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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속 미녀
작가 : 야광흑나비
작품등록일 : 20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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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속 미녀 22.
작성일 : 16-05-13     조회 : 709     추천 : 0     분량 : 4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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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상이라면서 여전히 걱정하는 그녀에게 지금 당장 집중할만한 일거리를 만들어주었다.

 “여기서 건달 같아보이려면 어떻게 꾸며야 하냐?”

 “건달같이 보이려고?”

 “응. 얕보이면 안 되잖아.”

 ‘위험한 일이 될 텐데. 나도 준비는 해야지.’

 “그건 그렇지.”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자 당장에 100년간 묵은 때부터 벗겨야겠다는 욕구가 치밀었다.

 호박 속에서 절여진 터라 본의 아니게 살 전체에 나무 향이 진하게 배어 사실상 피부가 방부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찝찝한 것은 사실이었다.

 “얼마나 안 씻었는데?”

 “백 년.”

 “익-! 백, 녀……언?”

 “왜, 놀랍나?”

 “윽. 더러워! 얼른 씻고 나와. 아, 아니다! 수챗구멍이 때로 막히면 안 되니까. 천천히 씻으면서 조금씩 흘려보내는 게 좋겠어.”

 “때 별로 없거든?”

 ‘아마도.’

 “그걸 어떻게 장담 해?”

 그녀가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왜인지 여전히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러나 설명 할 수 없으니 이번에도 그저 뭉뚱그려 설명할 따름이었다.

 “나는 환상이잖아. 그리고 봐! 냄새 나?”

 “저리 가...응? 나무 냄새가 나네? 혹시…….”

 “향수 뿌렸느냐고?”

 “응.”

 “그럴 리가 있냐? 백 년 만에 나온 건데.”

 “그럼…….”

 나는 휘파람을 불며 저 뒤에 여전히 동그랗고 때깔 좋은 호박을 돌아다보았다.

 “저게 뭐라고 생각 하는 거야?”

 “아…….”

 그녀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송진 속에 백년 파묻히면 이런 향이 나는구나. 그거 하난 기가 막히게 좋네.”

 “부럽냐?”

 “그건 아니고.”

 그녀의 말에 짐짓 심술이 돋는다.

 “부러우면 말 해. 내가 저기다 확, 밀어 줄게.”

 “못됐어!”

 “그래. 나 못됐다.”

 “잔소리 말고 얼른 씻고나 나와.”

 “그래.”

 그녀가 알려준 욕실에서 비치 된 목욕 용품으로 씻으니 조금은 개운해졌다. 그래도 여전히 100년의 찝찝함이 완전히 가신 건 아니었지만.

 “머리카락을 좀 자를까?”

 치렁치렁하게 늘어진 머리카락이 자꾸만 성가시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100년간 변함 없는 이십대 중반의 얼굴에 멈춰진 것과는 달리 머리카락만은 세 번을 목에 둘러도 반이 더 남을 정도로 자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이대로는 현대의 세상에 적응하기도 힘들거니와 위험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었다.

 머리칼을 자르는 걸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무겁고 성가실 거라면…….

 “잘라야지.”

 나는 일단 그녀가 건네 준 물건들 중에 머리칼을 자를만한 물건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칼이…….칼을 닮은 게…….가위라도…….아니, 이 여자가 가위도 안 주고 뭐 한 거야?’

 그러다 내 시선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 하나에 완전히 고정 되었다.

 “저게 뭐라고 했더라?”

 -자! 100년간 묵은 때는 여기에 다 깎아내.

 -깎아내라고? 이게 뭔데.

 -뭐긴 뭐야? 보면 몰라? 각질 긁어내는 거지. 아, 원래는 이렇게 하는 건데…….

 그녀는 말하는 중간에 자신의 턱에다 그 이상한 물건을 벅벅 긁어내리는 시늉을 했더랬다.

 -그러니까. 그게 뭔데?

 -아이…….이런 바보!

 못 알아먹는 내가 답답했는지 그 순간 그녀는 내 머리카락 한 올을 잘라다 자신의 턱에 붙이고 석석 긁어내렸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후엔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긁는 시늉을 하고, 마지막으로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발바닥의 능선을 깎아댔으니 분명 저것은…….

 ‘머리카락은 저걸로 잘라야겠군.’

 칼 대용으로 쓸 수 있을 터였다.

 이상한 물건으로 머리칼을 숭덩 숭덩 잘라내고 걸어 나오자마자 방 안에 풍기는 구린내에 기겁을 하고 말았다.

 이건 마치…….

 “누가 똥간 청소라도 하는 거야?”

 “똥간 청소라니! 파마약이랑 염색약이거든?”

 “파마 약? 염색약? 그건 또 뭐야?”“이런……. 19세기 할저씨 같으니라고.”

 “…….”

 그녀가 알 수 없는 말을 뱉어내며 고갯짓을 했다.

 “이리 와! 세상에……. 머리는 어째서 그 모양이 된 거야? 쥐 파먹었어?”

 “너무 길어서 잘랐는데. 왜. 이상해?”

 “그래. 무지 이상하다. 일단 앉아 봐. 머리 파마 염색 하기 전에 정돈부터 해야겠어. 머릴 자를 셈이었으면 그냥 나보고 해달라고 하지. 이게 뭐야? 뒤통수는 완전히 파먹었네. 여긴 좀 깊이 다듬어야겠다. 잠깐 기다려. 바리깡 좀 가져 오게.”

 “바리깡?”

 “이것도 몰라?”

 “아니, 내가 아는 그게 맞는지 확실치가 않아서…….”

 “뭐라고 불렀는데?”

 “바리카마드.”

 “바리카마드?”

