는 끔찍한 행성일 것 같았는데 사진을 보니까 푸르고 예쁜 별이구나. 왜 이렇게 아름다운 별을 끔찍하고 무섭게 설명한 거야?”
별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나를 혼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역시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보여주는 것이 훨씬 낫구나. 너를 만나기 전까지는 오랫동안 혼자 지내서 대화하는 방법을 까먹었어. 그래서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조금 애먹었어. 미안해.”
별은 이런 쩔쩔매는 나의 모습이 우스워 보였는지 깔깔 웃었다.
“이카로스가 왜 미안하다고 하는 거야? 혹시 내가 화난 것처럼 보여서 그러는 거야? 전혀 화나지 않았어! 오히려 이카로스가 내게 아름다운 지구를 보여줘서 고마운걸. 그나저나, 이카로스는 언제든지 멀리 여행 다닐 수 있어서 좋겠다. 나도 이카로스처럼 여행을 다니고 싶어.”
임무 때문에 강제로 우주로 떠밀리는 나의 모습이 별에는 그저 신기한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의 모습이 별에는 그런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아서 조금 섭섭했다.
그런 마음도 잠시, 별과 이야기를 하는 동안 이렇게 감정을 가지며 이야기하는 별의 신비로운 존재와 과거를 나는 조금이라도 엿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별의 이야기 질문에 대답과 답변만 하느라 좀처럼 물어볼 기회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뜸 물어보기에는 별이 당황하며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만 같아서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때마침, 지금 대화가 무르익어갔다.
지금 묻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별에 넌지시 물어봤다.
“그러고 보니 별은 나를 만나기 전까지 어떻게 지냈어?”
“…….”
별은 꽤 오랫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기적인 나는 별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라 말을 못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직 별의 과거에 대한 궁금함에 몸이 달아오를 뿐이었다.
별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고 싶은 호기심은 별의 침묵에 더욱 몸부림쳤다.
무엇보다도 함께 지내야 하기에 알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물어봤다.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해줄 수 있어?”
별은 주저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둡고……. 공허한……. 이곳에서 이카로스가 오기 전까지 혼자 지냈어. 나처럼 말을 할 수 있는 별을 이때까지 단 하나도 만나지 못했어. 혹시 나중에 생길 친구들을 상상해보기도 하고, 그 모습을 모래로 그려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어. 그건 나를 더 외롭게 만드는 것뿐이었어.”
별을 감싸던 모래는 우주보다 더 어두워졌다.
별의 모래를 보자마자 나는 무례한 질문을 했다는 것을 느꼈고, 미안함과 당황스러움에 어쩔 줄을 몰랐다.
“미안해. 단지 어떻게 지냈는지 알고 싶었는데, 그렇게 슬픈 과거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어.”
내 사과에 별은 날 미워하지 않기를 바랐다.
다행히 별은 아까보다 기분이 나아졌는지 감싸던 모래가 아까보다 밝게 빛을 내며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야. 괜찮아! 중요한 건 지금이잖아! 난 지금 이카로스와 함께 있어서 행복해!”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 단 하나로도 별이 이렇게 기뻐해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별 또한 나처럼 외롭게 지내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의 호기심이 그만 별의 아픈 곳을 찌른 것 같아서 미안해졌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위로가 될지 고민하는데, 별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때까지 내가 살아왔었던 모습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나의 이야기로 별이 기운을 차렸으면 하는 마음에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있잖아. 나도 항상 혼자였어. 지구에 있는 우주국 직원과 다른 인공위성, 그리고 여기 올 때마다 보는 이 무수한 별들이 내 주위에 있었지만, 그들은 단지 주위에만 머물렀을 뿐, 나의 친구가 아니었단다. 내 주변에 누군가 머무른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결코 아닌 것 같아. 아니, 어쩌면 그 주변에 소속되지 못하며 지내는 것이 혼자 지낼 때보다 소외감을 더 크게 느낄 때가 많은 것 같아. 그리고 나 또한 지금 너와 함께 있는 것이 행복해!”
내 이야기를 듣던 별은 기운을 차렸는지 모래가 다시 아름다운 빛을 되찾기 시작했고, 따스한 미풍은 나를 스쳐 지나갔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위로가 별에 잘 닿은 것 같다.
하지만 따사로운 미풍도 잠시 내 몸이 흔들릴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모래와 함께 휘몰아쳤고, 별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비록 다른 곳에 멀리 떨어져서 지내왔었지만 우리는 공통점이 많은 것 같아. 우리는 별이고, 예전의 우리는 외로웠고, 지금의 우리는 행복하잖아. 아마도 이건 인연인 것 같아. 이카로스, 계속 내 곁에 이렇게 있어 줘.”
별은 행여나 내가 다시 지구로 떠나가는 것이 무서워서 그렇게 유난을 부린 것 같다.
별은 언제까지나 내가 여기에 머물기를 원했다.
하지만 예전에 그들이 나를 가두며 구속해왔던 느낌이 아닌, 친구로서 늘 함께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나 또한 이 별을 만난 것이 행운이자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그래. 계속 같이 있기로 약속할게. 근데 이 바람 좀 어떻게 해줄래? 내가 또 재미있는 이야기 해줄게.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어? 찾아서 보여줄게!”
내 말을 끝나기도 무섭게 휘몰아치던 바람이 멈췄고, 평온한 모래가 나를 살랑살랑 간지럽혔다.
그리고 별은 잠시 고민하더니 평소와 같이 밝은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음……. 그러면 나 있잖아. 이카로스를 이 세상에 나오게 해준 사람을 보고 싶어!”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지 모르지만 나와 닮은 별을 즐겁게 해주고 싶어졌다.
나는 별이 기다리는데 지루하지 않도록 서둘러 데이터를 검색해서 별에 보여줬다.
“그런 것이라면 당연히 있지! 얘는 제임스야. 처음부터 끝까지 내 곁에서 있으면서 만들어준 사람이지. 이름도 얘가 지어줬어! 그리고 저기 못생긴 꼬맹이는 아널드라고 하는데…….”
우리는 며칠이 지나도록 쉬지 않고 서로를 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