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안녕하세요?”
“네, 어서오세요.”
“이현수씨?”
“어느 쪽을 찾아오셨는지 모르겠지만 저흰 다 이현수랍니다.”
“아, 네. 그럼 제가 어떤 분을 보고 얘기하면 될까요?”
“뭐, 현실적인 문제라면 저, 아니라면 이쪽을 보시고 말씀하시면 되요.”
옆에 있는 찰스를 가르킨다.
“자네 마음대로 결정하는 건가?”
“그럼? 아니라는 거야?”
“아, 저...”
“예?” “네.” 현수와 찰스는 그녀의 말소리에 마주보던 시선을 옮기며 말한다.
“제 얘기를 해도 될까요?”
“아, 네.” “물론입니다.”
둘은 머쓱한 듯 답하고는 그녀는 얘기를 시작한다.
“저는 일단 이런 사람이고...”
현수에게만 명함을 건네는 그녀, 거기에는 방송국 PD라는 직책이 적혀있다.
“아, 이런 분이 왜? 무슨 납량 특집이라도... 하기엔 겨울인데...”
“자네는 그렇게 상상력이 없나? 요즘 시대에는 그런 게 중요하지 않다네. 그리고 내가 왜 그런 허무맹랑한 것에만 적용되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나, 나는 적어도 진부한 자네나 세상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범주의 것들을 몸으로, 책으로, 그리고 경험으로 익힌 것이라네.”
“네, 겨울이죠.”
그녀는 찰스의 말은 흘리듯 답을 하며 말을 이어간다.
“제가 온 건, 비슷한 이유 때문은 맞아요. 다름이 아니라, 한 사건에 대해서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요.”
“어떤?”
“몇 년 전, 근처 저수지에서 일어난 익사 사건을 알고 계신가요?”
“근처 저수지의 익사 사건이라면 이 동네에서 산 사람이라면 지속적으로 있던 일이라 기한을 두고 기억하지는 않습니다.”
“그 사건들 중에, 무속인이 한 분 돌아가셨던 사건.”
“방송국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촬영을 한다고 소란했던 그 날을 말하는 것 같구만, 우리도 그 자리에 있었지.”
“아, 그 줄을 허리에 매고?”
“네.”
입봉을 위해 파일럿 프로그램 한 자리를 받아놓고, 주제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주제로 잡은 것은 요즘 유행하는 19XX년도를 주제로 한 드라마들처럼 19XX년대에 초점을 맞추고 조금은 새로운 개념의 것을 해보기로 하였다. 요즘처럼 SNS에 정보가 폭발하는 시대, 그렇지 못했던 시대의 미방영분의 미스터리를 모아 방영하는 것, 그 것으로 SNS에 관심을 끌고 그렇게 모인 정보들로 그 사건들을 재조명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시청률은 물론이고 화재성도 가질 수 있는 완벽한 주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일단 파일럿을 위한 방영분을 만들기 위한 영상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이어지는 것은 예나, 지금의 시선이나, 어느 쪽이 보아도 허접할 만한 영상들이 가득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자극적이라 방영이 되지 못한 것이 아닌, 허접해서 방영이 되지 못하는 것들만 계속 되고 있었다.
그러다 다른 테이프들과는 다르게 너무나 간결하게 제목이 적힌 테이프가 있었다.
다른 테이프들에는 촬영시기, 촬영지, 촬영자, 주제, 사유, 편집유무 등이 자세히 적혀있었지만 단순하게 적혀있는 하나의 테이프.
19XX년. 저수지, 무속인, 사망사고.
테이프를 넣고 영상을 키자 노이즈 화면이 나오고는 주위를 비추고 있었다.
카메라의 움직임은 서툴렀다, 주위를 먼저 비추었다, 많은 사람과 구급대원, 그리고 혼자 화려하게 차려입은 무속인 한 명이 몸에 줄을 감고 있었다. 줄의 한 쪽은 저수지에 잠겨 있었고, 저수지를 마주보고 길게 늘어진 줄을 몸에서 떨어지지 않게 칭칭 감고 있는 무속인의 모습.
