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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속 미녀
작가 : 야광흑나비
작품등록일 : 20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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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속 미녀 19.
작성일 : 16-05-12     조회 : 500     추천 : 0     분량 : 2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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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정보다 빨리 돌아 온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슬퍼보였다.

 “좀 더 놀다 오지 않고…….”

 호박 앞에 선 그녀는 표면을 쓸어내리며 처연한 얼굴로 속삭였다.

 “무의미해서. 어딜 가도 여전히 무의미할 것 같아서 그곳에서 더 버티고 있을 수가 없었어.”

 “돈은 주고 온 거야?”

 “…….”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못 주고 온 거로군. 그런데 어째서?’

 “그 남자가 새 여자를 구했거든.”

 “새 여자?”

 “응. 새 여자. 새로운 물주. 그리고 나보다 월등한 능력을 갖고 있는 여자야. 호락호락한 여자도 아니고. 어쩌면 그 여잔, 잡히지 않는 그를 잡고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 능력도 있고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능력 있고 호락호락 하지 않다고 남자가 잡히는 건 아니거든?’

 나는 속으로 반박했지만 부러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래서 넌 뭐가 불만인건데?”

 “뭐가 불만이냐고?”

 “응.”

 “없어. 불만. 좋아. 아~주 좋아.”

 그녀는 불만스러움이 가득한 얼굴로 불만이 없다고 말했다.

 “거짓말.”

 “이 남자가 안 믿네.”

 그녀의 몸이 한차례 비틀거렸다.

 “조심!”

 “앗싸. 학 다리!”

 그녀가 학처럼 한쪽 다리를 쭉 뻗으며 씩 웃는다.

 “좋냐?”

 기가 막혀서 헛웃음을 흘리자 그녀가 다시 픽 웃으며 호박의 표면을 ‘콩’ 내려친다.

 “윽!”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웃으려고 노력 하는 거 안 보여? 장단 좀 맞추지?”

 “장단을 맞추라고? 지금 이 기분에?”

 어이없어 하는 반응에 그녀가 불만스럽게 미간을 구기며 호박을 손톱으로 슥, 긁는다.

 “아, 아~ 야!”

 간지러우면서 따가운 느낌에 등줄기로 소름이 돋는다.

 “이번엔 안 아프지?”

 “응. 근데 하지 마!”

 “왜? 이거 잘라낼 땐 그렇게 뜯어내라고 난리더니. 문제 있어?”

 그녀가 거만하게 고개를 치켜 올린다.

 “문제? 글쎄다.”

 ‘문제라면 너무 많지. 네가 그 문제를 알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겠지만.’

 나는 기분이 도통 풀리지 않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소리 없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기분이 풀리려면 뭘 해야 하나? 계속 너 따라서 웃어야 하냐?”

 “웃어?”

 “응. 네가 웃으라며.”

 내 말에 그녀는 잊고 있었다는 듯 손뼉을 치며 어디론가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야! 어디 가?”

 “술 마시자!”

 “응? 야! 술이 목 끝까지 찬 애가 지금 뭐 하는 짓이지?”

 나는 기겁을 하며 그녀를 막았지만 그녀는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싫어! 마실 거야.”

 그녀는 마시멜로우, 포도주스, 그리고 두 가지 다른 술을 섞은 술을 두 개의 잔에 부어 와서 내 앞에 놓았다.

 “자, 이거. 너도 마셔!”

 “나……?”

 ‘장난 해? 지금 나 여기 갇혀 있는 거 안 보이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리고 있자 그녀가 말했다.

 “환상이라도 내가 자작하는 걸 보고 싶진 않겠지? 그럼 맞장구라도 쳐! 넌 어떻게 된 남자가 이렇게 센스가 없니? 맞장구도 하나 못 치고.”

 “센스 없는 건 네 애인도 별반 다를 것 없던데?”

 “그 놈은 개자식이고.”

 “난 개자식이 아냐?”

 “환상이 개자식인 거 봤어? 환상이 나쁜 경우는 거의 없어. 환상은 욕구가 보이는 거니까. 넌?!”

 “난……?”

 “내 외로움이 발산해 내는 환상이니까. 내 외로움을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환상인 거야. 나쁠 리가 없어.”

 그녀는 진심으로 믿는 듯 했다.

 ‘이 여자. 내 과거를 알면 대성통곡 하겠군.’

  아무것도 입에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입맛이 텁텁해졌다.

 “목마르다.”

 속이 타는 기분에 나도 몰래 한 팔을 호박에 대고 있던 난, 그 순간 놀랍게도 호박의 단면이 말랑말랑하게 변하며 내 팔을 밖으로 토해내는 것을 보았다.

 ‘팔이……나왔어?’

 “야! 이거 마셔!”

 그녀는 흐리멍덩한 눈으로 호박에서 쑥, 빠져나온 내 팔에 술잔을 얹어 주었다.

 “……응.”

 그리고 또 한 번.

 “다 마셨으면 내 놔!”

 이번엔 그녀의 손이 호박 속으로 쑥, 들어왔다.

 “너……손이.....?”

 “응? 뭐가.”

 “……아냐.”

 ‘환상이라고 믿어서 그런 거야?’

 나는 알았다. 내 손이 어째서 그녀가 술을 마시는 순간에 빠져나올 수 있었는지.

 그녀는 왜 그렇게 손을 자유자재로 호박 속에 들이밀 수 있었는지.

 그것은 그녀가 지금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가 나를 환상이라고 진심으로 믿기 때문이었다.

 또한 지금의 나는 그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이곳에서 나올 수 없는 진정한 이유는…….

 ‘내가 이곳을 빠져나오기엔 내 죄를 환상이라고 치부 할 수 없는 탓이겠지. 모든 것을 ㅇ완벽한 진실로 치부 하는 내 자신 때문에…….난 여기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거야.’

 죄를 잊을 수 없는 것. 망각하지 못하고 환상이라 여기지 못하는 것.

 그것이 날 가두는 실체였다.

 호박.

 이것은 현실이면서도 환상이었다.

 이것은 내 스스로 만든 감옥이었던 것이다.

 ‘이건 이 여자가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날 환상이라고 믿으면 믿을수록 내게 유리한 상황이라는 거잖아? 그러니까. 이 여잔?’

 “너!”

 “응?”

 “계속 제정신 아닌 채로 있어라. 매일 여기서 모든 게 환상이라고 생각해. 괴로울 땐 세상과 멀어지는 편이 나을 수도 있으니까.”

 “응. 그래. 나도 현실에서 살긴 싫으니까.”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지.”

 “언제까지?”

 그녀가 슬프게 묻는다.

 “언제까지로 할까?”

 “내가 정해도 돼?”

 “물론.”

 “그럼…….영원히 날 세상과 격리 시켜줄래?”

 “그러고 싶어?”

 “응. 지금은 그런 기분이야.”

 “원한다면.”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줘.”

 이제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나는 이 여자 대신에 세상에 나와서 세상과 싸울 것이다.

 이 여자가 날 여전히 환상이라고 믿을 동안.

 이 여자의 상처가 낫기 전까지. 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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