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 오빠.”
얘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끼어든다.
시영의 동생 은영.
“은영아 오랜만이다. 여긴 웬일로.”
“딸이 학교에 자주 안 나간다고 들어서.”
“아, 그랬지. 참.”
“그리고 오빠가 사건을 맡았다 길래.”
“아닌데?”
“그럼 왜 내 딸이랑 여기 있어?”
“일단 여기 앉아서 얘기하자.”
“싫은데? 동네 좁아서 쉽게 소문나는 거 몰라? 오빠랑 내 관계를 아는 사람도 많고.”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 우리가 가족같이 라도 보일까봐?”
“아니지, 가족으로 보는 눈이 없는 게 문제지. 오빠가 뭐라고 내 딸이랑 단 둘이 이야기를 하고 있어?”
“형사로, 신고하려는 시민을 만나고 있는 건데?”
“시민? 애가?”
“그럼 너희 아버지랑 얘기를 할까?”
“그랬으면 사건을 맡았다고 대답을 했겠지? 오빠, 우리 아빠 부탁 거절 못하잖아? 그리고 왜, 오빠네 부부랑 친구면서 이런 것도 못해줘?”
“친구... 였지. 너하고도 그랬고.”
“그래, 였지. 오빠가 그 잘난 자존심에 도망가기 전엔 말이야.”
“저기 엄마? 내가 먼저 얘기 중인데?”
“넌 학교를 며칠을 안 가서 내가 여기 오게 만들어?”
“그러게 엄마도 다른 마음이 있었던 거 아냐? 평소 같으면 비서실 사람들이 왔을 텐데.”
“뭐?”
“어째 가족보다 내가 더 화목한 것 같다? 네 말대로라면.”
“그러게요. 참 친하시네요. 저희 가족이랑.”
소녀는 웃으며 나에게 말하고는 엄마에게 그 웃음으로 그대로 옮겨 향한다.
“넌, 집에 들어가서 봐. 학교에서는 뭘 가르치는 건지. 애가...”
“그 애가 집에서는 부모님한테 배운다지?”
은영에게 웃으며 말하고는 그 웃음을 그대로 소녀에게 옮겨 향한다.
“사모님.”
뒤에서 보고 있던 정장의 남자가 끼어든다. 귓속말로 낮게 들릴 수준의 말을 한다.
‘아버님께서 ...십니다. 그리고 원래 오신 목적... ... 아니셨지 않습니까.’
정확히 모든 문장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대략적인 틀을 맞춰본다.
‘원래 목적이라?’
“바쁘신 것 같은데 사모님은 얼른 가셔야겠네요? 그 화목한 가족모임이라도 있으신가 봐요? 아, 그럼 너도 가야하니?”
비꼬듯 은영에게 말하고, 바로 소녀에게 시선을 옮긴다.
“아뇨, 전 학교도 안 가도 며칠 동안 아무도 모를 만큼의 취급을 받고 있는 걸요? 집에 돈도 많은데 집안 어르신 분들이 그 가족이라는 분들이 돈 때문에 싸우느라 바쁘셔서.”
“아? 그렇지?”
둘은 또 마주보고 웃는다.
“그래. 둘이 맘대로 해라.”
“참 어릴 적부터 포기가 빨라. 아니, 변심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너 찬 것처럼?”
그렇게 말하고는 가운데 손가락을 들고 은영은 정장의 남자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나간다.
나간 뒤에 카페의 주인의 시선과 다른 한 테이블에 있던 아주머님들의 시선이 느껴지지만 무시하고 소녀에게 손바닥을 펴 내민다.
“하이 파이브.”
소녀는 양손을 들어 답한다.
“이정도면 하이 텐으로 가죠.”
짝!
“자, 이제 정말 얘기를 시작해볼까?”
“근데 우리 엄마랑 사귄 적 있어요?”
“응? 응, 아주 어릴 적 실수지.”
“왜요?”
“내 선택이 아니었으니?”
“선택도 안 했는데 사귈 수가 있어요?”
“너희 집안, 주변의 분위기, 그리고 나름 예쁘잖아, 너희 엄마가.”