‘화려한 옷에 하얀 천이라니.’
그리고 카메라 앞으로 중후한 목소리로 미스터리 방송의 진행이 자주 맡던 익숙한 얼굴이 나왔다.
“이 분 요즘엔 뭐하시지. 이 분을 모시면 또 화재성이 되려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동안, 화면 속 그들의 소리는 잘 들리지 않고 잡음이 가득 들리고 있었다. 웅성거리는 소리만 가득, 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 익숙한 얼굴의 중후한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있었다.
“이것도 꽝인가, 그냥 음향문제로 방영이 안 된 거잖아.”
그 순간, 뒤에서 줄을 다 감고 허공에 허우적거리며 무언가 무속인 같은 몸짓을 하고 있던 무속인이 저수지로 끌려들어가고 있었다.
저수지를 등을 지고 있던 그녀는 천이 물결치듯 크게 움직이더니, 붕하고 사람이 뛸 수 없는 높이로 뜬 상태로 그대로 저수지로 빨려 들어갔다.
그 모습은 분명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이었지만, 웅성거리는 소리는 비명으로 바뀌고, 구급대원들이 바로 뛰어들 정도로 위험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여러 소리들 사이에서 카메라를 보고 있던 익숙한 얼굴도 뒤를 돌아본다. 익숙한 목소리로 낮고, 작게 욕설이 들려온다.
구급대원들은 이내 그녀를 구조해 나오지만, 그녀의 몸은 파랗게 질려있다. 그녀를 데리고 나온 구급대원들은 그런 그녀의 모습 이상으로 확신을 가질 만큼의 죽음을 느꼈는지,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한다.
그런 모습을 찍고 있던 카메라는 갑자기 저수지를 비춘다. 저수지에는 검게 질 리 없는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고, 그 속에 무언가가 쩍하고 갈라지더니 카메라를 바라본다.
“와, 뭐지? 무슨 작업이라도 한 건가?”
그녀가 뛰어오르는 장면부터 갑자기 시간을 건너 뛴 듯 한 생기를 잃은 장면, 검게 드리운 저수지와 그 속에서 자신을 지켜보던 무언가에 대한 소름을 느낀 뒤, PD는 중얼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테이프는 편집이 되지 않아있다는 사실을 이내 알 게 된다. 다시 녹화된 것도 아니고 순수한 테이프의 상태로 어디 끊어진 구간 없이, 원테이크로 이어진 영상.
그리고 편집이 되었다면 다른 것들처럼 표시가 되어있었을 텐데, 아무런 표시가 없는 테이프.
“이거다.”
그렇게 다짐을 하고 일단은 이 장소에 대해서 찾아보기로 했다. 장소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경남 어디에 위치한 유명한 저수지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사건의 진술자를 찾기 위해, 일단은 가장 찾기 쉬울 것 같았던 촬영자를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촬영자의 존재는 세상에서 누군가 지우기라도 한 듯 존재하지 않았다.
충격을 받고 그만둔 것인지, 아니면 이런 화면을 찍고 무언가 공개를 하려다가 매장을 당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확실한 것은 그의 부재로 사건에 대해, 정확히는 테이프에 대해 설명해줄 사람이 없었다.
“아, 팩트, 팩트가 필요한데... 아!”
생각해보면 단순한 일이었다. 거기에 있던 다른 방송 관계자를 찾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중후한 목소리의 그, 이상하게도 그를 찾는대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수소문해 찾아간 그의 집에서는 나의 방문을 반기지는 않았다.
“돌아가세요!”
“아니, 얘기만 좀 들으면 된다니까요?”
“당신이 누군지 알고 들입니까?”
“아니, 선생님이랑 대화 한다는데 당신이 뭐길래 난리에요?”
