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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속 미녀
작가 : 야광흑나비
작품등록일 : 20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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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속 미녀 16.
작성일 : 16-05-08     조회 : 643     추천 : 0     분량 : 2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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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신창이가 된 남자가 도망치고 난 후,

 호박이 액체화 하여 순식간에 나를 집어삼켰다.

 

 “아니, 잠깐…….잠깐만. 아나- 나 아직 할 말이…….읍. 뿌르르르.”

 

 ‘뭐야. 다시 갇힌 거야? 그래?’

 

 나는 딱딱한 호박 속에 갇힌 채 멍한 눈으로 하염없이 천정만 바라보는 그녀를 응시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없었다.

 

 “도로 제자리로군.”

 

 다시 밖으로 나가려면 얼마나 더 간절해야 하는지, 얼마나 더 시간을 할애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것으로 저 여자를 행복 비슷한 감정을 느끼도록 할 수 있을지도 확신이 가지 않는다.

 

 “씨발!”

 

 쾅쾅-!

 

 “우-윽. 쿨럭.”

 

 호박을 거세게 친 것만으로도 격통이 밀려오며 입에서 ‘왈칵’ 핏물이 쏟아졌다.

 심장을 망치로 두드리는 것 같은 고통이었다.

 

 “씨발! 으, 으아 아아아-!”

 

 ‘이런 걸로 끝일 리가 없어. 이대로 저 여잘 놔두면 다시 그 놈이 찾아오거나 저 여자가 목숨을 날려버릴 거라고. 그런데도 내가 여기로 다시 끌려 와야 해? 여자들을 구원하라며?! 이렇게 제약을 두고서 어떻게 여자들을 구원하라는 거야?’

 

 행복하게 만들어주려면 그녀 주변의 암적인 존재들을 치워야 한다.

 행복하게 만들어주려면 돈도 있어야 한다.

 겉으로 드러난 개살구 같은 재력 말고 진짜 재력.

 따뜻한 마음과 재력을 갖춘 남자와 연결 시켜 줘야 하는데…….이렇게 갇혀서 있을 수 없는데…….

 

 “대체 나보고 어쩌라고~? 아악-!”

 

 쾅쾅-!

 

 “으윽. 쿨럭. 아, 젠장! 퉤-!”

 

 주르륵-

 

 무력감이 들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사람을 이렇게 괴롭게 만드는 것이던가?

 내가 인생에서 제일 패배자 같던 순간이 100년 전이라 여겨왔는데, 지금 이 순간을 맞이하고 보니 예전의 나는 오히려 행복한 녀석이었다.

 적어도 그때는 뭔가를 할 수는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쉽게 할 수 없다. 쉬이 바랄 수 없다.

 나는 호박의 핵에 대고 간절히 속삭였다.

 

 “다시 한 번만. 제발 날 이곳에서 나가게 만들어 줘. 단 며칠만이라도 좋으니까. 저 여자가 저렇게 넋놓고 있지 않을 정도로만 살려 놓고 돌아 올 수 있도록 해 줘. 마음은 추슬러야 할 거 아냐. 어? 저 여자, 살 수 있게 만들라며! 그게 내 임무라며?!”

 

 간절하게 말했지만 호박은 마치 콧방귀라도 뀌는 듯 호박 중앙에 작은 핵으로부터 회오리 같은 누런 액체를 내보내며 내 입을 단단히 틀어막았다.

 

 “으-읍-! 뿌르르르-”

 

 ‘이거 놔! 안 놔?’

 

 아무리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러 보아도 소용없었다. 방만하게 드러누워 넋을 빼고 있는 그녀도 여전했다. 힘껏 소리쳐 봤지만 그녀의 시선 천정 어딘가를 헤맬 뿐, 호박 속에 있는 난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 했다.

 

 ‘여기서 나가야 한다고. 나가야…….’

 

 얼마나 시간이 더 흘렀는지 알 수 없지만 인기척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그녀의 싸늘한 두 눈이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가 중얼거렸다.

 

 “아무리 꿈이라지만....너, 너무 주제넘고 무례하다는 생각 안 드니?”

 “뭐라고?”

 “너, 참 괘씸해.”

 

 그녀는 무섭게 화를 내고 있었다. 그것도 쓰레기 같은 애인 때문에. 너무나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그러지 않았으면 넌 죽었어! 알아?”

 “차라리 죽게 내버려두지. 네가 뭔데 날 도와.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고마운지 알아? 역겹고 화가 나.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을 네가 했어. 내가 가장 싫어하는 방식으로!!”

 “그 덕에 살았잖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내 삶에 제 3자가 끼어들어서 난동을 부리고 갔는데? 그게 좋을 것 같아?”

 “이해가 안 돼.”

 “그러시겠지. 어떻게 네가 내 맘을 이해하겠니. 겨우 호박 주제에.”

 “뭐라고?”

 

 여자가 이죽거렸다.

 

 “꿈속의 호박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난 아무것도 못하는 것에 기대를 안 할 뿐이야. 근데…….넌 기대 하지 말아야 하는 사람에게 기어이 기대감을 품게 만들려고 들잖아.”

 “.....”“네가 뭔데 내 남자를 밟아? 네가 뭔데 그를 쫓아내? 네가 내게 뭘 해 줄 수 있는데!”

 “그 사람처럼 상처주고 때리진 않을 거야. 죽이지 않는다고. 그거면 된 거 아냐?”

 

 나도 모르게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녀는 과격하게 고개를 흔들며 비명을 내지르는 것 외엔 그 어떤 호의의 감정조차 내보이지 않았다.

 

 “그건 날 돕는 게 아니야. 상처를 주던, 죽이든, 그건 그 사람과 나 사이의 일이여야만 해.”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말이야?”

 “그래도……. 그 사람은 내게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게 상처뿐일지라도?”

 “응. 상처뿐일지라도.”

 

 그녀가 서글프게 잦아든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때의 난 어쩐지 그녀가 과거의 내 모습과 오버랩 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녀의 감정은 내가 느꼈던 절절한 감정과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었다.

 내 감정은 그때 호박 속에 갇혀 있던 여자의 감정과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었다.

 죽은 그녀가 호박에 감싸여 있을 때,

 

 ‘이렇게 힘들었던 것일까?’

 

 나도 모르는 새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넘쳤다.

 마음이…….무너져 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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