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돌아오자 후배 녀석이 말한다.
“선배, 서장님이 서장실로 오시래요.”
서장실 앞에는 익숙한 사람들이 서있었다. 서장실로 들어가자, 연우의 아버지가 보였다. 명예회장이 되시고는 처음이었다, 서장님과 아버지의 앞에서 과장, 팀장이 굽실거리고 있었다.
“왔나? 이 형사?”
“오랜만이구나, 현수야.”
경례를 하고 들어서니 인사를 건네는 두 분.
“회장님께서 이 형사가 보고 싶다고 하셔서.”
“허허, 이제 명예회장 된지 오랩니다.”
“이제 그만 둘은 나가보게.”
서장님이 말하자, 과장과 팀장이 인사를 하고 나간다.
과장은 나가며 나에게 얼굴로 뭔가 신호를 준다.
‘대충 예의 있게 굴어라 인가?’
“미안하지만 서장님도 잠깐 자리를 비워줄 수 있으시겠습니까?”
“네, 회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서장은 망설임 없이 일어나 나간다.
“현수야.”
“네, 아버님.”
“오랜만인데 얼굴보고 얘기 하자꾸나.”
“네.”
보기 싫은 얼굴을 피해 숙이고 있던 얼굴을 들어 난 그를 바라본다.
“내가 불편하니, 아직도?”
“네, 이렇게 오신 것도, 마주하는 것도 불편합니다.”
대답을 하면 억지로 웃음을 지어보지만, 어색함이 얼굴의 근육 전체에 느껴진다.
“연우 때문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그 아이의 지병은 어렸을 적부터 있던 것이고, 너도 알고 있었잖니? 누굴 탓할 것도 아니고, 자책할 것도 아니란다.”
“아버님 탓, 아닌가요?”
“...자책이 아니구나.”
“자책도 있습니다. 제가 멀어지려 하지 않고, 더 신경을 썼다면, 시영이가 없었을 때, 시우와 연우를 신경 썼다면...”
“그런 것 때문에 날 싫어하는 것이냐?”
“네, 제 자책감보다는 원망이 크니까요.”
"연우는 누가 죽인 게 아니란다. 누군가 죽였다고 책임을 져야 한다면 네 말대로 내가 죽인 것이지, 그 몸으로 은영이와 함께 유럽을 간다고 했을 때도 내가 말렸어야 했다. 돌아와서 몸이 좋지 않은데도 내 곁에 두지 않고 사업 확장에 바빠 챙기지 못한 못난 아비로, 그 아일 생각한다는 걱정한다는 구실 좋은 말로 여기로 보내 놓고 가정부 곁에만 두고는, 바쁘다는 핑계로 비서실 사람들이나 보내고 얼굴도 자주 못보고 살았구나, 말하고 보니 내가 정말 잘못했구나. 아비로써 제대로 해준 게 없어. 그런 자책감은, 죄책감은 내가 가져야 하는 건데. 예전 너의 분노가 이제 와서 보니 맞는 것 같구나."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지만 현수 넌, 유럽엘 아픈 애를 왜 보냈냐며, 돌아온 연우를 왜 혼자 두냐며, 그 때의 넌 내가 하나도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은 것처럼 세상에서 연우가 가장 중요한 것처럼 행동했지. 연우를 챙기지 않았다고 넌 말하지만, 내가 보고 들은 것들로 보면 남편이었던 시영이 보다, 네가 많았단다.”
“아닙니다.”
“연우 장례식에도 늦게 도착해서 나오는 널 마주쳤지, 말을 걸까 했지만 뭔가 참고 있는 표정을 보고는 장례식장을 들어가지도 않고 널 따라갔지. 주차장구석에 도착해서는 혼자 자리 잡고는 울기 시작한 너는 날 눈치 채지도 못하더구나, 주차장 큰길을 등지고 서서 울다, 지쳐 앉아서 울다. 그렇게 몇 시간쯤을 널 보고 있었단다. 연우 엄마가 죽었을 때, 이미 난 울어서 미안하게도 딸의 장례식에 하나도 눈물이 안 나더구나, 그런 날 대신 울어주는 것 같아서 그렇게 슬피도 우는 널 보고 있으니 딸을 마주할 자신이 그 때서야 생겨 장례식장으로 갔단다...”
감상에 빠진 듯한 그에게 뭐라도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되어 입을 땐다.
“그러셨군요.”
“그래.”
그의 간단한 답에 정적이 흐른다.
그 정적은 긴 세월 동안 쌓인, 그런 감동적인 스토리만이 아닌, 한 명의 고집과 한 명의 분노가 정리되고 묻힐 만큼의 서로에 대한 적의의 행동들이 있었다.
