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여름 눈
작가 : 육일육씨
작품등록일 : 2018.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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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에도 꽃은 피나요(완)
작성일 : 18-02-04     조회 : 334     추천 : 0     분량 : 4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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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ㅡ이모, 나갈 생각 있으면 말해요. 우리 서장이 저 PD아는 사람이래. 술자리에서 얼마나 자랑을 하던지.

 

 ㅡ고마워요.

 

 빈 말일 지라도 가끔 응옥씨에게 가끔 물어주는 안부나 이런 얘기들을 응옥씨는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한번은 단골 택시기사 손님이 혼자 술을 마시다, 조용한 가게 내의 응옥씨와 다른 아주머니와의 대화를 엿듣고는 괜히 감정이입을 하는 바람에 응옥씨의 손을 잡고 닭 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가셨었다.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리고 가신 기사님은 가게를 나가 조용히 담배를 물고 10여분 하늘만 바라보셨다. 하늘엔 달도 별도 없었는데도.

 

 가슴 속으로 들어오는 회색 연기가 매워서인지 그의 속에 있는 숨을 내뱉으려고 노력하듯 큰 숨만 내뱉으며 그 과정이 힘이 들 듯 어깨만 들썩거렸다.

 

 “힘내요” 라는 말과 함께 응옥씨에게 계산으로 내밀고 간 초록 지폐 3장은 한국에 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아 본 팁이라는 거였고 어디에 써야 할 지 몰라 집에 와 곰곰이 고민 후 그녀의 비상금 봉투함에 넣어 두었다.

 

 응옥씨는 돈을 많이 받지는 못 했지만 버는 돈의 대부분 이상을 그 봉투함에 넣었다.

 

 요즘 세상에 누가 돈을 그렇게 보관 하냐며 이해하지 못하고 잔소리하는 아주머니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은행에 넣어서 이자를 받으라 거나 나중에 집 살 것을 생각해서 주택청약을 넣으라 거나 하는 동료 아주머니들의 혼내는 듯한 조언들을 무시한 건 아니지만 그럴 때면 괜찮다는 말과 함께 웃어 넘기곤 했다.

 

 당장 어디에 써야 할 곳도, 앞으로 좋은 집에서 살고 싶다 거나 좋은 옷,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늘 기대를 안 한다고 말을 하고 다니던 응옥씨지만 언젠가, 정말 혹시라도, 아들을 마주하게 될 까봐, 아니면 함께 살게 된 아들의 결혼 살림에 보탬이라도 되지 않을까 하고 현금으로만 받아서 모아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행동들은 집에 불상이라도 모셔 놓고 매일 제사를 지내는 종교인들처럼 응옥씨 또한 그 봉투를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희망이 생기곤 했다.

 

 당장엔 없어도 믿으면 이루어 지기라도 한다는 듯이.

 헛된 희망이 아니라 응옥씨에겐 추운 반지하 방에도 감옥 창살 같은 창틀 사이로 들어오는 따뜻한 바람 같았다.

 

 어디서 들어오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가끔 들어 오는 바람은 응옥씨에게 생활이 지겨울 때면 이곳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듯 달래주는 듯 했고 그래서 다른 곳에 이사를 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ㅡ언니, 고생해써요.

 ㅡ자기, 고생했어. 얼른 들어가 밤 바람 춥네 오늘.

 ㅡ네, 언니두요

 

