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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속 미녀
작가 : 야광흑나비
작품등록일 : 20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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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속 미녀 5.
작성일 : 16-04-11     조회 : 765     추천 : 0     분량 : 5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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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실상 내 첫 살인이 있던 날의 기억.

 절대로 내가 그럴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치욕스러운 기억이 머릿속으로 무참하게 밀고 들어왔다.

 내 나이보다 다섯 살 많은 여자였지만 몹시 사랑했었다.

 아버지가 일하시는 공방에서 조수로 일하던 그녀와의 만남은 사실상 밖에서 이루어졌고, 첫 만남은 아버지가 아닌 내가 더 빨랐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몇 년 째 사귀어 온 연인이라는 사실은 공방 안의 누구라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내 나이 열네 살. 그녀 나이 열아홉에 만났고, 그렇게 5년간 비밀스러운 만남을 이어오다가 그녀가 공방 안으로 들어오면서 더욱 친밀해진 관계였었다.

 나는 그녀와 결혼까지 하고 싶을 만큼 몰입 해 있었고, 그녀역시 그렇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녀는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아닌 아버지를 택했다.

 “네가 가진 게 뭐야? 네가 내게 뭘 해 줄 수 있는데! 같잖은 오기나 부리면서 아까운 보석을 작살 낼 줄만 알지,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잖아!!”

 그녀는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져서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애송이인 나보다, 돈 많고 능력 있는 아버지 쪽을 택했다.

 사랑한 건 우리였는데, 어느 틈에 나는 떨어져 나가고 아버지와 그녀가 하나로 이어져 버렸다.

 연인이었던 여자를 늙은 아버지의 새 여자로, 새어머니로 맞이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주변이 뿌옇게 흐려졌다.

 함께 한 건 우리였는데. 어째서 우린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용기란 용기를 다 끌어 모아서 청혼을 했지만 그녀는 냉랭한 거절의 말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우린, 안 맞는 것 같아. 넌 너무 보석 아까운 줄도 모르고 제대로 사는 게 뭔지도 알지 못하는데, 내가 어떻게 네게 평생을 맡길 수 있겠어? 보석에 이렇게 큰 상처를 주는 네가 날 상처 주지 않을 거란 확신이 없어.”

 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보석을 과감하게 세공하는 것이 어떻게 이별의 이유가 된다는 것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난 그 순간 눈이 뒤집어져 버렸다.

 가당치 않은 이유를 들어서 이별을 고하는 그녀를 처단해야 한다는 생각밖엔 없었다.

 그때 그녀가 조금 더 부드럽게 납득 시켰다면. 어쩌면 난 망설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만 뒀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도 그녀가 아버지와 그렇게 다정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내 보석 반지에는 기뻐하지 않던 그녀가 아버지의 심플하고 커다란 보석 반지에는 눈물마저 글썽이는 모습을 보지 않았더라면…….

 난 아마 그녀를 포기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결국 잘못은 그녀가 한 거였다.

 내가 아닌 그녀가.

 그런데…….

 ‘그녀의 시신이 왜 여기 있는 거지? 그녀의 시신은 아주 깊은 산중의 나무 밑에 묻어놔서 아무도 모를 텐데. 어떻게…….어떻게 이게 내게로 온 거지? 이 여잔 실종 처리 된 채로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여자인데 어째서 이 시점에 이 여자가……. 이건 꿈일 거야. 악몽이야.’

 공방 안에 있는 약품으로 시체의 구역질나는 냄새를 덮어버리고 공방을 열면서 주변 이웃들에게 받은 휴지와 커다란 쓰레기봉지. 밧줄을 십분 활용했다.

 그녀가 튀어나온 알과 같은 호박부터 시작해, 그녀의 다 썩어버린 몸뚱어리까지 완벽하게 쓰레기봉투 안에 집어넣고 그 속으로 약품에 살짝 담갔다가 뺀 휴지를 빈틈없이 넣어서 두 번째로 냄새를 원천봉쇄 시키고 겹겹이 쓰레기봉투로 막은 후에 보석을 해외에서 받아오는

 보따리 상인에게서 받은 여행 캐리어 안에 꼭꼭 눌러 담았다.

 그리고도 난 마음에 놓이지 않아서 캐리어 주변으로 락스 섞은 패브리즈를 왕창 뿌렸다.

 그러나 가까이에 있는 내 코에는 여전히 시체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듯 했고, 캐리어 안에 밀봉 된 시체 안에선 계속해서 기분 나쁜 냄새가 흘러나오는 것은 아닐지 걱정 되었다.

