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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속 미녀
작가 : 야광흑나비
작품등록일 : 20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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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속 미녀 11.
작성일 : 16-04-19     조회 : 654     추천 : 0     분량 : 4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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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행원은 이동 중에도 쉬지 않고 내가 모르고 있던 것들을 말해주며 내게 당부했다.

 “넌 마음만 먹으면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뭐라고? 어떻게 그게 가능하다는 거지?

 “아무 때나 막 나올 수 있다는 건 아니지만.”

 “뭐야. 확실히 말 해!”

 “당연히 넌 죽어서 호박에 갇힌 게 아니니까. 여자들에게 강력한 위험이 닥쳤을 땐 스스로 그 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네 자유 의지가 지금보다 아주 많이 강해졌을 때도 마찬가지.”

 ‘그럴 수도 있는 건가? 그럼 난 그동안 감옥에 갇힌 것처럼 갇혀 있었다는 거야? 내가 죽은 거라고 착각 하면서?’

 “정말이냐? 내가 죽지 않은 게……. 진짜로 내가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게?”

 “당연하지. 넌 상처 하나 없이 생매장 된 특수 케이스니까.”

 그가 피식 웃으며 대답 했다.

 “살아서 100년을 갇혀 있던 거라고? 내가 시체가 아니라 정말 살아 있는 인간이라는 건가?”

 “그래. 넌 살아 숨 쉬는 인간이야.”

 “그럼, 그때 그녀는…….”

 두려운 듯이 말하자 그는 무심한 말투로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것들을 알려주었다.

 “네가 이미 죽인 사람이기 때문에 다시 살릴 수는 없었지. 그래서 호박 안에 그녀를 넣어두고 죽음과 직면할 수 없도록 했다.”

 “그럼 그 호박은…….”

 “저승사자가 끌고 가지 않게 하기위한 장치였지.”

 “저승사자?”

 “그래. 호박의 자양분이 없으면 인간으로서 제대로 산다는 것도 어려웠을 테니까.”

 “그럼 이미 죽어 있는 사람이 그 안에서만은 살아 있는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었다. 내가 지금 이해한 것이 확실한가?”

 “맞아. 호박 안에서 호박의 자양분을 받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게 그녀였지. 산 사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겐 별로 고통이 되지 않을 일들도 더 크게 고통스러웠을 거고, 더 빨리 죽음에 가까워진 거였어.”

 ‘호박의 자양분으로 살아 있었다고?’

 마치 탯줄이 없으면 생명 유지가 어려운 태아와 다름없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죽은 사람이었다고? 이미 죽은 사람이 그렇게 움직인 거였다고?”

 “그 안에 들어 있던 것은 사람이 아니었어. 그저 원념과 호박에 의해 움직이는 껍데기가 있었을 뿐이니까. 불필요한 죄책감까지 가질 필요는 없다. 네 죄업은 100년간 호박 안에 갇혀서 원혼들에게 뜯기는 걸로 퉁 쳤으니.”

 그의 말은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운 내용들이었다.

 내가 그동안 갇혀 있던 것이 산 채로 감옥에 갇힌 것과 다름없는 것이었고 여전히 살아 있는 인간이라는 것이.

 언제든 강한 의지를 가지면 이 안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럼 난 자유라는 건가?”

 “물론 완벽한 자유를 말하는 건 아냐.”

 그러나 그는 내가 기쁨에 젖어 있을 새도 없이 제동을 걸었다.

 “그래도 네 죄가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니 너무 기뻐하진 말라고.”

 나는 웃음을 지우고 정색하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 안 해.”

 “그래? 그럼 됐고.”

 “내 죄는 확실히 알고 있으니까.”

 “그래. 끝까지 그런 태도로 임하는 거야.”

 은행원은 그럼에도 안심이 되지 않은 듯 또 한 번 당부했다.

 “정말 위급한 때가 아니면 그 안에서 나오는 걸 꿈도 꾸지 마! 알았어? 그 안에서 여자들에게 잘 해줄 방법을 떠올리라고.”

 “알았어.”

 “좋아. 그럼, 첫 번째 여자의 집으로 가 볼까? 준비 됐나?”

 “응. 됐어.”

 첫 번째 집은 한남 동에 있는 꽤 커다란 5층 주택이었다.

 “앞으로는 이곳이 네가 살아갈 집이야.”

 “이곳에…….불행한 여자가 있단 말인가?”

 ‘부촌에 사는 여자가 불행하다니.’

 딱-!

 그는 내 머릴 쥐어박으며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았다.

 “부자가 행복할 거란 생각은 애초에 지웠을 거라 생각 했는데. 아니었나?”

 “…….”

 “경험으로도 터득하지 못한 걸 보면, 아직 멀어도 단단히 멀었군.”

 나는 다급하게 고개를 내저으며 정정했다.

 “아, 아냐!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뭘 알고 있지?”

 “부자라도 허무하고 힘들 수 있는 걸 안다고! 나도 그땐 그랬으니까.”

 말끝을 흐렸지만 이것이 답이라는 것은 확신 할 수 있었다.

 “그래. 맞아! 예전의 너처럼 돈이 생겼어도 진심을 나눌 사람이 없는 여자는 허무하고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어. 거기다 돈 많은 여자에게는 시시각각 죽음의 위협이 존재하니까. 더 심하다고 볼 수 있지.”

 “죽음의 위협…….”

 “그래! 죽음의 위협!”

 은행원은 내게 앞으로 만나게 될 여자의 정보를 짧게 알려 주었다.

 “한남 동에 사는 여자는 지금 당장 위험한 여자는 아니야. 하지만 외로움에 몸부림치다가 종국엔 잘못된 길로 들어설 가능성이 농후하지.”

 “잘못된 길?”

