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어디가 아파서?”
“아뇨, 정신병원에 입원시켰어요.”
“은영이가?”
“엄마랑 많이 친하셨나 보네요. 방심하면 그렇게 이름 부르시는 걸 보니.”
“그건 됐고, 어디 병원?”
“마음병원이요.”
“그래, 넌 다 먹고 집에 가. 아저씨는 먼저 가봐야겠다.”
“제가 같이 가드릴까요?”
“아니, 넌 공부나 해. 성적 떨어졌다는 원망을 하며 따지는 걸 듣기도, 그걸 상대해주며 답하는 것도 체질에 안 맞을 것 같으니. 게다가 보통 그 정도면 안 해도 안 떨어지지 않니?”
“네네, 그렇죠. 아저씨도 어릴 때 똑똑하단 소리를 자주 들었다더니 그런 건 아시나 보네요.”
“누가?”
“누구겠어요? 아까도 말했는데...”
“어른한테 그런 말버릇 좋은 건 아니니 하지 마.”
“어른한테는 안 그래요. 아저씬 지금 제 동료잖아요. 친구랄까? 더 깊은 애정관계?”
“그래, 맘대로 생각해. 너희 집안사람들이랑 애정 가질 일은 없으니.”
“그건 아저씨 바람이겠죠.”
소녀는 빨대를 입에 가져댄다.
“그래, 바람이지. 애초부터의...”
잠깐의 감상.
연우, 은영, 시영.
그 집안사람이 되지 않았어도 될 사람이 내가 가장 사랑하던 사람이었다.
“일단 아저씨는 간다. 다 먹고 집에 들어가.”
“누에누에.”
네네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지만 소녀는 입속의 빵을 씹으며 귀찮다는 듯이 가라는 손짓을 했다.
“요즘 애들은 참 쉽게도 질리는구만. 그렇게 놀려대더니, 아니 지 엄마를 닮은 건가? 저 집안은 역시 나랑 안 맞아.”
병원으로 가기로 한다, 평소라면 찰스에게 의견을 묻겠지만 분명 초월적인 것 외에도 심리학이나, 사회학, 범죄학 등에도 재능이 있는 녀석이지만 지금 갔다가는 연우와 은영으로 이어지는 연속 공격에 내가 나가떨어져서는 시우를 보러 갈 힘도 없어질 것만 같았다.
병원에 도착하자 나쁜 기억이 떠오른다.
식어가던 연우,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녀를 품고 있던 나에게 말을 걸던 찰스, 뒤늦게 와서는 나와 그녀를 때놓던 시영, 뺨에 닿던 은영의 손길까지.
들어가자 보이는 접수창구 끝에 안내에서 신분증을 보여준 뒤, 병실을 확인하고 올라간다.
‘VIP폐쇄병동.’
“아이를 이런 거창한 곳에 가둬놓다니.”
VIP가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가두기 위해 만든 느낌이 강하게 오는 병실이었다.
이름부터가 폐쇄병동에 VIP라니, 안 그래도 특정 환자를 가둬놓은 곳에 소중한 사람이라니, 그냥 병든 척 하려면 VIP병실이겠지, 폐쇄병동에 구별해 놓지는 않았을 일이다.
그 이상한 이름을 가진 곳에 들어가자 생각보다 멀쩡한 풍경의 방이 나왔고 그 속에서 아이는 혼자 놀고 있었다.
‘혼자?’
그런 상태에 이정도 관리라면 혼자 있을 리가 없어야 했다.
“시우?”
“네?”
“네가 시우니?”
“네.”
“누구세요!”
아이에게 다가가려 하자, 병실 입구 우측에 있던 화장실에서 여자 한 명이 나와 아이를 감싸며 말한다.
“아, 그렇게 위험한 사람은 아닙니다. 이현수 형사라고 합니다.”
신분증을 꺼내 보이자, 신분증과 얼굴을 한 번식 번갈아 보고는 여자는 말한다.
“현수? 너 정말 현수니?”
“네? 절 아시나요?”
“나야, 나. 예전에 연우 아가씨 집에서 일하던.”
“아.”
