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아빠를 죽였는지 저 알아요.”
절 안에서 아이의 양육권 문제로 싸우던 양가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그런 고요함은 오히려 시선을 모우고, 나는 그 많은 시선을 따라 아이를 바라보게 되었다.
사촌 누이의 품에 안겨있던 아이의 말 한마디에 모두의 시선은, 양육권에 대해서 말하다 서로 이성을 잃고 으르렁 거리던 양가 사람들의 시선도 서로를 벗어나 아이에게 향하고 있었다.
기대에 찬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친가의 사람들.
“그래, 시후야. 누가 아빠를 죽였니?”
아이의 큰 고모는 직접적으로 물어본다. 뒤에서는 다른 친가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린다.
거기에 하나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그 소리를 듣고 당황한 듯 외가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얘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무엇 하나 정해지기 전, 아이의 작은 이모가 소리친다.
“애한테 그런 걸, 그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보면 어떻게 해요?”
또 다시 싸움이 일어나야 할 분위기였지만, 아이의 말.
즉 범인을 특정할 수 있게 됨으로 인하여 그와 관련된 어느 한 쪽은 양육권에서 멀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친가의 사람들은 아이의 이모의 외침을 무시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아이를 추궁한다.
“시후야, 말해보렴 누가 아빠를 죽였지?”
외가의 사람들은 그런 낌새를 눈치 챘는지 달려들지만 처음의 질문자를 제외한 모두가 벽을 쳐서 막으며 답을 기다린다.
사촌누이의 품에 안긴 아이는 품에 더 고개를 파고들다, 무언가 다짐이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돌려 한손으론 사촌누이의 옷을 부여잡고, 남은 손,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르키며 말했다.
“엄마... 엄마가 그랬어요.”
“엄마라...”
“그래, 엄마.”
“자네는 분명 그렇게 들었단 말이지?”
“그렇지.”
“손가락은?”
“확실히 허공이었지.”
“끝까지 따라가 보았나.”
“어림잡아 봐도 그 각도엔 아무도 존재하고 있지 않았어.”
“뭐, 천장에 사진이라도 붙었던가, 날리던 사진이라도 있었다던가...”
“그런 우연이 있었다면 그 순간에 보고 있던 누군가는 눈치를 챘겠지?”
“그럼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나?”
“그 다음은...”
“엄마? 누구? 너희 엄마? 아니, 이모를 말하는 거지? 이모일 거야? 그지?”
황당해 하던 아이의 큰 고모 옆에 작은 고모가 달려들며 묻는다. 그러자 아이는 돌렸던 고개를 다시 사촌누이의 품에 집어넣고는 울기 시작한다. 친가의 사람들을 뿌리치고 외가의 사람들은 달려와 아이에게 묻기 시작한다.
“아니지? 이모 아니지?”
방금 전의 외침처럼 약간은 찔리는 것이 있는지, 조금은 질린 얼굴로 아이의 작은 이모는 놀란 듯 묻는다. 그러자 뒤에서 확신에 찬 미소를 지으며 아이의 작은 고모는 말한다.
“저번에는 술을 먹고 칼부림을 치더니, 이번엔 무슨 방법으로 오빠를 그렇게 만든 거야? 내가 저 미친놈의 집구석이랑 애초에 사돈 맺는 거부터 반대했는데. 언니는 왜 그 때 받아줘서는...”
“뭐라고? 그 때는 우리 언니 유산을 너희 오빠가 혼자 다 처먹어서 그렇잖아? 기억력이 그렇게 딸리니? 멍청한 년이 가슴만 덜렁거리면서 여기 저기 흘리고 다니다보니 기억도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나봐? 언니, 우리 언니! 절에 모신 비용도, 장례비용도 너희 집안에서 하나도 주지도 않았고, 너희 잘난 오빠는 그 돈 다 처먹고는 애는 데려가서는, 지금 애 상태 안 보이니? 그래, 그게 너희 집안 내력이지 술이나 처먹고, 오빠는 계집질에, 동생은 서방질이나 하고, 그 칼부림? 그런 일 한 번 했는데 또 못할 거 같아? 그 때 못 죽인 게 한스럽기는 한데. 그런데 그 때는 적어도 시후를 위해 살려둔 거야.”
“싸우지 마세요, 이모가 그런 거 아니에요. 엄마, 엄마가 그랬어요!”
이모와 고모들의 싸움을 말리려는 것처럼 시후는 외친다.
“확실히 엄마라고 말했나?”
“그렇지.”
“그럼 여기서 질문.”
“말해보시게.”
‘아, 내가 왜 녀석의 말투를...’
틈도 없이 찰스는 말한다.
“자네, 쓸 때 없이 내 말투는 따라하지 마시고...”
“그래.”
“그, 감상은 어땠나?”
“무슨 감상?”
“첫사랑이 저렇게나 언급되는데 남자로 뭔가의 감상은 없었나?”
“여기서는...”
“야! 이 새끼도 지내 엄마 피를 타고 나긴 났구나? 5년 전 죽은 너희 엄마가 어떻게 그러니? 너희 엄마 아들 아니랄까봐 입에 거짓말이 아주 붙어사는구나?”