 몸이 사정없이 떨려왔다.

 ‘내가 어쩌다가 사람을 상습적으로 죽이는 살인자가 된 거지?’

 혼란스럽다.

 나는 원래 이런 인간이 아니었다. 심지어 난 내가 이런 저급한 인간은 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렇게 되어버렸다. 점점 더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숨길 수 있을까?

 이미 부식 될 만큼 부식 돼버려서 신원을 제대로 알 수조차 없어 보이는 여자의 시신에 새삼 놀라는 것은, 그동안 시체인지도 몰랐던 여자와 대화를 하고 교감 비슷한 것을 나눴다고 여겨 온 나 자신 때문이었다.

 ‘내가 여태까지 시체랑 대화를 나눴던 거라고? 그 여자랑 눈을 맞추고 온기를 느끼며 그녀의 피와 눈물이 만들어낸 보석을 깎았다고? 이건 마치 시체를 한 달 동안 옆에 끼고서 그게 시체인지도 알지 못한 채로 살점을 조금씩 뜯어내는 것과 같잖아!!’

 나는 이런 지점이 새삼 끔찍했던 것이나.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한동안 망각 하고 있었던 첫 번째 피해자의 시체가 여전히 공방 안에 있었고, 시체의 지시나 다름없는 행동에 눈치를 보며 계속해서 살점을 후비고 있었다는 게.

 더구나 난 그런 조종을 당하는 것에 다분히 환멸감을 느끼며 그녀가 죽든 말든 아랑곳없이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다.

 그녀가 방치되도록 놔뒀다.

 그녀가 그때의 그녀일지 알았더라면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무릎을 꿇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녀에게 진심으로 사죄해야 하는 걸까.

  ***

 시체를 원래 있던 곳으로 가져가기 위해서 소리죽여 캐리어를 밀었다.

 그러나 점점 더 무거워져가는 캐리어의 무게.

 시체의 살점은 이미 얼마만큼 썩어버렸고 무게라고 할 만한 것은 조금 남은 살점과 뼈 무게밖에 없음에도. 악취를 없애기 위해 돌돌 말아 넣은 휴지 조각과 봉지뿐임에도 불구하고 돌덩어리를 들고 있는 듯, 참을 수 없이 단단한 무게감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더럽게 무겁네.”

 은한샘. 그녀를 들어 올리고 키스 할 때의 무게감은 깃털을 모아놓은 듯 가볍게 느껴졌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시체가 주는 무게감은 살점을 덜어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무겁기만 하다.

 이것은 내 죄책감의 무게인 것일까. 아니면 그녀의 몸이 나무의 진액과 흙의 덩어리가 융합 된 채 썩어버린 탓이었을까.

 나는 마치 계속해서 깨어날 수 없는 악몽 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언젠가 본 만화 속에서 자신을 지하철에 몸이 갈기갈기 찢겨 죽게 만든 사람에게 달라붙어 똑같은 죽음을 맞이하게 하고, 그의 영혼을 지하철에 머물게 만들며 채 자신에게 쫓기도록 만들었던 악령처럼.

 그녀 또한 언젠가부터 내게 머물러 이렇게 될 날만을 염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의심하게 만든다.

 ‘정말 그랬던 거야?’

 땀이 비 오듯 쏟아져 내린다. 뒷산의 빽빽한 나무숲까지 가려면 한참은 더 올라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진이 다 빠져나갈 정도로 지쳐버렸다.

 누나. 한샘 누나.

 다정하게 부르면 그녀는 내게 다가와 목을 꼭 안아 주곤 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어쩐지 여자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내게 유일한 온기를 가져다 준 그녀였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릴 적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서 따스하게 감싸 안아주고 누구보다 살갑게 대해줬던 여자. 그랬기에 그녀의 배신은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어떻게 네가 내게 이럴 수 있어.’

 누군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유가 있었던 거겠지. 이유도 없이 널 상처주고 떠날만한 여자는 아니잖아.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어찌 됐건 그녀는 아버지에게로 갔고, 그 모습을 내게 들켜 버린 후였다. 그런데 내가 그 순간 뭘 어쩔 수 있었겠는가.

 그때의 난 아버지를 그렇게까지 증오하진 않았다는 것을 이제야 인정 해 버렸다.

 아버진 나를 옭아매고 아무것도 내 의지대로 할 수 없게 만든 사람이었지만, 답답한 아버지임에 틀림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가장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었다. 존경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그녀를 새로운 부인으로 맞이하려는 마음을 품게 된 순간부터 그 마음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왜, 아버진 나를 통제하는 것으로 모자라서 내 것인 여자까지도 취하고 통제 하려고 드는 거지?’

