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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호박.”
“뭐라고?”
여자가 물었다.
“잘라가라고. 호박. 호박을 팔아서 마련한 돈을 그 남자에게 주던, 당신을 위해서 쓰든 상관없지만, 돌아 올 땐 힘든 표정 다 지우고 돌아와. 알겠어?”
“가져……가라고, 이걸?”
“응.”
“내가 준다고? 아무 대가 없이 다?”
“그래. 어차피 이건 처음부터 네 것이었으니까.”
그녀가 당혹스러워 한다.
“이걸 어떻게 잘라.”
나는 그녀의 주변을 둘러보다가 탁상 위에 오른 잭나이프를 향해 고갯짓을 했다.
물론 저것의 원래 용도는 그녀가 못 견디게 힘들 때에 팔을 긋기 위한 도구였겠지만, 앞으로는 그런 일에 쓰이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짐짓 울상을 지으며 물었다.
“나, 못해. 한 번도 안 해 봤다고!”
“조금만 힘을 주면 잘려질 거야.”
“그래서 어쩌라고?”
그녀가 두려운 듯 미간을 구기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나 난 더욱 더 강한 억양으로 그녀를 다그쳤다.
“자르면 된다니까? 자르고 가까운 보석상에 가서 팔아!”
“…….”
“크게 한 토막 잘라서 가져가면 적어도 당신 한 달 월급보단 많이 나올 테니까. 가져 가.”
나는 단호하게 그녀를 얼렀다.
“착하지. 어서.”
“난 착하지 않아.”
“착하지 않으면 더 좋지.”
“남의 것을 어떻게 그래.”
“당신 거라니까.”
그녀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어서. 응?”
“정말…….나한테 왜 이래?”
그녀가 울먹이며 떨리는 손으로 잭나이프를 들어올렸다. 그 순간 나는 앞으로 올 고통을 상상하며 천천히 돌아앉을 수밖에 없었다.
“한다?”
“그래.”
“……정말 해?”
“어서 해! 읍.”
그녀 모르게 꽉 다물어진 입술에서는 진즉부터 한줄기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이거 자르는 거 봐야지. 안 봐 줄 거야?”
“알아서 잘 하겠지.”
“치.”
“나 안 볼 거야? 자꾸 그렇게 있으면 내 기분이 이상해지잖아. 괜히 못할 짓 하는 것 같다고.”
“그럴 리가.”
그녀가 미간을 구기는 것을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찡그리지 마. 안 예뻐.”
“내가 찡그리는지는 어찌 알고?”
“마음의 눈으로?”
“실없긴.”
“하하.”
‘서걱’ 그녀가 칼질을 시작하자 온 몸에 잔털이 삐죽 솟아오르는 느낌과 함께 고통이 밀려왔다.“으읍.”
“응?”
“어서 잘라.”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내 주변으로 핏물이 줄줄 흐르는 동시에 난 물길을 헤엄치는 해녀처럼 분주히 몸을 움직였다. 호박 속으로 핏물이 스며들어 한 몸이 될 때까지.
호박의 색깔이 원래부터 붉은 빛이 도는 것이라고 그녀가 착각 할 때까지.
그래서 그녀가 완전히 안심 할 때까지.
쉼 없이 움직인다.
마치 춤을 추듯이.
그러자 그 순간,
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100년 전 그녀의 마음을.
죽은 몸으로도 고통을 감내하며 내게 바랐던 마음을.
진심으로 알 것 같았다.
행복해 줘. 하지만 날 너무 아프겐 하지 마. 날 혼자 두지 마. 내게... 조금만 시간을 할애해 줘. 내가 바라는 건 그것뿐이야. 네가 편안하고 행복하게 내 곁에 있는 거.
많이 아프지 않게 해 주는 거. 그것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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