“헤에? 지금도 마음이 있는 건 아니구요?”
“그건 아냐.”
‘절대.’
“굉장히 단호한 어조로, 단호한 얼굴로 말하시네요...”
“응.”
나의 간결한 답에 얘기가 재미없을 것 같았는지 소녀는 자신의 얘기를 시작한다.
“일단, 엄마는 외할아버지랑 생각이 다를 거예요.”
“왜?”
“사건을 빨리 끝내기를 바라고 있어서요.”
“왜지?”
“그건 저도 아직 모르지만 엄마가 누군가에게 말하는 걸 들었거든요. ‘사건을 빨리 끝내야 해, 그러지 않으면...’ 이라고.”
“그 뒤는?”
궁금한 듯 다가가는 나에게 소녀는 소리를 지른다.
“누구야!”
“아씨, 놀래라.”
“라고 말하면서 제가 있는 걸 눈치 채서 못 들었죠.”
“그렇구나.”
‘아니야, 역시 아니야. 성격이... 아니지. 이건 비슷한가...’
“그럼 그건 엄마 얘기 말고 동생 얘기를 해볼까? 시우였나?”
“시우는, 그냥 좀 특별해요.”
“어떤 쪽으로?”
“뭔가 중얼거리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들어보면 의미도 모르는 단어를 써가면서 어려운 얘기를 하고 있어요. 제 입으로 말하기 그렇지만 아저씨도 느끼는 것처럼 나이에 비해 성숙하고 똑똑한 저도 모를 말들을 그래서 그걸 적어서 정리해놓은 게 있는데...”
“그게 맞았다?”
“네.”
“게다가 알 수 없는 초현실적인 것에 대해서도...”
“적혀 있고요. 아저씨는 어떻게 알아요? 놀라지도 않은 것 같고.”
“내 친구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어서 말이지.”
“찰스... 아저씨요?”
“응, 잘 아네.”
“그러면 설명은 빠르겠네요. 시우가 봤대요.”
“범인을?”
“네.”
“그게 연우고?”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엄마라고 했잖아?”
“그래서 조사를 부탁드리는 거예요. 엄마라고 했지만 외숙모 사진을 보고는 아니라고 말했어요.”
‘그 새끼라면 그럴 수도 있지.’
“그, 엄마를 찾아 달라?”
“네.”
“그런데 굳이 네가 나서는 이유는?”
“시우가 불쌍해서요.”
“어떤 게?”
“이상하지 않겠어요? 분명 자기한테는 사실인데,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이해 해주지도 않고, 그리고 엄마도 없이 자랐고, 아빠도...”
“그래, 아빠도 개판이지.”
“앞 내용도 아저씨라면 이해할 줄 알았어요.”
“찰스 때문에?”
“네.”
“그런 얘기는 어디서 듣는 거니.”
“아저씨의 친구인 저희 가족들은 누구나 말했어요. 외숙모도, 외삼촌도, 엄마도...”
“친구였던, 사람들이지...”
소녀의 말을 자르고 들어간 것을 민망하니 만큼 나의 고개는 떨어진다.
그 위로 큰 소리가 들려온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여하튼 전 믿어요! 아저씨도, 시우도! 그러니 조사해 주세요.”
“왜, 갑자기 소릴 지르고 그래. 다들 보잖아.”
벌떡 일어나 있는 소녀, 웅성거리는 아줌마 테이블.
“저기 손님, 그렇게 소릴 지르시면...”
카페의 주인도 자신이 있던 곳에서 나와 말을 건다.
“죄송합니다.”
소녀는 일어선 채로 90도로 주인에게 한 번, 아줌마 테이블에 한 번 하고 앉는다.
“죄송합니다.”
나는 그런 소녀에게 사과를 한다.
“자, 그럼 이제 하는 거죠?”
“그래.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해 줄까?”
“아저씨가 경찰이잖아요. 그 정도는 스스로 생각하세요.”
“아, 맞다. 그치? 그럼 시우부터 만나야겠는데.”
“시우는 만나기 힘들 걸요?”
“왜?”
“엄마가 벌써 병원에 입원시켰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