 “응. 머리 미는 건데…….맞아?”

 “그래. 네가 아는 게 맞는가보다. 바리카…….뭐?”

 “바리카마드.”

 “이름이 좀 다르긴 하지만 반삭. 그러니까. 머릴 반쯤 빡빡이로 만들 수 있는 전동 기계야. 아무튼, 이런 거 모른다고 일일이 물어보지 않아도 되니까. 일단 앉아 있어. 천천히 알아가자고.”

 “알았어.”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손바닥 반 정도 크기의 은 색 물건 하나를 들고 왔다.

 “이게 바리카마드야? 내가 아는 모양과는 사뭇 다른데?”

 “네가 아는 모양은 어땠는데.”

 “내가 아는 모양은 여기 머리쯤에 작은 육식동물 이빨 같은 게 붙어 있는 거였어. 머리에 동백기름을 발라가면서 뒷머리를 ‘슥-슥’ 잘라내는 것인데……. 긴 머리칼을 솎아내서 맨들 매끈하게 만드는 것이었지. 이런 모양은 아니었어.”

 “아주 옛날 거였나 보네. 그런 건 지금 있지도 않은데. 아마 되게 오래된 이발소에서도 이젠 취급하지 않을걸.”

 “그래? 하긴…….백년이나 지난 물건이니…….”

 “어쩌면 박물관에나 있을지도 몰라.”

 “박물관은 또 뭐…….”

 “쯧! 고만 묻고 입 다물어!”

 그녀는 더 이상의 질문을 거부하겠다는 듯이 어깨를 잡아 누르며 빗질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촉촉하고 시원한 뭔가를 머리 위에 바르고 ‘숭덩 숭덩’ 거침없는 가위질을 구사했다.

 그리고 똥간에 절여진 똥물처럼 진한 내음을 풍기는 뭔가를 머리 위에 치덕치덕 발랐다.

 그렇게 머리 전체에 이상한 액체를 다 바른 뒤로는 동그란 물건 하나를 들고 와서 조금 길게 잘려진 앞머리와 옆머리를 돌돌 말아 넓은 은색 종이와 같은 것으로 돌돌 말았다.

 모든 걸 끝내고 난 뒤에 그녀는 몹시 자랑스러운 얼굴로 커다란 거울을 가져다 내게 비춰주기도 했다.

 “자! 봐봐.”

 “이게 뭐…….”

 “파마.”

 “파마?”

 “자연 곱슬머리처럼 아주 귀엽고 사랑스러운 머릴 만들어줄게. 내가 이래봬도 손재주가 좀 있거든.”

 그녀가 머리카락 전체를 쓸어내리며 미소 지었다.

 “한 시간만 기다려. 아! 이거 읽으면서.”

 “이건 또 무슨……. 어부와 마신?”

 “응. 지금 네 상황이랑 꽤 비슷한 내용이기에 내가 사 왔지.”

 “지금 날 조롱하는 건가?”

 기분이 나빠져서 험하게 미간을 구기자 그녀가 손사래를 치며 부정한다.

 “아냐, 아냐, 아냐! 그냥 너 생각나서 갖고 온 거지. 내가 쓸데없이 널 왜 조롱해?”

 “……그래? 난 또, 네가 시종일관 조롱이기에 이것도 습관인가 했지.”

 “아니거든? 보기 싫으면 이리 내! 나나 보게. 넌 다른 책 갖다 줄게.”

 “아냐. 읽는다. 읽지 뭐. 읽는다고 눈이 닳는 것도 아니고.”

 “그래. 착하다!”

 “어허!”

 세 시간 후.

 나는 아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조금 길게 잘라진 머리칼은 굵은 곱슬머리로 물결치고 있었고, 머리 전체로는 짙은 붉은 색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녀는 험악한 얼굴을 만든다면서 일부러 턱과 볼의 중간 부분에 손가락 반 마디만한 상처 하나를 만들어 주었다.

 -좀 아프겠지만 참아 봐. 네 얼굴이 약간 곱상한 얼굴이라 이렇게 안 하면 험하게 안 보이니까.

 -아, 따가워!

 -따가워? 많이 아프진 않고?

 -그건 아냐.

 -그럼 됐어.

 그녀가 만들어준 상처와 염색과 파마라는 것을 하고, 이 세상에서 만들어 낸 검은 색 맞춤 양복을 입고 보니 꽤나 위험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탁월한 선택이군.”

 “그렇지?”

 “이대로 가면 되겠어.”

 나는 한층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나가 봐도 되겠어.”

 “벌써?”

 “응. 뭐, 문제 있나?”

 “길도 아직 잘 모를 테고…….모르는 게 아직 많은데……. 괜찮겠어?”

 “내가 알아서 하지.”

 그녀는 여전히 날 개울가 어린애 보듯 하고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기대감으로 심장이 쿵쿵 뛰고 있었다.

 남자의 로망이란 그런 것이 아니던가. 예상치 못한 고난과 역경. 모험. 그것을 이 세상에 와서 맞이하게 됐으니 나쁠 것 없는 일이다.

 붉게 염색 된 머리칼을 질끈 동여매고 걸어 나가며 그녀에게 당부했다.

 “여기서 아무에게도 문 열어주지 말고 있어.”

 “언제 돌아올 건데?”

 “수일 내로 돌아올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응.”

 불안해하는 그녀의 눈가에 입을 맞추며 부러 유쾌하게 말했다.

 “나, 제대로 건달 같아 보이지? 이 얼굴로 보석상을 싹쓸이해서 올 테니까. 기대 해!”

 “안전하게 돌아오기만 해.”

 “알았어.”

 더 이상의 지체 없이 길을 나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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