 그렇게 납득 할 수 없는 현실에 끊임없이 분노하고 증오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곧바로 그녀를 죽인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난 그녀에게 해명 할 기회는 주려고 애썼어. 그런데도 그녀는…….’

 “보이는 걸 믿지 못하는 것은 머리가 나쁜 거니. 둔한 거니? 변명 할 생각 없어. 변명 할 필요도 없고. 보이는 게 다니까.”

 그렇게 싸늘히 말했던 그녀에게 대체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었던 거냐고. 스스로에게 수도 없이 자문했다. 그러나 결국엔 모든 게 다, 부질없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넌…….날 찾아 왔단 말이지. 네 죽음이 타당한 죽음이 아니라고 나를 다그치기 위해서. 복수하기 위해서. 그래? 그런 거야?”

 그녀가 숨이 끊어지는 순간을 기억한다.

 쾅-!

 “아악-!”

 그녀의 목을 누르고 숨이 간당간당 할 때쯤.

 나는 그녀의 복사뼈를 완전히 부서트렸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만큼이나 완벽한 몸 중에서도 그녀의 발목은 특히 아름다웠다.

 평생 내 것이 되게 하겠다는 다짐의 의미로 넉 달을 넘게 소요하여 그녀의 아름다운 발목을 틀어지게 만들었다.

 복사뼈를 망가뜨리고 그녀의 완벽한 일자형 발목을 안쪽으로 휘어지게 만든 것은, 죽어서라도 내 것이 되게 만들겠다는 최소한의 의지였다.

 이렇게 만들면 절대로, 다시는 그녀가 내게서 도망가지 않을 테니까.

 완벽한 내 것이 되어 종속 될 테니까.

 그래서 난, 그 순간……. 슬펐음에도 기뻤다.

 상실감을 느꼈음에도 충족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것이었다. 그녀를 죽일 때의 내 기분이라는 것은.

 그런데 그 이후의 기분은 가히 좋지 않았다.

 아버지는 한낱 조수에 불과한 그녀의 실종을 쉬이 믿으려 들지 않았고, 더욱 더 나를 다그치며 혹여 내가 그녀에게 무슨 몹쓸 짓을 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며 추궁 했다.

 그녀를 데려오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아들은 나인데.

 피붙이는 나인데.

 화가 나고 납득 할 수 없었다.

 죽임으로서 완벽한 내 것이 된 그녀를 찾는 아버지. 죽었음에도 완벽한 내것이 되지 않은 채로 아버지의 관심 아래에서 숨쉬고 있는 그녀. 모든 것이 분노가 되었다.

 그런데…….그걸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망각의 저편에서 가끔 들여다보는, 완벽한 내 것이어야 할 그녀와 나에게 조금 더 너그럽게 관심을 가졌어야 마땅한 내 아버지가 더러운 욕정에 노예가 되어 붙어먹은 것도 모자라 죽음마저 갈라놓지 못하는 사이라는 게 너무나 분했기에, 또 다시 그 감정을 느껴야만 하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엿 같았다.

 시체를 들킬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사실상 이 감정보다 강하진 않았다고 하면…….누군가는 날 싸이코패스라고 욕하겠지?

 하지만 정말 그런 마음인 것을 어쩌겠는가.

 이게 내 진정한 심정인 것을.

 나는 산 중턱에 오르자마자 그녀가 뭍혀 있던 그곳에 분노의 삽질을 감행했다.

 과거에 묻었던 때보다 더 깊이, 분노의 깊이만큼이나 깊이 그녀의 시체를 파묻어버려서 더는 그때의 망령이 나를 쫓아오지 않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녀가 다시는 여기서 기어 나오지 못하도록. 마음속에서 끄집어서 그녀를 생각하는 것도 더 이상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젠 이걸로 정말 끝이다.

 그녀와는.

 그리고 나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말 것이다. 누구도 더는 날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더는 날 무시하고 내 곁을 떠나려는 사람이 없도록.

 돈 때문에 내 곁에 있는 거라면 떠나지 못할 만큼 어마어마한 재산을 모을 것이고, 외모 때문이라면 그 외모를 십분 활용하여 그녀를 유혹 할 것이다.

 난 분명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한 인간이다.

 여태껏 과소평가 당해 온 것이 이상할 만큼.

 충분히 잘난 인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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