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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속 미녀
작가 : 야광흑나비
작품등록일 : 20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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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속 미녀 10.
작성일 : 16-04-16     조회 : 527     추천 : 0     분량 : 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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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년이 지난 어느 날.

 지축이 울리고 있었다. 100년 동안 무수히 많은 시체가 내 옆에 묻히긴 했지만 이렇게 땅을 울리는 소리가 아주 오랫동안 들린 것은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안녕하신가?”

 당신!!

 “그 안에서 반성은 좀 하고 있었나? 100년 동안 아무리 반성 한다고 해도 타고난 천성이 변하리라 생각진 않지만.”

 은행원이 100년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때 그 미소 그대로 웃으며 날 보고 있었다.

 “그동안 무얼 느꼈는가.”

 은행원은 묻고 있었다.

 “100년간 무수히 세상엔 무수히 많은 일들이 있었지. 전체로 보면 100년 전과 다를 바 없는 엇비슷한 일들이, 엇비슷한 인간들에 의해서 자행되며 끝을 맞이했어. 그런데 넌? 그동안 무얼 깨달았지?”

 나는 무얼 깨달았던가.

 은행원의 말에 난 그가 날 시험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깨달은 것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있다면 그것을 토대로 얼마나 달라졌는가.

 쉽게 변하지 않은 인간이면서 달라질 수 있는가.

 뭘, 얼마나?

 이 순간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더 이상 내게 기회 같은 건 없으리란 걸 알았다.

 생각보다 많은 여자들이 별 것 아닌 이유로 죽는다는 것.

 “그리고 또?”

 나와 같은 인간들이 참 많았어. 죽기 전이나 죽은 뒤에도 여자들은 쉼 없이 고통 받았지.

 “어떤 의미에서의 고통이지?”

 여자들을 죽인 이들은 대부분 몇 년에서 몇 십 년 후엔 벌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그녀들의 고통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어. 죽어서까지도 사실이 아닌 꼬리표를 달고 억울한 원혼으로 살아야 했으니까.

 “그래?”

 적어도 나는 이곳에 묻힌 뒤에 잘못된 소문도 없었고 내 모든 끔찍한 짓들도 잊혔어. 날 아는 사람도 나에 대해 나쁜 말을 하진 않았어. 갇혀 있어도 철저히 잊혔기 때문에 마음은 편해졌지.

 “또?”

 그 반면에 여자들은 살아서 고통 받던 시간이 죽은 이후에도 지속된다는 거. 잊히기가 쉽지 않다는 거. 진실 그대로 알려지는 것은 더 어렵다는 거…….

 “그것뿐인가?”

 미안했어. 나 같은 남자들 때문에 고통 받는 여자들에게. 간절하게 도와주고 싶었어.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지?”

 이곳에서 아주 많은 일들을 봤으니까. 그리고 전해 들었으니까. 죽어서 이곳에 묻혔던 여자들 중, 환생을 하게 된 여자들은 자신의 환생 소식을 알려왔지만 그렇게 행복한 기색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해.

 “어째서 그녀들이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고 단정하지?”

 다시 여자로 태어나게 됐다고 했으니까. 차라리 태어나지 않기를 바랐지만 태어나게 되어버렸다고……. 그래서 앞으로의 날들이 두렵다고 했어.

 “그래?”

 그리고 실제로 드물게는…….

 “드물게는?”

 환생 했음에도 행복하지 못한 인생을 살다가 이곳에 다시 온 여자들도 있었어. 정말 드물게 이곳으로 온 여자들이었지만……. 이곳에 묻히지 않은 여자들은 그보다 많겠지.

 “그거 참 가혹한 인연이로군.”

 그녀들의 한은 너무나 넓고도 깊었어. 비슷한 이유로, 죽임 당하지 않아도 되는 여자들이 죽어갔어. 그녀들은 더욱 더 한을 풀 곳이 없었고……. 죽임 당했음에도 연인을 원망하지 않는 바보들이었어.

 “연인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래.

 “하지만 그녀들이 연인을 원망 하지 않았다고 하기엔 네 꼴이…….”

 이건 그녀들의 연인 대신에 받게 된 형벌일 뿐이야. 그녀들에게도 어딘가 풀어야 할 데는 있어야 했으니까.

 “그렇다면 연인에게 원망이 없다고 볼 순 없는 거 아닌가?”

 글쎄. 난 그렇게 느끼지 않아. 연인에게 원망이 가지 않도록 애쓰는 것만으로도 그녀들은 바보 같을 만큼 착해. 그 정도는 원망이라고 할 수도 없지. 만약 내가 반대의 상황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 해 봤는데…….난 그녀들처럼 원망을 누그러뜨릴 수 없을 거야. 당사자에게 원망을 쏟아 붇고도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줬을 거라고.

 “그런데도 그녀들은 안 했다는 건가? 하나도?”

 그래. 연인에겐 그 어떤 화도 미치지 않게 하고 싶어 했어.

 “그래?”

 그래도 놈들은 때가 되면 죗값을 받았지만 길어야 몇 십 년이었어. 그 후로 놈들이 얼마나 많은 죄를 범했을지 생각하면 너무나 짧은 벌이지. 그리고 자신이 죽인 연인에게 위로가 될 만한 죗값을 치른 것도 아니고.

 “뿌리까지 썩어 있는 놈인지 알았는데……. 이 안에서 꽤 기특한 생각을 하고 있었군.”

 기특한 생각을 하려고 한 게 아니지. 그저 내가 이렇게 되고 보니, 나보다 더한 삶을 살다 가는 것이 보통인 여자들이 가여워졌을 뿐이야. 생각보다 나 같은 놈들이 쓰레기란 것도 알게 됐던 건 덤이라고나 할까?

 “그렇군.”

 속죄 하고 싶어.

 “속죄?”

 죄를 값을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

 “뭐든지?”

 그래. 뭐든지 하고 싶었어.

 은행원은 그런 나를 심연처럼 까마득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뭐든지 할 수 있다? 그거 어려울 텐데. 가능할까?”

 가능하지 않다면 또다시 몇 백 년이든 이곳에 갇혀 주겠어.

 “그~으래? 그럼 어디 한 번 지켜봐 주지.”

 은행원은 구덩이 위에서 기다리던 포클레인 기사를 향해 소리쳤다.

 “여기, 조심해서 파도록 하시오!”

 “여기 말인가?”

 “그렇소. 여기!!”

 나는 그 날,

 은행원과 많은 말을 나눈 후에야 구덩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물론, 호박 안에 갇혀 있는 것은 그대로였지만, 그럼에도 뼛속을 파고드는 외로움을 더 이상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감사했다.

 “앞으로 넌, 많은 여자들을 만나게 될 거야.”

 여자들을?

 “그래. 네가 도와줘야 하는 여자들. 그녀들이 울지 않게 도와. 최소한 행복 비슷한 것을 경험 할 수 있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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