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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속 미녀
작가 : 야광흑나비
작품등록일 : 20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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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속 미녀 18.
작성일 : 16-05-10     조회 : 610     추천 : 0     분량 : 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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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란한 무대 위를 활보하는 여자.

 비틀거리며 사람들 틈에 섞여 춤추는 모습은 불콰할 정도로 취해 있다.

 주변을 에워 싼 남자들의 시선이 분주하게 그녀를 핥으며 때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녀는 춤을 추다 말고 흐느끼기 시작한다.

 

 “흐흑. 인생 뭘까? 아무것도 없으면서 괜히 줬다 뺏기만 하는 인생…….대체 뭘까?”

 작게 웅얼거리는 소리는 음악에 묻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지만 그녀에게만은 자조 섞인 울음이 너무나도 뚜렷하게 들린다.

 그래. 정말 인생이란 건 뭘까? 뭐기에 이렇게 갖지도 못할 거, 기대만 잔뜩 하다가 바람 빠진 것처럼 사라져 버리는 걸까?

 그녀는 너무나 알고 싶었다.

 5시간 전.

 연인이 살고 있는 반 지하 월세 방으로 찾아갔다가 집 밖에서 못 볼꼴을 보고 말았다. 대낮임에도 밖에 훤히 보이도록 창문을 열어놓고 섹스에 열을 올리고 있던 두 인영은 그녀의 직장 상사와 연인이었다.

 곱게 생긴 외모에 유독 씀씀이가 헤픈 남자라 그녀의 연인을 이런 반 지하 월세 방에서 사는 남자일거라 짐작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행동거지나 말씨. 사는 지역에서부터 꾸미고 다니는 모습까지도 어지간한 부잣집 도련님정도로 보는 이들이 상당수였다.

 그가 그렇게 보일 수 있는 이유에는 스무 살 때까지도 재벌 집 도련님 노릇을 톡톡히 하며 살아 온 과거도 한 몫 했다.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 왔고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 왔기에 그만큼 더 경박하고 막 나가는 도련님의 인생에 치중해 왔던 세월.

 그는 자신의 입장에 맞게 처신 해 왔다고 여긴 듯 했지만, 그것이 그의 인생엔 해가 되고 말았다.

 그의 부모님은 그가 입양아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채, 남부러울 것 없이 키워 왔지만 그는 부모님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당연히 집안의 친척들에게 그는 고마운 줄 모르는 배은망덕한 망나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가문의 번영을 위해 키운 개가 주인 노릇을 하는 것만큼 우습게 보였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습게도 그의 아버지가 밖에서 낳은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왔다.

 아버지는 제 아들이 양자보다 훨씬 나은 남자로 성장 할 때까지도 그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원망을 쏟아냈지만 아버지의 부인이 그를 말리며 아들을 자신의 호적에

 올리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까지가 끝이 아니었다.

 여전히 양자인 그는 사태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기에 친척들의 불만은 쌓여만 갔다.

 아내 역시 남편이 밖에서 낳아 온 아들이지만 반듯하고 가문의 사업을 돕는 일에 적극적이었던 아들이 양자보다 훨씬 살갑고 유능했기에 자신이 들인 양자보다 남편의 친자에게 더 정이 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동안은 자신이 데려와서 기른 아이였기에 그 아들이 아무리 못난 짓을 저질러도 참아 줄 수 있었지만, 번번이 사고만 치고 다니는 배은망덕한 양자와 밖에서 낳아 온 아이라 해도 남편의 친자인 아들이 비교 되는 시점에선 더 이상 양자를 포용 할 수 없게 되었다.

 아내는 그동안 양자에게 품었던 정까지도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끊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영문도 모른 채 쫓겨났고 그 과정에서 친척들에게 숱한 모욕을 당하며 자신이 양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쫓겨났음에도 자신이 도련님이었을 적에 살아 온 행동양식을 버리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그는 여자들에게 기생하는 그저 그런 남자가 되어갔고, 도련님이었던 과거사는 여자들의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데 쓰였다.

 물론 그가 말한 것은 자신이 본래는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후계자였으나 근본 없는 혼외자에게 밀려서 쫓겨난 가련한 남자라는, 상당히 왜곡 된 내용이었지만 그의 행동을 몇 년 간 지켜 본 여자들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머지않아 알게 되었다.

 그를 거쳐 간 수많은 여자들.

 그 여자들과 다를 바 없는 그녀.

 모두가 이제는 그가 말하지 않은 사실을 알지만 그는 여전히 돈이 떨어질 때마다 이렇게 물주가 되어 줄 새로운 여자들을 꾀어내며 가련한 남자를 연기한다.

 그녀의 상사는 올해 서른일곱인 골드 미스이다.

 그의 나이는 스물여섯.

 평소에 유능하고 사람을 잘 믿지 않는 그녀의 상사조차도 어린 남자의 기만적인 가면에 당해버렸다.

 그녀의 상사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남자의 실체를 알게 되겠지만, 그것을 알아채기 전까진 남자의 확실한 물주가 되어 줄 것이다.

 그녀는 여전히 섹스에 열 올리는 두 인영을 무감각하게 바라보며 천천히 돌아섰다.

 ‘이건…….이제 필요 없겠어.

 망설이면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가져 온 호박.

 그것이 주머니 속에서 서서히 차가워지는 그녀의 마음과는 반대로 점차 따스한 온기를 더해 가고 있었다.

 마치, 다정한 남자의 손처럼.

 5시간 후 현재.

 지금 눈앞에 자신을 쳐다보는 남자들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이제 그녀는 아주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가 자신에게 품었던 욕정과 끝도 없는 욕심. 그것은 나이트클럽을 가득 채운 상당수의 남자들에게서도 느껴졌다.

 욕정이거나 욕심. 혹은 두 가지 마음을 동시에 품고 그녀에게 접근할 기회만 노리고 있다.

 취해서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할 지경이지만 연인과 좋지 않게 끝났다고 해서 쓰레기 같은 남자들에게 몸을 맡길 만큼 망가지진 않았다.

 여차하면 옷 속에 숨기고 있는 호박을 남자들에게 던져버리거나 12cm 굽의 날렵한 구두로 찍고서 도망 갈 것이다.

 ‘비참해.’

 도무지 갈 곳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를 처음 만난 나이트에 들어왔지만 결국 비참함만 가중된다.

 똑같은 놈들 틈에서 발버둥 친다고 뭐가 달라지나?

 어차피 현실이 시궁창인 것은 변함이 없는데.

 됐다. 더 이상 망가지는 건……. 사양이다.

 지독한 현실을 피해서 또 다른 현실 속으로 들어왔지만 허전한 마음은 다독여지지 않는다.

 결국 그녀는 언젠가부터 그토록 기피하던 비현실에 기대고픈 나약한 심정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그 남잔 다르잖아.”

 ‘비현실이지만, 그 남잔 내가 원하는 걸 줄 수 있을 것 같아.’

 몇 분 후,

 그녀는 자신을 하이에나처럼 쳐다보던 남자들을 뒤로한 채,

 미련 없이 나이트 문을 나섰다.

 “잘 있어라. 현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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