 “조만간 그녀는 쓸쓸히 혼자 늙어가는 것에 진저리를 치며 믿음직하지 못한 남자에게 빠져들 예정이야.”

 “그녀를 위협하게 될 남자는 어떤 남자지? 아니, 그것보다 혼자 있다고 해서 다 외로운 것은 아닐 텐데. 왜 그렇게 확신 하는 거지?”

 “그래. 대부분의 요즘 여자들이라면 다른 대안을 찾아내겠지. 하지만 이 여자는 대안이라는 게 없는 여자야. 스스로 누군가를 만나서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어려운 여자거든. 선천적으로 소극적이기도 했지만 타고난 부유함이 오히려 그녀의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을 바꿀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 해 버렸거든.”

 “그래서……?”

 “조만간 남자 하나가 그녀에게 접근 할 거야. 넌 그 남자가 그녀에게 접근하기 전에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녀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해.”

 “그렇다고 해도 내가 떠나버리면 또 똑같은 일이 반복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잖아?”

 나는 가장 걱정 되는 부분을 짚어주었다. 그러자 은행원은 또 예의 기분 나쁜 비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그걸 막기 위해 자립이 필요한 거야. 그녀가 정신적으로 완벽한 자립을 하고 믿을만한 남자가 주변에 나타날 때, 너의 의무는 끝나는 셈이지.”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람의 감정은 알 수 없는 것이라 내가 아무리 용을 쓴다고 해도 그녀의 마음을 완벽하게 사로잡을 수 있을지 확신 할 수 없다. 더구나 난 100년 그때,

 지금 만나게 될 여자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 온 인간이었다.

 사랑해주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라고 믿어왔던 남자. 모든 것에 소극적이고 자신 없었으며,

 제대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어려워서 피붙이에게까지 날카로운 가시를 들이밀었던 것이 바로 그였다.

 ‘그런 내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을까?’

 걱정 가득한 얼굴로 은행원에게 눈으로 물었지만 그는 여전히 태연자약했다. 아니, 오히려 자신만만하게 확신하고 있었다.

 “넌 네 외로움을 잘 알고 있지 않나. 그럼, 당연히 그녀도 외로움을 채워 줄 수 있을 거야. 너만의 방식으로 그녀의 마음을 얻고 그녀가 자립 할 수 있는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난 외모도 그다지 잘생기지 않았는데…….”

 “누가 그래? 네가 잘생기지 않았다고?”

 “그렇지 않다면 내가 그렇게 여자들에게 거부당했을 리가 없잖아.”

 그가 또다시 비웃음을 머금었다. 이번엔 그저 입술만 끌어 올리는 정도가 아니라 더 큰 비웃음이었지만 난 지금 이 순간 내가 바보 같은 말을 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기에 굳이 화를 내진 않았다.

 “네가 인기가 없었던 것은 네 괴팍한 성질머리와 소극적인 태도 때문이었지. 절대 네 외모가 꿀려서가 아니야! 알고 있나? 판으로 찍은 듯 닮은 네 아버지는 너와 전혀 다른 삶을 살다 가신 것을.”

 “그래.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타고난 난봉꾼이셨지.’

 “그래! 넌 사실 잘생긴 얼굴이야. 아니지. 잘 생겼다고만 표현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어. 넌 아주 뛰어나게 잘생기다 못해서 치명적으로 퇴폐적인 미모를 갖고 있는 놈이야.”

 “…….”

 “얼굴을 제대로 써먹지 못하는 놈이었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그는 내 얼굴을 쓸어내리며 마치 푸줏간의 고기를 대하듯 하나하나 짚어나갔다.

 “먼저 이 까만 피부를 예로 들까? 까맣지만 촌티 나게 얼룩덜룩한 피부 결이 아니라 부드러운 초콜릿 빛 피부에 꿀이 흘러내리는 것처럼 달콤함이 뚝뚝 흘러. 여자들이 아주 좋아하는 타입이지. 그리고 이 눈. 지금까지는 우울함과 독기로 가득 차 있어서 대부분의 여자들이 모르고 넘어갔지만, 여기에 다정하고 매력적인 눈빛을 더하면 누구보다도 치명적이지.”

 “이해가 안 가는군.”

 “이해가 가지 않으면 그저 인식 하면 돼. 앞으로 네가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서 상황은 아주 많이 달라질 테니까. 넌 이목구비가 아주 뚜렷해. 콧날도 베일 듯이 오뚝하고 전체적으로 동양인과 서양인의 장점만 반반씩 섞어 놓은 것처럼 완벽하지. 동서양의 좋은 점만 가득 담은 외모와 타고난 굵직하고 탄탄한 체형을 너는 일과 분노를 통해 어릴 적부터 더욱 탄탄하게 단련했어. 그러니 외형만 두고 보자면 누구보다 아름답다고 할 수 있어.”

 “외형만 두고 보자면?”

 “그래. 아직까지는 그렇다는 말이야.”

 그는 이렇게 말하며 세뇌 시키듯 거듭 같은 말을 늘어놓았다.

 “너는 이것만 기억하면 돼. 여자에게 가졌던 독한 마음을 완전히 지우고 그녀들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예의 있는 태도로 대해. 널 깔보고 조롱했던 화류계 여자들이나 너와 상관없는 다른 여자들과 같은 선상에서 보지 말라는 거야. 네가 사랑했던 연인처럼. 그녀에게 주지 못한 사랑을 주고, 그녀에게 보여주지 못했던 진정성을 보여줘.”

 “될까?”

 “물론.”

 나는 죽은 그녀를 생각하며 집 안으로 들어가기 전,

 내가 주고 싶었지만 주지 못했던 마음을 눈 안에 가득 품었다.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여자들에겐 그녀에게 주지 못한 것들만 줄 거야. 절대, 다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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