“아버님.”
“그래.”
“무슨 일로 그런 얘기를 하시는 지, 감성팔이를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평소처럼 본론만 말씀 해주시죠.”
숙였던 고개가 올라올 만큼 가슴에서 올라오는 울분을 입으로는 뱉지 못하고 눈에 집중한 채 말한다.
문 밖에서는 쿠당탕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입으로는 뱉지 못했지만 말투에 묻어나온 나의 뾰족함에 그가 상처라도 받을까, 그래서 자신에게 뭐라도 튀지 않을까, 걱정되어 나를 말리러 오려고 하는 누군가를, 다른 누군가가 말린 소리로 들렸다.
“이 사건을 연우를 위해. 아니, 내 손주 시우를 위해 잘 조사해주길 바란다고 말하려고 왔다네.”
“안 그래도 김 의원님께서...”
“그 친구가 나한테 왔더군. 어떤 말도 하지 말라며 말일세. 자신이 모든 걸 말해두었다고 나에게는 말했네만, 알아보니 그 친구의 딸, 은영이는 그런 마음이 아닌 것 같아서 말이지. 자네와 은영이의 관계도 있고, 최근에 만났다지?”
“그건, 제가 원해서 만난 게 아니라. 조사를 부탁하던 은영이 딸, 은지양이 만나자고 했는데...”
“그래도 은영이가 왔다지? 그리고 내 손주 놈도 마음대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말이야. 둘이 무슨 일을 꾸미는 건, 아닌가?”
“하아... 아버님!”
‘연우에 대해 제가 어땠는지 아시면서! 그런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방금 전까지 하신 말씀은 그냥 절 이용하기 위한 가식이었나요! 항상 그런 식이신가요! 당신이란 사람은!’
생각과는 달리 말은 아버님에서 멈춘다.
소리와 함께 내려친 테이블위에 커피가 일렁이며 조금 넘쳐흐른다. 다시 쿠당탕 소리가 나는 문 밖, 그는 놀라지 않고 말을 이어간다.
“그래. 하고 싶은 말 하시게.”
‘싫었어, 예전부터 저 감정이 담기지 않는 모습, 찰스와는 다른 다른 섬뜩함.’
“그럼 열심히 조사하겠습니다. 김 의원님도, 회장님도 모시는 일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김 의원님 쪽에서 무슨 투정을 부리시더라도, 잘 막아주실 수 있으시죠?”
“노력해보마.”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제 승진은 어떻게 될까요? 분명 김 의원님이 손 쓰신 걸로 아는데.”
“그건 이미 잘 처리 될 거다.”
나는 문 쪽을 한 번 바라보고, 그를 바라본다.
“그럼 시우는요?”
“그건...”
“아, 것보다 궁금한 게 있는데, 시영이가 싫으세요? 아니지, 싫으셨어요?”
그는 망설이며 문을 한 번 보고는 대답한다.
“...그래.”
“그럼 시우가, 시영이를 닮아서 싫으세요?”
“그건 아니란다.”
“그럼 시영이만 싫어하고 원망하시는 건가요?”
“그래.”
“그럼 왜 이렇게까지, 김 의원님도, 회장님도 안 어울리시게 직접 오셔서...”
순간 밖에서 큰 소리가 들린다.
“자네들 여기서 뭐하나?”
자네들이란 존재들에게는 애초에 관심도 없었던 것처럼 망설임도 없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직접 문을 열고 시장이 들어온다.
“아이고, 회장님 저희 시에 오셨으면 저한테 먼저 연락을 주시지. 제가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일어나 내가 인사를 했지만 무시하고, 시장은 그에게 손을 내민다.
고개를 숙인 채로 나는 그 손끝을 바라보고 있다.
“명심하게나, 누군가의 진심을 알고 싶다면, 혀끝, 손끝, 그리고 거기의 끝이 어디로 향하는지 보시게나. 옛말에도 남자가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나오는 만큼 그게 틀린 말만은 아니라네, 물론 옛말은 경우에 맞게 붙이니 틀릴 일은 없지만 말일세.”
찰스의 말이 떠오른다.
시장의 손은 행동만큼이나 솔직했다. 성추문으로 검찰 조사까지 받은 인간치고는 아직도 ‘끝’을 너무 남발하는 시장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는 비웃음이 나왔다. 이내 그런 자에게 숙이고 있는 나의 모습이 싫어서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이제는 명예회장입니다. 그것도 오래 됐습니다, 뵙는 분마다 말씀을 드려야 하니 조금 민망하군요.”
머쓱한 웃음이 섞인 머리를 긁는 소리, 그는 분명 불편해 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시장님은 안녕하셨습니까?”