“선생님 비서입니다.”
“비서가 왜 난리에요?”
“선생님께서는 아무도 만나지 않으십니다!”
“왜요?”
“그건...”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비서라는 사람은 계속되는 추궁에 점점 나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방송촬영 중 벌어진 사건, 종적을 감춘 촬영자 그리고 숨어 지내는 진행자라. 이거 얘기가 되겠는데?’
“그만, 그만하게.”
“선생님.”
“어디서 오신 누구신가?”
“네, 저는 이번에 새로 프로그램을 준비 중인 정시아라고 합니다.”
“PD?"
“네.”
“그런 분이 내겐 무슨 일로?”
“아, 저희 프로그램 진행을 맡아주시면 해서요.”
“내가, 방송일을 그만둔 건 알고 있나?”
“네.”
‘뭐, 찾으면서 알게 됐지만.’
“그래도 나를 찾아온 이유는? 그것만이 아닐 테지?”
“네.”
“들어오시게.”
“선생님...”
“괜찮다네. 자네도 조금 쉬고 있으시게 단 둘이만 얘기하고 싶으니...”
“네.”
물러나는 비서를 향해, 시선을 한 번 주고 선생님을 따라 들어간다.
낮이었는데도 집안은 환한 조명으로 가득했다. 조명의 수가 과하게 많을 것 같은, 방송국에 있는 조명을 전부 켜도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구석구석 빛이 빈틈없이 비추고 있는 실내.
조금의 위화감이 들었지만 ‘밝아서 나쁠 건 없지 않나?’ 하고 넘기곤 집에 가장 깊은 곳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오래 걸은 뒤 도착한 방에서 우리는 대화를 시작한다.
“눈이... 아프진 않은가?”
“네, 뭐. 조명이야 익숙하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조명을 켜두시면 전기세가 많이 나오시겠는 걸요? 방송일을 안하셔도 조명 마사지 때문인가 젊어 보시기도 하구요.”
“실없는 소리 말게. 그래서 알고 싶은 게 뭔가?”
“그게, 다름이 아니라...”
“자네도 저수지 일을 물으려 온 겐가?”
“네? 저 말고도...”
“있었지.”
“그런데 왜...”
“방송이 안됐냐고? 그건 다 사실이었으니까...”
‘응?’
“자네, 그걸 찍은 사람이 누군지 아는가?”
“아, 그것도 묻고 싶었는데 먼저 말해주시니 감사하네요.”
“아니, 나도 모른다네.”
“네?”
“분명 같이 촬영을 했고, 서툴렀지만 기억이 나지만, 어느 순간 기억을 하는 건 나뿐이었네. 그리고 나조차 ‘그’의 이름을 잊고 어디서부터 시작된 기억인지도 모를 것을 들고 있었지. 그래서 나는 방송 일을 그만두게 되었네. 한 번도 자만한 적 없고, 진지하게 임했었네. 그 때의 상황에 욕이 나올 정도로 놀랐지만, ‘그’에게 어떠한 분노를 느낀 적도 없고, ‘그’를 잊을 이유라면 그 때의 충격 정도였지만, 다른 모두가 ‘그’의 존재를 잊은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다네.”
‘무슨 소리지...’
“하지만 뒤에 알게 되었지, 나를 찾아오던 사람들이 하나 둘, ‘그’와 같아지고 그런 사람들을 따라, 길게, 길게 늘어진. ‘그것’이 나를 찾아오면서 말이네.”
“‘그것’이요?”
“그래. 그게 자네가 찾는 것이라네.”
“무언지 말씀해주실 수는 없나요?”
“‘그’처럼 ‘그것’도 나는 말할 수 없다네. 다만 빛을 무서워하고, 빛으로 강해지고, 어둠으로 증식하며, 어디라도 닿을 수 있다네. 물론 여기는 아니지만은...”
“그래서 여기를...”