아이에게 향하는 분노를 보고 형사는 조금 발끈한다.
마치 그걸 알기라도 한 듯, 아이는 흥분한 작은 고모의 뒤를 가르키며 아이는 말한다.
“엄마...”
순간 양가 사람들의 얼굴은 굳는다.
아이는 정말 무언가 있는 듯, 허공에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을 가르키고 있었다.
이내 아이는 다시 사촌누이의 품에 안겨서 울기 시작한다.
양가 사람들은 아이에게 느낀 그 공포감에 다시 서로를 보며 으르렁 거리기 시작한다.
“그 때 생각했지...”
“첫사랑을?”
“아니, 저런 사건 맡으면 귀찮겠다고.”
“심장마비 아닌가?”
“그래도 일단...”
“그래도 일단, 유족의 요청이 있고, 아이의 진술이 있으니 사건화는 시킬 수 있겠지.”
‘그렇지. 알면서 묻지 말란 말이다!’
“그래, 그렇지. 그래서 혼잣말을 중얼 거렸는데...”
아이를 안고 있던 사촌누이는 형사를 바라본다, 둘의 눈은 오랫동안 마주하고 있었다. 무언가 익숙한 눈빛을 형사는 오랫동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오랫동안의 시선을 느꼈는지, 품속의 아이도 형사를 바라본다.
형사는 둘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싸우는 양가만큼이나 인사로 소란한 조문객들의 식사자리로 향한다.
“그리곤 다른 친구들이랑 웃으며 술이나 마시다 왔지.”
“취하지는?”
“않았고.”
“싸움은?”
“끝나지 않았지.”
“그럼 별 문제 없지 않지 않은가?”
“그렇겠지?”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는 거구만?”
“응, 아까 말한 것처럼...”
“귀찮은 사건을 맡아버린?”
“그렇지, 민원실 당직을 계속하는데 찾아온 거야.”
“아이가?”
“정확히는 그 아이의 사촌누이가.”
“힘드시겠어요. 외근도 자주 나가시고, 저번 연쇄살인마 사건도 다녀오셨는데. 계속 민원실이라니...”
“아, 내 업보지 뭐, 친구 믿고 허튼 소리해서...”
부인의 문자를 받고, 살짝 짜증이 났지만 그보다 더 투덜거리고 있는 형사에게 순경은 비위를 맞춰준다. ‘참 불쌍하다, 너도.’라는 생각의 것이었다.
청장, 과장, 계장까지 내려오는 내리사랑에 버티지 못하고 징계와 당직이라는 수난을 겪고 있는 그에게 사회적 위치에서의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 너밖에 모르네. 높으신 분들은 왜 그런 걸 모를까? 게다가 ‘만약에’였잖아, 가능성을 품은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주장했고, 그 사람들이 다 사건에 관여도 돼 있는데, 왜 나만...”
“그래, 현수야. 네가 일을 너무 잘하니까, 내가 널 우리를 대표해서, 민중의 지팡이로서 시민들을 직접 맞이하라고 여기 둔 거 아니냐?”
갑자기 튀어나온 과장이 형사에게 말한다. 형사는 책상에 다리를 쭉 펴고 앉아 있다 급하게 일어나며 인사를 한다.
“사랑합니다, 과장님!”
“사랑은 무슨, 너 맨날 그러고 있으니까, 민원도 들어오고 실적도 개판이고, 허튼 소리해서 징계나 먹지.”
“에이, 왜 그러세요. 과장님 그래도 제가 이런 궂은 일 다하지 않습니까?”
“원래 그런 성격이었나, 자네.”
“이게 사회인의 무게야, 자영업인 자네는 모르겠지.”
“자네가 이 몸에게 찾아온 게 몇 번인데... 실적이... 왜...?”
“그런 초현실적인 일을 처리한다고, 실적이 올라가지는 않지, 실적이란 건, 빡! 하고 도둑을 잡거나. 빡! 하고 살인마를 잡거나. 빡! 하고...”
“그래, 뭘 잡아야지... 살인마는 그래도 내가 말해주지 않았나?”
“그래서 문제지... 그게 문제지. 그래서 내가 저기에...”
“말은 잘해, 그 말솜씨 여기서 뽐내고 있어라. 알겠지? 지켜보고 있다.”
어깨를 툭툭 치고, 손가락 두 개로 자신의 눈과 형사의 방향을 번갈아 가르키는 모션을 하고 과장은 경찰서 밖으로 나간다. 형사가 다시 앉으려는 순간, 옆에 순경이 말한다.
“어떻게 왔니?”
형사는 앉으며, 순경의 시선을 따라간다.
익숙한 소녀.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봤던 소녀였다.
“저기...”
소녀는 말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순경이 민원실 데스크에서 나와 소녀에게 민원실 옆에 있는 민원인이 앉을 수 있는 공간으로 소녀를 데려가 앉히고 물어본다.
"괜찮으니까. 말해봐 무슨 일이니?"
소녀는 계속 힐끔힐끔 형사를 바라본다, 순경도 형사를 보며 고갯짓을 한다.