둘의 얘기가 시작되는 것 같아, 몸을 그들의 방향으로 하고 나는 나오기로 한다.
“그럼 두 분 얘기 편히 나누십시오.”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고개 위로 그의 음성이 울린다.
“현수야, 부탁한다.”
“그래, 그래. 나도 부탁하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회장님이 부탁하시는 거니 말이야.”
웃으며 시장은 말한다, 답을 하지 않고 현수는 문으로 뒷걸음질로 나간다.
나가자 서장과 과장이 달려오고, 팀장은 뒤로 돌아 초조한 듯 다리를 떨고 있다.
“이현수, 너!”
과장이 소리친다.
“그만, 이 형사. 잘해야 한다. 이제 우리 서 문제만이 아니라, 시장님도 아는 건이니 말이야. 난 들어가 볼 테니, 과장이랑 팀장은 전폭적으로 우리 이 형사 지원해서 사건 잘 해결할 수 있게, 다른 아무 걱정 하지 않고 일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리고 민원실 업무는 다 빼고, 실무에 힘쓸 수 있도록 일단 처리하시구요. 외근 같은 것도... 아니다, 이정도 말하면 다들 알지? 내 직통 명령이다. 잘해라. 난 들어간다.”
그렇게 말하고는 나의 등들 두드리고 자신의 방으로 어색한 손님처럼 들어간다.
과장은 서장의 말이 있어서인지, 생각보다 긴 잔소리는 하지 않는다.
“하, 잘해. 내가 최대한 도와줄 테니까. 조사하면서 사고 쳐도 이해할 테니까, 큰 사고만 치지 말고, 저번처럼 헛소리만 하지 마. 밀어주는 건데 그냥 떠먹어. 일 키워도 되니까, 좀 부풀려서 죽은 사람들 이름으로 너도, 나도 좀 잘나가 보자. 매번 김 의원 집에 도움만 받지 말고, 새로운 라인도 좀 타자고, 저 분은...”
‘저 분은. 그래, 저 분은 나를 항상 방해였지.’
“네네, 알겠슴돠.”
“말투는 왜 그래?”
“제가 오랜만에 갑인 상탠 거 같아서요.”
“야이, 너!”
“그럼 전 다시 외근 나가봅니다.”
“자료는 안 보고?”
“다... 봤어요. 연우 사건자료들, 시영이 사건 자료, 병원, 부검 전부요.”
‘씨발.’
“그래서 어디 가는데?”
뒤로 돌아 경례만 하고 계단으로 내려간다.
현수가 나간 뒤, 과장은 말한다.
"저 자식.“
"과장님 저..."
팀장이 과장에게 말을건다.
"나중에 말해. 지금은 좀 할 게 많네. 아니다. 네가 해라, 방금 서장님 얘기 들었지 애들한테 말해서 자료 더 있는지 알아보고 다른 기관에서도 자료 좀 받아오고 협조 요청도 좀 하고."
"그래도 이렇게 해도 되는지, 다른 애들도 노는 게 아닌데."
"해라면 그냥 해. 김 의원, 김 회장, 서장님도 모자라 이제 시장님까지야. 알아서 판단이 안 돼? 게다가 자료만 조사하는 게 힘들어? 그것만 좀 추가해도 별 문제도 없고, 우리 공은 생기고, 모르겠어? 이미 사인도 심장마비고 우리가 뭐 안했니, 뭐니 말만 안 나오게 말이야. 문제 생기면 경찰대 출신도 아니고, 잘나신 분들 가호 받는 현수가 알아서 책임 질 건데, 현수가 당장에 책임 져도 별일 안 당할 봐서 알잖아? 그렇게 현수 싫어하던 김 회장도, 저기 앉아서 현수를 잘 봐주라고 말하는 시점인데, 상황 파악이 안 돼? 왜? 네 자리 위험할까봐? 팀이 하나야? 부서가 하나야? 너도 이제 줄 좀 잘 서서, 분위기 파악도 좀 잘해서 더 높이 가야지 팀장까지 올라온 놈이 왜 그리 시야랑 속이 좁아."
"네 알겠습니다."
“알겠으면 빨리 가봐, 내가 그런 걸 일일이 다 말해야겠냐?”
팀장은 꾸벅 인사를 하고 달려간다.
"저 병신새끼. 경찰대 출신이라 봐주기도 힘드네. 경찰대는 어떻게 졸업한 거야? 다른 애들 건수 몰아줘서 팀장된 건 이유가 있는 거였어, 역시. 하, 현수 자식이 경찰대 출신이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리고 이번 일 좀 잘 해결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