“조명으로 가득하게 만들었지. 그리고 이 깊은 곳에 내가 있는 방을 만들었고, 나는 사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네. 이런 조명 속에서 눈이 빨리 멀더군. 하지만 그게 다행이라고 지금은 생각한다네, 이전까지만 해도 누군가의 눈만을 바라봐도...”
무언가 떠올린 듯 부들거리는 그를 보며, 정상적인 방송은 불가능하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런 건 어떻게 알게 되셨죠?”
‘단서를 잡아야해.’
“그 저수지가 있던 동네를 찾아가 보았지. 그리고 거기서 한 남자를 만났다네. 이현수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이었는데, 그가 나를 보고는 이런 저런 말을 해주더군. 그 말대로 하니, 지금의 상태가 되었다네. 눈은 멀었지만 ‘그것’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그러니 궁금하면 그에게 가보게나.”
“혹시 예전에 미스터리 방송에 자주 진행을 맡으시고, 중후한 목소리에... 아, 이름이 뭐였지.”
“아, 저도 기억나요. 그... 이름이...”
“이름이 중요한가? 이해를 했으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 이해하면 됐죠. 그 분께서 추천하셔 오신 건가요.”
“네, 이현수라는 분께서 저수지의 미스터리에 대해 알고 있다고.”
“그런 것도 알아, 너?”
“알지, 직접 보았으니? 대충 얘기를 듣고도 아는데, 직접 목격한 정도라면 어느 정도겠는가?”
“그래도 직접 봐도 모르는 게 있잖아?”
“이 몸처럼 말인가?”
“뭐?”
“저 처자도 이해한 얼굴은 아니네만?”
둘의 대화를 듣고, 아니 보고 있는 시아의 얼굴은 입이 벌어진 상태로 놀란 것처럼 보였다.
“아, 죄송해요. 저희가 너무...”
“자네가 너무지.”
“제가 너무 혼자 떠들었죠?”
“아, 아니에요. 그냥 신기해서요.”
“이런 대화가 말인가?”
“이런 게요?”
“네, 그 뭐랄까. 독특하잖아요?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논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근데 너무...”
“실존하는 것처럼 말한다, 이 말씀이죠?”
“네.”
“그게, 여기의 존재 이유거든요. 세상에 모든 초현실적인 것들을 증명하는 곳.”
“찰스네 서점.”
“야!”
“일단 진정하시고, 그래서 제가 듣고 싶은 건 알 수 있을까요?”
“저수지 얘기라면, 이 쪽이...”
“왜, 나를 가르키는가?”
“봤다며? 안다며?”
“알지, 그래도 말할 수 없는 게 있다. 마치 자네와 저 처자가 함께 떠올리는 그 사람의 이름처럼 말일 세.”
“모르... 시는 건가요?”
“아니요, 일단 저는.”
“알지 않는가?”
“응?”
“떠오르지 않는가?”
“아? 그래도 자네 손님 아닌가?”
“물어보시게,”
“저...”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어요.”
“그럼 이 쪽은 말을 못하는 사정이 있는 것 같으니, 제 기억을 말씀드리자면...”
“아, 그랬군요.”
“응? 내가 무슨 말을 했지?”
“자네, 요즘 술을 너무 마신 것 아닌가? 뇌가 손상된 것 같네만?”
“뭐? 그럼 자네가 말하지 그랬나!”
“일단 전 들을 건, 들었으니...”
망설임 없이 나가는 여자의 모습을 보며 말한다.
“정말 필요한 정보만 챙겨가는 여잘세.”
“자네도 그러지 않는가? 그리고 저 처자도 조만간 알게 될 테야.”
“뭘?”
“우리가 기억 못하는 이유를 말일세... 그나저나 우리의 얘기는 뭐였지?”
“사건화가 되었다.”
“그런 건 잘 기억하는 군, 뇌가 아예 죽지는 않은 것 같군, 자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