분명 연우의 어린 시절, 연우의 곁에 있던 얼굴이었다. 이름은 모르지만 항상 인사를 주고받고 연우의 뒷모습과 함께 하던 여자.
“이제는 연우 아들 돌봐주시는 거예요? 죄송해요. 형사란 놈이 먼저 알아보지도 못하고...”
“아니야. 못 알아 볼 수도 있지. 그 때 그렇게 아가씨도, 시영도련님도 다들 현수 널 멀리하려고 했으니, 나쁜 기억일 거야. 너한텐. 거기서 날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 그리고 여전히 일하고 있어. 자식들 다 학교는 보냈는데 졸업하고 결혼도 시켜야지. 너도 알잖니 이 집이 돈을 제일 많이 주는 거. 밤이면 퇴근도 하고.”
“그런 것보다는 대단하시다 싶어서요. 그 집안사람들 성격이나, 겪으신 일을 생각하면...”
“아. 알고 있었니.”
“네. 최초... 발견자시잖아요.”
“너도 참 대단하구나.”
“뭐가요?”
“좋아하던 사람이 죽은 얘기를 떠올리려는 모습이, 이 얘긴 그만 하자꾸나. 무슨 일로 왔니 여긴? 날 만나러 온 거니, 아님 시우를?”
“아, 그럼 일단 밖에서 얘기를 좀 할까요?”
“그건 무리가 있을 것 같네, 일단 일하는 중이기도 하고, 사모님께서도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셔서, 은지아가씨 말고는.”
“사모님이라면, 은영이요? 그리고 은지라면...”
“은영사모님 딸.”
“아, 걔가... 곤란하게 하면 안 되니, 그럼 전 여기 안 온 걸로 할게요. 다음에 따로 만나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그래. 전화번호라도 적어 줄게.”
큰 병실 침대의 반대편에 있는 테이블과 쇼파, 테이블 위에 있는 메모지와 펜으로 전화번호를 적어 건네는 그녀.
“감사합니다. 그럼 아저씨는 갈게, 시우야. 무서운 사람 아니니 다음에 같이 놀자? 은지 누나도 아저씨랑 친하니 셋이 놀까?”
“...응.”
고개를 숙이고 답하는 시우에게서 찰스의 기운이 풍겨져 왔다.
‘응이라...’
“그럼.”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나가려고 하자, 뒤에서 누군가 붙잡는다.
“가지 마.
“응?”
“시우야, 왜 그러니? 아저씨 보내 드려야지.”
“가지 마.”
매달린 시우는 가지 마 라고 말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런 모습을 보며 가끔씩 이상해지던 찰스가 떠올랐지만 그녀를 곤란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돌아서 시우를 살짝 밀어 거리를 둔 뒤, 무릎을 굽혀 앉아 손을 잡아주며 말한다.
“아저씨가 금방 다시 보러 올게, 아저씨가 있으면 아줌마가 혼나서 가는 거야. 그러니 잠깐만 안녕하자 우리, 응?”
손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고, 두 손으로 시우의 얼굴을 들어 눈을 마주치며 말한다.
“금방 올게.”
시우는 잡힌 고개를 끄덕여 답을 한다. 다시 인사를 하고 시우에게 손을 흔들며 나온다.
나온 뒤, 폐쇄병동 입구에 있던 간호사 실로 가서 방문 사실을 보호자에게 알리지 말아주라 부탁을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검은 정장의 남자가 서있는 모습을 보고 조금 수상했지만 내려가 1층에 직원들에게도 방문에 대해 보호자들에게 비밀이라고 말한다. 한 직원이 나에게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더 높아 보이는 직원의 눈빛을 보고 멈춘다. 싸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엘리베이터가 닫히자,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던 정장의 남자가 옆에 있는 비상계단으로 향해 말한다.
“갔습니다. 사모님.”
비상계단에서 나오는 은영, 간호사실로 향한다.
“방금 누가 다녀갔죠?”
“아, 안녕하세요. 사모님. 아뇨. 아무도 안 다녀갔...”
“형사 라죠? 이름은 이현수고.”