 또 한 해가 지나 갈 때가 된 걸 알리는 듯 집을 갈 때 함께 배웅해주던 해는 어느새 퇴근시간이 점점 빨라졌고, 응옥씨는 시장 골목에서 산 비싼지도 저렴한지도 모르는 털이 달린 파카를 꽁꽁 싸 메며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옷은 좋은 걸 입으라며 쉬는 날 다른 동료 아주머니와 함께 간 백화점 아울렛은 응옥씨에게 눈이 휘둥그레 질정도로 어지러웠고 하늘까지 길이 이어지기라도 한 듯한 에스컬레이터이며, 한 걸음 걸을 때 마다 오븐에서 구워 나온 듯한 밀가루 냄새, 밥 한끼 값을 하는 커피들, 그리고 포장마차에서나 볼 법한 떡볶이들과 꼬치 오뎅이 이런 곳에 있다는 게 마냥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중 아주머니가 응옥씨를 데리고 간 것은 캐주얼 여성 코너나 1층 명품, 화장품 코너가 아닌 지하에 있는 특별할인 코너였다. 사실 더 높은 곳에 있는 옷 가게들의 가격은 티를 내면 자신이 이상해 보일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특별할인 코너에는 위에 다른 층과는 다르게 옷들이 시장처럼 거대한 박스 위에 널브러져 있었고, 이곳에는 엄마 손을 꼬옥 쥐고있는 아이들, 재미난 구경이라도 난 마냥 삼삼오오 뭉쳐 다니는 고등학생들, 자기 몸도 겨누기 힘들어 보이지만 꿋꿋이 옷을 고르는 할머니와 그 광경을 옆에서 말 없이 지켜보는 할아버지의 노부부도 모두 각양각색이었다. 그리고 함께 온 아주머니가 괜찮다며 사라고 한 옷 앞에서 멀뚱히 서있자 처음 보는데도 언니라며 따스한 웃음과 잘나가는 옷이라는 준비 해 놓은 듯한 멘트로 친근한 티를 내며 검은 옷의 직원이 다가왔다. 천연 모피이고 이월 상품이라 싸게 준다 던 직원은 계속해서 옷을 사게끔 좋은 점을 늘여 놓았지만 직원의 장사에도 불구하고 응옥씨는 왠지 그 모피 털들을 보며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직원의 계속 되는 칭찬이 부담스러웠다.

  처음 들어 본 예쁘다는 말이나 나이보다 어려 보여 아직 옷 태가 살아있다는 말들이 기분은 좋았다.

  하지만, 지금 있는 옷도 아직 입을 만 하다며 결국 마다하고 덕분에 좋은 구경했다며 백화점을 나왔다.

 

  ㅡ벌어서 쓰지도 않으면서 하나쯤 사고 그래 올 겨울부터 춥대

  ㅡ괜찮아요, 아직 입을 만 한 걸요.

  ㅡ자기, 돈 모아서 빌딩 사려고 그래? 그럼 나도 집 하나 줘야 돼 알지? 깔깔.

 

 무엇이 그리 항상 즐거운지 농담도 자주 뱉고 말도 많지만 그래도 쉬는 날 집을 나와 이렇게 있어 본 게 오랜만이었다.

 

 ㅡ아이고 참, 나 오늘 아들내미 부부 온대서 이만 가봐야겠네. 자기도 잘 들어가. 버스 타는 곳 알지?

 ㅡ네, 조심히 가세요.

 

 버스에 타 집에 가는 길, 창 밖을 보며 어딘가 무언가 두고 온 듯한 느낌이 가시 질 않았다.

 아까 봤던 옷 때문인지, 이제는 집에 갈 때 지켜 봐 주는 해도 없어서인지.

 걷고 싶은 마음이 생겨 2정거장 전에 내려 시장 골목을 지나갔다.

 

 ㅡ아가씨, 날도 추운 데 그렇게 다니다 감기걸려요.

 ㅡ네? 아.. 감사합니다.

 

 시장 나가는 길 옷 가게 할머니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ㅡ요새 감기 얼마나 독한데, 젊은 사람은 추위를 덜 타나봐. 내 딸도 치마 입고 다니는 거 보면 한숨만 나온 다니까. 이거 좀 가져가요. 내 딸 같아서 그래.

 

 주머니에서 할머니가 꺼낸 건넨 건 이미 따뜻해져 부스럭 소리를 내는 핫팩이었다.

 

 ㅡ감사합니다.

 

 ㅡ한국말 잘 하네, 오래 살았나봐?

 ㅡ한국 온 지 쪼금 됐어요.

 ㅡ어디사람이여?

 ㅡ저.. 베트남에서 왔어요.