황당한 듯 형사는 민원실 옆 화장실로 자리를 비운다.
잠시 뒤 순경이 화장실로 들어온다.
"형사님 형사님이 무서운 게 아니라 형사님이랑 얘기하고 싶다고 하네요."
"응? 왜?"
"모르겠어요. 형사님이랑만 얘기해보고 싶다고 하네요. 본 적이 있다면서..."
"아 귀찮은데 나 바쁘다고 그냥 돌려보네."
"그래도 형사님 애가 말하는데."
"우리 애 말도 못 들어주는데 무슨 딴 집 애를 내가 신경을 써 빨리 보내."
“애도 없으시면서...”
순경은 한숨을 쉬며 돌아가서는 소녀가 가자 크게 소리친다.
"형사님 갔어요!"
"너 지금 나한테 화내는 거냐?"
화장실에서 돌아오는 현수는 순경에게 말한다.
"아니요. 또 자리를 비우면 안 되니 크게 말씀드린 거예요. 그래도 다른 사람이면 화낼 만 한 건 아시나 봐요?"
"뭐?"
순경에게 달려들려고 하는 순간 다시 소녀가 들어온다.
일어서서 도망가려고 하지만 뒤에서 소녀는 말한다.
"오늘은 얘기하기 싫으신 것 같으니 그냥 갈게요. 매일 올 거니 시간 될 때 들어주세요."
나이에 비해 성숙한 말투, 형사는 보지 못했지만 순경에 눈에 비친 또렷한 눈빛 큼큼 거리던 형사는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화장실로 도망간다.
순경은 소녀에게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쥐어주며 보낸다.
화장실의 형사는 혼자 궁시렁 거린다.
"쟤네 집안이랑 엮이면 골치 아픈데 왜 장례식은 가서 후..."
금연인 화장실에서 담배 연기를 뱉으며 구시렁 거린다.
"그래서 금연구역에서 형사라는 놈이 담배를 피면 되겠냐?"
뒤통수를 가격하며 자주 청에 있지도 않은 청장님이 자주 오지도 않는 1층 화장실에서 나타나며 말한다. 현수는 당황해서 담배를 떨어트리고 허벅지에 닿아
"아 뜨거!" 하면서도 청장에게 경례를 한다.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사람 죽이려고 담배 피냐 끊자 좀 그리고 아까 그 얘긴 뭐야."
"아닙니다. 친구 장례식에서 조카 한명을 봤는데 걔가 계속 찾아와서요."
"사고치지 마라. 저번 것도 그렇고..."
"아닙니다. 애에요. 완전 애..."
"말 끊지 말고 그 말이 아니라. 잘하자고 알겠지?"
가슴을 툭툭 치며 금연 일주일째에 담배 연기를 맡아 몹시 예민하지만 참으며 청장은 나간다. 형시는 비명이 나올 만큼 짜증이 났지만 그냥 펄펄 뛰며 소리를 내지 못한다. 그러는 와중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자,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거울을 보며 머리를 정리하고는 나온다.
경찰서 밖은 소란스럽다. 죽은 친구의 아버지가 방문하셨다.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 되는 친구의 아버지는 현수에게도 도움을 많이 주었다. 과장과 청장은 모두 친구의 아버지를 맞이하려 나간 것이었다.
친구의 아버지도 처음에는 작은 시의 당선되었지만 친구의 결혼으로 인하여 재계와 연결되어 당대표에서 차기 대권주자로 거듭났다.
“그래서 결국은.”
“아버님이 직접 오시면서 까지 사건화를 시켰다는 얘기지.”
“끔찍하군.”
“뭐가?”
“이해관계라는 것이, 그리고 가족이라는 것이, 그런데 그 소녀는 혹시 저기 있는 처자는 아니겠지?”
“뭐?”
돌아본 뒤에는 밖에서 들어오지 않고 추운 날씨에도 둘을 살피고 있는 딱 봐도 소녀는 아닌 여자가 서있다.
“자넨, 사람을 보는 눈을 더 길러야겠네.”
“다른 걸 보느라, 그런 걸, 기를 틈은 없네만.”
“그래도 여자는 자네도 원하잖아.”
“적어도 저런 타입이 내 취향은 아니란 말일세.”
“근데 저건 누구?”
“아마, 아까 이 몸을 찾던 전화가 있었네만, 그 주인인 것 같네.”
“전화?”
“그렇다네, 휴대전화, 자네는 없는가?”
“아니. 있는데. 아니, 그보다 언제부터 그런 게 있었나?”
“초콜릿 폰이 나올 때부터 있었다네. 그 전에는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서 사지 않았네만, 이래 뵈도 얼리어답터라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릇 시대의 흐름을 느끼고 살아가는 것, 그 정도도 따라가지 못해서 어찌 그 시대에 산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게 아니라, 왜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네.”
“나를 추궁하는 겐가? 그러기 전에 자네의 질문이 없었다는 점과 또 내 말투를 따라하고 있다는 점을 꼬집고 싶네만. 일단 저 여인네가 추울 듯 하니 안으로 모시고 얘기나 듣고 자네 얘기를 마저 들어 보세나.”
“그러지.”
‘이걸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