“아, 사모님 아시는 분이셨구나, 아,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야. 그걸 말하면...”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 근데 잠깐만 귀 좀 주시겠어요?”
“네? 아, 네.”
옆 간호사의 떨림을 느끼지 못하고, 자신과 해맑게 대화하고 있던 간호사에게 은영은 말한다.
간호사가 귀를 내밀자.
짝
은영은 간호사의 뺨을 내려친다.
“왜... 왜 그러세요. 사모님.”
“사모님!”
맞은 간호사와 정장의 남자가 말한다.
“야, 내가 병원장님께 말해서 다 잘라줘? 내가 괜히 비싼 돈 주고 쟤를 여기 두고 있는 것 같아? 돈을 내가 이만큼 냈고, 그 돈으로 월급 받으면, 알아서 잘해야지? 저딴 형사 놈 하나 왔다고 나한테 숨기려고 해? 아니, 애초에 왜 들여보내? 일 똑바로 안 해? 내 말이 가벼워? 내가 쉽게 보이니? 그럴 거면 여기가 왜 폐쇄병동이야? 말해 봐? 맞으니까 말이 안 나와?”
볼을 한손으로 모아 잡고, 입술이 튀어나오게 잡고 은영은 말한다.
“이, 입이.”
짝.
“왜?”
짝
“나한테만 음소거가 되지?”
짝
“저, 형사 새끼한테는.”
짝
“다 말하고.”
짝
“병실까지 모셔다 주면서?”
짝
“사모님 그만하십시오.”
정장의 남자가 말한다.
“네, 사모님. 저희가 모시고 간 게 아니라, 혼자 들어갔어요, 형사님이. 저희는 병실도 말 안 했어요.”
“그럼 폐쇄병동 문이 저절로 열려? 저기 있는 철창은 그럼 아무 기능이 없는 거야? 너도, 맞을래?”
손을 들고 위협한다.
“죄, 죄송합니다.”
“사모님 그만하시고 일단 시우 도련님한테 가셔야죠.”
짝
“그래.”
화를 이기지 못했는지 말을 거는 정장에 남자에게 바로 뺨을 때린다.
병실로 가는 길.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소리를 지르는 은영.
다시 돌아온다.
“다음부터 잘해. 안 그러면 정말 다 잘라버린다. 아니, 죽여 버린다?”
“네.”
떨지 않던 간호사도 한 번의 은영의 모습을 보고 이제는 떨기 시작한다.
그리곤 시우의 병실로 향한다.
“오셨어요, 사...”
짝
들어가자마자, 가정부의 뺨을 때린다.
맞고 고개를 숙인 채로 가정부는 움직이지 않는다.
시우는 그런 모습을 보고 은영의 다리에 매달린다.
“놔.”
“놔.”
“놔!”
조금의 간격을 두고 은영은 놔라고 외치지만 떨어지지 않자 놔라고 소리를 지르며 다리를 힘껏 차 시우를 떨어트린다. 시우는 떨어지자 바로 다시 달려들어 매달린다.
“하지 마.”
“이 새끼는 지 애미 새끼 아니랄까봐, 왜 리허게 독해. 놔! 놔라고!”
다리를 흔들며 이번에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 기창을 향해 은영은 계속 소리를 치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가정부도 시우에게 붙어 말한다.
“시우야, 그만해. 아줌마 괜찮아.”
흔들거리는 다리는 멈추지만 시우는 떨어지지 않는다.
“시우야, 그만...”
맞아도 울적하지 않던 가정부의 목소리가 울적해지자, 시우는 은영의 다리를 놓고 우울한 가정부를 위로하듯 안긴다.
“아줌마, 계속 일면 알지? 내가 말을 하면 들어. 애새끼들 키우기 편해? 살기가 편해? 좀 피곤하게 해줘?”
“아닙니다. 잘하겠습니다.”
가정부는 현수가 그냥 들어왔다고 말해도 되지만 그럼 일이 길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저 대답으로 끝낸다. 품에서 떨고 있는 시우를 위해 씩씩거리며 은영은 나가고 시우는 울기 시작한다, 그런 시우를 달래는 가정부.
“잘했어,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