 ㅡ아아, 알지 알지. 그 싱가포르 옆에 맞지? 내 딸이 싱가포르 유학 가 있어서 알아. 남의 나라에서 고생이 많아.

 ㅡ아니에요. 감사합니다.

 ㅡ주책이야, 내 딸 같아서 그랬네. 잘 가요.

 ㅡ네.

 

 ㅡ할머니. 이 옷은 얼마에요?

 ㅡ어떤거? 그거 10만원이야. 이거 참 내가 장사 하려 한 건 아닌데, 그거 인조 모피인데 괜찮어 따뜻하고. 옆 가게 떡집 아줌마도 사고 하나 남았어.

 ㅡ이거 주세요. 저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종일 백화점 직원에 칭찬 때문인지 한껏 자신 있는 말투로 한국에 와 처음 해본 말이였다.

 ㅡ아유, 고맙게. 내 딸 같으니까 7만원만 줘. 기다려 넣어 줄게.

 ㅡ아니에요. 입고 갈게요.

 ㅡ그려그려. 지금 옷 많이 헤졌네. 새 옷도 사 입고 해야지. 고생해서 일만 하면 힘들어.

 ㅡ네..

 

 ㅡ여기 3만원 줄게. 아가씨 잘 입고 가요. 그리고 그 옷 빨 때는 드라이 해야 돼. 드라이 알지?

 ㅡ네. 알아요. 감사합니다.

 

 집으로 가는 길 내내 새로 산 옷 대신 비닐 가방에 들어 있는 외투를 바라 보았다.

 이미 찢어져서 어떻게 고쳐야 할 지 몰라 바늘로 꿰맨 자국, 김치 국물이 튀어 빠지지 않는 얼룩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응옥씨는 집에 오자 마자 새 옷 옆에 입던 옷을 그대로 두었다.

 버리는 게 역시 좋겠다 결심이 들었지만, 막상 의류함 앞에 서서 버리려 손을 드니 옷이 한 벌이면 하나 드라이 하고 나면 다른 하나 입어야겠다며 아쉬움이 들어 내년까지만 미루는 게 좋겠다 생각해서였다.

 

 진작 새 걸 사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한국에 와서 처음 샀던 옷이라 그런지 함부로 버릴 수 없었다.

 무엇보다 무언가를 버리는 것에 관대하지 못했다.

 버리는 건 쉽지만 버림 받은 건 힘든 걸 알아서 그런지 모르겠다.

 

 그렇게 시장 자투리에서 산 옷으로 바람을 막으며 집에 와 걸어 놓고, 응옥씨는 보물이라도 숨겨 놓은 마냥 옷장 3번째 서랍부터 열었다.

 

 하얗던 종이가 어느새 양치를 안 한 이빨처럼 누렇게 피어 올라있었다.

 

 봉투는 천원짜리부터 오만원까지 응옥씨가 그동안 얼마나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듯 했다.

 그리고 봉투를 바라 볼 때면 밑동이 잘려 나가는 나무처럼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다가도 누군가 스스로를 토닥여 주는 느낌이 들었다.

 

 지폐 가장 뒤에 비닐 채 감싸인 칼라 사진 봉투를 꺼내 들어 혹여 주름이라도 생길까 꽃 송이처럼 손에 쥐었다.

 

 신을 믿지는 않았지만 사진이 든 비닐 봉투를 손에 쥔 채 자신도 모르게 할 줄도 모르는 기도를 했다.

 

 이 기도가 어디로 향 할지 누구도 알지 못한채로.

 

 

 ‘하나님…’

 

 창틀을 넘어 봉투를 만지작거리는 손 등 위로 닿은 빗물은 떨어질 땐 차가운 듯 했지만 이내 따뜻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그것이 응옥씨 입김 때문인지, 아니면 아무도 모르게 찾아온 반지하의 바람인지 알 수 없었다.

 

 닫지 못한 창문 밖으로 아무 일 없다는 듯 고요한 적막너머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작가의 말
 

 다음 글은 행복마트로 찾아 뵙겠습니다

꽁냥이 18-04-09 17:24
 
작가님, 다음 글 기다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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